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장 - 배우 최정하 (3.) >
사극 촬영은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와 격리된 야외 세트장을 필요로 한다.
스튜디오에 건물 내부 공간만 만들어놓고 로케이션은 도심에서 적당히 잡으면 되는 현대극과 달리, 어떤 근대적인 문물도 나타나선 안 되기에.
이때 소자본 영화라면 민속촌을 대관해 촬영을 진행하기도 한다. 가장 저렴하고 편리한 방식.
그러나 대하극을 매번 비슷한 배경에서 찍을 순 없는 노릇이니, 방송국들은 인적 드문 곳에 따로 세트장을 짓고 그곳을 촬영지로 이용하곤 했다.
공영방송에서 <왕건> 촬영을 위해 제작한 문경새재 세트장이 가장 유명한 사례다. 2008년에 문경시에서 그 공간을 사들이고 확장하여, 무수한 사극을 촬영하는 명소로 만든 덕분.
그러나 그 문경 세트장조차 매입되기 전엔 8년간 방치상태였다. 이전까지는 드라마마다 필요한 공간을 새로 제작해 사용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사>의 기획에 MSB 드라마국 간부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던 핵심적인 이유였다.
일반적으로 50회를 넘겨 장기간 방영되는 사극은 그만큼 지속적으로 광고수익을 만들어낸다. 바로 그렇기에 비싼 돈을 들여 땅을 사고 세트장을 제작해도 무리가 없다.
역으로 말하면, 고작 14회 방영될 퓨전 사극 <어사>로는 세트장 건립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웠다.
그게 극적으로 편성을 따낸 건 행운의 소산이었다.
2003년 가을부터 MSB에서 총력 대하드라마가 방영되는데, 그를 위해서 충주에 세트장을 짓기로 예정이 되었던 것.
그 대기획의 성공을 위해 사극 시청층을 넓혀줄 수 있는 퓨전 사극을 먼저 편성하고, 그 촬영에 충주 세트장을 공유하기로 타협을 이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촬영은 최대한 빨리 진행돼야 해. 적어도 5월말까지는 우리가 빠져줘야, 가을 편성 드라마가 촬영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지. 덕분에 우리 쪽은 하는 수 없이 사전제작이 돼버린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네가 참 고생이 많겠다, 찬아.”
주동한 PD는 머쓱한 듯 웃으며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후반작업에 4개월 이상을 할애할 <684>도 8월까지 촬영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두 작품의 주연인 이찬이 그야말로 쉴 틈 없이 산과 섬을 쏘다니게 될 예정인 까닭.
그렇지만 키 큰 소년은 늘 그랬듯 태평했다.
“괜찮아요. 일정표 보니까 크게 무리는 없겠던데요?”
“그렇지만 이 사극 촬영이라는 게 일정대로만 가는 게 아니거든. 내가 조연출 때는 사극도 많이 따라다니고 했는데, 산골에서 촬영을 하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야. 낮엔 덥고 밤엔 춥고, 툭하면 구름 몰려와서 비 쏟아지고, 봄 되면 일찌감치 모기도 기승을 부리고. 게다가 이번 작품은 영화처럼 액션 씬도 많잖아? 그래서 어느 정도 연장은 각오해야 한다는 거야. 아마 새벽에 끝나는 날이 더 많을 거다. 오늘도 대전 쪽에 괜찮은 호텔 하나 잡아놓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우리가 빌린 모텔은 아무래도······ 좀 구릴 테니까. 너한텐.”
고마운 염려지만, 세상 그 어느 곳보다 구린 길바닥에서 3년을 구른 소년임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이찬은 체력을 갉아먹는 연장촬영을 감수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적어도 제 촬영일에 연장 들어가실 일은 없을 테니까요.”
“오, 자신감이 넘치는데?”
자신감의 근거는 실력에 있었다. 이찬은 첫 씬부터 깔끔한 사극 연기력을 입증해냈다.
“이보시오, 주인장. 이게 대체 무슨 난리요?”
“예? 아이고, 나으리. 다른 게 아니라 시전의 무뢰배들이 포도청에 쫓기고 있는 것입니다요.”
“그렇다면 저기 저 계집아이도 포도청 사람이란 말이오? 저렇게 어리고 자그마한 아이가 어찌······?”
