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2화 (2/250)

< 1장 - 형사 윤대흥 (2) >

먼저 일어선 건 윤대흥이었다. 그는 작은 공포와 큰 호기심으로 곧장 걸어서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어느새 처음 따라했던 중년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무심하게 실룩거리는 표정으로 신문에 시선을 준다.

“신문 안 보는 거 안다. 얘, 나 좀 보련?”

“······저요? 무례하시군요. 초면에 반말이라니.”

말투마저도 누군가를 따라하고 있는 것인지, 나이에 맞지 않게 딱딱했다.

“얘. 너 이름이 어떻게 되니?”

“아저씨는요?”

“윤대흥이다. 이상한 사람 아니고, 형······ 형이라고 부르렴.”

무심코 형사라고 밝힐 뻔했지만, 황급히 말꼬리를 틀었다. 혹시라도 조력자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 형사임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바꿈에 소년이 킥 웃었다.

“요즘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기네요.”

“흠. 아무튼 얘야.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 형 좀 따라올래?”

“싫은데요.”

“요 맞은편에 분식집이 있는데. 떡볶이가 아주 맛있어.”

“······사주신다고요? 저한테? 왜요?”

경계하는 말투지만, 눈빛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처음 대합실에 들어왔을 때의 초롱초롱한 빛깔로.

“너한테 궁금한 게 생겼어. 절대 불쾌하게 굴지 않을게. 그냥 같이······ 30분 정도 떡볶이나 먹자.”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랬는데.”

“어머니가 그랬니? 걱정하지 마. 지금도 보렴, 길에 사람들이 가득하잖니. 어떻게 너한테 해꼬지를 하겠니?”

“그것도 그러네요. 알았어요. 잠깐 시간 내드리죠.”

여전히 어른스런 말투지만 목울대가 꿀렁거린다. 침이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소년을 데리고 분식집에 들어가 윤대흥은 떡볶이와 튀김을 잔뜩 시켰다. 주문 한마디 한마디에 소년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 이제 음식 나올 때까지 얘기 좀 할까? 이름이 뭐니?”

“이찬이요.”

“이찬? 외자니? 이름이 예쁘구나.”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구?”

“아녜요. 아저씨도 이제 말씀해보시죠. 왜 저랑 얘기를 하고 싶으셨는데요?”

“······알잖니? 방금 저기서······ 네 재능을 봤거든. 아주 대단하던데? 그런 건 누구한테 배웠니?”

소년, 이찬은 의심스럽다는 투로 윤대흥을 째려봤다.

“무슨 재능 말씀하시는 건지.”

“모른 척할 거 없단다. 얘, 난 형사야. 사람을 관찰하는 게 일이지. 그래서 너도 잠깐 관찰을 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네가, 나이가 어린데, 혼자 대합실에 왔잖니.”

“소매치기 아닌가 하셨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혹시나 싶어서 좀 살펴봤어. 그랬는데, 정말 신기하더구나.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잘 따라하는지 깜짝 놀랄 정도였어.”

“······그런 얘긴 처음 듣네요.”

처음 듣는다는 이찬의 말에 오히려 윤대흥이 놀랐다.

‘······하기야, 웬만한 사람들이 알 법한 재능은 아니군. 그냥 행동거지가 부산스러운 꼬맹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누군가를 완전히 복사하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시대가 좀 더 뒤였다면, 윤대흥은 관찰과 프로파일링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아니고선 소년의 비범함을 단박에 알아채기 힘들었으리라.

“근데 그게 왜요? 재능이 있는 꼬맹이들은 많아요. 어떤 애는 노래를 잘하고, 어떤 애는 말을 잘하고, 어떤 애들은 예쁘고 귀엽죠. 그런 애들한테도 매양 말 거세요?”

“그건 아니지. 그건 아주 흔한 재능이니까. 하지만 넌······ 아주 특별한 것 같다. 한 번도 너 같은 아이는 만나본 적이 없어. 아마도 넌, 신의 축복을 받은 것 같아.”

그 말에 이찬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여러 차례 변했다.

놀랐다가, 부끄러워했다가,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괴로워했다가, 혼란스러워했다가······

그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윤대흥은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다니. 이렇게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들을 얼굴에 담을 수 있다니. 이건, 재능이라는 말도 부족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그렇지만 관찰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손 큰 아주머니의 빠른 솜씨에 분식 코스가 상 위에 차려지고, 이찬이 허겁지겁 거기에 코를 묻었기에.

