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장 - 대표 정창영 (1) >
“배우만 몇 명 데려갈 것처럼 말하더니, 아예 우리 살림을 털어갔더라?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주는 게 예의 아니냐?”
이찬을 향해 쏘아진 강정후의 질문을 들으며, 정창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손끝에 까만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 나온 것을 보고 기겁하여 손을 때렸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냐······ 대화들 나눠. 하하하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이름하야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신생 하늘기획의 창립 준비를 시작한 이후, 그 병증은 무서운 속도로 정창영을 잠식했다. 마치 좀비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가는 것처럼 전격적이었다.
그렇게 결혼 2년차 만에 대머리를 향해 진화하고 있는 남편을 보며 부인은 요 며칠 한숨만 푹푹 쉬는 중.
남편이 사장님으로 영전한다며 기뻐한 건 다른 사람이라는 듯, 이제는 마주볼 때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심적 고통의 원인제공자인 이찬은, 그러나 늘 그랬듯 빙긋 웃는 얼굴이었다.
“뭘 또 대단한 손실처럼 말하시는 거예요? 더 조건 좋은 데로 이직하는 게 직장인들의 새로운 패러다임인데.”
“지랄하네. 조건이라고 해봐야 별 차이도 없더만.”
“없긴 왜 없어요? 인망 넘치시는 우리 정창영 대표님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차별화가 작용하고 있는데.”
그 말에 무심코 머리로 손을 가져가던 정창영은, 흠칫하며 다시 가슴께로 내렸다.
자리는 편안하다. 그래도 연장자라고 대형기획사 대표와 신생기획사 투자자가 상석을 양보해준 덕분.
다만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둘이 대화 나누라고 놔두고 빠져나가 일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인의 삶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정창영은 어린 스타들 틈바구니에서 가만히 귀만 기울였다.
“오연진 맡고 있던 소양근 실장, 나 담당하던 전태양 실장, 거기에 실장급 두 명이 더 나가고 로드 중에 여섯 명이 옮겼어. 너무한 거 아니냐? 우린 누구한테 일 시키라고.”
“그거야 수많은 로드 중에 골라서 승진시키면 되잖아요? 우린 신생이라 경력자 없으면 굴러가질 않는다고요.”
“진짜 조건이 좋으면 공개적으로 경력직 모집을 할 것이지, 왜 내 회사에서만 쏙쏙 빼갔냐는 거야.”
“일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우선타겟이었던 거죠.”
“흥. 그럴 거면 정말 일 잘하는 허성윤을······ 흠.”
강정후는 무심코 내뱉던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정작 듣는 이찬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지 어깨만 으쓱였고.
허성윤과 이군영의 구속에 얽힌 비사(秘史)는, 정창영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전해 듣게 된 이야기였다.
그마저도 전체를 다 들은 것이 아니라 이찬과 강정후의 협동작전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상태.
다만 어차피 다 끝난 일이니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구태여 캐물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좀 궁금해지네. 무슨 이유였을까? 어차피 희재랑 신인 네 명만 데리고 나올 거였으면, 굳이 나라엔터를 뒤집어엎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에게는 놀랍게도, 바로 다음 순간에 강정후의 입에서 나라엔터를 뒤집어엎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야. 나도 옮길까?”
“예? 뭘 옮겨요?”
“나도 여기로 이적할까 하는 말이야.”
순간 정창영은 긴장했다. 나라엔터의 대표로 있던 강정후가 갑자기 신생 기획사로 옮기는 시나리오를 상상했기에.
‘좋은······ 일이긴 해. 단숨에 기획사의 명성이 두 배가 될 거야. 그렇지만 그 경우에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지쇄신 때문에 대표직 올라간 사람이긴 해도, 어쨌든 대형기획사 대표인데, 그냥 소속 배우로 넘어오게 될 수가 있는 건가?’
현재 나라엔터는 하늘기획 창립의 유일한 투자자. 이찬이 차근차근 지분을 인수할 예정이지만 아직은 먼 일이다.
그 투자사의 대표가 적을 옮기려고 한다면, 그건 단순한 이적이 아닌 전략적 합병 차원의 변화가 될 거고, 하늘기획은 일종의 자회사로써 나라엔터에 편입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라엔터에는 전문경영인을 들여서 안정적으로 굴리는 동시에 강정후 본인이 하늘기획 대표로 이동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경우에 난 다시 팀장 신세가 되겠지만······ 강정후라면 괜찮은 상사일 수 있어. 배우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고, 매니지먼트에 아는 게 적으니 내 의견도 존중해줄 거고, 찬이한테 해가 될 일을 하지도 않을 사람이야. 그렇게 책임자에서 물러나서 마음이 편해지면, 이 탈모도 완화될지 몰라.’
