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75화 (75/250)

< 27장 - 배우 이찬 >

「 글쓴이 : 정신혜 / 제목 : 수술경과 (2003.8.28.)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에 수술 잘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절제가 무사히 완료되어 완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실히 치료를 마치고 팬 여러분들께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연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지혜 : 온니!!!잘낳아서다행이에여^_^!!!

신동규 : 신헤야 마니아파찌ㅠ0ㅠ 빨리건강해져라!!

김주민 : 우리시녜 정말다행이다ㅠㅠ

김애경 : 신혜 아픈데 컴퓨터어떠케해써??

이찬 : 본문을 대필한 배우 이찬입니다. 선배가 아직 PC 이용은 못 하셔서, 댓글은 제가 모아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지헌 : 헐랭;;;이찬이다!!!!

강수철 : 헉 이찬님방가방가~~ 일촌신청했어요!

김애경 : 우와이찬!!???? 반가워 이찬~~~!!!

이지혜 : 차니오빠안냐세여!! 일촌신청해써여!!! 」

그 아래로도 일촌신청을 걸었다는 댓글이 쭉 이어져 있다. 정신혜보다 이찬에게 더 큰 관심을 드러낸 이들이 많았다.

소년은 마우스를 톡톡 건드리며 상념에 잠겼다.

‘배우나 친구들은 아니고, 거의 팬들인 것 같은데. 인터넷상으로 일촌을 맺어 팬들을 관리해온 모양이야.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가벼운 태도라니. 늦게 발견됐으면 치사율이 100%에 달했을 중병과 싸우는 사람한테 말이야. 하여튼 인간들이란.’

생각하다가, 곧 자신도 인간이란 사실을 상기했다.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데뷔작 동료이자 첫키스의 상대라는 인연 때문에 조금쯤 더 신경을 써줬을 뿐이지, 남의 일이었다면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어. 나를 축복해준 단 한 사람은, 면식도 없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범죄자들과 맞서 싸웠단 말이야.’

윤대흥은 사명감 있는 형사였다.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기보다 한 명이라도 많은 범죄자를 잡아들이고자 애썼고, 그 마음으로 공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형사 때문이었다. 도피하던 집시는, 이제는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한 바 있었다.

다만 일촌신청까지는 무리였다.

‘적은 비용으로 팬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서 요즘은 기성배우들도 많이들 홈피 운영한다고 듣긴 했는데······ 나한테는 곤란한 얘기지. 이 누나하곤 달리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빼앗길 테니까. 받아주기 시작하면 몇 만 명이 신청할 텐데, 그 사람들한테 일일이 답변을 해주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런 지레걱정을 할 만큼 이찬의 인기는 높아져 있었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인지도가 증폭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정신혜 이슈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 정신혜 “<어사> 이찬 덕분에 살게 됐어요” 」

그게 수술 당일의 인터뷰 표제였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의 화제성 높은 조연이 묘한 우연으로 병을 진단했기에, 대중의 관심이 지대했던 수술.

그 경과를 알리는 인터뷰에서 정신혜가 비화를 고백했다. 이찬의 조언 덕분에 관심도 없던 ‘오진주’ 역 오디션을 보게 됐고, 그 덕분에 종양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던 거라고.

경쟁작의 주연이자 최연소 하이틴스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찬이다. 정신혜와는 <가을하늘> 아역들로서 인연이 있음이 잘 알려져 있고.

그런 이름이 정신혜의 수술과 얽히자, 화제성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모든 일간지와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소녀의 신비로운 행운을 보도했다.

그에 대중이 열광적인 태도로 응답해, 이제는 인터넷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찬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여러모로 행운이 따랐지. 인터뷰 내용도 내용이지만, 종양이 이례적일 정도로 일찍 발견돼서 깔끔하게 제거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 거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셈이니까.’

대중은 언제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갈구한다. 비극보다는 희극을 찾고, 눈물보다는 웃음을 택한다. 가능하면 드라마 속에서 현실보다 밝은 상황을 보길 원한다.

그건 <여름들판>이 지속적으로 시청률을 높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완치가 예고된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 오진주는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기에.

