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장 - 기자 이차원 (2) >
이찬이 들판으로 돌아가 두 번째 테이크를 촬영하는 도중에, 뒤쪽에서 배우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조연 배역인 최정하와 김미림의 대화였다.
“미림아, 이게 3화 9씬이지?”
“네, 선배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사흘 뒤예요. 진아도 잘해주고 있는데, 찬이가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죠?”
“그래, 잘 봤어. 연민도 느껴지고, 애정도 선명해. 조혁수 선배님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실 만도 해.”
“어머.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어요?”
“응? 아, 넌 저 선배랑 작품 해본 적이 없지? 그럼 모를 수밖에. 혁수 선배가 너한텐 뭐라고 하셨어?”
“어, 괜찮은 연기를 한다, 나이로 따질 필요 없는 배우다.”
“그게 격찬인 거야. 저분한테 괜찮다 소리 듣기까지 내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했는지 알아?”
그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김미림이야 아직 신인 축에 속해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최정하라고 하면 최근에 꽤나 주목받는 유망주. 조혁수가 그 최정하만큼이나 이찬을 높게 샀다는 것이다.
이차원은 방긋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그들에게 접근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님들. 스포츠고려 이차원입니다.”
“앗, 안녕하세요?”
“벌써 촬영장 스케치를 나오신 거예요?”
“정확하게는 이찬 군 취재입니다. 방금 하신 말씀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됐는데,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 문외한이라 방금 연기가 그렇게 뛰어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상의 기자가 깍듯하게 묻자, 아직 연차가 길지 않은 청년 배우들이 공손히 답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기자님 저희 드라마 플롯 정확히 모르시죠?”
“출생의 비밀이 얽혔다고 듣긴 했는데요.”
“맞습니다. 지금 맥락은 뭐냐면, 원래 여동생이었던 지혜가 남의 집 아이라는 게 드러나고 사흘이 지난 거예요. 월요일이 돼서 새로운 환경에서 함께 등교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지혜 역은, 원래 집안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아이거든요.”
“성격이 착한 걸 빼면 별달리 특기가 없었는데도 말이죠. 그렇죠, 선배님?”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제일 한미한 집안의 아이란 게 밝혀지고, 학교에도 소문이 퍼졌을 게 분명한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등교하는 거예요. 여전히 가짜 동생을 아끼는 지성 입장에서는 굉장히······ 마음이 무거울 상황이죠.”
“이게 어린 아역들이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찬이를 보면, 그 마음이 분위기가 돼서 드러나고 있어요. 특별히 대사로 심정을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 점이 신기한 거예요. 어디서 어떻게 배웠길래 저렇게 자연스러운 표정연기를 해내는 건지 참.”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만 빼면 써먹기 좋은 이야기였다. 김미림의 말을 급히 메모하며, 이차원은 또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조혁수 배우님의 격찬은요?”
“어······ 이걸 제가 말씀드려도 되려나?”
“기사에는 당연히 허락 받고 넣을 겁니다. 저분이 자기 얘기를 꺼리시니까, 3자 입장에서 듣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런 거군요. 혁수 선배는 아역 씬 촬영 첫날부터 계속 견학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종종 저희들한테도 그 감상을 말씀해주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평소답지 않게 찬이 연기력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런 아역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도 하셨죠. 직접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되네요.”
조혁수가 칭찬에 인색하다는 건 이차원도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렇기에 무척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뭘 봤기에 그러는 걸까? 어두운 감정을 담은 소년 연기가 제법이다 싶긴 했는데, 조혁수가 격찬할 정도인가?’
당장 다가가서 묻고 싶었지만, 조혁수 본인은 모니터를 뚫을 듯 무서운 시선으로 촬영분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이차원은 하는 수 없이 여주인공 이소연에게 접근했다.
“이소연 배우님. 오랜만이에요, 스포츠고려 이차원입니다.”
“어머,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제가 뉴페이스인 이찬 배우를 취재하러 왔는데, 선배 배우들의 평가를 좀 듣고 있거든요. 저 아이, 연기를 잘하나요?”