“이거, 다 먹어도 돼요?”

“······나도 같이 먹을 거야. 계속 한 끼도 못 먹어서.”

“알았어요. 빨리 드세요.”

예의를 차린다고 윤대흥이 먼저 젓가락을 들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의외의 태도에 또 놀라며 중년 형사가 떡을 하나 집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떡볶이와 튀김이 바닥을 드러냈다.

“······세상에. 며칠 굶었니? 왜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

“음, 움. 여기 되게 맛있네요. 유명한 집인가?”

“수원바닥에선 꽤 유명하지. 여기 애가 아니니?”

“떠돌이예요. 집시 같은 거죠.”

“······집시가 뭔지 아니?”

“떠돌이 같은 거 아닌가? 잘 몰라요.”

윤대흥은 복잡한 심경으로 이찬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고아인 건가? 어린 나이에 홀로 떠돌고 있다고? 이 추운 날씨에? 맙소사.’

그는 대단히 심성이 착하고 남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형사라는 직종이 마음의 따뜻함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종류는 아니니까.

그렇지만 기껏해야 열다섯이 안 됐을 법한 아이가 대수롭지도 않다는 양 하는 말에는 마음이 짠해지고 말았다.

“너······ 갈 데가 없니?”

“갈 데가 왜 없어요? 천지사방이 집인데. 그게 집시죠.”

“말도 참 잘하는구나.”

“말이라도 잘해야 밥 빌어먹고 살죠. 요즘 경기가 좀 어려워요?”

아이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정말 떠돌이 소년이라고 한다면 피부로 체감하듯 자연스러울 일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거니? 아저씨가 형사다. 찾아줄 수도 있어.”

“잃어버린 건 아니고요. 세상에 없어요.”

“······돌아가셨구나. 친척은? 학교는?”

“그냥 고아예요. 학교는 안 다니고요.”

“그래. 그럼,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니? 어렸을 때는, 고아원에 있었니?”

“그랬죠. 근데 답답해서 나왔어요, 집시가 되려고.”

“집시가 돼서······ 어떻게 살아가는 거니?”

“별 거 없죠. 화장실 청소 해주고 밥 빌어먹고,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고 하룻밤 얻어 자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고? 어떻게?”

이찬은 그 대목에서 살짝 머뭇거렸다.

“괜찮아. 힘들게 살고 있는 애를 내가 어떻게 잡아가겠니. 소매치기를 했다고 해도 이해하겠다. 앞으로 안 하겠다고만 약속하면 말이야.”

“아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아저씨 일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사람 많은 데서 가만 보고 있으면, 소매치기들이 있거든요. 지갑을 주로 훔치는데, 안에 있는 돈만 빼고 지갑은 근처에 버리고 가요. 그럼 그걸 주워서 돌려주는 거죠. 훔쳐간 사람 인상착의도 말해주고.”

“아, 반대였구나. 오히려 소매치기를 잡을 수 있게 해줬네. 착한 일을 한 거였구나.”

“······착한 건가? 당하는 거 알면서도 놔뒀으니까······ 범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빈 접시를 몇 번 건드렸다. 보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무의식적으로 아쉬움이 드러난 듯했다.

“좀 더 먹을래?”

“그래도 돼요? 친절이 과하신데.”

“어린애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 아니, 물론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하겠는데, 난 형사잖니. 자, 이거 보이니? 경찰증이야. 수원서 형사라는 증명이야.”

“······경찰이랑 형사는 다른 거 아니에요?”

“경찰 중에 형사가 있는 거지. 경찰 팀 중 하나야.”

“아하. 공무원이면, 믿을 만하죠.”

이찬이 형사에 대한 오해를 고치자 문제가 해소됐다. 윤대흥은 김밥을 비롯해 또 이것저것 주문했다.

“내가 볼 때 넌, 탤런트를 하면 좋을 것 같다.”

“탤런트요?”

“배우, 연기자.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혹시 조혁수는 아니?”

“알죠. 티비에서 본 적 있는데.”

“혹시 그 사람도 따라할 수 있겠니?”

“······거 쓸 데 없는 소리. 양 과장 그 사람, 믿지 마요. 내가 더 당신 좋아하니까.”

앳된 목소리, 그리고 땟국물 자르르한 얼굴.

그렇지만 윤대흥은 이찬에게서 분명한 조혁수를 발견했다.

