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26화 (226/250)

226화

김검천마저 정신을 빼앗긴 듯이 마을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의 정신 장벽은 여전했지만 행복함이 넘치는 기분을 막지는 않았다.

모든 감정을 막아버리면 김검천은 마음 자체가 없는 사람이 되버릴 테니까.

다만 인공지능인 미리내에게 있어 마을 사람들의 얼굴 같은 건 표정의 변화에 불과했다.

다른 생명체의 행복한 모습 같은 건 미리내가 알 바가 아닌 것이다.

김검천의 웃는 얼굴이라면 또 모를까.

그렇기에 미리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김검천에게 말을 걸었다.

[김검천 함장님. 다음 지시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김검천과 다른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런, 저렇게 행복한 모습은 이세계에 와 처음 봐서 그런지 잠시 멍하니 있었군.”

각자 차이는 있었지만 김검천의 말에 다들 공감이 갔다.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목숨 하나도 챙기기 힘든 세상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밝은 얼굴로 한 점 흐림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은 지 워스덤이 중얼거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도왕국에 저런 곳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요.”

루시엘도 입을 열었다.

“저도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마도왕국의 마을 사람인 만큼 접근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샤칸에게 있어 문제라는 건 무인차량에 탑승해서 생기는 멀미였다.

그렇기에 샤칸이 대뜸 소리쳤다.

“뭐해, 마을로 가자! 어차피 마탑인지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며?”

갑자기 루시엘이 샤칸의 어깨를 토닥였다.

샤칸이 루시엘의 손을 쳐내며 물었다.

“왜 어깨를 두들겨?”

“감탄해서요. 얼마 전의 일도 그렇고 샤칸이 이렇게까지 제대로 된 생각을 말로 하다니.”

“이제야 너도 이 샤칸 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보는구나!”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음하하! 그동안 네가 이 몸에 대해 존경해 왔다는 걸 숨길 필요는 없다고!”

“엘프 말 좀 듣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두의 의견을 들은 김검천이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전에 말하기는 했지. 마탑의 확인이 우선인만큼 일단 마을로 이동한다.”

무인차량을 놔두고 마을로 갈 생각은 없엇다.

마차에 비해 성능은 3배 이상 좋았지만 겉모습은 비슷했으니 의심받을 건 없었다.

뒤에 딸린 배틀 머신 같은 짐도 잘 가려져 있었으니 문제 될 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은 마도왕국과 싸울 각오로 왔다.

의심을 받아도 관계없었지만 그에 따른 준비는 확실해야 했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만큼 마탑에서의 싸움이 유리해질지도 몰랐고.

무인차량이 마을에 진입하자 외곽에 있던 중년 남자 한 명이 다가섰다.

어디에나 있을듯한 평범하게 생긴 사람.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의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얼굴 부위에서 각질처럼 피부 조각이 후드득 떨어지는 게 보일만큼.

- 끼익.

김검천 일행이 멈춘 무인차량으로부터 내렸다.

항상 그랬듯이 성질 급한 샤칸이 먼저 내려 중년 남자에게 달려갔다.

자기 몸만 한 무식하게 생긴 금속망치를 든 드워프가 달려오자 중년 남자는 흠칫했다.

분명 놀랐을 텐데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샤칸은 별생각 없이 대뜸 물었다.

“이봐! 인간! 저기 보이는 게 마탑 맞나?”

중년 남자가 샤칸이 내민 손가락을 따라 마탑을 보더니 대답했다.

“저게 마탑이 아니라면 세상에 마탑인 게 없을 겁니다. 왜 그러신지요?”

“바보냐. 그거야 당연히 마탑을 가려고 하니까 그런 거지.”

뇌도 근육인지 궁금하다는 드워프인 샤칸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들은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가 미심쩍은 눈으로 샤칸을 바라보았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마도왕국이 세워진 이후 마탑은 마법사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하, 그러셨군요. 그런데 드워프가 마법사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지니고 있는 금속망치만 봐도 샤칸은 전사 체질.

중년 남자의 상식으로도 마법사가 그런 걸 가지고 다닐 리 없었다.

그의 생각이 위험한 쪽으로 향하기 전 루시엘이 입을 열었다.