“음, 잘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눈이 가네요. 한 장면 한 장면을 볼 때는 몰랐는데······ 찬이는 어떤 감정연기에도 어설픈 모습을 보이지 않거든요. 기뻐할 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다가도, 진지한 연기를 할 때엔 순식간에 그 감정에 녹아들어요.”
열심히 메모는 하고 있지만, 이차원은 그 연기평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전통적인 미인상으로 떴을 뿐 연기력에선 아직 하자가 있다고 여겨지는 이소연의 말이니까.
그렇기에 말이 끝나자마자 조혁수 쪽을 가리켰다.
“특히 조혁수 배우님이 격찬을 많이 하셨다고 하던데요?”
“혁수 오빠요? 음······ 그랬죠. 저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요.”
“어떤 말이 특히 이해가 안 가셨어요?”
“그게······ 마지막 기회라고······ 지금이 아니면 쟤를 영영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앗? 기자님, 이건 오프더레코드로 부탁드려요.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런 꼬마한테 경쟁심을 느끼는 혁수 오빠라니. 그건 말도 안 되죠.”
이차원 역시 동의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찬사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의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혁수가 그렇게 말했다면, 결코 허언은 아닐 것이기에.
황망한 심정으로 촬영현장 주변을 맴돌며, 이차원은 이찬에게 점차 경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화촬영과 병행하기 위해 스케줄을 타이트하게 짠 남주 아역은 몇 시간 동안 대기실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촬영하고, 감독의 디렉팅을 듣고, 리허설하고, 바로 또 촬영하는 식.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투정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대단한걸. 어른인 나도 계속 서 있느라 다리가 아플 지경인데, 네 시간 넘도록 의자 한 번 안 찾고 연기에 집중하다니.’
계속되는 촬영에도 테이크는 언제나 세 번 이내에 끊겼다. 깐깐한 심성윤 감독이 그에겐 오직 칭찬만을 퍼부었다.
‘이거 참, 신기한 일이야. 어떻게 된 게 쟤가 찍는 씬은 좀체 NG도 나오질 않는단 말이지. 원샷 쇼트에선 종종 실수를 하는 정신혜도, 이찬하고 붙을 때는 대단히 뚜렷해지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쉬고 있던 명진아에게 접근했다.
“진아야, 오랜만이야. 스포츠고려 이차원, 기억하겠어?”
“아, 네! 이차원 기자님, 안녕하셨어요?”
“그래. 내가 오늘은 찬이 취재를 나오게 됐어. 워낙 뉴페이스라서 프로필밖에 없는데, 네가 볼 땐 어떤 아역 같니?”
“찬이요? 아, 드디어 취재를 오셨구나. 찬이는, 정말 대단한 배우예요. 제 목표기도 하고요. 언젠가 찬이처럼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연습하고 있어요. 축하드려요. 찬이 취재를 전담하시게 된 건 정말 행운이세요.”
까다로운 배우들의 속 얘기를 듣기 위해서, 취재기자는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전담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취재를 나온 게 너무도 당연하단 태도가 희한했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이른 취재에 놀라질 않는다. 이차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 게다가 또래 아역들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이 명진아가 두 살 연하 꼬마를 목표로 삼았다니?’
그저 립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조혁수의 발언을 상기하면 무시할 수 없는 얘기였다. 이차원은 이후로 신중하게 이찬의 연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초여름의 장마를 몰고 올 신호탄.
당연히 촬영팀이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심성윤 감독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지시를 내렸다.
“비 온다! 생각보다 좀 이른데? 바로 이동해! 나무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우비 입고 장비에 비닐을 덮은 촬영팀이 그쪽으로 움직여 세팅에 들어가고, 이번에는 이찬과 명진아가 촬영을 준비했다.
실실 웃으며 모니터로 다가가 이어폰 하나를 빌려 끼는데, 뒤쪽에서 조혁수가 이소연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연 씨. 이번 씬에 대해서 설명해보시죠.”