스타PD 심성윤 특유의 무거운 감정 씬들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또 몰라도, 정신혜의 쾌유에 기뻐하는 대중이 즐기기는 어려운 요소였다.

그에 비해 <어사>의 11,12화는 드디어 유관과 가림이 암중에서 연합해 반역도당의 암계를 부수는 스펙터클 액션활극.

그 포인트에서 시청률이 다시 한 번 뒤집혀, <어사>는 <여름들판>을 누르고 동시간대 1위를 탈환했다.

물론 고스란히 이전 상태로 회귀한 건 아니었다.

1주일 넘게 지속된 정신혜 이슈로 <야인>의 화제성이 급격히 떨어져, 그 시청인구가 다른 두 드라마로 흘러들었기에.

그 결과 <어사>는 무려 36.1%라는 고공 시청률을 기록했다. 31%로 선전한 <여름들판>을 크게 따돌리면서.

그 상황을 잠시 관조하다가, 소년은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신혜 누나는 아마 3년쯤 뒤에나 복귀하겠지. 조혁수 아저씨는 머리 안 길러도 가체 쓰면 된다고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촬영장에 복귀하려면 치료 다 받고 체력 회복할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뒤에는 아마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최고의 배우까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서 돌아온 경험은 대단한 자양분이 될 거야.’

일반적으로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무수한 경험을 통해서만 계발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간 자기애 하나로 똘똘 뭉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소녀도, 죽음을 마주하며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체화하고 나면 꽤 괜찮은 배우가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건 이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감정이든 훔칠 수 있다지만, 그건 결국 겉뿐이야. 나 혼자 정교하게 꾸며내는 배역에는 아무 무게가 없어. 그 캐릭터와 내가 일치되어야만 동료 배우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고, 그로써 완성된 작품이 나온다. 이번 일은 배우로서 좋은 자산이 될 거야. 돈으로 살 수도, 억지로 느낄 수도 없는 교훈. 음.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타산적이긴 한데.’

감정과 논리는 별개. 이찬은 정신혜의 미래를 응원하는 동시에, 우연한 선행으로 얻게 된 이름값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2화분의 방영만을 남겨두게 된 9월.

이찬은 숙적 강정후와의 전초전에서 승리했음을 확신했다.

*

“다녀왔냐?”

담배를 문 선배의 물음에 강정후는 고개만 끄덕여 답했다.

선배 연기자에 대한 태도로는 좀 불손했으나, 이미 함께한 촬영이 반년을 넘긴 시점. 조혁수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좀 어때? 들어보니까 엄청 멀쩡해졌다던데?”

“예. 붓기도 다 가라앉아서, 수술부위 빼고 보면 환자인지도 모르겠던데요. 평소랑 똑같아요.”

“그래? 화장은 안 했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우리 드라마에선 계속 거의 민낯으로 출연하고 있었으니까요. 나한텐 그런 게 더 익숙해요.”

드라마 속이라도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게 심성윤의 지론. <가을하늘> 때 봐왔던 정신혜를 생각하며 조혁수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에는 새로운 의문이 담겼다.

“그런데 좀 놀랍네. 걔 성격에 그렇게 병문안을 다 받아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머리 다시 자랄 때까지는 아프다 귀찮다 하면서 사람 피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애죠. 잘 아시네요.”

“너보다 한참 전부터 알았으니까. 같이 촬영한 기간은 짧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

“아 예. 척 보면 사람이 파악된다고 하셨죠.”

“그래. 너랑 이찬 정도가 예외였고.”

조혁수는 늘 강정후와 이찬의 유사성에 대해서 말해왔다. 객관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대화하고 싶은 소재는 아니다.

강정후는 가벼운 코웃음으로 새로운 화제를 피했다.

“신혜 걔는, 좀 달라진 느낌입니다. 죽음이라는 가능성을 마주하고 극복하면서 각성을 한 거겠죠. 저한테 어떻게든 미래의 가능성을 어필하려고 애를 쓰더라고요. 몸 회복하고 복귀했을 때 수월하게 작품 잡고 싶은 모양이에요.”