“샤칸. 그렇게 다짜고짜 물으면 그 분이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식으로 물으라고. 질문 몇 개 던질 뿐인데 귀찮게.”

웃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중년 남자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야 그럴 것이 드워프 말고도 엘프마저 나타나다니.

중년 남자가 알기로 이종족들은 이런 곳에 있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엘프? 드워프도 그렇지만 엘프마저 왜 이런 곳에? 애초에 우리 왕국에 이종족이 있었나?”

저 반응을 보니 강제로 이곳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는 걸 알면 아예 기절할 것 같았다.

김검천과 일행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필요도 없는데 싸우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김검천이 워스덤을 향해 슬쩍 눈짓을 했다.

마법사인 워스덤이라면 사소한 문제 같은 건 무마시킬 수 있을 테니까.

마탑의 마법사라면 몰라도 마을의 주민정도를 상대하는 건 별문제 없을 것이다.

이게 마도왕국까지 워스덤을 데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워스덤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었다.

“크흠, 저들은 내 일행이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데다 로브까지 입고 있는 워스덤의 복장은 전통적인 마법사의 그것.

방금 전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중년 남자가 워스덤에게 공손히 물었다.

“혹시 마법사님이십니까?”

“허허, 그러면 마법사인데 마법사로 안 보이는 거요?”

중년 남자가 펄쩍 뛰었다.

방금 자신이 한 별 것 아닌 행동 때문에 마치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워스덤 또한 가볍게 농담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아닙니다! 마법사님을 의심하다니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거면 되었소. 이제 우리는 가봐야겠구려.”

“아하, 그러면 제가 길을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마탑까지의 길을 말이요?”

“하하, 마법사님도 무슨 농담을. 이 마을은 마법사님들의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곳 아닙니까? 당연히 마법사님이 쉴 곳으로 안내해드린다는 거지요.”

마도왕국의 마법사들이 모이는 마을이라니.

마탑은 별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지만 이건 제 발로 덫 안으로 걸어들어온 셈이다.

워스덤이 거절하려는데 중년 남자가 말을 이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마을을 관리하시는 분들도 잠시 자리를 비워 지금은 마법사님들이 아무도 없거든요. 그러니 부담 없이 마을에 있는 모든 걸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디서 솟아났는지 마을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두 얼굴에 환한 웃음을 떠올린 채였다.

뭐라고 거절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마법사님! 저는 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마법사님! 저는 쉬실 곳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마법사님! 저는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워스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힘으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상대는 일반인.

마도왕국의 마법사라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손을 쓰기에도 그랬다.

그 때 김검천이 뒤에서 고개를 젓는 걸 본 워스덤은 별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겠으니 다들 진정하시오. 그냥 길을 안내할 사람 1명만 있으면 됩니다.”

“예!”

워스덤의 말에 다들 언제 왔었냐는 듯 빠르게 흩어져 마을 곳곳으로 사라졌다.

길 안내를 맡게 된 건 맨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중년 남자였다.

워스덤이 김검천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왜 고개를 저으신 겁니까? 마탑가는 방향은 확인했으니 그냥 떠나면 될텐데요.”

“좀 더 정보를 확보할 좋은 기회인 듯 싶어서. 어차피 시간을 보니 잘 때도 되었고.”

김검천의 말대로 이미 어둠이 지상으로 내려앉은 상태였다.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차량이니 이동이야 자동 운행이 가능했지만 졸음운전은 위험했다.

만약 자다가 공격이라도 받으면 대응하기 곤란한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잘 거라면 마을의 푹신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인 차량의 최대 단점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좌석인 것이다.

애초에 단시간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무인기였으니까.

김검천의 뜻을 이해한 워스덤이 느긋한 마음으로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언제쯤 돌아옵니까?”

“아마도 내일 저녁은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운이 좋으시면 만나시겠지요. 그러면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운이 나쁘던가요.”

“예?”

“별 것 아니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년 남자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무인차량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마법사와 마법 도구에 익숙한 모습.

무인차량도 얼핏 보면 마차와 비슷했으니 마탑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무인차량을 타고 왔기에 오히려 워스덤을 마법사라고 확신한 건지도 몰랐다.

중년 남자를 따라 마을을 이동하고 있자니 여기저기에 특이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성인 남자나 여자 정도 키 높이의 나무가 주변에 널려 있는 것도 그렇고.

