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 형사 윤대흥 (3.) >
윤대흥이 다시 이찬을 만난 건 해가 바뀐 뒤였다.
“차, 찬아! 너 찬이 맞지?”
“아닌데요.”
“맞잖니! 딱 보면 알겠는데. 순영아, 얘 왜 들어온 거냐? 설마 얘가 뭐 범죄를 저질렀어?”
후배 김순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고, 이 조막만한 게요? 목격자 진술이에요. 근데, 형님이 아는 애예요?”
“좀 알아. 진술만 받으면 돼?”
“옙. 금방 끝납니다. 근데 어떻게 아십니까? 집도 절도 없는 애던데.”
“그냥 알아. 빨리 끝내라.”
막 비번이 돼서 퇴근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윤대흥은 이찬의 옆에 앉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소년의 진술 내용은 윤대흥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다.
“그랬더니 뭐라 뭐라 소리치면서 가방에서 칼을 꺼내더라고요. 그걸로 배를 찌르고, 옆으로 비틀었죠.”
“너, 너 그런 걸 봤니? 아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아이고, 형님. 진술 빨리 끝내라면서요?”
“거 순영이 너도 인마, 이런 애한테 그런 걸 진술을 들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트라우마로 남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그래도 진술은 확보해야 되잖습니까. 유일한 목격잔데. 죽은 놈도 여기서 못 보던 신출내기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요.”
부글거리는 속을 참고 윤대흥이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잠시 진술 내용을 종합해보니, 다리 밑에서 노숙하던 이찬이 조폭들 간의 싸움을 목격한 듯했다. 거기서 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했다고.
“대체······ 큰일 날 뻔했잖아. 찬아, 너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떡하니? 들켰으면 어쩔 뻔했어!”
“섣부르게 도망치다 소리 냈으면 더 위험했을걸요?”
“아니, 거, 그렇긴 하지만-”
“근데 형님. 얘 왜 찬이라고 부르십니까?”
막 이찬에게 잔소리를 하려던 차에 김순영이 끼어들었다.
“뭐? 찬이를 그럼 뭐라고 불러?”
“얘 이름 강동일이에요, 찬이가 아니라. 진짜 아시는 애 맞아요?”
“강동일? 그래? 정말이야?”
마지막 질문을 하며 고개를 돌린 윤대흥에게, 이찬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집시한텐 안 어울리는 이름이죠. 이찬으로 살고 싶은데 정부가 도와주질 않네요.”
“그러니까 본명은 강동일인 거구나.”
“······본명이란 게 뭘까요.”
이찬의 목소리는 허탈한 듯 힘이 빠져 있었다.
“남이 지어준 이름이 절 설명할 수 있나요?”
“그렇지만, 그게 실제 니 이름인걸.”
“제 동생- 그러니까 저보다 한 달 늦게 고아원에 들어온 애는, 이름이 강동이예요. 그 밑엔 강동삼. 그나마 강동사는 없고 강동오로 이어지죠. 누나 중엔 강금육도 있어요. 그런 이름으로 살긴 좀 별로잖아요. 언젠가 이찬으로 바꿀 거예요.”
“음. 그래. 그건······ 좋은 생각 같구나.”
“음, 흠.”
빨리 진술이나 받고 싶어 하던 김순영조차도 그 얘기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개인이 아니라 마치 제품처럼 받게 된 이름. 거기에서 정체성을 느낀다는 건 어른이라 해도 힘든 일일 것이기에.
그리고 윤대흥은 지난날 이찬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이찬이란 이름을 예쁘다고 말하자, 다행이라고 했던가.
‘이 녀석은 참······ 참 외롭게 살고 있는 거구나. 자기가 지은 이름이 예쁘다는 말에 안심해야 할 정도로. 사랑만 받으면서 크기에도 모자랄 나이인데.’
“일단 형님, 잠깐이면 되니까 빠져주시고요. 강동······ 찬아. 일단 빨리 진술을 마치자. 가해자가 어떻게 생겼다고 했지?”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고 했잖아요. 거기 밤 되면 진짜 깜깜해요. 일단 수염은 없었고, 안경은 안 꼈고, 머리는 스포츠요. 그 정도예요.”
“······그래. 거기가 좀 어둡지. 불 좀 달아야 되는데.”
김순영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지만 윤대흥은 이찬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혹시, 특징을 봤으면 따라할 수 있지 않니? 그걸 보여주면 우리가 용의자를 특정하기 좋을 텐데.”
“그야 보긴 했죠. 근데 그래도 돼요? 그런 건 증거가 안 되지 않아요?”
