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지금!”
자신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마법사가 암흑 마탑주였다.
암흑 마탑주가 당하기라도 하면 이길 가능성이 아예 없어질지도 몰랐다.
마스터 매지션들의 전력을 다한 마법이 발동했다.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1000명의 군대도 단 일격에 쓸어버릴 수 있는 마스터 매지션들.
그런 마법사들의 마법이 고르바 탑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마법들이 뭉쳐진 위력은 각각 마법을 사용했을 때보다도 크게 증폭된 상태.
불에다 물이나 얼음을 퍼부으면 힘을 잃게 된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면 불은 힘을 얻어 더 강해진다.
공기에 의한 산소 공급이 왕성해져 불길이 더 거세지는 것이다.
물론 마스터 매지션들은 이런 원리 같은 건 몰랐다.
다만 어떤 경우에 마법 위력이 증가하는 정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화속성 마법이 발동되자 그 뒤를 풍속성 마법이 따랐다.
산조차 태워버릴 수 있는 3000도가 넘는 초고온의 불꽃.
초속 55미터로 건물마저 붕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바람.
화속성 마법은 풍속성 마법의 힘을 빌려 평소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덩치를 불렸다.
고르바 탑주라는 한 목표를 노리는 마법들이 뭉쳐지자 합체 마법이 발현된 것이다.
화염 폭풍.
현존하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불꽃과 바람이 만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상급 기사나 마법사라도 이 화염 폭풍에 스치기만 해도 죽어 버릴 것이다.
건물조차 부숴버리는 태풍에 날아가 죽든지 설사 견딘다고 해도 화염에 타죽을 테니까.
집무실은 넓은 편이었지만 이 2개의 범위 마법 앞에서는 도망갈 구석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합체 마법이 고르타 탑주에게 직격했다.
그 순간 기회를 노리던 청색 마법사가 자신하는 극저온의 얼음 마법을 발동했다.
그는 발동한 마법의 범위는 가능한 한 줄였지만 그만큼 위력은 늘렸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산산조각 난다. 절대영도.”
- 쩡.
검붉은 화염과 바람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보이던 고르바 탑주였다.
그와 그 주변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물체를 급속히 식히면 그 격차에 부서지기 쉬워진다.
온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그걸 급격히 낮출수록 가해지는 부하가 증가하는 것이다.
3대 금속으로 만들어진 동상이라도 견디지 못할 힘이었다.
방어 마법을 펼쳤다고 해도 한낱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가 견딜 리 없었다.
- 치이익.
불꽃과 바람이 그친 후 얼음이 얼자 그 여파로 짙은 안개가 발생했다.
암흑 마탑주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를 손으로 밀며 짜증을 냈다.
“젠장, 누가 이 거치적거리는 안개 좀 치워봐!”
청색 마법사가 대답했다.
“집무실 안인 만큼 안개를 바람으로 처리하기도 힘듭니다. 또 저걸로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짓을 해도 소용 있을 리도 없고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4명의 마스터 매지션의 마법이 펼쳐진 곳이었다.
공간이 격리되어있던 집무실이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었다.
집무실의 색은 통상 공간과 분리되어 있던 때와 달리 점차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암흑 마탑주가 투덜거렸다.
“하긴 그건 그렇군. 마스터 매지션을 4명이나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다니. 고르바 탑주는 죽어도 할 말이 없겠군.”
다른 마스터 매지션 2명이 다가와 빠르게 축하 인사를 했다.
“경하드립니다. 암흑 마탑주님! 이로서 새로운 마도 왕국의 지배자가 되셨습니다.”
“이제야 저희들도 내키는 대로 살 수 있겠군요.”
암흑 마탑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한 자들 같으니라고.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야.”
“에?”
“고르바 탑주가 숨겨둔 고대 마법이 기록된 유물도 찾아야 하니까. 혹시 이 난리 속에 박살 나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청색 마법사가 웃었다.
여태까지 이 공간에 펼쳐진 마법이 있었으니까.