“어허허, 그게 아닙니다요. 방금 지나간 저 아이로 말하자면 좌포청의 다모 채화란 년인데, 관비 출신으로 포청에 들어간 거지만, 그 재지가 뛰어나 종종 일을 돕고 있다지요.”
“어찌 저런 계집애가 나랏일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염려스럽소. 조선 팔도에 사람이 그리 없단 말인가!”
“커엇! 두 분, 이리 오시오. 같이 모니타를 좀 봅시다.”
주동한이 너스레로 NG를 부른 건 행인 단역의 미진함 때문. 어차피 주목받을 건 주인공인 까닭에, 두 번의 테이크만으로 다음 쇼트를 준비하게 되었다.
“넌 참, 떨거나 어색해하질 않는구나. 내가 심성윤이한테도 듣긴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리딩 때 잘하다가도 촬영 들어가서 뻣뻣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소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지녔기에.
거기에 작품을 준비하며 감상한 사극이 십수 편. 그중에서 적절한 표정과 제스처를 뽑아내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다만 이찬 본인은 그 연기에 썩 만족하지 못했다.
‘2차창작의 한계가 영 걸리네. 유생이나 암행어사를 내가 직접 만나본 게 아니고, 그저 다른 배우들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야. 이 안에서 유관이라는 인물을 더 구체화하기 위해선 작중의 전개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이번 주인공은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한 수동적인 역할. 흐름에 맞게 연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기계적인 모사에 그치고 말 거야.’
그 기계적인 연기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년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분석하며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개인의 연기를 넘어 작품 전체를 바라보는 첫걸음.
대배우들처럼 작품 전체를 관조하며 감독과 전개를 논할 정도는 아니되, 그는 분명 배우로서 진화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촬영은 이찬 위주로 진행됐다. 포도청 내부나 궐내 암투 씬 등은 소년이 실미도에 들어간 동안 촬영될 예정.
유생 유관이 전시(대과의 마지막 시험)를 치르러 가는 과정에서 포도청과 얽히는 씬이 1일차의 핵심이었다.
“이거 놓으시오! 내가 아니라고 하지 않소! 어찌 아무 사람의 말만 믿고 붙잡으려 드는 것이오!”
“이보세요, 진사 나리. 우리가 멋대로 잡는 것이 아니고, 그대를 지목한 목격자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까? 포청에서 대질만 하면 끝날 일이니, 얌전히 따라오십시오.”
“이놈! 놓아라. 주상 전하의 신하로서 대과를 치르는 진사를 막아서고도 너희가 나라의 녹을 받는 관리라 할 수 있느냐! 가야 한다. 나는, 가야 한다. 내가 가지 않으면, 어머님이······”
그렇게 누명을 쓴 유관을 돕는 것이 바로 다모 채화였다.
“부장포교 나으리.”
“응? 채화야, 왜 그러느냐?”
“제 사견이지만, 저분의 심성이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궐로 가서 전시를 보신다 하지 않습니까? 그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시험을 무사히 치르신 뒤에 대질을 한다 하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으음. 그건 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구나.”
비록 관비 신분의 여인이지만, 명진아가 분한 채화는 내부적으로 포청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종사관의 심복.
그렇기에 유관은 포청 포교들의 호위 속에서 시험장까지 이동해, 임금의 앞에서 멋들어진 책문으로 주목받게 된다.
그 과정의 씬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이찬은 환호성을 받았다. 첫 촬영이라 들뜬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그만큼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보여준 연유가 컸다.
특히 들어가는 씬이 없어 구경만 하고 있던 임희재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찬아! 우리 아들, 완전 짱이었어. 어쩜 그렇게 잘하니?”
“으, 이것 좀 놓고 말해요. 누나는 밤 촬영인데 뭐 하러 일찍부터 나와서 소란을 떨어요, 떨긴.”
“그야 첫 촬영 날이니까 그러지. 나 말고 정하 선배도 아침부터 나와서 구경하고 있었잖아?”
명진아에게 사극 톤과 관련해 몇 마디 조언을 하고 있던 최정하의 귀가, 그 목소리에 쫑긋 솟았다.
“정하 선배야 낮에도 등장 씬 있잖아요. 누나는 밤늦게나 들어가는 거고요. 왜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해요?”
“묻어가는 게 아니라, 정하 선배나 다른 선배님들도 다들 오셔서 첫 촬영 응원하고 계신데 나만 안 오면 안 되잖아? 무엇보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멋지게 연기하는 게 내 낙인데?”