“요 똑똑한 것. 물론 잡아넣을 증거는 아니야. 하지만 수사단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의심스러운 놈들 주변을 탐문하다보면, 그놈들이 쫄아서 섣부른 행동을 보일 수 있거든. 잠적을 한다든가, 환전을 한다든가. 그러면 뭐가 됐든 건수를 잡아서 족치······ 아, 아니. 아무튼 증거는 아니더라도 난 네 눈을 믿는다. 그러니까 한번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말에, 이찬은 예전 보여줬던 복잡한 표정을 또 보였다. 무수한 표정들이 순식간에 얼굴을 스치는 그 모습.
‘아마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혼란스러울 때에 이러는 모양이지.’
그리고 3초쯤이 지난 뒤에 이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살인자······ 이렇게 했어요. 그대로 따라할 테니까 한번 보세요.”
“뭐? 아이고, 뭘 도움도 안 되는 걸.”
“순영아. 닥치고 그냥 봐.”
“예? 아, 예······.”
그 대답을 들은 뒤, 이찬이 잠깐의 유예도 없이 돌변했다. 마치 10년 이상 뒷골목을 전전한 범죄자의 양상으로.
그리고 그 모습을 아주 잠깐 관찰한 뒤에 윤대흥이 외쳤다.
“신달호! 신달호, 이 새끼구나.”
“어······ 형님? 아니 이걸 보고 그렇게 특정을 하시면 됩니까? 애가 따라한 건데.”
“얘가 따라한 거니까 믿는 거야! 저 왼쪽 다리 까딱거리면서 걷는 게 딱 그 새끼잖냐? 철심 박고 난 뒤로 느낌이 이상하다고 걸을 때마다 투덜거리는 그놈! 이 자식, 출소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사람을 찌르고 다녔어? 김순영, 바로 준비해.”
“아니 뭔, 그거 참. 형님 눈썰미야 내가 믿지만, 다리를 저는 것도 아니고 걸을 때 살짝 까딱 하는 그걸 이런 꼬맹이가 어떻게 캐치를 한다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얘가······”
김순영을 혼자 떠들게 내버려둔 채 윤대흥은 이찬을 봤다.
“찬아. 너 지난번엔 왜 그냥 간 거냐?”
“에이. 거래 끝났으면 멋지게 뒤돌아 가는 게 집시죠.”
“허허, 거참. 그럼 새로 거래 하나 터야 되겠네. 이 사장, 지금 내가 자네 때문에 용의자를 하나 특정한 것 같은데? 이번에 잘되면 다음 인사고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단 말이야.”
눈동자를 굴리는 이찬은 아마 ‘특정’이니 ‘인사고과’니 하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잠시 후엔 정말 사장 같은 태도로 웃었다.
“하핫. 제가 도움이 됐다니 기쁘군요. 보답이 있겠지요?”
“하하. 너, 나랑 같이 살자. 내가 네 형 해줄게. 위험하고 추운 다리 밑에서 자지 말고 내 집으로 가자. 그러면 내가, 너 탤런트 되게 도와줄게.”
“아, 또 그 소리. 집시랑은 안 어울리는데······.”
“왜 안 어울려? 그거야말로 집시지. 세상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너는 이찬이지만, 미니시리즈에서는 양 과장이 될 수도 있고, 영화에서는 오 사장이 될 수도 있어. 그게 바로 집시 아니겠니? 물론 당분간은 아역으로 윤 학생 이런 역할이겠지만.”
이찬은 탐탁지 않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만 그 목울대가 또 꿀렁 넘어가는 걸 윤대흥은 놓치지 않았다.
‘배고플 때가 아니라 솔깃할 때 나오는 반응이로군? 이건 누군가를 따라한 게 아니라 솔직한 반응 같은데······. 딱 하나 알게 된 건데, 되게 반갑네.’
“흠. 순영아, 나 얘 좀 집에 데려다 놓고 나올게. 그러니까 반장님한텐 네가 말해라. 죽인 놈, 신달호라고.”
“예에? 아니 형님, 이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어떻게 증거 하나도 없이 신달호래요?”
“증거는 새꺄, 이제부터 찾으면 되는 거고. 아무튼 나 갔다 오면 바로 회의할 수 있게 네가 가서 얘기를 하라고. 목격자가 신달호 그 코에 큰 점, 그걸 봤다고 말해.”
“아이고, 거짓말을 시키십니까? 그 어두운 데서 그걸 어떻게 봐······ 형님! 아, 대흥이 형!”
*
윤대흥의 단칸방을 둘러보며, 이찬은 생각했다.
‘더럽게 좁네. 게다가 홀애비고. 그런 주제에 무슨 성인군자랍시고 애를 들일 생각을 했대.’
창밖을 보니 막 윤대흥이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려다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는 얼굴은, 타고난 눈썰미로 보기에도 진심으로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이찬은 픽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뭐······ 그나마 담배는 안 피우는 것 같네. 이 정도면 몇 달 머물기에 나쁘진 않나.’
윤대흥의 구형 캐피탈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뒤엔 저도 모르게 방바닥에 몸을 뉘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 파출소며 경찰서며 진술하러 다니느라 잠이 부족한 탓이었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피로가 누적돼 있었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이라 길에선 오래 잠을 자기 힘들었던 까닭.