“네, 오빠. 18씬은 3화의 핵심이고요, 저 느티나무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쓰여요.”
“인물들의 감정은 어떻습니까?”
“안지성은 동생이 따돌림 당한 걸 알고서 괴로워하고 있어요. 지혜는······ 힘들어도 의연하려고 애쓰고 있죠. 왜냐하면 이제는 가족이 아니니까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어요.”
“아주 좋습니다. 점점 발전하시는 게 보이네요.”
“정말이요? 정말이죠? 저 정말 추천해주실 거죠?”
“그건 시청평 나오고 난 뒤에 정할 일입니다.”
대놓고 하는 연기지도. 이소연도 톱스타 반열이라지만, 조혁수의 이름값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차원이 두 아역이 느낄 감정에 대해 잠시 떠올려보는 와중, 금세 세팅이 완료되고 카메라가 돌았다. 거센 빗줄기 속에 스탭들의 외침이 잦아들고 곧 큐싸인이 떨어졌다.
비에 푹 젖은 소년소녀. 키가 좀 더 큰 이찬이 앞장서서 명진아를 이끌고 느티나무 쪽으로 달려간다.
거목 아래는 빗줄기가 약하다. 안심한 듯 서로를 보며 웃는 남매. 그러나 오빠 쪽은 곧 눈길을 피한다.
“음. 어떡하지. 비가 안 그칠 것 같은데.”
“그러게? 비가 안 그칠 것 같아.”
“······웃으면서 할 말이야?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집에 안 갔으면 좋겠어. 난 오빠랑 이렇게 계속······ 앗.”
갑자기 내린 비에 마음이 흐트러진 탓일까. 신지혜로 이름이 바뀐 소녀가 진심을 입에 담고 만다.
안지성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비를 쏟아 붓는 하늘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곧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참 못됐다. 우산도 없는데 비나 내리고.”
“오빠, 그거 알아? 하늘도 가끔씩 슬플 때가 있대. 그래서 참지 못하는 날에는 눈물이 비로 내리는 거래.”
“······참나. 무슨 어린애 같은 소리야?”
“치. 어린애 같은 소리 아니거든? 가끔은 울어야 되는 거야. 참기만 하면, 안에서 곪아버리니까. 생각해봐, 오빠. 하늘처럼 저렇게 온 세상 떠나가라 울면, 얼마나 개운하겠어? 그치?”
이차원은 순간적으로 오빠 역의 다음 대사를 예상해봤다.
‘아마도, 그럼 너는 왜 안 울어, 이런 식으로 가겠지? 신파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전개니까.’
그렇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안지성은 아무 말 없이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쭉 짜서 물기를 없앤 뒤 건넸다.
“이거 걸치고 있어. 감기 걸리겠다.”
“응? 오빠는? 오빠가 감기 걸리겠어.”
“나는 감기 안 걸려. 어려서부터 건강했잖아.”
“아······ 맞네. 오빠는 감기도 잘 안 걸렸지? 나는, 맨날 콜록콜록 기침하고 그랬는데. 우린 참 많이 달랐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이제는 이차원도 느낄 수 있었다. 친남매임에도 어려서부터 달랐던 둘을 관조하면서, 소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다음 쇼트에서는 소녀가 바닥에 앉아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년의 낮은 허밍이 그에 화답한다.
감미로운 음색이었다. 나중에 후시(후시녹음. 동시녹음된 소리 대신 따로 사운드를 붙이는 작업) 따지 않더라도 괜찮을 듯한, 잘 정제된 자장가.
저도 모르게 그 음색에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데, 소녀가 잠에 빠져들었다.
“자······ 중요한 부분이다. 찬아, 가자.”
중얼거리는 심성윤 PD의 말. 이차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소년을 클로즈업한 모니터를 주시했다.
