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 형사 윤대흥 (1) >
1999년 12월 24일.
눈 같기도 하고 비 같기도 한 것이 땅을 적시고, 그 아래에서 윤대흥은 수원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작고 좁아 복잡한 터미널이다.
이전이 준비 중이지만 아직은 먼 일이라,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지목받으면서도 여전히 볼품없는 상태 그대로 기능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대합실에 들어서며 윤대흥의 걸음은 느려졌다.
지붕 아래에 들어온 데 안도하며 진눈깨비를 털어내기 위함인 듯 행동했지만, 사실은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아직 안 온 듯한데. 자리를 잡자. 구석진 곳······.’
대합실은 좁다. 구석진 곳이라고 해봐야 시선이 안 닿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조금쯤 관심을 덜 살 수는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윤대흥은 사람들의 틈을 지나갔다.
가장 시선이 안 닿을 법한 좌석에 앉아, 그는 인파를 관찰했다.
짐 든 아낙. 백팩 짊어진 군인. 손가방 속의 돈을 세는 노인. 코트를 벗었다 입었다 하는 소년.
그 중 어디에도 윤대흥이 찾는 인물은 없었다.
다만 한 명, 마스크를 낀 채로 신문을 읽는 중년 남성만큼은 의심스러웠다.
‘체격은 비슷한데. 눈을 자주 찡그리는군. 거기 따라서 콧잔등도 찡긋거리고······ 아, 아니었군.’
충분히 몸이 녹았다 싶었는지 마스크를 벗은 중년인. 그는 윤대흥이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잇대는 목표와 비슷하므로 관찰해볼 가치는 있었다. 그를 돕는 친구가 한둘 정도는 있을 법하니까.
‘콧잔등을 찡그릴 때마다 입가의 씰룩임도 동반되는군. 보통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갖는 습관인데. 안경을 안 쓸 때도 저럴 정도라면 아주 어려서부터 써왔거나, 아니면 심적으로 몰려 있는 걸 텐데. 그러고 보니 손도 자주 떨고,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꼬았다 풀었다 하고······ 상당히 불안해 보이는걸.’
그런 중년인의 모습이 윤대흥의 의심을 부추겼다.
그렇지만, 1시간쯤이 지나서도 여전히 신문만 뒤적거리고 있는 남자를 보며, 윤대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실직자였군.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죽치고 있는 거였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같은 신문을 몇 번이고 재독할 리는 없으니. 범죄자나 동조자라면 불안해서라도 주변을 자주 살펴봤을 거야. 그러지도 않고 그저 손만 떨고 있는 건, 불안의 요소가 내면에 있다는 뜻.’
불안해 보이는 건, 범죄자의 도주를 돕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의 처지 때문이리라. 실직자라는 근본적인 불안.
다른 대부분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으로 프로파일링을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윤대흥은 확신했다.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 형사로서.
사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너무도 흔한 일이었다.
IMF 파동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부도를 맞이하고, 그에 따라 전국 각지에 생업을 잃은 이들이 그득해졌으니까.
‘그나마 저치는 입은 걸 보면 노숙자는 아니고, 가정에 실직 사실 숨기고 출퇴근하는 척하고 있는 거겠지.’
이제 더는 관찰할 이유가 없어진 중년인이지만, 윤대흥은 주변을 살피는 와중에 종종 그를 바라봤다.
더는 읽을 것도 없을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에서 고교 동창이 떠오르는 탓이었다.
‘정구 녀석도 저러고 있을지 모르지. 금방 다른 직장 찾을 테니 제수씨한텐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나이가 마흔이 다 됐는데 말이야.’
진눈깨비가 그치고, 해가 중천에 뜨고 또 기울어 서쪽으로 향할 때까지도, 중년인은 단 하나의 신문만을 살피며 종종 한숨을 내쉬었다.
처지는 달랐지만 윤대흥 역시 비슷하게 행동했다.
신문으로 몸을 가린 채로 조용히 주변에 녹아들기.
종종 가늘게 뜬 눈을 굴려 사방을 훑어본다는 것만이 중년인과 달랐다.
