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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40화 (240/250)

240화

고르바 탑주가 다시 한번 핏덩이를 토해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을 상처지만 강화된 신체는 쉽게 죽도록 놔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칼 맞은 상처가 나을 정도의 몸은 아니었기에 고통은 지속되는 상태.

치료사가 활짝 웃었다.

“아, 그거 말입니까? 스스로 초월 존재께서 필요한 재료가 되겠다는데 당연히 제가 협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신 발언, 참 좋습니다.”

고르바 탑주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누가 누구를 위한 재료가 된다는 말인가.

고르바 탑주는 어쩌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깨닫기 싫은 건지도 몰랐다.

순수한 악에 대한 마음도 어찌보면 하나도 더럽혀지지 않은 감정이긴 했다.

그 방향성이 잘못 되었을 뿐.

치료사가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를 못 했다기 보다 이해를 하기 싫은 거군요. 이런 건 당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짓입니다. 당신도 마침내 혈석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이 말입니다.”

“우…웃기지 마! 누가 된다고 했느냐?”

“그분께서 원하셨으니 그렇게 돼야지요. 아니, 당신뿐만 아니라 이 대륙의 모든 게 말입니다.”

치료사가 펠우테에게 눈짓을 했다.

펠우테가 손에서 다시 칼을 만들어내더니 고르바 탑주를 향했다.

다 죽어가던 고르바 탑주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미친 듯 소리쳤다.

“나는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 매지션이다! 세상의 진리를 보고 새로운 힘을 손에 얻은 몸이야!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몸이라고!”

치료사가 차갑게 웃었다.

그게 고르바 탑주가 선택된 이유였다.

그건 고르바 탑주 같은 자에게 허락된 지식과 힘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당신은 죽기 위해 태어난 몸이랍니다.”

“나는…“

- 푹.

고르바 탑주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펠우테의 칼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르타 탑주의 한에 물든 눈동자가 감기기 전 머리부터 사타구니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 선으로부터 붉은 액체가 새어 나오더니 고르바 탑주의 몸을 감쌌다.

그 액체는 떨어져 있던 주변의 다른 혈석도 집어삼켰다.

그렇게 융합되어 남게 된 건 큰 혈석 하나뿐.

고르바 탑주는 그렇게 커다란 혈석이 돼버렸다.

최상급 마석보다도 더 크며 더 강력한 힘이 내재된 혈석.

치료사가 아기라도 다루듯 커다란 혈석을 안아 들었다.

“이것과 마탑의 최상급 마석이면 일시적이나마 그분을 만족시킬 수 있겠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고르바 탑주.”

치료사가 여태까지 해온 것들, 그리고 모아온 마석과 혈석, 마나는 모두 이때를 위해서였다.

이세계는 초월 존재로부터 시작해 초월 존재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김검천이 앞으로 나섰다.

“이제 그쪽 일은 끝났나?”

“관대하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우리 사이의 일도 마무리 지어 볼까요?”

치료사가 허리를 굽힌 채 과장되게 손을 휘저었다.

“서로 아시는 사이겠지만 다시 소개시켜 드리지요.”

다시 허리를 편 치료사가 펠우테를 향해 손가락을 향했다.

“한때 왕국을 집어삼키려던 권력자였으며 공작에다가 재상이기도 했던 테우펠입니다. 이 꼴이 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보니 반갑지 않습니까?”

“크와왕!”

펠우테가 짐승같은 괴성을 지르며 김검천을 마주 보았다.

치료사가 김검천에게 몇 마디를 덧붙였다.

“원래 테우펠의 혈석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펠우테라고 불리지만요.”

치료사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지금 굳이 테우펠의 이야기를 꺼낼 이유도 없었다.

한때 왕국을 집어삼킬 야망에 불타던 테우펠은 죽어 이제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도 그냥 거꾸로 붙였던 모양이었고.

그 이름이 얼마나 성의가 없었으면 김검천도 미처 테우펠을 못 떠올릴 정도였다.

김검천이 펠우테를 바라보았다.

사실이라면 저자를 상대로 익숙한 느낌이 든 것도 이해가 갔다.

그가 자신을 무서워하던 이유도.

얼굴이 다르긴 했지만 그건 나름대로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치료사가 그런 의문을 눈치라도 챈 듯이 웃었다.

“육체 관련 문제라면 별 것 아닙니다. 펠우테의 조합에는 당신도 아는 주술사의 육체가 섞여 있거든요.”

그 외의 여러 가지 자잘한 것도 들어갔다는 말도 함께.

김검천은 치료사가 테우펠과 접촉한 것을 떠올렸다.

아마 그때 테우펠에서 당해버린 주술사도 만난 모양.

주술사의 최후도 테우펠만큼이나 비참한 것이었다.

죽었는데도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마탑의 도움을 받아 인체를 개조한 건가.”

“과연! 예전부터 느꼈지만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테우펠의 혈석, 그리고 주술사의 정신과 육체, 거기에 각종 괴물들이 포함된 게 이 펠우테랍니다.”

장난감을 든 어린아이처럼 펠우테를 자랑하는 치료사였다.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 거였군. 하지만 그건 이미 과거의 일. 내가 관심 있는 쪽은 너다.”

김검천의 시선은 펠우테를 지나 치료사를 향했다.

적어도 이 모든 일은 치료사와 관계가 있어 보였다.

치료사가 서서히 이동하며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김검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너는 여기서 또 도망칠 생각인가?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김검천의 말에 치료사가 대꾸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슬슬 여기서 결판을 낼 겁니다. 하지만 먼저 펠우테와 먼저 대화를 나누시는 게 순서 아닐까요?”