“아, 그래? 흠······ 그게 꼭 질환 때문이었을지는 모르겠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볼 땐 이찬 때문인 것 같은데. 병문안 왔을 때 이찬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것 같더라고. 주제 모르는 일이다 싶긴 한데, 걔가 찬이한테 경쟁심이 있거든. 너처럼.”

도돌이표처럼 또 이찬 얘기로군- 강정후는 잇소리를 냈다.

“나하고 도매금으로 치지 말아주시죠.”

“뭐 어때? 실력이야 달라도 의도는 비슷할 텐데. 걔를 보면서 너도 느끼는 게 많잖아? 보통은 그 경험에서 경외감만 느끼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선생처럼 말씀하지도 마시죠.”

“나한테 배운 게 많다며? 그냥 하는 말 같진 않았는데?”

“그냥 한 말이었습니다. 촬영에 쓴 모닥불 앞에서 회식하면서, 그냥 작품의 여운 때문에 한 말이에요.”

“네가? 작품의 여운? 이찬이 듣고 웃겠네. 넌 그런 놈 아니잖아? 여운 같은 건 그 꼬맹이만큼도 못 느끼면서.”

“그런 식으로 다 안다는 듯 말하지 말란 말입니다.”

“안다는 듯이 아니라, 알아서 하는 소리다. 그 따위로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너나 나나, 그런 인종이니까······.”

인종이라는 표현은 좀 과했나 생각한 조혁수였지만, 그 한마디에 강정후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분하다는 듯 이를 갈면서도 그다운 청산유수가 나올 줄을 몰랐다.

그 얼굴을 보며 선배 스타는 생각했다.

‘이찬이 그랬지, 이상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그 말대로야. 자기 인격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애송이니까. 그 정신적인 문제를 대가로 틈을 잡기 어려운 가면까지 만들어낸 게, 이놈의 일상이 그토록 혐오스럽게 보였던 이유였어. 미친놈이지만 나쁜 놈은 아닌 거야.’

함께 수개월간 촬영을 진행하며, 그는 이내 강정후의 정신적인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안정록이 짐작한 것처럼 기괴한 재능 때문에 여러 차례 일그러졌던 조혁수. 그는 강정후를 몰라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강정후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누구에게나 두르던 가면을 그의 앞에서만은 벗는 것을 보면.

“난, 선배한테 의존할 생각 없습니다.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해요. 조언 몇 개 구한 걸로 선생 행세를 할 생각이면-”

“그럴 생각 없다. 네 선생님은 안정록 선배님뿐이잖아.”

“······안정록 선배님? 선생님이라고 부르시죠.”

“웃기지 마. 너한테나 선생님이지, 나하곤 그냥 동료 배우 사이니까. 너나 선배 앞에서 예의 좀 갖추지?”

“에이 씹······.”

“욕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왜 그딴 식입니까? 꼰대짓을 하려면 제대로 하시죠?”

“꼰대짓? 너한테? 그럴 생각 없는데?”

조혁수는 킥킥 웃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이찬이 그러더라. 너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기회일 거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 잘 한번 찍어보라고.”

“그 꼬맹이 얘기도 좀 그만하시죠.”

“그럼 너하고 뭔 얘길 하냐? 이찬 얘기 아니면 가면을 벗을 줄 모르는데. 계속 할 거다. 너랑 그 꼬맹이 비교도 하고, 안정록 선배님 대신해서 조언도 하고. 내 라인 안에 들어오기 싫으면 알아서 꺼져. 붙잡을 생각 없으니까.”

진심으로 그어 보인 선.

그건 조혁수의 페널티에어리어였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에게는, 자신의 골문을 노리는 스트라이커마저 안아줄 만큼 넓은 아량은 없었다.

그 선 앞에서 강정후는 조금 머뭇거렸다.

“······좀 별론데요.”

“뭐가?”

“꼬맹이 얘기요.”

“······그건 좀 줄여줄게.”

“그러면 뭐······ 들어가 보죠. 선배 연기엔 관심이 있으니까.”

“하하. 기분 좋네. 포스트 조혁수가 날 인정해주다니.”

“그딴 별명 없습니다. 우린- 난 강정후일 뿐입니다.”

“아, 그래. 부럽네.”

부드럽게 답하며 조혁수는 생각했다.

