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장 - 팀장 허성윤 (3.) >
“아······ 홍보팀장님이시구나. 반갑습니다. 처음 뵙네요.”
“하하하, 그러게나 말이다. 사실은 기대주인 너를 나도 바로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쪽 업무도 이래저래 상당히 일이 많아서 말이야. 대표님께서 날 너무 믿는 탓이지. 로드들 시켜도 될 일까지 전부 내게 일임해버리시니.”
허성윤의 장난스런 말을 흘려들으며, 이찬은 정창영 실장이 떠벌린 홍보팀장 인물평을 상기했다.
‘매니저들의 상식과는 많이 배치되는 인물이라고 했어. 배우를 상품으로 생각하는 이군영 대표와 죽이 잘 맞아서 중용됐다고. 기업에서 하던 것처럼 라인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어서 걸러진 배우들에게 원망을 듣기도 한다지만, 어쨌든 지금껏 나라엔터의 대표배우들을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사람이야. 드라마랑 영화 홍보시즌 다가오면 나한테도 붙을 거라고 듣긴 했는데······ 타이밍이 된 건가?’
9월부터 방영될 <가을하늘>이나 10월 개봉 예정인 <미스 스캔들>이나 당장 이미지메이킹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스포츠지 1면 기사를 통해 주목을 받게 됐으니, 홍보팀장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허성윤의 얼굴 위에 자리한 흔적들이 복잡하다. 이찬은 빠르게 그의 감정을 추적했다.
‘일단 가장 큰 건 경외. 연극 속 나한테서 뭔가를 발견한 건가? 연기에는 별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일단 이건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는 어정쩡한 불편함 같은 게 느껴지는데······ 이건 왜지? 혹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도신문이다. 그리고 소년은 그 어떤 베테랑 형사보다도 더 손쉽게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악마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현재 나라엔터의 간판스타인 강정후와 허성윤이 매우 친밀한 관계라는 소스 역시도.
“팀장님. 요즘 강정후 선배님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어? 어, 그렇지. 그쪽은 이제 홍보시즌 시작이니까. 9월 9일로 개봉일 픽스됐거든.”
“그렇군요. 그럼 아무래도 제 홍보전략은 팀장님께서 직접 맡아주시기 어렵겠네요?”
“음······ 일반적으론 그렇지. 하지만, 흠······ 정후야 이미 꾸며낼 필요도 없는 흥행보증수표니까, 지금까지 하던 대로 홍보일정 따라다니기만 해도 영화가 잘못될 일은 없지.”
강정후를 언급할 때마다 얼굴 위를 맴도는 희미한 갈등.
그 감정은 무척이나 은밀했다. 이찬이 아니라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그리고 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적 감정의 발현이었다.
이찬은 그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허성윤이 분노를 머금은 강정후로부터 이미 좋지 않은 언질을 받았으며, 그 적대로부터 소년을 지키고자 하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물론 그건 굉장히 이상한 결론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 강정후라고 하면 놓아서는 안 될 끈일 텐데? 언젠가 자기 이름으로 최고의 기획사를 만들 만한 대어니까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애써야 마땅할 텐데, 이렇게 내게 은밀한 호의를 품게 된 이유가 뭘까?’
대표이사 이군영이야 사적인 욕망을 위해 이찬을 강정후의 위로 올리려고 하고 있으니, 당장 이찬부터 띄우라고 강요했을 수도 있다. 와 시즌이 겹치는 <미스 스캔들> 참여를 결정한 걸 보면 가능성이야 낮겠지만.
그러나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성윤이 자발적으로 이찬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는 건 이상했다. 명령이라면 그저 따를 일이지, 경외감과 함께 갈등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아저씨는, 정말로 나한테서 뭔가를 발견한 거로군? 문외한인 이 아저씨가 강정후와 내 연기력을 비교분석한 건 아닐 테고······ 대체 뭘까?’
아쉽게도 내적인 평가는 유도심문을 통해 알아낼 수 없는 것. 소년은 대신 허성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팀장님, 전 괜찮아요. 아무래도 톱스타인 강정후 선배님한테 집중하는 편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저는 그냥, 어리고 검증되지 않은 신인일 뿐인데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
객관적으로 수긍하는 태도. 그를 통해서 그가 동정심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관중동원력에선 에 밀릴지도 모르겠지만, 제 첫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계속 작품성 높은 명작에 출연해서 훌륭한 배우라고 인정받고 싶어요.”