‘서울보다 여기가 더 깍쟁이 소굴 같단 말이지. 기껏 도와줘도 잠 좀 재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원. 그런 치들에 비하면 저 아저씨는······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 좀 멍청하긴 하지만. 참나. 몇 번이나 봤다고 날 믿네 마네······.’
윤대흥이 해준 말을 떠올리다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곧 스르르 눈이 감겼다.
*
꼬박 하루가 지난 뒤, 윤대흥의 단칸방을 찾아온 건 김순영이었다. 20시간 가까이 잔 뒤에 배가 고파 일어난 이찬이 라면을 하나 꺼내 먹어도 될까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형사님이 여길 왜······.”
“흠. 따라와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는데.”
“이 자식이?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이냐? 대흥이 형이 데려오라고 했어.”
“에이. 형이 직접 안 오고요?”
“핫! 요 맹랑한 것, 진짜 형이라고 부르냐? 옛날 같으면 너만 한 손주 볼 나인데? 아무튼 직접 올 상황이 아냐. 칼에 찔렸거든.”
장난 좀 치다가 김순영을 따라가려던 이찬의 움직임이 덜컥 멎었다.
“칼에 찔려요?”
“어, 짜식이 놀라긴. 별일 아냐. 그놈 신달호 잡다가 몸싸움이 좀 있어서. 야, 근데 진짜 놀랐다? 진짜로 신달호가 죽인 거였을 줄은. 그놈, 우리가 왜 죽였냐고 묻자마자 발악을 하더라고.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씨발놈이 반항을 너무 했네 어쩌네 하면서······ 어? 야, 강동- 찬아. 너 왜 그러냐?”
“아, 휴우. 칼이라니 너무 무섭잖아요. 형사님도 참, 애한테 못 하는 말씀이 없으셔.”
“아, 좀 그랬나. 미안하다. 내가 결혼을 안 해서 그래. 보통 선배들이 그러더라고. 가정 생기고 나면 좀 유해지더라.”
황급히 천진난만한 아이를 연기하긴 했지만, 이찬의 심장은 거세게 뛰는 중이었다.
‘나 때문인데.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나 때문에 파고들다가 칼에 찔린 건데. 그게 진짜 별일이 아닌 걸까? 칼에 찔려본 적은 없지만, 진짜 더럽게 아파 보이던데. 젠장. 아, 젠장. 그 아저씨, 괜찮으려나. 내가······ 싫어지진 않았으려나.’
김순영의 차를 타고 가며 본 수원종합병원의 새하얀 위용은 이찬의 마음을 더욱 주눅들게 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그는 태연한 모습을 연기했다.
‘미안하단 말은 해야 되겠지만, 저자세로 나갈 건 없어. 사람들은 약점을 보이면 그걸 물어뜯곤 하니까. 어차피 별일도 아냐. 내가 미워졌다 그러면 그런 거지 뭐. 그딴 집 그냥 나오면 그만인데, 뭐 하러 긴장을 해.’
이찬은 애써 그렇게 다짐하며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곳곳에 붕대를 칭칭 감고 환하게 웃는 윤대흥을 본 순간, 모든 생각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찬이 왔니? 너 뭐 좀 먹었어? 내가 하······ 저 순영이 저놈이 문제야. 나 정신 차리기 전에 가서 너한테 뭘 좀 사 먹였어야 되는 걸, 멍청하게 병실 앞만 지키고 있었다니. 그런데 집에 라면은 있었는데, 그거 좀 먹었지? 야, 내가 미안하다. 입주 첫날부터 밥도 못 차려주고 말이야. 하지만 이게 또, 형사라는 직업이 이래요. 집에 제대로 들어가질 못하니까 마누라도 바람이 나서 집 나가······ 아, 이런 얘긴 할 필요가 없지.”
김순영이 낄낄거리며 선배의 말실수를 두둔했다.
“얘도 그 마음 딱 느꼈을 텐데 말 안 하면 뭐 다릅니까? 하여튼 오지랖 하나는 알아줘야 돼요. 저 양반 눈 뜨자마자 너부터 찾더라고. 걔 또 집 나가서 떨고 있을지 모른다고, 당장 나보고 찾아오라고 하는 거다. 나도 배에 붕대 감고 있는데 말이야. 참 사람차별 심하우 형님.”
“시끄러, 이 새끼야! 넌 거, 나가서 찬이 밥 좀 먹여. 요 앞에 국밥집 괜찮다.”
“에이. 형님, 요 앞은 짱개가 맛있죠. 찬아, 너 짜장면 좋아하지?”
호들갑스런 김순영과 함께 병실을 나서며 이찬은 생각했다.
‘아빠’라는 건······ 저런 사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평생 가져본 적 없는 아빠를,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 1장 - 형사 윤대흥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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