‘······오늘은 아닌 모양이군. B팀에서 연락도 없는 걸 보면 안양 쪽으로 빠진 것도 아닐 텐데. 어디 처박혀 있는 건지 원.’
신문을 살피는 척하는 건 지루한 부업이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줄도산 소식과 희망적인 척하는 정부의 헛소리들뿐.
윤대흥은 눈을 돌려 누군가 놓고 간 무가지를 집었다.
드라마 <사랑의 재즈>가 또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는 기사가 제법 흥미를 끌었다. 남자주인공 조혁수와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어서.
‘이번 드라마도 대박이로군. 역시 조혁수야. 터프가이 역할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지. 나로선 보기 힘든 드라마지만, 모쪼록 잘됐으면 좋겠군.’
사석에서 처음 그를 만난 건 95년도였다.
출연한 드라마의 흥행으로 이미 유명한 탤런트였기에, 고교 동창 김정구와 술잔 기울이던 윤대흥이나 다른 손님들이나 흘끗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순간.
술집 앞 거리에서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시비가 붙었다.
윤대흥이 곧바로 나서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형사의 외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만취한 취객들이 흐느적거리며 서로를 위협했다.
그때 윤대흥의 곁에 선 게 조혁수였다.
공인이라 불리는 탤런트면서도 당당하게 사내들을 막아서서, 뺨을 몇 번이나 맞으면서도 결국 싸움을 말리는 데 성공했더랬다.
‘정의감이 있는 친구였지. 대범하기도 했고. 그래놓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돌아서서 또 소주를 마셨으니. 마치 관우가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와 술잔을 비운 것 같았다니까.’
흥미로웠던 기억을 떠올려 입가에 미소가 돈 건 잠깐이었다. 이내 윤대흥은 자신의 업무로 다시 돌아왔다.
빈말로라도 흥미롭다고 할 수 없는 관찰의 시간으로.
마침내 해가 완전히 지고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소득 없는 잠복 속에서 윤대흥이 작게 기지개를 켤 무렵, 대합실의 문이 또 한 차례 열렸다.
‘······소년. 열셋에서 열다섯 사이고, 옷은 후줄근하고. 더벅머리를 보아하니, 청바지가 찢어져 있는 건 반항적인 X-세대라서가 아니라 그냥 가난해서 그런 모양이지. 버스를 타러 온 걸까, 아니면 잠든 사람을 노리는 소매치기일까.’
대합실을 훑어보던 소년의 눈이 윤대흥의 시선과 얽혔다.
꽤 잘생긴 아이였다. 꾀죄죄한 외면을 빼고 봤을 땐.
눈이 크고 반짝거리는 게, 잘 씻겨놓으면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올 듯.
그러나 사람 관찰하는 게 업무인 윤대흥이나 할 생각이고, 얼핏 보자면 그저 흔한 거지였다.
실눈의 윤대흥을 잠깐 보던 소년은, 곧 대합실 중앙으로 이동했다. 하루 내 윤대흥의 시선을 사로잡던 중년인 쪽이었다.
마침 중년인이 달달 외웠을 신문을 접고 있었다.
‘이제 퇴근이란 건가. 하긴, 야근이라도 슬슬 끝날 시각이지. 들어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시각······.’
정말 야근을 한 거라면 통닭 한 마리 사들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갈 수 있겠지만, 저 남자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거실의 불이 꺼지고 나서야 들어갈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윤대흥은 다시 기지개를 켰다.
곧 교대가 올 시각이다. 그러면 그 역시 퇴근할 수 있다.
‘인원이 너무 부족하단 말이야.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힘드니 애들이 다 옮기고 싶다고 난리지. 반장님도 그런 고충을 좀 이해해주셔야 되는데. 제대로 뽀인트를 짚어서 두 명 이상 팀을 보내야 하는 걸, 그저 잠복 범위만 넓히고 있으니······ 어?’
