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32화 (32/250)

< 12장 - 감독 오덕환 (1) >

오덕환 감독은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 정도가 꽤 심각해서, 초면인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을 경우 백이면 백 체기가 올라올 지경.

그런 그가 무수한 스탭들을 지휘해야 하는 영화감독이 된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일이었다.

사실은 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는 원래 각본가를 꿈꿨다.

그저 글만 쓰고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막 뒤의 작가가 되어, 자신의 세계를 영상으로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는 일로 행복을 느끼려 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아집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의 작품관이 문제가 됐다.

영화를 쓰든 드라마를 쓰든 각본은 감독이 뜯어고치기 마련인데, 오덕환은 성격상 자기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꼴을 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탓에 한 편 두 편 연출까지 도맡아서 하다 보니, 어느새 충무로의 유명인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그런 오덕환에게 남태형은 처음부터 탐탁지 않은 배우였다.

애초에 연기력을 기대할 수 없는 배우. 단지 트레일러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써먹는 얼굴마담. 투자자가 회사 소속의 배우를 들이밀며 설명한 내용이다.

그런 식의 협잡질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해야 하는 현실이 오덕환은 몹시 혐오스러웠다.

그렇지만 불혹을 앞둔 감독은, 이제 프로덕션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

장인정신은 증발되고 그 자리를 책임감이 채웠다. 예전처럼 투자자고 뭐고 들이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받아들인 끼워팔기였다. 그나마 주인공 역에 받은 신수영이 실력과 외모를 겸비했다는 점이 위안이 됐다.

이후에 남은 주연인 ‘심지호’ 오디션을 진행했을 때에는, 그보다도 큰 위안이 스스로 찾아왔다. 공개된 작품 하나 없이 충무로까지 이름을 날린 이찬이 그 주인공.

키가 제법 큰 열두 살 소년은, 열네 살로 설정된 배역을 연기하며 아주 작은 빈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키 작은 십대 후반 아역들보다도 월등한 작품해석까지 선보였다.

수많은 수기(手記)의 홍수 속에 해질 대로 해진 오디션 지정연기 프린트까지 확인한 뒤, 오덕환은 몹시 기뻐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 속에 출연진의 윤곽을 결정하고 이제는 포스터 촬영과 제작발표만을 남겨뒀을 무렵. 유일하게 목 안의 가시처럼 느껴졌던 남태형이 찾아왔다.

그리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마치 방금이라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것 같은 조연출 ‘양지환’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물론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다른 장면의 연기도 요구한 오덕환에게, 남태형은 아직 연습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과거와 같은 형편없는 연기력을 드러냈다.

그건 경력 많은 감독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각본 전체를 분석하고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해야만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선보인 주제에, 다른 씬에는 적용을 못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케이스였다.

그렇지만 오덕환은 수줍은 사람.

자세한 내막을 캐내기보다는, 우선 남태형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지금처럼 다른 씬까지 능숙해질 수 있다면 양지환 분량을 온전히 살릴 수도 있다는 희망까지 안겨주며.

그가 나간 뒤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집무실을 몇 바퀴나 맴돌았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대체 무슨 수로 저런 연기력을 끌어낸 거지? 저게 절대로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닌데. 남태형 연기력이라면 진즉에 검증하고 또 검증했는데. 절대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는 녀석임을 확인한 뒤에야, 내 자식 같은 각본에 칼질을 하겠다고 협의를 했던 건데.’

15분의 서성거림 끝에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프로액터스의 왕대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 감독? 웬일이야?]

“예, 대표님. 죄송한데, 최근에 남태형이 뭘 했습니까?”

[허어. 무슨 질문이 그래? 뭐가 궁금한 거야?]

왕대영은 남태형이 감독을 찾아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정말 그저 근황이 궁금합니다.”

[근황이야 뭐, 개인연습실에 처박혀 있었지. 집 연습실, 그렇게만 오갔어.]

“그 외에 아무 일도 안 했습니까? 일주일 동안?”

[일주일······ 전이라고 하면, 견학을 한 번 갔다 왔지.]

“견학이요?”

[그래. 뭐냐, 거, <가을하늘>. 그거 견학하겠다고 갔다 왔어. 그쪽 애가 초대했다고 해서 보내줬지.]

“그쪽 애요? 조혁수나, 이소연이나?”

[말고, 애기 이찬 말이야. 식사 자리에서 친해졌다고 하던데. 그 꼬맹이가 자기 견학 갈 때 끌고 간 모양이야. 꼬맹이가 혼자서는 심심했던 모양이지? 흥. 용건 없으면 끊자고.]

