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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43화 (243/250)

243화

모습을 드러낸 검은 눈동자의 눈알 부근에는 마탑의 최상급 마석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몸을 이동해 치료사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치료사가 들고 있던 혈석이 머리 위의 검은 눈동자에 반응해 강렬한 붉은 빛을 발했다.

치료사가 가장 간절히 바랐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

치료사가 외쳤다.

“초월 존재시여!”

- 이제 모든 걸 바칠지어다.

치료사가 다급히 말했다.

“당신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저에게 약간의 시간과 힘만 주신다면!”

- 이제는 수확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부디!”

- 충분히 기다렸다.

최상급 마석을 휘감은 검은 눈동자가 치료사의 머리 부근에서 천천히 몸을 내려앉았다.

치료사의 의사같은 건 처음부터 들을 의도가 없다는 듯이.

치료사의 눈이 뒤집히며 미친 듯 웃어젖혔다.

“아하하하, 그분이 오십니다! 영원한 젊음과 생명을, 이세계의 지식 저 너머의 진리를 보여줄 수 있는 힘을 가지신 존재, 초월 존재께서 강림하시는 겁니다!

치료사를 중심으로 에너지가 무섭게 증폭하는 걸 감지한 미리내가 긴급 지시를 내렸다.

[위험 존재 감지. 배제합니다.]

명령을 받은 배틀 머신들 중 절반 이상이 치료사를 향해 달려갔다.

나머지 배틀 머신들은 김검천과 일행들에게 다가와 방어진을 구축했다.

배틀 머신 수십 대가 걸리적거리는 괴물들을 발아래 깔아뭉개며 김검천 주위에 도착했다.

배틀 머신들이 치료사를 공격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파삭.

살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치료사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김검천 일행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실제로 귀에 들린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치료사 주위의 공간에 균열이 생겨난 것이 머릿속으로 직접 들린 것이다.

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가 전해지듯이.

공간에 난 상처는 주변을 향해 계속해서 커져갔다.

- 쿠르우르릉. 콰지지직.

공간의 균열은 나뭇가지와 뿌리가 뻗어가듯이 위아래로 점차 그 몸집을 불려 나갔다.

공간 균열이 닿은 대지는 이로 베어 문 듯 거칠게 갈라지며 거대한 틈새가 생겨났다.

앞장서서 치료사에게 달려들던 배틀 머신 10대가량이 그 속으로 추락할 정도로.

갈라진 지면 틈에 빠지지 않은 배틀 머신들도 있긴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갈라진 지면에 발이 걸려 빼려다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벌어진 대지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나마 치료사와 거리가 있던 배틀 머신들은 지진을 피할 틈이 있긴 했다.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지면이었기에 배틀 머신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피하기로 했다.

치료사가 입을 열었다.

[존재는 너희들을 허락하지 아니했다.]

김검천은 아까와 달라진 치료사의 목소리가 미리내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치료사는 이제 치료사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배틀 머신이 하늘 높이 뛰어오른 공간 일부가 검게 물들었다.

근처에 뿌려진 붉은 마나가 극한까지 압축되어 오히려 검어 보인 곳.

그 공간에 배틀 머신의 머리 부분이 부딪혔다.

- 파삭.

검게 물든 공간에 부딪히자 배틀 머신의 장갑이 두부처럼 쉽게 으깨졌다.

마스터 나이트의 오러로도, 마스터 매지션의 마법로도 부술 수 없던 장갑이었다.

수도를 궤멸시킨 메테오 스웜에도 여러 번 버티던 장갑이 이번에는 간단히 부서진 것이다.

깨끗한 물에 떨어진 검은 물감처럼 검은 공간은 다른 배틀 머신 쪽에도 퍼져나갔다.

배고픈 짐승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 입맛을 다시며.

그 와중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던 펠우테의 시신이 갈라진 지면 아래로 떨어졌다.

다시는 그들이 세상에 나올 일은 없어 보였다.

“키에엑!”

“콰르륵!”

괴물들이 환호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되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 상황을 보니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치료사.

그가 자신들을 벌레 처리하듯 가볍게 상대하던 강철 거인들을 쓸어 버리고 있지 않은가.

재난같이 항거할 수 없던 적들이 간단하게 박살 나고 있자 그 모습에 열광한 것이다.

치료사에게 내려온 초월 존재가 시끄럽게 구는 괴물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신경도 쓸 필요 없어 관심이 없었지만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그가 괴물들을 인식한 것이다.

초월 존재가 무심히 입을 열었다.

[쓰레기들.]

- 위이잉.

배틀 머신을 으깨버렸던 검은 공간이 점차 늘어나더니 그 형상이 거인의 팔처럼 변했다.

그 거인의 주먹이 지상에 있는 괴물들을 향해 내리찍었다.

처리할 순위는 낮지만 어차피 괴물들도 처리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 쿠앙!

주먹이 지나가자 괴물들이 있었다는 흔적은 흥건히 젖은 지면 위 보라색 액체밖에 없었다.

공격받은 괴물들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거인의 손은 벌레라도 잡듯이 펴지며 나머지 괴물들의 잔재를 쓸어갔다.

그제야 괴물들이 겁에 질려 주변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거인의 손은 그것들이 도망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나마 자기 힘으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건 김검천 일행뿐이었다.

거인의 손이 괴물들을 처리하는 와중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배틀 머신도 파괴된 것이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배틀 머신이 몇 기 남아있기는 했지만 전투는 힘들어 보였다.

이제는 치료사의 모습도 대부분 사라진 초월 존재가 김검천에게 시선을 향했다.

[많이 기다렸구나.]