소년은 하늘처럼 울기 시작했다. 잠든 소녀의 곁에 무릎을 꿇은 채, 아주 작은 흐느낌조차 흘리지 않고 그저 얼굴만으로 울었다. 빗물이 말라가던 얼굴 위가 다시 흠뻑 젖었다.
그걸 바라보던 이차원의 볼에도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어? 이 기자님, 눈물이······.”
“어, 어, 아니에요 이건. 이건 빗물이 튄 겁니다.”
우산 쓰고 있는 주제에 할 변명은 아니었다. 스탭들은 장면 하나로 마음이 녹아버린 듯한 기자를 보며 기뻐했다.
그렇게 흐물흐물해진 이차원은, 촬영기사에게 자차를 맡기고 이찬의 밴에 올랐을 때,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천재의 첫 취재이기에.
그렇지만 잠시 후에는 그 생각조차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바지 다 젖으셨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서울 쪽은 세트장 촬영이니까 취재하시는 게 좀 더 편하실 거예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이찬의 얼굴이, 몹시 낯설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저 가면서 좀 자야 되는데, 질문 빨리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주시면 안 돼요?”
촬영장에서 내내 봐왔던 소년이 아니었다. 소품인 교복을 벗은 이찬은 이차원이 모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우수에 젖어 있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생동감 넘치던 눈썹은 좀 누그러지고, 그 대신 입술이 활기차졌다.
이차원은 혼란 속에서 소년에게 물었다.
“너, 혹시······ 혹시 촬영장에선 계속 안지성이었던 거야?”
“아, 네. 오늘은 선배님들도 많고 해서요. 혹시라도 흐트러질까봐, 계속 배역을 연기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편해요. 너무 왔다 갔다 하면 보기에도 불편할 테니까.”
이차원은 혼란 속에서 생각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다들 그렇게 반응했구나. 그저 자연스러운 연기 같은 게 아니었어. 오늘 처음 본 나만이 몰랐던 거야. 처음 본 순간부터 안지성만 보고 있었으니, 그 모든 순간이 연기였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거야. 배우들은 원래 이찬을 알기 때문에 그 연기력에 감탄했던 거고.’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이후 <미스 스캔들> 촬영장에서의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찬이요? 아, 정말 대단한 배웁니다. 저는 정말 농담이 아니라 찬이를 제 연기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코멘트를 하라고 시켜서 자세한 건 발설할 수 없지만······ 찬이는 정말 위대한 배우가 될 거예요.”
꽃미남 배우 남태형의 꿈꾸는 듯한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
“찬이? 이 기자님, 마이 찬 취재하러 오신 거예요? 찬이는 저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응석받이예요.”
“누가요? 허위사실유포는 범죄예요, 누나.”
“하하핫! 넌 저리 가. 네가 듣고 있으면 인터뷰를 어떻게 하니? 흠······ 자, 다시 할게요. 찬이는, 사실 제가 본받고 싶은 배우이자 인격자예요. 영화 데뷔작을 찬이랑 같이 하게 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인 것 같아요.”
청춘스타 신수영이 소리 낮춰 속삭인 말조차 공감이 됐다.
“이찬 배우. 음······ 최고지. 최고의 아역이 아니라, 최고의 배우.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줄 배우.”
괴짜로 유명한 오덕환 감독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에도, 이차원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안지성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심지호가 되어서도 여전히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이찬이 그곳에 있었기에.
취재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이차원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건 작품 내용과 관련된 거니까 기사에 실을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
“뭔데요?”
“아까 느티나무 씬에서······ 무슨 생각 하면서 연기를 했니? 내가 연기를 잘 모르는데도, 눈물이 나더라구······.”
“그러셨어요? 그게 사실은, 연기는 아니었는데.”
“연기는 아니었다고?”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요.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사람이요. 안지성이 느낄 감정하고는 다를 테니까 연기하고 나서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었죠. 같이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그 이야기를 머릿속에 메모하며 이차원은 생각했다.
이 소년의 첫 번째 기사를 도맡게 된 건, 일생일대의 행운일지도 모르겠다고.
< 14장 - 기자 이차원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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