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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42화 (242/250)

242화

치료사의 말에 워스덤은 떠올렸다.

제국에서 김검천이 황제와 메테오 스웜을 상대하면서 보였던 활약을.

그가 바로 함선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금속 도시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워스덤은 망설임 없이 치료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검천님이라면 가능할 거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하오?”

기대하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치료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놀랍고 공포스러운 광경 속에서 저 마법사는 여전히 김검천을 믿고 있었다.

김검천이 초월 존재도 아닐진대 어찌 이렇게까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런 놀라운 광경은 초월 존재, 오직 그분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의 믿음을 부정하는 듯한 워스덤의 모습에 치료사가 순수하게 분노했다.

초월 존재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

초월 존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세계의 모든 건 초월 존재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게 순리이자 법칙.

그런데 저기 있는 김검천이 어떻게 초월 존재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인가.

죽을 날이 머지않은 늙은 마법사, 워스덤이 그렇게 믿는다는 자체가 초월 존재에 대한 모욕.

그때 샤칸이 대화 중에 끼어들었다.

치료사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자 화를 더 내게 만들 작정으로 말이다.

“아니, 김검천님이라면 할 수 있다니까? 의심나면 초월 존재 대신 김검천님 한번 믿어봐.”

루시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

“샤칸의 말이 맞습니다. 김검천님이라면 그쪽의 초월 존재보다도 나으실 겁니다.”

루시엘과 샤칸, 워스덤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문제가 생겨도 김검천은 항상 답을 제시했다.

방법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여태까지 보지도 못한 초월 존재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어온 김검천을 믿는 건 당연한 일.

아직 김검천의 능력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치료사의 얼굴만이 힘껏 쥔 종이처럼 구겨졌다.

“하, 저자의 능력이 대단한 만큼 초월 존재의 흉내는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지요. 그걸 몸으로 느끼도록 하십시오!”

- 쩌억.

거대한 생물체가 입을 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탑 주변이 새카만 점으로 물들어갔다.

치료사의 의도에 따라 공간 너머에 남겨둔 괴물들을 또다시 뱉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튀어나오는 괴물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작은 녀석들이 트윈헤드 트롤 같은 중형종이었다.

중간에 싸이클롭스 같은 대형종 괴물도 수백 마리 이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뿌드득.

그리고 개중에는 괴물이 아니라 보라색 액체와 살덩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오다가 공간 사이의 벽에 충돌하고 남은 파편.

생명체가 공간을 넘어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실패하면 저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치료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시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적만 이루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잠시 후 김검천 일행의 주변은 괴물들로 가득 찼다.

치료사가 안고 있던 혈석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자! 어떻습니까? 김검천! 당신도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공간을 이렇게 다룰 능력은 없다.”

“하하하! 하긴 인간 따위가 어찌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한가지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면 그만이었다.

김검천도 지금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 하나가 있었다.

특히 본능이 발달한 괴물이 상대라면 말이다.

“진짜가 아니라도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게 기적 아닐까.”

“웃기는 소리!”

“네 두 눈으로 확인하면 믿게 될거야. 미리내. 13D홀로그램 전모드 발동.”

앞으로 벌어질 일에는 보다 극적인 연출이 있으면 더 효과적일테지.

김검천이 한 손을 들더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에너지는 제법 소모되겠지만 필요할 때 쓰지 않으면 언제 사용한다는 말인가.

치료사가 그런 김검천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행동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합니까? 현실 도피라도 할 생각이면… 아니, 저건?”

치료사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김검천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김검천이 움켜쥔 손을 천천히 펴자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불덩이가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저런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불덩이는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며 태양이라도 된 듯한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김검천과 일행들에게 다가서던 괴물들이 열기에 못 이겨 걸음을 멈출 정도로.

이어서 김검천이 발을 힘껏 굴렀다.

- 쿠르릉, 우지지직.

김검천이 발을 내려찍은 부위로부터 지면에 굵은 금이 그어졌다.

그러더니 김검천의 앞으로 대지가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발 구르기 만으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었지만 당하는 쪽은 그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13D홀로그램은 생명체의 모든 감각을 자극할 수 있었으니까.

눈으로 보는 시각.

귀로 듣는 청각.

코로 맡는 후각.

맛을 느끼는 미각.

피부로 느끼는 촉각까지.

심지어 생명체라면 누구라도 지니고 있는 본능까지도 건드리기까지 했다.

현실보다도 더욱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건 김검천 자신도 환상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어도 현실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물며 아무것도 모른채 이 상황을 접하게 된 괴물들 사이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퀴치악!”

“크키캭!”

느닷없는 재난에 잠시 동작을 멈추었던 괴물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대지의 균열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이성보다 본능이 발달한 존재.

다가오는 죽음의 재앙을 느끼자 일단 살기 위해 몸을 빼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주변에 넘쳐나는 괴물들 때문에 도망칠 수 없자 흉포함을 드러내 공격마저 시도했다.

“캬아악!”