- 샤아악.

펠우테의 양손에서 다시 칼이 나타나더니 오러가 서렸다.

마치 죽어서도 김검천에게 복수할 순간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치료사가 소리쳤다.

“그러면 서로 즐거운 대화 되시기를!”

그게 신호라도 된 듯 펠우테는 함성을 지르며 양손의 칼을 가슴에 모은 채 돌격했다.

모든 걸 그대로 베어버릴 기세.

김검천이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

“저거와는 대화하고 싶어도 말 자체가 안 통할 거 같은데?”

“크와왕!”

난폭한 기세만큼이나 펠우테가 들고 있던 칼날도 심상치 않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칼날이 아니라 오러로 만들어진 붉은 칼날이기에 더욱 흉험해 보였고.

오러의 칼날 2개가 교차할 뿐인데 칼날에 닿은 공기가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 캬치칙.

“이것 봐. 말이 안 통한다고.”

오러를 보아하니 펠우테는 입을 통한 대화보다 몸을 쓰는 대화가 취향인 모양이었다.

저런 흉악한 걸 몸으로 받아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김검천에게는 이럴 때에 쓰기 유용한 방어 수단이 있지 않은가.

“실드. 3중첩.”

- 파파팍.

우선 허공에 실드 3개가 나타나며 오러가 서린 펠우테의 칼을 막아섰다.

위험해 보이는 2개의 오러라지만 실드 3개면 막는 데는 그리 무리 없어 보였다.

혹시 생각보다 오러의 위력이 강해 실드가 무너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실드가 파괴되기 전까지 시간만 벌어준다면 충분히 회피 가능했으니까.

오러가 서린 펠우테의 칼날이 3겹의 실드를 내리찍었다.

- 스윽.

놀랍게도 펠우테의 칼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실드를 그대로 통과했다.

통과한 직후 칼에 맺혀 있던 오러는 그대로 김검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오러를 떼어서 던지는 공격, 오러탄이었다.

“실드 관통? 아니면 방어 무시의 공격인가?”

김검천은 날아든 2개의 오러를 피하기보다 양손의 장갑으로 쳐냈다.

김검천은 펠우테가 가진 힘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상대의 힘이 어떤지 알아야 그에 맞는 대응을 할 테니까.

어느 정도 힘을 흘렸는데도 펠우테의 오러는 파워드슈츠의 장갑에 큰 흠집을 남겼다.

지켜보던 치료사가 외쳤다.

“하하, 어떻습니까? 그의 오러 앞에서는 보호막이나 실드 같은 건 소용없답니다?”

실드 관통 공격이라는 걸 확인한 김검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치료사의 말도 그렇고 물리적인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힘은 아닌 것 같았다.

실드는 통과했지만 파워드슈츠 장갑으로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장갑에 난 상처로 보아 오러에 맞으면 파워드슈츠가 부서지기에 충분한 위력.

“후, 상황이 위험하긴 하군.”

펠우테가 울부짖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아까 공격으로 김검천의 장갑에 손상이 가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펠우테의 왼쪽 칼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 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러졌다.

뛰어서 피하면 수직으로, 옆으로 피하면 수평으로 반으로 갈라질 상황.

뒤로 물러서면 오러탄에 두들겨 맞을 것이었다.

“크롸락!”

실드로 방어는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장갑은 몇 번정도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공격받는다면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김검천은 방어나 회피, 둘 다 포기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좀 더 어울리는 방식이 있었으니까.

“아음속 기동.”

“크릉?”

공격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김검천의 모습에 펠우테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김검천의 주먹은 펠우테의 턱 부분을 가격했다.

- 카칵.

턱이 부서진 펠우테가 주먹에 담긴 힘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공중에서 3바퀴 돌았다.

김검천은 아직 공중회전 중인 펠우테를 향해 다리를 올려 찼다.

- 퍽!

펠우테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몸을 회전하면서 지면으로 추락했다.

- 쿵!

지면에 떨어진 펠우테가 그 충격으로 인해 목 부분까지 지면에 처박혔다.

목이 박힌 채 꿈틀거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재생도 못 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제국에서 본 재생 능력이 있다고 쳐도 단번에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검천이 너무 힘껏 쳐서 저려오는 손목을 매만졌다.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2차 봉인 해제 중에는 나도 힘 조절하기 힘들거든.”

죽었지만 마법사들의 손에 다시 살아나 본능으로만 움직이던 녀석들이었다.

그럴 바에는 지금처럼 깔끔히 이세계를 떠나게 해주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김검천은 2차 봉인의 여파로 인해 여전히 푸르게 타오르는 눈으로 치료사를 바라보았다.

치료사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펠우테가 죽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치료사의 행동으로 보아 여전히 뭔가 믿고 있는 바가 있는 것 같았고.

치료사가 굴러다니던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펠우테를 보다 고개를 들었다.

“저런, 두 분께서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짧군요. 오랜 친구를 만났으면 좀 더 깊은 정을 나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내가 정할 일이야. 네가 아니라.”

“이세계는 당신 위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널 위주로 세상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존재가 있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당신마저!”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함선이 추락하기 전의 일도 이곳의 초월 존재가 의도했다는 것인가.

김검천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함선에서의 영원에 가까웠던 잔혹한 일상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면 초월 존재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좋았다.

초월 존재가 어떤 존재든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아니,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를 김검천, 자신이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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