나무에서는 금속에서나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풍겨왔다.

하도 그런 나무가 많아 사람은 몰라도 무인차량은 몇 번이고 차체를 돌려야 했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워스덤이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이건 본인도 처음 보는 나무인데. 이곳에서만 자라는 종류요?”

“예. 이건 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아마도.”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웃고 있는 표정과 말투가 대조적이라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왜 그런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런 개인적인 것까지 물을 사이는 아니었다.

모른 척 걷다 보니 마을 광장에 있는 거대한 금속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안에서는 누구나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동상이었다.

사람 형상을 한 이 금속 동상의 높이는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배틀 머신과 비교해도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거기에 5미터는 될만한 금속 몽둥이도 장비되어 있었고.

마법사들이 방문하는 마을답게 별 이상한 게 다 있는 것 같았다.

별나게도 이 금속동상은 눈을 감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통은 눈을 뜬 채로 만들어 질 텐데 말이다.

가까워지면서 금속 동상이 좀 더 자세히 보이자 워스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동상의 재질이 뭔지 알아챈 것이다.

“오오, 이건 무려 3대 금속으로 만들어 진 동상이구려.”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중년 남자가 말했다.

“역시 마법사님이십니다. 한눈에 이게 3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 보시다니요.”

“검 한 자루에 저택을 살 정도로 비싼 3대 금속으로 이런 거대한 동상을 만들다니…”

어딘가 비꼬는 듯한 워스덤의 말이었지만 중년 남자는 칭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워스덤을 마도 왕국 마법사로 오해하고 있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한 탓도 있을 테고.

“이 동상이야말로 마을의 책임자이신 마스터 매지션님이시니까요.”

“과연. 마스터 매지션은 되어야 이럴 수 있는 거겠지요.”

아무리 마법사를 존중하는 마도 왕국이라도 3대 금속으로 이런 큰 동상을 만들다니.

마도 왕국의 최상위 지배계층인 마스터 매지션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워스덤을 위해 마련된 방은 광장에서 약간 떨어진 3층 건물이었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이었는데 건물 안은 깨끗하고 온기가 느껴졌다.

안에서는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짐을 들어 주기 위해 마중도 나왔고.

중년 남자가 자랑스러운듯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이곳은 마법사님들을 위해 먼지 하나 없이 완벽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샤칸이 두리번 거리다가 창문의 틀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꺼내 들자 먼지가 묻어 나왔다.

“하나라고? 여기 먼지 두톨이나 묻어나왔는데.”

“으아아! 어째서 마법사님들을 위한 숙소에서 이런 일이? 죄송합니다! 이보게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관리하는 사람들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눈 몇번 깜빡할 사이에 묻어 있던 먼지는 모두 사라졌다.

이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한 모습.

그런데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 상냥한 태도였기에 오히려 가식적인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그들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자 곧 사그라들었지만.

일이 대충 마무리 된 것 같자 루시엘이 샤칸의 발을 슬쩍 밟았다.

“아야! 왜 그래?”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겁니다.”

둘의 말이 길어지기 전 워스덤이 재빨리 말했다.

“우리가 잘 방부터 보러 갑시다.”

급히 안내받은 방은 마을이 잘 보이는 위치에 10명은 자도 남을 만큼 공간이 넉넉했다.

그 방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음식과 음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김검천 일행이 찾아오는 사이에 빠르게 준비된 듯했다.

김검천은 워스덤에게 부탁해 중년 남자로부터 마도왕국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었다.

중년 남자는 마법사의 말인 만큼 별 의심 없이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었고.

마법사의 말에 의심을 품는 건 곧 죽을 죄를 짓는 일이라도 되듯이.

“드시고 나서 접시만 내놓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난 중년 남자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문 모서리에 발가락을 찍었다.

하지만 중년 남자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방을 나섰다.

저런 상태에서도 웃는 표정을 유지하다니.

별생각 없이 주변을 살피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온 샤칸이 경악했다.

평범한 사람이 저 고통을 참아 넘기다니.

샤칸 자신이라도 저기에 발가락이 찍히는 고통은 참을 수 없었는데.

“아니,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문 모서리에 발가락을 찍었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수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