기괴한 방식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후배지만, 만약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서 힘을 합칠 수 있다면, 상당히 든든할 것 같다고.

“남 일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다. 20대라면 몰라도 고작 열다섯 살짜리 이찬한테 지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이번 영화가 중요한 거다. 오늘 촬영도 제대로 해.”

“말하지 않아도 제대로 합니다. 선배나 잘하세요.”

“아주 좋아. 그런 식으로 가자고. 안정록 선배님과 이찬 후배님을, 너랑 내가 무너뜨리는 거야.”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은 막바지 촬영을 준비하며, 두 천재는 손을 맞잡았다.

*

2003년 9월 9일, 화요일.

거대한 관심 속에 방영된 <어사>의 최종화는 무수한 비극을 담고 있었다.

가림과 수옥은 외척 사병들과의 전투 중 후위를 맡아 나란히 사망하고, 종사관 황보준 역시 치열한 전투 중에 다모 채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주연 다섯 중 셋이 죽는 몰살엔딩. 한국드라마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는 지나친 파격.

그렇지만 그건 예정된 비극이었다. 무수한 관군을 살해했던 혁명군이나 과거에 무고한 이들을 추포했던 부역자나, 교육적인 관점에서 해피엔딩을 줄 수는 없는 배역이었기에.

무엇보다 그들의 끝은 단순한 개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암시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격찬이 줄을 이었다.

「 림옥커플 왜이렇게슬픈것이오ㅠㅠ 끝내이뤄질수없는운명ㅠㅠ 유관나리 돌아보면서울때 소녀도같이울었소ㅠㅠㅠㅠ

유관이랑수옥이랑 잘됐으면했는데.. 넘슬프오.. 유관만 바라보는 수옥이를 온몸으로지켜주는 가림이.. 저세상에서는 둘이 행복하게 좋은 세상 만들수있길..

종사관나리ㅠㅠㅠㅠㅠ 목숨을 바쳐 채화를 지키고 용서를 구하시는 그 모습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소ㅠㅠㅠㅠㅠ 」

비극적인 대혈전 속에서 스토리보다도 빛난 건, 무협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유관과 채화의 협동 액션이었다.

꾸준히 실력을 기른 암행어사와 최고의 검객이 된 다모.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수백의 적들에 맞서 임금을 지킨 혈투는, 또 한 번 롱테이크 촬영의 묘미를 발휘했다. 수십여 번의 합을 숙지하고 작은 실수도 없이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찬과 명진아에게 대중은 아낌없는 찬사로 보답해줬다.

‘사실 액션배우들이랑 핸드헬드(카메라를 손에 든 채 촬영하는 방식)로 사방팔방 뛰어다닌 카메라맨 아저씨가 제일 고생했는데. 저 씬을 하루도 안 돼서 다 찍었던 건 그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어. 물론······ 학업일랑 완전히 내팽개치고 매일같이 액션스쿨 나갔던 진아 누나 덕도 컸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학력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이찬은 맞은편에 앉은 명진아를 바라봤다. 술을 마신 건 아니지만 종방연의 열기 속에서 두 볼에 홍조가 가득했다.

그 와중에 벨이 울렸다. 오덕환 감독의 전화였다.

“네, 오 감독님.”

[이찬 배우님. 종방연 잘하고 있나?]

“그럼요. 오늘 평균 40% 넘겼대요. 압도적이에요.”

[잘됐네. 거기에 <684>도 흥행은 실패할 리 없을 것 같으니까, 다음 작품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상당히 커지겠어.]

그 말이 담고 있는 함의를, 소년은 곧바로 알아챘다.

“준비되셨어요? 제 차기작.”

[어. 오직 이찬만이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

“저만 할 수 있다? 학생 배역에, 액션도 많은 모양이네요?”

[그렇기도 하지만, 강정후나 조혁수가 지금 연기력 그대로 학생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배역이야. <가을하늘> 명장면 몇 번 돌려보면서 그렇게 확신했어. 이건 배우 이찬을 위한 영화야. 이번에야말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줄게, 이찬.]

배우 이찬을 위한 영화라고- 소년은 흐뭇하게 웃었다.

< 27장 - 배우 이찬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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