“어, 그래. 그런 방향성도 나쁠 건 없지.”
예의상 씩 웃는 태도. 작품의 예술성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 그로써 입증됐다.
“그리고 팀장님, 전 언젠가 강정후 선배님도 넘어설 겁니다. 조혁수 선배님도, 안정록 선배님도 넘어서, 언젠가 대한민국 유일의 톱스타로 우뚝 설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말하며, 소년은 허성윤의 얼굴에 떠오른 희열을 발견했다. 그랬기에 황급히 뒷말을 수정했다.
“아니, 그때가 되기 전에. 팀장님도 그 길에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내 유일의 이찬이란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요.”
“······하하하, 꼬마 녀석이 정말 야심차구나?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니? 그 대단한 안정록 교수님도 감히 ‘유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는 못했는데 말이야.”
현실을 상기시키며 부드럽게 표시하는 거절.
그렇지만 이찬은 알 수 있었다. 소년의 저주 같은 눈엔, ‘유일’이 언급될 때마다 허성윤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의식적이며 매우 광폭한 야망이 보였다.
‘이거구나. 이 사람은 유일을 꿈꾸고 있는 거야. 그건······ 아마 최고에 대한 갈망? 그래서 연예계로 넘어와 오연진, 양원일, 이소연을 차례로 푸시했고, 마침내 강정후를 발견한 거겠지. 그렇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 천재를 철저하게 지원해서 청년배우 중 1위였던 조혁수 이상의 브랜드가치를 만들어냈지만, 어떻게 보면 영세 기획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돈으로 따돌린 것뿐이니까. 실질적으로는 둘을 동급의 스타라고 분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안정록이 알아봤던 세 사람의 천재성을 허성윤 역시 다른 어떤 방식으로 캐치할 수 있었다면, 그에게 이찬은 상당히 특별해 보였을 수 있다. 동년배에서 경쟁하고 있는 조혁수, 강정후와 달리, 위로 10년까지는 경쟁자가 없는 수준이니.
물론 아직은 짐작일 뿐이었다.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친 그 추론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터.
그렇지만 이찬이 시험 삼아 던진 포부는 이미 허성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유일, 유일이라. 정말 듣기 좋은 말이야. 프레스로 찍어낸 흔하디흔한 양산품이 아니라, 그 무엇과 비교해도 빛이 바래지 않는 하나뿐인 무언가. 그런 상품을 만들어내는 거야말로 마케팅의 정점이겠지. 난 강정후가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대배우들이 인정한 최고의 천재성, 모두가 열광하는 꽃다운 미모, 그리고 모난 데 하나 없는 인품까지. 그렇지만, 조금은······ 뭔가 아쉬웠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묘한 감정이 들끓는다. 허성윤은 주차장으로 나서며 그런 자신의 마음을 파헤쳤다.
‘왜지? 왜야? 강정후 정도면 언젠가 최고가 될 수도 있잖아? 아, 물론 조혁수와는 여섯 살 차이밖에 안 나니까 평생 그 스타와 2파전을 벌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아까 본 이찬 정도가 아니면······ 응? 아니, 무슨 생각이야? 이찬은 안 돼. 강정후가 견제하기 시작한 이상, 그 녀석은 뜰 수가 없단 말이야. 물론 내가 비밀리에 서포트를 해준다면 조금은 활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내가 왜? 왜 굳이?’
혼란스런 마음으로 허성윤은 자택을 향했다. 그리고 창가에 선 이찬의 눈이 그 차의 궤적을 쫓았다.
“······정 실장님. 허 팀장님, 원래 어디 재직하셨댔죠?”
“응? 아, 원래 대우자동차에 계셨어. 마케팅팀에서 굵직굵직한 홍보를 성사시키신 게 있다고 하더라.”
“자동차라······ 그렇군요.”
찰나에 서너 가지 아이디어를 동시에 떠올렸다가 다음 순간에 기각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소년은 고민했다.
그런 그의 뒤로 단장 유호진이 다가섰다.
“꼬맹이. 뭐 하고 있어? 혹시 뒷정리 하고 가게?”
“전혀요. 저도 이제 가려고요.”