윤대흥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아니, 이상하다고 말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맹이 극히 드문 게 오늘날의 한국이니, 후줄근하게 입은 어린 소년이 떠나간 중년인의 자리에 앉아 그가 놓고 간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별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베테랑 형사 윤대흥의 관찰력은 그 광경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익숙한데. 저 모습은, 너무 익숙한데. 뭐지? 내가 저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나? 사건에 얽히기엔 너무 어린 나인데. 혹시 아는 녀석 아들인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 없는 얼굴이다. 아이들의 얼굴이 금세 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상한 느낌에 한참 소년이 하는 양을 바라본 윤대흥은, 30초 정도가 지난 뒤에야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까 그 실직자. 그 사람과 흡사한데. 아니, 똑 닮았어. 저건 그냥······ 그냥 그 사람인데?’
중년인이었다. 앞서 그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인의 눈빛이고, 찡긋거림이고, 실룩임이고, 손짓이고, 다리꼬기였다.
체구가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나이가 현격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자리의 전 주인을 닮은 동작들이었다.
마치 중년인이 일어난 적 없이 그저 회춘했을 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방금 전에 일어난 중년인과 방금 전에 들어온 소년.
그 둘이 똑같은 행동패턴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다른 것이야 그렇다 쳐도, 중년인의 찡긋거림은 안경을 오래 쓴 사람이 보일 법한 것이었다. 저 추레한 소년이 과연 어릴 적부터 안경을 써왔을까?
바로 다음 순간, 윤대흥은 본분도 잊고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소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문을 내려놓은 뒤, 두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허리에서 힘을 완전히 풀고서 멍한 눈길을 여기저기 뿌린다.
불안한 듯 손을 떨던 방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뭐야? 대체 뭐지? 저 아이가 갑자기 왜······ 아. 아아.’
소년의 시선을 따라간 곳. 그곳에 노숙자 한 명이 있었다.
눈 내리는 겨울의 추위를 피해 대합실을 찾은 불행한 인생. 고작 서른줄의 나이인 것으로 보아, IMF가 낳은 무수한 피해자들 중의 하나이리라.
그리고 그 30대의 남자가 소년과 완전히 동일한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었다.
‘······따라하고 있구나. 저 아이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하고 있어. 호기심 차 있던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훔치고 있는 거야······.’
말로는 간단하지만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베테랑 형사인 그가 알기로, 인간의 행동에는 지문 같은 것이 있다. 팔다리의 움직임과 표정에 확연히 구분되는 그 사람만의 행동양식이.
일반적으로 쉽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차이지만, 윤대흥의 눈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작은 단서에서 범죄자와 일반인을 분간해내는 관찰력이 그의 장기였기에.
그렇기에 윤대흥은 같은 탤런트의 다른 드라마를 잘 보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고 해도, 무심코 예전에 연기했던 인물의 행동양식을 드러내버리고 마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행동양식인 셈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미세한 실수가 그의 몰입감을 깨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윤대흥이 주로 즐기는 취미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거기선 배우가 배역을 어그러뜨리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으니까.
그런 그가 볼 때, 소년은 대단히 이상한 존재였다.
고작 몇 초 정도. 그 정도 관찰한 인물의 행동양식을 고스란히, 정말 너무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마치 환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도플갱어처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또 대합실의 문이 열리고, 우산을 접은 후배 형사가 눈짓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교대의 시간. 이제 이혼한 지 오래되어 대여점 소설책만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거의 일주일 만에.
그렇지만 윤대흥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앉은 자세 그대로 시선만 돌려 소년을 관찰했다.
소년은 이후로도 몇 차례나 바뀌었다. 마치 장난감을 금세 싫증내는 네 살 꼬마처럼, 그는 사람을 바꿔가며 움직임을 훔쳤다. 노숙자에서 노인으로. 노인에서 중년인으로.
그리고 마침내 3분쯤이 지난 뒤에, 소년이 윤대흥을 바라봤다.
‘······저게, 내 모습이구나. 타겟을 관찰하는 내가 저런 느낌인 거야. 아, 왼손을 떨고 있군. 술을 좀 줄여야 하는데. 엇······ 눈두덩이 경련하는 것까지 따라하는걸? 대체 얼굴 근육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뤄야 저게 가능한 걸까?’
윤대흥은 계속해서 소년을 관찰했고, 그건 소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대흥을 닮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해서 그를 관찰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1분가량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서로를 처음 만난 쌍둥이들처럼.
< 1장 - 형사 윤대흥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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