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 미남 남태형 (3.) >
한때, 남태형은 패기로 가득한 열혈 청소년이었다.
의정부에서의 어린 날. 당시까지 촌을 벗어나지 못하던 도시였지만, 그럼에도 그 미모는 빛을 발했다. 동네의 유명한 ‘얼짱’으로서 여러 학교에 명성을 날리며, 소년 남태형은 자신이 대단한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치기 어린 추측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무수한 캐스팅매니저들이 이름난 미소년을 찾아왔고, 고3이 된 남태형은 당대의 이름난 기획사들을 고르는 갑의 입장에 올라섰다.
개중에는 최고의 아이돌그룹을 만들어낸 회사도 있었다. 남태형은 세기말의 청소년답게 그쪽에도 꽤 관심을 뒀다.
그렇지만 결국은 프로액터스였다. 춤에도 노래에도 재능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 그건 그릇된 판단이었다. 차라리 SM으로 가는 게 나았을 터였다.
춤과 노래에서 뒤늦게 재능을 찾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쪽 방면의 무능함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연기 쪽의 재능이 전무한 게 문제였다.
남태형은 배역을 소화하지 못했다.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아예 극 흐름까지 망치곤 했다. 차라리 배역을 잊어버리고 자기답게 대사라도 읊으면 다행일 텐데, 평상시의 섬세한 태도조차 카메라 앞에선 무색해졌다.
문제는 인식이었다. 대본 속의 배역이라고 인식하고 나면 몸을 쓰는 모든 행동이 어색해지고 딱딱해졌다.
프로액터스 대표이사 왕대영은, 그것을 두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발연기’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아무리 가르쳐본들 발로 그린 그림처럼 허접하기만 하다고.
얼굴마담 조연으로 넣으려던 몇 차례의 시도마저 무산되고 나서, 왕대영은 남태형을 버렸다. 연기력이 덜 요구되는 스틸샷 모델로만 몇 차례 추천하고, 영화에서는 아예 배제했다.
<미스 스캔들>의 캐스팅은 남태형 본인으로서도 의외였다. 극을 망칠 게 뻔한 자신을 라이징스타 신수영의 상대역으로 내보내다니. 왕대영의 그 결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큰 불안과 작은 기대로 찾아간 남태형에게, 그러나 대표이사는 아주 냉정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너한테 기대하는 건 딱 하나야. 트레일러. 원래 각본에 있던 씬들 중에서 대부분이 삭제될 거다. 그냥 딱 하나, 분위기 있는 얼굴 한 번만 보여주면 돼. 그거 하나를 위해서 동이 틀 때까지 찍고 또 찍을 거다. 각오하고 있어라.”
신수영의 성공을 위해서였다. 연기력이 필요한 씬들은 최대한 줄이고, 트레일러에서 인상을 줄 단 한 장면을 뽑아내겠다는 이야기.
그를 이해한 뒤, 남태형의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찬과 만나게 된 건 바로 그 시점이었다.
스물셋이나 먹고도 조연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그와는 반대로, 고작 열둘의 나이에 공영방송 드라마의 주인공 아역과 상업영화의 주연을 꿰찬 소년.
그가 고급 코스 요리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청년을 빤히 보며 말했다.
“아저씨. 조혁수 아저씨 좋아하세요?”
“어? 어, 뭐라고?”
“저 모레 <가을하늘> 성인 씬 촬영장 견학하는데, 그날 같이 갈래요? 우리 차로 데리러 갈게요. 어디 사세요?”
그 순간 처음 든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저 아이도 내 연기력이 한심하다는 소문을 들은 걸까? 그래서 조혁수 연기를 보여주고 정신 차리게 만들려는 걸까?’
낮은 자존감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아무리 촉망받는 아역이라고 해도 고작 열둘이다. 어린 꼬마가 그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지만 망상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있었다. 남태형은 이제껏 최고의 연기를 본 적이 없었다. 한국 최고의 남자배우로 손꼽히는 조혁수의 연기를 보고 싶어졌다.
비록 그 반의반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이지만, 그래도 비범한 신계를 엿보고 나면 자신도 좀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조혁수의 연기는 그저 멀기만 했다.
“난, 네 오빠가 아니야. 우린 이제 남매가 아냐. 그렇지만, 함께 있자.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자. 난 너 하나면 돼. 너만 있으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어.”
“오빠······ 오빠아. 그러면 안 돼요. 안 되는 거야. 오빠한텐 아빠랑 엄마가 있잖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만 행복해진다고, 그게 정말 행복한 일은 아닐 거잖아요······.”
“커엇! 그게 아니라니까! 소연 씨, 잠깐 와봐.”