“어휴, 싸가지 없는 놈. 근데······ 뭐 고민 있니?”
“있긴 한데, 아저씨한테 말씀드린다고 도움이 될지.”
“뭐야? 이 자식이 진짜. 나도 말이다, 나름대로 업계에서-”
유호진의 전화벨이 울려 무의미한 대화가 끊겼다.
“예, 유호진입니다. 예? 아, 예. 아······ 아하. 와······ 예, 알겠습니다! 지금 옆에 있어요. 바로 물어보겠습니다.”
업계에서 씬스틸러로 유명한 배우이자 촉망받는 연극 연출가인 남자가, 특유의 얼빠진 표정으로 정창영을 바라본다.
“이거······ 아직 못 들으셨죠?”
“어, 뭘 말씀하시는 건지요?”
“조혁수가 드라마 홍보 겸해서 KBC2 <연예가보도> 거리인터뷰를 진행한다는데, 그걸 이쪽에서 찍겠다고 하는데요?”
“예?”
“찬이가 혁수 아역이니까, 자기 아역이 진행하는 연극을 보러 와서 잠깐 같이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하고 싶대요. 아무래도 초반부 흥행에 아역 인지도가 중요하니까, 신문 1면 나간 김에 추진을 해본 것 같은데요? 일자는 막공연인 8월 6일이 어떨까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 물론 좋습니다! 찬이 너도 좋지? 아, 당연히 좋겠지!”
자문자답을 외친 정창영이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이찬은 생각했다.
‘조혁수 이 아저씨는, 그런 건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하여튼 사회부적응자라니까. 심성윤 감독님도 그래. 연극 다시 할 수 없냐고 권했던 거 보면 일찌감치 기획한 건 같은데,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해주냔 말이야. 전번에 오락프로 싫어한다고 말해서 이런 기회까지 걷어찰 거라고 생각한 건가?’
다음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황당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네. 이건 내가 변한 거야. 그저 도망치기 위해서 연기하던 때의 나라면, 귀찮은 인터뷰 따위 거절했을지도 몰라. 그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나한테 말하지 않고 극단장에게 먼저 떡밥을 던진 거야. 유호진 아저씨 입장에선 TV에 극단이 소개되는 호재를 놓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를 통해서 날 설득하게끔 하려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아마 막후에서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안정록 역시 알고 있었을지 모를 일.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어졌는데. 오히려 이런 호재가 또 없단 말이지. <가을하늘>이 성공해야 <미스 스캔들>이 성공해. 그 드라마를 각인시킬 기회를 놓칠 순 없어. 허성윤 팀장에게 다시금 내 가치를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라도······.’
복잡하게 뻗어나가던 생각의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다. 아이의 수준을 넘어선 소년의 두뇌가, 허성윤과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인터뷰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
징검다리 장마 속에 8월에 접어들 무렵, 이찬의 촬영 스케줄은 급감했다. <가을하늘>은 단 1회차(1회의 촬영 소집) 분량, 그리고 <미스 스캔들>은 4회차 분량만을 남겨뒀기에.
비만 그치고 나면 금세 크랭크업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당장 차기작을 알아볼 수도 있는 상황이 됐지만, 모사꾼 이군영이 소년에게 휴식을 권했다.
“조만간 드라마랑 영화 출격하고 나면 네 이름값이 몇 배로 뛸 거다. 단가도 낮은 지금 뭐 하러 쓸데없이 오디션을 뛰어? 차분히 기다리고 있어라. 네 인지도만 확 뛰고 나면, 제대로 된 대작으로 내가 잡아다줄 테니까.”
그건 이찬 역시 바라던 바였다. 데뷔작이 세상에 선보여질 타이밍에 다른 작품을 찍고 있는 건 싫었기에.
그렇기에 이찬은 남은 시간에 주로 홍보팀에 드나들며 허성윤의 입맛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아이의 치기를 연기하는 와중에 종종 ‘유일’이라는 야심을 섞어 말하면서.
그런 소년을 허성윤은 내치지 않고 음료수와 웃음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그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았다.
이찬은 그것이 그 나름의 고뇌라고 판단했다.
‘강정후에게 미움을 산 내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내 마케팅계획에도 공을 들이지 않을 셈이야. 하지만······ 그 나름의 역할은 해주고 있는 것 같아.’