“키엑? 쿠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공격을 받은 괴물도 가만히 당하지 않고 반격했다.

억눌려 있던 생존 본능이 깨어나 치료사의 명령 같은 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아래가 걸리적거리자 싸이클롭스는 발밑에 있는 건 그냥 밟고 전진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오우거가 옆에 있던 트윈 헤드 트롤을 들어 싸이클롭스에게 던졌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김검천을 포위한 괴물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 싸우는 와중이었으니 괴물들로 이루어진 포위망 같은 건 진작에 박살나 있었다.

치료사 또한 김검천이 펼친 힘에 잠시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치료사가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초월 존재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 분 전만 해도 당연히 승리할 거라고 믿었던 치료사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초월 존재에게 받은 힘까지 사용했는데도 저 김검천 한명을 처리하지 못하다니.

기껏 초월 존재의 힘을 빌어 불러낸 괴물들은 서로 싸우다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치료사가 부르기 전에 초월 존재가 강림할지도 몰랐다.

그런 일은 막아야 했다.

치료사는 초월 존재가 이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믿음으로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독인 치료사가 괴물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멍청한 괴물 놈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전진해 김검천을 죽여!”

치료사의 목소리가 이 상황에서 괴물들에게 들리기에는 너무 작고 미약했다.

설사 들린다 할지라도 괴물들의 생존 본능을 억누르기에는 치료사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김검천의 목소리는 이 난리 속에서도 옆에서 속삭이듯이 치료사의 귀에 선명히 들렸다.

괴물들의 비명과 아우성 속에서도.

김검천이 음성 모드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어때? 거짓도 본인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사실이 되는 법이지. 안 그런가?”

안그래도 속이 타들어 가던 치료사의 뒷목이 뻐근해져갔다.

괴물들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자신이라도 제대로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치료사가 이를 갈았다.

“이런 환상의 효력이 계속 지속될 리가!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괴물들도 다시 정신을 차릴 것이다!”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현실 같다고 해도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는 법.

인간이라면 모를까 괴물 상대로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무나 간단하게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김검천의 행동에 치료사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김검천은 이렇게라도 시간을 벌어서 도대체 뭘 하려고 것일까.

“넌 그것을 알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김검천이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걸 위해서지. 내 군대가 이제야 전장에 도착했거든.”

- 쿵쿵쿵.

치료사가 떨려오는 발밑을 보며 의아해했다.

“뭐지? 지진인가?”

“아니, 배틀 머신이다.”

“배틀 머신? 배틀 머신이라면!”

치료사의 시선이 싸이클롭스 밑에 여전히 깔려 있는 배틀 머신을 향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김검천은 제국에서도 배틀 머신이 파괴된 상태였는데 이번에 새로 들고 왔다.

김검천의 태도로 보아 몇 대 정도 더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자신하는 것일까.

눈앞의 괴물들의 수를 보면 배틀 머신 몇 대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발밑의 진동은 더 심해지고 발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치료사의 얼굴색이 죽어갔다.

아무리 배틀 머신이라도 몇 대 정도로는 이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수많은 괴물들이 포효하고 서로 죽이기 위해 날뛰는 싸움터 속에서 아닌가.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배틀 머신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다니.

그의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7미터가 넘는 대형종 괴물 머리 위로도 보일 정도로, 배틀 머신들이 가까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

이윽고 치료사의 시야에 들어온 건 100대도 넘는 배틀 머신으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이었다.

언젠가 이것만으로도 세상을 정복할 수도 있겠다고 워스덤이 말한 배틀 머신의 군대.

배틀 머신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달려나갔다.

그것만으로도 근처에 있는 괴물들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군대에 밟혀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도대체?”

치료사가 혼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검천이 여기까지 들고 온 배틀 머신 한대를 처리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 치료사였다.

혹시 김검천이 숨긴 것들이 더 남아 있을지 몰라 괴물들까지 불러내며 대비했다.

이 자리에 모인 괴물들이라면 아무리 김검천이라도 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방금 전까지 싸이클롭스 4마리로 배틀 머신을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다.

가까이 다가왔던 승리의 느낌은 저 배틀 머신 군대에 의해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패배감에 젖은 치료사는 오히려 악을 썼다.

“김검천! 저런 걸로 초월 존재의 의지를 막을 수 있을 거 같으냐?”

치료사가 혈석의 힘을 빌려 다음 공격을 시도하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깊고 또 깊어 이 자리에 있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 때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미친 듯이 날뛰던 괴물들이 고개를 들어 한 곳을 바라보았다.

이 난리 속에서도 목소리가 말하는 게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저 목소리의 말에는 괴물들의 본능마저 억제하는 권능이 담겨 있던 것이다.

-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부서진 마탑 잔해 위로 반투명한 기체가 모여 검은 눈동자로 보이는 것이 떠올랐다.

그 강렬한 존재감이란.

모든 소음이 한순간 자취를 감추며 모든 생명체가 그것에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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