왕대영은 심기가 불편한 듯 얘기를 길게 잇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오덕환은 수줍은 목소리로 외쳤다.

“유레카. 이찬이, 남태형을······!”

하지만 잠시 후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열두 살짜리 소년인데. 재능이라곤 발톱의 때만큼도 없던 배우를 변모하게 만들 수가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데?”

들어주는 이 없는 공허한 독백.

밤이 깊도록 대본 위에 이찬의 얼굴을 끼적이던 오덕환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 내일은 어차피 그 꼬맹이와 남태형을 같이 보게 될 테니까. 포스터 촬영, 흥미롭겠어.’

*

영화 홍보에 필수적인 스틸컷을 생성하는 작업인 만큼, 포스터 촬영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 해당한다. 이때 촬영하고 보정한 사진을 베이스로 홍보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때때로 이미 촬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포스터를 찍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개봉일이 가까운 경우에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취재팀이 동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스 스캔들>의 포스터 촬영은 비공개 형식. 메이킹필름 촬영을 위한 일부 촬영팀을 제외하고는 스틸컷 관련 스탭들만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그런 현장에 누구보다도 먼저 이찬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오덕환은 흥미를 가득 담고 그를 바라봤다.

‘이찬. 이찬. 심지호 역할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한 아역. 복잡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인해 진지한 내면연기가 필요한 배역이기에, 원래는 좀 더 나이 있는 아역을 찾으려 했어. 키가 좀 작은 고등학생이라면 충분히 배역에 맞게 분장시킬 수가 있으니. 그렇지만 저 아이를 보고 난 뒤에는 다 쓸데없는 생각이 되고 말았지. 그런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10대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

작중에 심유리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심지호는, 그저 귀엽기만 하면 되는 평면적 캐릭터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톱스타 심유리보다도 더한 난이도를 가진 배역이었다.

심유리의 진짜 남동생이 아니기에.

비렁뱅이질을 하며 이름도 없이 살아가던 고아가 있다. 그는 산중에서 사고를 당한 3인 가족을 발견하고 구조대를 기다리던 도중에 부부의 유언을 듣게 된다.

형편이 좋지 않던 과거에 놀이동산에 버리고 갔던 그들의 딸이 지금의 톱스타 심유리이니, 그녀에게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것이다.

차마 면목이 없어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그러나 평생 동안 그녀를 버린 일을 후회하며 살아왔다고.

간신히 거기까지 전달한 부부는, 먼저 죽은 남자아이를 끌어안은 채 숨을 거둔다,

고아는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를 보며 한참 고민한다. 그리고 구조대가 도착하기 직전에, 유품이 된 귀중품들을 들고 달아난다. 장물로 팔면 한동안 배곯을 일 없겠다 생각하며.

과연 유품들은 값진 것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보석상과 협상한 끝에, 개중에 남자아이가 차고 있던 목걸이를 제외하고도 상당한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고아가 돈을 갖고 있음을 눈치 챈 패거리가 습격하고, 결국 다시 비렁뱅이가 되어 서울까지 쫓겨나게 된다.

그 뒤에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심유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소식을 전한 수고비를 받을 수 있을까 하여.

그런 배경설명은, 물론 반전으로서 작품의 후반부에 내레이션과 회상 씬으로 삽입될 예정. 그러나 심지호 배역은 초반부부터 그 반전을 위해 무수한 복선을 연기해야 한다.

설정과 동일한 열네 살 소년으로서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덕환은 이찬이란 오디션 지원자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가 해낼 수 없는 내면연기라고 여겼기에.

그렇지만 그 애송이는, 지정연기를 위해 아주 단편적으로 기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심지호를 현실에 끄집어냈다. 오덕환이 상상했던 그 어떤 가상보다도 명료하게.

‘그때는 순간적으로 저 아이가 본디 고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지. 정창영 실장이 헛기침을 하며 제2의 강정후 어쩌고 말했을 때에야 희대의 천재임을 알았고. 그 뒤에는 저 천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왕대영 대표와 논쟁도 벌였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오덕환은 미처 몰랐지만, 소년은 이미 충무로의 유명인사였다. 완고한 왕대영이 종국에는 필모 없는 소년의 주연 캐스팅을 용인한 게 그런 까닭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찬을 데려오며 오덕환이 기대한 것은 그저 깊이 있는 내면연기였다.

설마 그 뒤로 얼마 지나지도 않아 구제불능이던 남태형을 변모시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방법은 모르겠어. 하지만 남태형은 분명히 저 아이와 가까워진 뒤에 변신했단 말이야. 뭘까?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의도한 걸까, 아니면 우연인 걸까? 너무 궁금한걸?’