“쳇.”
중언부언하면서 듣고 있던 최정하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나왔다. 과하게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이 눈꼴 시린 탓이었다.
“오빠, 왜 그래요?”
“음······ 아냐. 별 거 아냐.”
“오빠, 진짜 찬이한테 이상하게 티내시면 안 돼요?”
“알아, 알아.”
건성으로 답하며 최정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돌겠군. 쟤네는 왜 저렇게 친한 거야? 설마, 희재도 저 꼬마에게 마음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 그럼 안 돼.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잖아? 그것도 여자 쪽이 위잖아?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더 친해지지 않게 해야 돼.’
그런 결심이 청춘스타가 임희재의 곁에 다가선 핑계였다.
사실은 남몰래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붙어 있고 싶은 무의식이 컸지만, 명분이 생긴 덕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희재야, 계속 이렇게 구경하고 있어도 괜찮아? 춥지 않아?”
“네 선배님. 괜찮아요.”
“그래도 걱정되는데. 자, 이거 쥐고 있어. 좀 나을 거야.”
그러면서 핫팩을 꺼내 건네주는 전형적인 작업패턴. 임희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정하를 돌아본다.
그렇지만 구태여 거절하진 않고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뭐야? 같은 작품 찍는데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네······ 근데요 오빠,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오빠 이번 작품 왜 받아들이신 거예요? 이미지에 안 맞는 악역인데.”
“응? 아, 그렇게 생각할 것만도 없어. 우리나라 드라마들이야 악역 맡으면 아줌마들한테 욕먹고 그러지만,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 보면 멋진 악역들이 사랑받기도 하거든. 이번 캐릭터도 그런 느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거지.”
선배로서 멋있게 보이려고 한 말일 뿐 진심은 아니었다.
이른바 ‘금사빠’인 이 모태솔로는, 사실 ‘가림’의 동료인 ‘수옥’ 역 임희재의 프로필에 반해 배역을 받아들였을 뿐이니.
그런 진실을 아는 건 아니지만, 임희재는 키득 웃었다.
“좀 귀엽네요, 오빠.”
“귀, 귀엽다고? 내가? 뭐······ 좀 그런······ 그렇긴 하지.”
“오빠. 정말 잘해주셔야 돼요. 악역이 활약을 해줘야 선역도 사는 법이잖아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셔야 돼요.”
“그야 당연하지.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쟤한테 질 수 없지.”
“찬이한테요? 거기까진 쉽지 않으실 텐데.”
“물론 찬이가 대단한 건 알지만, 나도 꽤 하거든? 잘 봐라. 이따 내 씬 찍을 때, 어디 가지 말고 꼭 보고 있어.”
그렇게 장담한 최정하는, 막상 첫 등장 씬을 찍기 위해 저자거리로 나왔을 때 침을 꼴깍 삼켜야 했다.
프레임에 걸리지 않게끔 높게 팔을 올린 맹꽁이크레인. 거기 걸린 와이어에 몸을 엮고 화려하게 등장해 채화를 구해내는 게, 역적 가림의 첫 번째 촬영 내용이었다.
‘젠장. 저거 너무 높은데. 연습 땐 미니크레인만 타봤는데, 저걸로 초가집을 넘어서 등장해야 한다 그거지? 으······.’
그가 불안해져 손을 오물거리고 있는 걸 보며 이찬은 침중한 표정이 됐다. 스타일리시 액션의 진수를 보여줘야 할 악역이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소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곤란하게 됐는데? 저 아저씨를 어떻게 한담.’
와이어 액션이란 게 동작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힘을 지지할 발판이 없기에 끌어주는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그 정도는 최정하도 충분히 연습을 했을 터였다.
다만 겁을 먹게 되면 모든 연습이 허사가 된다. 소극적인 액션 동작만큼 어색하고 보기 싫은 것이 또 없기에.
그렇기에 이찬은 잠시 고민했다. 최정하란 인물에 대한 분석이 빠르게 진행되며 이내 해결책이 도출됐다.
소년은 와이어를 점검하는 무술감독을 향해 다가갔다.
“성 감독님. 첫 촬영이고 메이킹도 돌고 있는데, 와이어 시범 제가 한번 해볼게요. 그래도 되죠?”
“뭐? 어······ 괜찮겠어? 너 잘하는 거야 아는데, 프레임 벗어나려고 이거 5미터까지 올릴 거다. 와이어도 3미터 넘게 끌어올릴 거고. 다칠 일이야 없겠지만, 꽤 무서울 텐데?”