‘정말이었어.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였어. 맙소사. 이 아이가 연기를 한다면 정말 대단할 거야. 세상에서 가장 배역을 잘 소화하는 탤런트가 될 거야. 이런 재능을 가진 아이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니.’

음식이 나오자 이찬은 또 허겁지겁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윤대흥은 생각에 잠겼다.

‘이영찬 순경이 어려서 극단에 있었다고 했지. 그쪽에 이 아이를 소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분명히 알아봐줄 거야. 나중에 아역 탤런트가 되도록 인맥을 연결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까지만 내가 데리고 있어보면 어떨까? 별 볼 일 없는 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에 거리를 떠도는 것보단 낫겠지.’

이찬이란 아이를 후원하는 미래.

현실적인 문제가 걸릴 법도 한 일이지만, 윤대흥은 그런 걸 떠올리지 않았다. 이 빛나는 재능의 소년이 더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거리를 떠돌게 놔두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지만 오히려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김밥과 떡볶이를 또 싹싹 비운 이찬이, 그의 호의를 거절했던 것이다.

“고맙긴 한데, 됐어요. 전 집시니까요.”

“아니······ 얘,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렴. 집도 없이 겨울을 어떻게 나겠다는 거니?”

“작년에도 잘 지냈는데요. 남한테 신세지는 거 질색이에요.”

“하지만 넌 아까······ 밥을 빌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거래죠. 나도 뭔가를 주고, 대가를 받는 거. 근데 아저씨는 아니잖아요. 궁금한 거 알려주는 값으로 얻어먹는 건 여기까지 같은데요. 여기서 더 해주시는 건, 그냥 적선하겠다는 건데.”

“그런 게 아니라- 엇.”

곤란하게 전개되는 대화에 잠깐 시선을 돌린 윤대흥의 눈에, 창밖을 걷는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흔한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금세 거기서 눈을 뗄 수 없게 됐다.

“······찬아. 너 여기 잠깐 있으렴. 금방 돌아올게. 아, 자. 이거 돈이니까, 이걸로 뭐 더 시켜서 먹고 있어. 잠깐만 있으면 아저씨가 금방 돌아오마.”

이찬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분식집을 박차고 나선 윤대흥은, 이미 멀어져버린 거수자를 향해서 달렸다.

*

“······범인 잡으러 갔나?”

나지막이 중얼거린 이찬은, 덩그러니 놓인 만 원 지폐와 빈 접시를 내려다봤다.

“아줌마, 얼마 나왔어요?”

“칠천 원이야. 아빠 먼저 가셨니?”

아빠. 그가 생전 불러보지 못한 이름을 가게 주인이 쉽게도 발음했다.

“아줌마, 아들 있어요?”

“아들? 있지. 왜? 아줌마 닮은 친구 있니?”

꾀죄죄한 아이임에도 순순이 말을 받아주는 건, 이미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만 원 지폐를 본 까닭. 그리고 그것이 이미 두 사람이 먹은 금액보다 삼천 원이나 더 많다는 걸 아는 까닭이었다.

이찬은 그걸 알 수 있었다.

형사인 윤대흥보다도 더 날카로운 눈썰미로.

‘하여튼 속물들이라니까. 이런 꼬맹이한테서 뭘 벗겨먹으려고. 그렇지만 그 아저씨는 형사라고 했으니까 쉽게 속진 않겠지. 남 속이는 사람들 잡아넣는 게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이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만 원요. 잔돈은······ 이따 아빠 오면 주세요. 저 빨리 가봐야 돼서.”

“······가져가서 아빠를 주면 되지?”

“아빠 출장 가거든요. 한동안 못 볼 거라. 갈게요.”

가게를 나서는 소년을 주인은 잡지 않았다. 그 대신 손에 들어온 만 원을 만지작대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게 밖의 이찬은, 윤대흥이 멀어진 방향과 반대로 걸어갔다. 입술을 길게 삐죽거리면서.

‘안 돼요 안 돼. 아빠 같은 거 필요 없다고. 진짜 아빠도 아들 때리고 간섭하고 한다던데, 가짜 아빠는 더할 거 아냐. 그렇게 살 순 없지. 난 외로움을 즐기는 집시니까.’

쓸쓸함이 담긴 표정은, 떠오른 순간 곧바로 지워졌다.

< 1장 - 형사 윤대흥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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