좌천은 무척 아쉽고 건강 회복은 무척 기대되는 일. 정창영은 대표라는 명예와 탈모라는 저주 사이에서 홀로 고뇌했다.
물론, 이찬의 한마디로 쓸데없는 고민이 되고 말았다.
“꿈도 꾸지 마요. 여긴 내 회사니까.”
“네 회사? 내가 꿔준 돈으로 간신히 쥐꼬리만 한 사무실 마련한 처지 아니냐?”
“그게 뭐 선배 돈인가? 투자자들 돈이지. 조만간 이자 붙여서 갚아줄 테니까 기다리기나 하세요. 나중에 나라엔터 망하고 갈 데 없어서 헤매고 있으면, 그땐 받아줄게요.”
“톱스타가 넘어가 준다는데 넙죽 받지 않고?”
“선배는 쓸데없이 인맥관리를 잘해서 부담된단 말이에요. 내 후배들이 나만 보고 일해야 되는데, 괜히 흔들릴지 몰라.”
“독재자 같은 자식. 여기 민주주의공화국이거든?”
“성군 치세라는 조건만 만족된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아요.”
“지랄하고 있다. 성군은 무슨, 마구니 같은 게.”
농담처럼 사라져버린 합병의 가능성에 정창영은 감정이 복잡했지만, 이찬은 여전히 쾌활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굳이 넘어올 필요도 없잖아요? 안정록 교수님 거기서 계속 레슨 해주기로 하셨고, 배우들 숫자 생각해보면 여기 있는 시간보다 그쪽에 가 계실 때가 많을 건데요?”
“······그래?”
“예. 이쪽은 아직 신인배우 오디션 일정도 안 정했어요. 나라엔터에서 넘어온 신인들은 제 영화에 같이 나갈 거라 제가 기초 잡아주고 있고요. 이사님은 이름만 올려주신 거지, 이쪽에 출근하시는 날은 많지 않을 거예요.”
“흠······ 그렇군. 그럼 패스.”
안정록이 나라엔터에 더 자주 간다는 말을 듣고 납득해버리는 강정후는 이상할 게 없었다. ‘안정록바라기’라는 별명이 대중에게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의 일편단심이니.
“아무튼 아까 얘기한 내용들 잘 생각해보고······ 정 대표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대표님만? 나한텐 메리크리스마스 안 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표님.”
강정후가 훈훈한 미소로 인사하고 떠난 뒤, 정창영은 그의 제안에 대해 질문했다.
“찬아. 강정후가 옮긴다고 하면 굉장히 좋은 일 아니냐?”
“좋은 일이죠. 사업으로 보면요. 하지만 필요 없어요.”
그 말에 당황한 대표가 빤히 바라보자, 소년은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회사 이름값 높이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긴 하겠죠. 그렇지만 별 의미 없다 싶어요. <684> 흥행시키고 <고등형사>까지 성공하면, 저 선배 없어도 자리 잡는 데 문제없으니까.”
“음······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러니까 대표님께선 남의 떡 신경 끄고 우리 배우들 키우는 데 집중해주시면 돼요. 안 이사님은 학사일정이랑 레슨으로 바쁘시지만, 임호준 아저씨, 소해진 아저씨, 신수영 누나, 최정하 선배, 희재 누나까지, 작품 없는 사람들 많잖아요?”
“어, 그렇지.”
“잘 케어해주세요. 경력직 부족한 회사에서 대표님의 노력이란 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잖아요?”
바로 그 포인트가 내 머리카락은 매일 수십 가닥씩 뽑아내고 있지- 정창영은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다.
동기였던 소양근 실장을 비롯해 다수의 경력직 매니저들을 데려왔다곤 하지만, 나라엔터처럼 큰 기획사에서 실장급은 권한이 적다. 아는 건 많아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 것.
그런 이들을 이끌고, 정창영은 이제껏 이군영과 허성윤을 보좌해 수행해왔던 전략을 스스로 짜고 실행해야 한다.
막연히 쉽지는 않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상상 이상의 난이도였다.