홍보팀에 드나들며 소년은 몇 차례 허성윤이 강정후와 통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영화 홍보가 시작돼 바빠진 톱스타가 홍보팀장과 의논할 일이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통화를 마치고 돌아보는 시선에는 갈등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8월 6일이 도래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예가보도>의 김을중입니다. 자, 제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냐? 보이십니까? 바로 예술의 전당! 백만 예술인들의 꿈이 담긴 이곳에 나와 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시청자 여러분들이 너무도 사랑하시는 톱스타, 조혁수 배우를 만나기 위해서인데요······ 아, 저기 보입니다! 조혁수 배우를 만나기 위해, 같이 가보실까요?”
KBC2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 김을중이 호들갑스레 조혁수에게 접근해 인사말을 나눈다.
이찬은 허성윤과 정창영 사이에서 그 모습을 관찰했다. 이미 비디오로 몇 차례나 확인한 인터뷰의 호흡이, 예술의 전당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이란 환경과 조합되었다.
“그런데 말이죠, 혁수 씨! 대체 예술의 전당엔 왜 오신 겁니까? 아, 혹시 여기서 공연을 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오늘은 KBC2 드라마 <가을하늘>에서 제 아역을 맡아줄 친구가 여기서 연극을 할 예정이에요. 예전에 몇 번 봤는데, 오늘 또 보고 싶어서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
“아니? 그 아역배우, 혹시 요오즘 인터넷에서 유명한 천재배우 이찬 군 아닙니까? 저도 너무 만나보고 싶은데요?”
“그러실 것 같아서 제가 불러뒀습니다. 저쪽에······ 찬아!”
대본에 약속된 콜이다. 이찬은 카메라의 움직임에 맞춰서 환하게 웃으며 촬영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야, 맞네! 이찬 군,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9월 4일부터 방영될 신작 드라마, <가을하늘>의 조혁수 아역 맞죠?”
“예.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가을하늘>의 안지성 아역을 맡은 이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조혁수 선배님 시간을 많이 뺏으면 죄송하니까, 오늘은 제가 장기자랑 한 개만 보여드리고 갈게요.”
“하하하, 야, 나이를 믿을 수 없는 방송천재 맞네요! 우리 이찬 군이 보여줄 장기란 게 뭐죠?”
“······내가 그렇게 쉬워 보였어? 사람 잘못 봤어. 네 패배야.”
리허설 때 스탭들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던 조혁수 성대모사.
그건 장기자랑이라는 말조차 폄훼로 들리게 만들었다. 구태여 복장까지 98년작 <꽃망울>의 조혁수 배역에 맞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혁수를 뒤집어쓴 채 펼친 이찬만의 인물모사. 몰려든 시민들이 깜짝 놀라 환호한 건 당연했다.
스탭들 틈에서 바라보던 허성윤의 눈이 커진 것 또한.
“여기까집니다. 저희 <가을하늘>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늘 뜨겁게 사는 이찬! 조혁수 선배님께 폐가 되지 않고자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헤헷, 사랑해요 연예가보도!”
턱없이 완벽한 모사의 뒤에는 열두 살 소년의 생기를 얹었다. 누구라도 이찬을 잊을 수 없게 만들 임팩트를 만들고자, 단 한 순간도 편집할 수 없도록 계산한 최적의 인사였다.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이찬은 스탭들 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허성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땠어요? 일단 국내 유일의 브라운관 데뷔를 해봤는데.”
“······그랬구나. 정말······ 다시없을 마케팅이었어. 짧고 굵은 최고의 자기소개······. 그, 늘 뜨겁게 산다는 건?”
“그거요? 프린스 광고문구잖아요. 현대 뉴쏘나타에 일격을 먹였던 대우차의 자존심이요. 그 캐치프레이즈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뜨겁게 살고 싶어요. 1인자인 정후 선배님한테 지지 않도록. 그리고 언젠가는 1인자마저 넘어서 비교대상이 없는 유일한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그래,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무의식으로부터 부유(浮游)한 환희와 야망이 홍보팀장의 얼굴을 수놓는 것을 확인하고, 이찬은 만족했다.
동시에 속으로 다짐했다.
<미스 스캔들>의 남은 9씬을, 강정후의 얼음가면을 녹여버릴 만큼 뜨겁게 만들고 말겠다고.
< 15장 - 팀장 허성윤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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