“전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열다섯 살이라고요. 메이킹 팀, 여기 좀 찍어주세요! 첫 액션 시범 제가 할 거예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중2 또래의 나이 때문은 아니지만, 이찬은 정말 겁 없이 3미터 위의 허공을 걸었다. 그리고 벨트 액션으로 팽그르르 회전하며 착지한 뒤, 최정하를 바라봤다.
감히 이걸 할 수 있겠어요? 하고 묻는 듯이.
거기에 반응해 열화와 같은 박수를 친 건 바로 임희재.
“와아아! 우리 찬이 잘한다! 감독님, 쟤 액션 장인이죠?”
“허허허, 그러네. 정말 잘하네. 합이 아주 딱딱 맞아. 정하야, 저렇게 하면 돼. 지금 그림 아주 좋았거든? 찬이가 한 것처럼만 딱 하면, 최고의 등장 씬이 될 것 같다.”
최정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끓어오르는 승부욕으로 이를 악문 채 이찬에게서 와이어를 건네받았다.
그 뒤에, 청년은 작은 머뭇거림도 없이 하늘을 날았다.
“오, 잘했어! 방금 아주 좋았어. 촬영 때도 그렇게만 하면 되겠다. 이거 아주 첫날부터 조짐이 좋은데? 주인공하고 악역이 액션을 이렇게 잘해주니까, 아주 기대가 돼.”
박수까지 치며 만족하는 주동한의 말에 스탭들 역시 흐뭇하게 웃었다. 겁 많은 주연들 때문에 대역 넣고 쇼트 바꾸는 등 고생해본 전력이 있는 까닭이었다.
이찬 역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과는 다른 이유로.
‘정말 단순하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종종 승부욕 자극해주면, 진짜 괜찮은 악역이 나올 것 같아.’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책략. 소년은 가림 역에 최정하가 들어온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정하는 임희재 앞에 서 있었다.
“그림 어땠어?”
“음. 좀 멋있었어요. 무섭지 않았어요, 오빠?”
“저언혀. 전혀 안 무서웠지. 두고 봐라. <어사>의 씬스틸러는 바로 내가 될 거니까. 아, 물론 너도. 가림하고 수옥의 로맨스에도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만들자고. 알겠지?”
“하핫. 그래요, 그래. 주연들한테 안 밀리게 잘해봐요.”
그렇게 가림의 첫 번째 씬이 촬영되고도 또 한참이 지나, 해가 진 산중의 안개 속에서 임희재가 몸을 풀었다.
그녀 역시 액션 위주의 배역인지라 첫 등장에서 와이어를 타야 했는데, 이번엔 심지어 야간이다. 겁 많은 스물셋 처녀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임희재에게도 이찬의 암수가 닿았다.
“잘할 수 있죠? 이번 씬 길어지면 진짜 밤새 찍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믿을게요, 최고의 배우 임희재 선배.”
“어? 아, 진짜? 아 예뻐! 우리 찬이, 엄마만 믿고 있어?”
최정하 못지않게 단순한 임희재는, 여러 지지대에 고정된 와이어에 매달려 산비탈을 날아다녔다. 화려한 액션에 무술감독조차 놀라서 손뼉을 쳤다.
멋쩍은 듯 웃으며 착지하는 모습을, 최정하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예쁘다······ 마치 선녀 같아. <천녀유혼>의 왕조현 같기도 하고. 아, 그건 귀신이었나? 아무튼! 드라마 중반부터 내가 저런 애랑 가슴 아픈 로맨스를 암시하게 된단 말이지? 최고야. 진짜 잘해내야 되겠어. 주인공 유관보다도 더 돋보여서, 작가님이 나랑 희재 분량을 한참 더 늘리게 만들어야지. 이찬, 앞으로 기대해라. 감히 우리 진아랑 예쁜 희재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네게, 내가 역적의 반란을 선사해주마. 절대로 안 질 거다, 이 꼬마야!’
호기로운 결의였지만,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찬은 배우들이 각자 제몫을 하는 것을 확인한 뒤로 자기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어진 상태였다.
전초전에 불과한 <어사>가 아니라, 강정후와 진짜 내기를 벌이게 될 <684>의 ‘인하’를.
< 21장 - 배우 최정하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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