“안심하시고 천천히 찾으십시오. 공간이 분리된 상태였기에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동료 마스터 매지션들도 동의했다.
“하긴 우리들의 마법 공격에도 집무실은 대체로 멀쩡한 모습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고르바 탑주가 우리에게 선물을 남기고 갔군요. 하하하. 악!”
웃고 있는 마스터 매지션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비명을 지른 마법사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듯 보였다.
“왜 그래? 갑자기 비명을 다 지르고. 으악!”
- 우드득.
물어본 동료 마스터 매지션도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비명을 지른 자들이 차례로 공중에 떠올랐다.
이어서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 눌리기라도 한 듯이 그들의 팔다리가 부러졌다.
암흑 마탑주가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 주춤거렸다.
“암흑 마탑주님.”
“왜 그러냐! 이럴 때!”
청색 마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짜증난 상태로 암흑 마탑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청색 마법사가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제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 중이었고.
그리고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고르바 탑주가 그 옆에 서있었다.
“다시 보니 반갑군. 암흑 마탑주.”
“고르바 탑주… 그 공격을 받고도 살아 있었던 건가.”
암흑 마탑주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통상 공간을 격리한 이공간 마저 타격을 준 마법의 힘.
그걸로도 고르바 탑주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으니까.
고르바 탑주가 흐물거리며 원래 공간으로 돌아가는 중인 주변 사물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떤가? 내 방어 마법이? 오, 그 얼굴을 보니 꽤 쓸만 했던 것 같군.”
“우리가 아는 마법 중에는 그 공격을 막을만한 주문같은 건 없는데…설마?”
고르바 탑주가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절망에 빠진 암흑 마탑주와 다른 마스터 매지션의 얼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시간을 들여 저들을 관리하며 숙성시켜 온 보람이 있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고 신경도 쓰였지만 오늘 드디어 그 보답을 받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오늘 맛본 과실은 달콤했다.
기분이 좋아진 고르바 탑주가 대답을 했다.
“치료사의 도움으로 메테오 스웜 외 다른 대마법의 힘도 손에 넣었지. 오늘 자네들을 상대하며 그 힘의 일부를 시험해 보았던 걸세.”
비참한 표정의 암흑 마탑주가 이를 갈았다.
고르바 탑주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것 같았다.
“우리들을 이용해 새로 익힌 대마법을 가지고 실전 경험을 쌓은 거였나? 네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고르바 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공격과 방어 마법은 다른 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주문을 완성했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주문이 얼마나 강하고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특히 방어 계열 주문말고 저들을 무력화 시킨 이 새로운 힘에 익숙해져야 했고.
고르바 탑주로서도 새롭게 얻은 지식을 짧은 시간에 적응 하기에는 힘든 것이다.
“아아, 기대이상이었지. 이제 여기서 메테오 스웜따위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을만큼!”
곧 암흑 마탑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김검천이 마탑에 도달할 것이다.
그와 싸우기 전 실전에서 미리 주문을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연습과 실전은 하늘과 땅 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주문을 제대로 습득하기 위해서 적당한 대상이 필요했다.
상급 마법사정도는 고르바 탑주의 일반 마법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다.
암흑 마탑주나 다른 마스터 매지션들같은 자들 가지고 모든 걸 마무리 짓기로.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달릴 혈석이 되어야 할 재료가 아닌가.
이제 확인이 끝났으니 그들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다.
그때 고르바 탑주에게 암흑 마탑주의 마법이 날아왔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길 수 없어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암흑 마탑주는 그렇게 최후의 발버둥을 쳤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은. 이쯤되면 마법사답게 순순히 네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않겠나? 암흑 마탑주.”
암흑 마탑주의 마법은 고르바 탑주의 앞에서 점차 느려지더니 그대로 소멸했다.
고르바 탑주는 그대로 손가락을 암흑 마탑주에게 향했다.
“이제 쉬거라.”
- 쿵.
“크헉!”