그 많던 배틀 머신들이 파괴되는 와중에도 김검천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배틀 머신보다는 동료들의 안전이 우선.

문제의 시발점인 초월 존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현 상황에 대한 대책이 섰는지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널 관찰한다고 별로 지루하지는 않더군. 그보다 넌 치료사인가? 초월 존재인가?”

초월 존재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재밌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게 중요하더냐? 너희들의 생명보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게?]

워스덤이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법사로서 한마디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가끔은 호기심이 마법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만.”

초월 존재의 시선을 워스덤을 향했다.

이미 온갖 방어 마법을 발동한 워스덤이었다.

하지만 초월 존재의 시선이 닿은 것만으로 모든 마법이 무효화 되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닥쳐라.]

초월 존재의 한 마디.

뭐라고 반문하고 싶던 워스덤이 계속 입을 벙긋거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샤칸이 오러를 두른 금속 망치를 집어 던지려고 준비 동작을 갖추었다.

초월 존재가 명했다.

[꿇어라.]

“헉!”

샤칸이 번개같이 땅에 무릎을 대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으니 스스로 원해서 한 건 확실히 아니었다.

고르바 탑주의 중력 마법에도 저항하던 샤칸이 그저 말 한마디에 복종하다니.

루시엘이 급히 샤칸을 부축하려고 들었다.

[굳어라.]

루시엘은 샤칸을 부축하려는 모습 그대로 몸이 굳었다.

간단한 말 몇 마디에 워스덤과 샤칸, 루시엘이 모두 제압당한 것이다.

초월 존재가 김검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생각이 달라졌나? 호기심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더 귀중하다고.]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넌 남들과 다르다는 건가.]

“아, 잠시만. 먼저 저 친구들부터 옮기고 싶거든. 배틀 머신 비상 기동. 보호 모드 발동.”

그러자 그나마 제대로 기동 가능한 배틀 머신 한대가 다가왔다.

배틀 머신이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꼼짝도 못 하는 3명을 잡았다.

김검천은 무인 차량에 남아있던 댕댕이도 데리고 가도록 명령했다.

워스덤과 샤칸, 루시엘이 김검천을 향해 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김검천이 손을 내밀어 그들을 제지했다.

“할 말은 많겠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일단은 리에와 쿠퍼, 세이야의 곁에 돌아가 있어.”

초월 존재가 배틀 머신을 향해 명령했다.

[멈춰라.]

- 쿵.

배틀 머신은 초월 존재의 말을 무시하며 그대로 걸어 나갔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초월 존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배틀 머신의 앞에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

이제 손만 까닥여도 배틀 머신 채로 워스덤과 샤칸, 루시엘과 댕댕이마저 몰살당할 상황.

그때 김검천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군.”

[무엇을 말이지?]

“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확신이 섰거든.”

그 말에 초월 존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멈추었다.

배틀 머신 앞에 나타났던 검은 공간도 사라졌고.

그 틈을 타서 배틀 머신은 3명과 한 마리가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김검천이 초월 존재를 향해 물었다.

“관대한 마음으로 그냥 보내주는 건가.”

[도망친 자에게는 낙원이 없다. 이 자리에 있는 너도 마찬가지고.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 휘우웅.

하늘에서 주먹만 한 눈덩이가 쏟아져 내리다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방향을 바꾸었다.

바람 탓인지 안 그래도 추운 날씨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김검천이 초월 존재를 향해 턱을 세웠다.

“그런 걸 내가 꼭 알아야 하나?”

[네가 이세계의 진실을 안다면 저들이 이 자리에서 죽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테니 말이다.]

김검천이 초월 존재를 쳐다보았다.

세상의 진실이라.

왕국에서의 테우펠도 그랬고 제국에서의 황제도 그랬다.

이미 죽은 고르바 탑주도.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이 하는 일들이 이세계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테우펠, 황제, 고르바 탑주.

이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는데 말이다.

그 와중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들의 배후에는 치료사가 있었다.

그 치료사는 이 초월 존재를 신처럼 믿고 떠받들었고.

지금 치료사는 초월 존재를 강림시킨다고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려줄 초월 존재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후회하게 만들어 봐.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러다 오히려 네가 후회할지도 모르고.”

[후후후, 방금 보여준 배틀 머신, 그리고 네가 착용하고 있는 파워드슈츠 정도로?]

초월 존재가 가소롭다는 듯 대답했다.

김검천은 초월 존재가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김검천이 물었다.

“이것들이 뭐가 어떻다는 거지?”

[운 좋게 발견한 고대 유적. 거기서 찾은 유산 정도로 지금부터 살아남을 수 있냐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김검천은 마음속으로 당황했다.

저 초월 존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건가.

배틀 머신과 파워드슈츠를 보고 고대의 유산이라니.

이상했다.

이것은 태양계 소속 지구연합 우주방위군 표준 장비들이었다.

그게 어떻게 이세계의 고대 유적에서 찾은 유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초월 존재는 김검천의 침묵을 다른 뜻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초월 존재는 김검천의 그런 모습을 즐기면서 입을 열었다.

[뭐, 좋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 그 전에 잠시나마 마지막 유희를 즐겨보도록 하지. 조금만 더 지나면 이세계에서 당분간 대화를 나눌 상대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초월 존재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주변의 하늘에 어딘가 익숙한 행성과 항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검천의 두 눈이 좀 더 크게 떠졌다.

초월 존재가 보인 능력이 어딘지 익숙한 기능 같아 부분도 있었다.

그것보다 더욱 김검천이 놀란 건 초월 존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우리은하 때문이었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그 태양계를 품은 은하계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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