그렇지만 지인들에게 자주 답답하다는 말을 듣곤 하는 감독은, 수줍은 성격 탓에 이찬에게 직접 접근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은 뒤에 그저 한참동안 소년을 관찰했다.

그런 오덕환을 이찬 역시 관찰하고 있었다. 시선은 촬영장을 향해 있으나, 그의 관찰력은 시야의 가장자리에서도 정보를 파악해냈다.

다만 감독의 의뭉스런 속내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왜 저렇게 호기심 가득 담고 쳐다보는 거야? 연기에 대한 기대로 흐뭇하게 보던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는데. 설마 남태형 아저씨가 내 얘길 꺼낸 걸까? 귀찮은 거 싫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소년은 자신에게 배우를 지도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정신혜가 단시간에 심성윤의 칭찬을 받았으며, 남태형조차 배역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성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장 맡은 배역을 버거워하는 초심자에게 이찬은 유효한 스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고한 윤대흥이 바란 것은 지도자가 아닌 배우.

이찬은 자신의 특수한 재능이 소문으로 퍼져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랐다. 이미 실수로 조혁수에게 들켰으나, 그 배우는 다행히도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남태형 아저씨는······ 좀 방정맞긴 하지. 이따 오면 물어봐야겠어. 분량 보장해주겠다는 대답만 듣고 나왔다고 했는데, 혹시라도 내 얘기 흘리지 않았는지 추궁해야지.’

그렇게 침묵 속의 감독과 배우가 서로를 관찰한 지 3분.

마침내 남태형이 도착했다. 무명 배우답게 공손한 태도로 감독과 스탭들에게 인사한 뒤에, 잘생긴 청년은 곧장 이찬에게로 향했다.

“찬아! 찬아, 먼저 와 있었어? 오래 기다렸어?”

“별로요. 아저씨, 어제 정말 별일 없었어요? 실수로라도 내 얘길 했다거나. 낌새가 영 이상한데요.”

“어제? 감독님 뵀을 때 말이야? 아유, 전혀 안 그랬어.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찬이 너는, 나한테 은인인데.”

다크서클은 치덕치덕 묻어 있지만, 전과 달리 샘물처럼 맑아진 눈으로 진심을 담아 발음한 ‘은인’이란 말. 그런 남태형을 보며 소년은 어색하게 웃었다.

‘은인이라니.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하는 말이겠지만······ 듣기가 불편해. 나한테 형은 더 필요 없단 말이야.’

지금이야 속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는 연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나면 그러기 어려울 터. 이찬은 남태형과는 이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남 제자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냈다.

“아, 잠깐만. 그게, 우리 대표님이 아침에 그런 얘기를 하긴 했어. 어젯밤에 감독님께 전화가 왔었다고. 그래서 <가을하늘> 촬영장 견학을 간 적이 있다고 얘기하셨댔는데······ 혹시 그 때 네 얘기도 한 거라면······.”

이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태형을 노려봤다.

“미, 미안해. 이게, 스케줄이 없다고 해도 어딜 가는지는 회사에 보고를 해야 되는 거라서······ 그래서 말했던 건데.”

“네. 할 수 없죠.”

“정말, 정말 미안하다, 찬아. 많이 곤란해진 거야?”

“아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정말 내가 너한테 폐만 끼치는구나. 정말 미안해.”

거듭 사과하는 남태형을 외면한 채, 이찬은 생각했다.

이번 영화는 이래저래 귀찮을 것 같다고.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이 작품은 내게도 무척 중요해. 신수영 누나 때문에 재빨리 물었던 거긴 하지만, 그 시나리오는······ 형을 닮았으니까.’

소년은 낯가리는 감독이 고안했다는 심유리라는 캐릭터에서 윤대흥을 발견했다.

성별부터 직업과 나이까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 배역과 한 인간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아를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따뜻한 심성에서, 몹시 유사했다.

‘그렇기에 레퀴엠이야. 오덕환 감독이 귀찮게 굴든 말든 이 작품은 최고로 만들어내야 해. 장례 지키지도 못하고, 이름도 적지 않은 부조로 삼천만원 넣고 보내줘야 했던 내 형을 위해서, 어떻게든 <미스 스캔들>을 대작으로 만들 거야.’

소년은 굳은 결의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눈빛에, 클라이막스에서 진심을 고백할 심지호가 담겨 있었다.

< 12장 - 감독 오덕환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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