암흑 마탑주는 그대로 지면에 달라붙었다.
몸이 평소의 몇십 배로 무거워져 숨조차 쉬기도 힘들었다.
고르바 탑주가 천천히 암흑 마탑주를 향해 다가왔다.
“마음에 들어. 고작 2명으로 이 정도의 위력을 내다니. 혈석이 6개라면 어떨까?”
그 말을 하면서도 고르바 탑주도 아쉬운 감이 있었다.
원래 이 몸에 들어갈 혈석은 7개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펠우테가 한 명을 죽였지 않은가.
현재 남아있는 다른 마스터 매지션들은 각자 하는 역할이 있어 당장 처리할 수도 없었다.
김검천을 상대한 후에나 그들을 처분해 자신의 몸에 모든 혈석이 갖춰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으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듯 했다.
고작해야 2개의 혈석으로도 마스터 매지션 4명을 제압했으니까.
고르바 탑주가 무릎을 꿇고 암흑 마탑주에게 속삭였다.
“자네들은 좋은 혈석이 될걸세. 내가 보증하지. 그리고 함께 나와 살아갈 것이야.”
“차라리 죽여줘!”
“허허, 그게 무슨 말인가. 세상의 진리, 그 너머를 생각해 보게나. 자네들은 그 진리의 수호자가 되는 나의 일부가 되는 걸세! 이건 기뻐해야지 슬퍼할 일이 아니라네!”
암흑 마탑주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저런 미친 소리를 하는 자에게 잡히다니.
암흑 마탑주는 이대로 죽고 싶었다.
하지만 고르바 탑주의 말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혈석이 되고서도 고르바 탑주와 함께 해야 했으니까.
고르바 탑주가 죽지 않는다면 그들도 질긴 목숨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것이 암흑 마탑주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내용이었다.
고르바 탑주는 아직 살아 있는 4명의 마스터 매지션을 관 속에 옮기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남은 건 김검천과 그 일행뿐인가. 그 이후의 일이 기대가 되는군.”
내일 이후로 세상이 변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상대가 좋든 싫든간에 말이다.
고르바 탑주는 그렇게 믿었다.
***
- 휘이익.
무인차량이 마탑 앞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멀미에 시달리던 샤칸이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앞서 무인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쌓여 있던 눈 속으로 사라졌다.
이 주위로 내린 눈이 샤칸의 머리끝까지 올 정도로 잔뜩 쌓인 것이다.
다음으로 내린 루시엘이 눈을 밟고도 하반신이 파묻히지 않았다.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빈 루시엘은 눈을 밟고도 가라않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진 것이다.
루시엘이 샤칸이 파묻힌 구멍이 안 보이는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샤칸. 어디로 간 겁니까? 하늘로 날아 오른 겁니까? 아니면 땅으로 꺼진 겁니까.”
“으아! 알면서 딴 소리는. 여기서 꺼내주기나 해!”
“아, 눈 속에 파묻힌 거였군요. 워낙 키가 작아서 안 보였습니다.”
“일단 꺼내준 후에 두고 보자고!”
루시엘은 샤칸을 눈 속에서 꺼내준 후 바람 정령의 가호를 내렸다.
몸을 가볍게 하는 정령의 가호를 받자 샤칸은 더이상 눈 속 구경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루시엘이 샤칸을 향해 말했다.
“자, 샤칸. 그러면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보시지요.”
“미… 미쳤냐! 내가 그런 말 따위를 하게! 하지만 고맙기는 하군.”
“감사 인사는 하면서 사과하는 건 힘든 겁니까? 당신이라는 드워프는 특이하군요.”
샤칸이 우쭐거렸다.
“아암, 이 몸이 드워프 중에서 좀 특별하기는 하지.”
“아니, 특이하다고 한 겁니다만?”
그때였다.
마탑으로부터 고르바 탑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 여기까지 온 걸 환영한다. 김검천, 그리고 워스덤. 그러면 이제 잘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