조혁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상대역인 이소연조차도 남태형에게는 한없이 먼 레벨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색이 있었다. 조혁수에 비해서 한참은 떨어지는 몰입감 때문에, 이소연은 감독에게 겉핥기 연기라고 욕을 먹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미녀라고, 잠재력이 있는 연기자라고 평가되는 저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인 거야.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대체 무슨 수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있겠어. 난 안 돼. 난, 절대 안 돼.’
그런 자괴감으로 일그러지는 남태형을 이찬이 바라본다.
소년 천재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도 하네. 그러라고 데려온 게 아닌데 말이지. 더 기다리면 안 되겠어. 아직 충분히 친분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뒀다간 혼자서 무너질 거야.’
소년은 그런 사람들을 무수히 봐왔다. 그들이 어떤 표정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나락에 떨어지는지 관찰해왔다.
연기 얘기는 아니다. 소년이 떠올린 건 경제위기 속에서 대합실을 찾았던 시대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사회 속에서 무가치함을 절감하여 스스로를 벼랑으로 내몰고, 그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 늙어갔다.
이찬은 남태형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유일한 형을 위한 소년의 레퀴엠은, 완전무결해야 마땅했다.
“남태형 선배님.”
“어! 어, 찬아. 까, 깜짝 놀랐네.”
“굉장히 집중하고 계셨던 모양이죠? 컷 나온지 꽤 됐는데.”
“그······런 셈인가. 솔직히 말하면 딴 생각을 좀 했지만.”
“솔직하신 점은 좋네요. 잠깐 옆방으로 가시죠.”
성인 배역의 오늘 촬영은 세트장 씬이었다. 오랜 추억이 깃든 옛 집에서 안지성과 신지혜가 교감을 나누는 장면들.
그렇기에 칸막이를 몇 개 지나자, 미래의 신지혜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작은 여관방이 나왔다.
그곳에서 이찬은 방치된 카메라 한 대를 작동시켰다.
“아까 조혁수 선배님 연기했던 거, 따라하실 수 있겠어요?”
“어? 아이고······ 내가 그걸? 에이, 불가능하지.”
“똑같이 하시라는 게 아니라, 느낌만 한번 살려보세요. 선배님, 제가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요.”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이다운 눈웃음으로 선보이는 애교. 그 앞에 소심한 남태형은 무력했다.
“그럼······ 하, 한번 해볼까? 내가 뭐 보여줄 만한 실력은 못 되지만, 궁금한 게 있다면야. 크흠. 난, 네 오빠가 아니야. 우린 이제 남매가 아냐. 그렇지만, 함께 있자.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자. 난 너 하나면 돼. 너만 있으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어.”
이찬은 도중부터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무능이람. 저걸 재연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방금 전에 정답을 봤잖아? 그럼 과정이 틀리더라도 최소한 유사하게는 가야 되는데, 어떻게 저렇게 형편없게 만들 수 있지? 동네 꼬마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그나마 대사는 금세 외웠다는 게 유일한 다행인가.’
소년과 같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할 법한 생각이었다. 정말로 끼 있는 동네 꼬마 하나만 데려오더라도, 지금 남태형보다는 더 느낌 있는 재연을 해냈을 테니.
이찬은 미간을 좁힌 채 3초 정도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남태형이 연기하는 ‘양지환’이 <미스 스캔들>을 최악의 영화로 전락시키는 광경을, 거의 현실처럼 그려냈다.
“······휴. 죄송한데, 제가 선배님 연기 좀 지도해드릴게요.”
“어? 뭐라고?”
“황당해하지 마세요. 이런 일 처음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은 조혁수 선배님 연기를 다시 한 번 체크해보죠. 제가 고스란히 따라할 건데, 집중해서 보세요.”
소년은 자신이 말한 대로 실행했다.
카메라와 한미한 미남의 시선을 앞에 두고, 방금 전 조혁수가 펼쳤던 연기를 그대로 재연했다.
아니, 재현했다.
‘조혁수······ 조혁수다. 몸이 작아졌을 뿐이고, 완전히 조혁수야. 얼굴의 표정, 대사의 호흡, 사소한 행동의 디테일까지······ 완전히 그 선배님이 떠오르게 만들어. 이거구나. 이게, 영상 하나 공개된 게 없는 이찬이라는 아역이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구나. 이 아이는······ 정말로, 신에게 선택받았구나.’
그가 갖지 못한 재능. 평생을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도 절대로 얻지 못할 실력.
열두 살 소년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런 이찬이, 연기를 마치고 남태형을 올려다본다.
“이걸 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본판이 되시니까, 잘만 따라주시면 저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너보다 나을 거라고?”
“예. 후광효과라는 게 있잖아요? 잘생긴 사람은 적당히만 해도 멋져 보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양지환’ 역은 ‘안지성’보다 훨씬 단순해요. 이게 되신다면, 그쪽은 껌이죠. 붙는 씬에선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 테니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어떤 영역에서도 재능이란 절대적인 것. 천재들의 모든 제자가 천재가 되지는 못하듯, 남태형 역시 그 어떤 기라성(綺羅星)에게 배운들 제대로 된 연기를 해낼 수 없을 터였다.
다만 자포자기한 미남은 소년의 명령을 거부하는 정도의 자존감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수동적으로 지시를 따랐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그 어떤 천재’ 중에, 이찬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프레임. 자, 따라하세요.”
“어······ 이걸······ 이렇게?”
“입가 신경 쓰세요. 더 끌어당겨야죠. 이마도 좀 더 넓게······ 안 되세요? 거긴 누구나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인데.”
“······이렇게?”
“흠. 나쁘지 않네요. 기억하신 채로 다음, 2프레임. 손을 이만큼 드시고, 동시에 입술을 이만큼 벌려요. 동시에 코 찡긋.”
“자, 잠시만.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이게, 연기지도야?”
“네. 연기, 솔직히 자신 없으시잖아요? 메소드 연기니 뭐니 하는 어려운 것들, 따라오실 능력이 없잖아요? 그럼 그냥 외우세요. 최상의 결과물을 천천히 보여드릴게요. 그걸 프레임 단위로 작은 변화들 하나하나를 익히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거기에 대사를 붙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어나가는 거죠. 주연이셨다면 절대로 이렇게 준비하실 수는 없을 테지만, 양지환 역은 분량도 별로 안 되잖아요? 제가 분석해서 영상 찍어드릴게요. 그걸 따시면 돼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죠?”
정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유례가 없었을 연기이론.
최고의 배우들조차, 자기가 몰입해서 뱉어내는 대사의 호흡과 행동의 텀을 완전히 외우지는 못한다. 그저 감정을 받아들이고 배역을 덧입혀 단숨에 몰아치듯 연기해낼 뿐.
그렇기에 이찬의 가르침은 사도(邪道)였다.
연기를 프레임 단위로 분석한다는 것부터가 황당무계였고, 그걸 따라하라는 지시는 완전히 막무가내였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남태형은 생각했다.
그걸 해낸다면?
몰입은커녕 기본적인 감정이입조차 하지 못하던 자신이, 그래도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 그 가르침을 익힐 수 있다면?
그때 왕대영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의 연기에 욕을 하고 침을 뱉던 트레이너와 스탭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할 수 있을까? 찬아, 내가 할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전, 이찬은 살짝 감동했다.
‘와. 이 말에 넘어오네. 표정 보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절실했던 모양이야.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가 싶으면서도······ 좀 안쓰러운걸. 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아역 씬을 촬영하며 순식간에 향상되었던 정신혜 때와는 다르다. 배우로서 남태형은 열세 살 아역만도 못한 최악이었다.
“몰라요. 아까 말했잖아요? 기대하시면 곤란하다고. 몇몇 짧은 씬에서는 나아지실 수 있겠죠. 죽어라 하신다면요. 일단은 따라하는 거에 익숙해지셔야 돼요. 저한텐 쉬운 일이지만, 선배님한테는······ 아마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날, <가을하늘> 세트장에 예비돼 있던 소형 카메라와 삼각대, 테이프 세 개가 사라졌다. 그를 발견한 스탭이 겁먹은 채 카메라감독에게 보고했고, 연륜 있는 카메라감독도 민망한 표정으로 책임자인 심성윤 감독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심성윤은 그 말을 듣고서야 손뼉을 치며 사과했다.
“아, 집중하느라고 까먹고 있었네. 찬이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가라 그랬어요. 그냥 둬요. 비싼 것도 아니고.”
덤벙거리는 감독에게 장난스런 야유가 쏟아졌다. 그 일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예상하는 사람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영화의 포스터 촬영을 하루 앞두고 각본의 최종 교정에 여념이 없던 오덕환 감독에게, 남태형이 찾아왔다.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게 며칠은 밤을 샌 것 같은 모양새였다.
“무슨 일입니까?”
“저, 감독님. 무례한 부탁인 걸 알지만······ 제 연기를 한 번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본 수정에······ 조금만······.”
끝맺지 못한 말에도 오덕환은 그 속내를 짐작했다. 이미 투자자인 왕대영 대표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분량이 대폭 삭제될 걸 안 배우가 애걸하러 온 것이다. 한번 보고, 엄한 표정으로 몇 마디 꾸지람을 해주면 될 터였다.
그렇지만 남태형이 선보인 하나의 씬을 보고 나서, 오덕환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연습을······ 엄청 하셨나본데?”
“예. 죽어라 했습니다. 정말 죽어라 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죽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몇 씬이라도······ 남겨주십쇼.”
오덕환은 30초 정도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 11장 - 미남 남태형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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