일단 커버해야 하는 업무의 범위가 차원이 달랐다.
나라엔터에는 3개의 매니지먼트 팀 외에도 신인개발팀, 홍보팀, 회계팀, 촬영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이 각기 신인 선발과 교육, 홈페이지 관리 및 보도자료 제작, 세무 및 부기 작업, 프로필 촬영 및 홍보물 제작 등을 분담했기에, 매니저들의 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니지먼트 3팀의 팀장이었던 정창영이 데려온 건 어디까지나 매니지먼트 인맥뿐. 그 외에 필요한 인선은 발이 넓은 허성윤이 책임질 예정이었다.
그 핵심인물이 콩밥을 먹고 있는 지금, 모든 부담이 일선 매니저들에게 부과되고 있는 것.
그렇기에 정창영은 책임자로서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며 회사의 정착에 힘을 쏟는 중이었다.
생때같았던 머리카락까지 잃어가면서.
오랫동안 염원했던 최고의 매니저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어찌어찌 해나가고 하지만, 그럼에도 힘겨울 때가 있었다.
“찬아. 그······ 우리가 아무래도 큰 회사로 발돋움하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당장 부서를 좀 더 확충해야 될 것 같은데.”
“그래요? 저야 상관없는데, 오늘처럼 남의 회사 대표가 찾아와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 방지하려면, 제 수익은 투자지분 인수하는 데 계속 쓸 수밖에 없어요. 지금 자금으로 인력 충원하면 경영이 빠듯해지지 않을까요?”
“그야, 좀 힘들긴 하지. 배우들 계약금 쥐어주고 사무실 마련하느라 꽤 돈을 썼으니까.”
“그러니까요. 당분간만 좀 더 고생해주세요. 빚 다 갚고 수익구조 안정화되면, 얼마든지 더 충원해드릴 테니까요.”
결정권이 열다섯 소년에게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바지사장의 비애를 절감하며 하릴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 정수리를 바라보던 이찬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머리가 많이 휑해지셨네요. 삭발도 한번 고려해보세요. 어차피 결혼도 하셨겠다, 이제 외모 신경 쓰실 필요 없잖아요?”
제 딴엔 친절하게 조언해주려는 의도였지만, 정창영은 다시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
“내가 늦었죠? 미안합니다, 대표님.”
임호준은 진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작품에서는 코믹하고 가벼운 역할까지 멋지게 소화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나 보여주는 묵직한 중년미가 그의 본모습에 가까웠다.
그런 명배우를 보며 정창영은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늦긴요. 정시에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예······ 사무실이 참, 소박하고 좋네요. 하하.”
누추한 사무실조차 포장해주는 배려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감사합니다. 양근이랑 호흡은 좀 맞으세요? 저희 매니저들 중에서 경력도 제일 길고 술도 제일 잘해서 붙여드렸는데.”
“아, 과분하죠. 우리 회사 유일의 팀장님 아닙니까? 매니저들 총괄하셔야 될 분이 저한테 종일 붙어 주시는데, 고마울 따름이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영광이고요.”
“그래서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신 거 아닌가 걱정되네요. 저야 당장 들어가는 작품도 없는데 왜 굳이······.”
“하하하! 그런 말씀 마세요. 국민배우라는 호칭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최고의 배우가 저희 회사를 믿고 찾아주셨는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머리도 좀 빠지신 것 같고······.”
임호준은 진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말은 대머리라고 놀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점차 가속화되는 원형탈모를 막기 위해 심적 안정을 가질 것을 권유하는 따뜻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때로 사실적시라는 것은 의도와 무관하게 뼈아픈 것인지라, 정창영은 잠시간 웃음소리만 내야 했다.
본격적으로 미팅이 시작된 건 실무진 넘버2 소양근 팀장이 손수 커피 세 잔을 뽑아온 뒤의 일이었다.
“자, 이제 일 얘기를 해보죠. 호준 씨가 괜찮게 보신 시놉시스들, 저도 한 번 심도 있게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감탄했어요. 역시 작품 보는 눈이 탁월하시구나 싶었습니다.”
“아유, 뭐 또 그렇게까지······ 하하.”
“그중에서도 이 <이발사>라는 각본을 제일 좋게 보셨던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예 뭐, 별 이유는 아니고요. 제가 인간적인 아버지 연기라든가, 이런 거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격동기를 살면서 아들하고 다양한 씬을 찍는 이 작품이 끌렸던 거고······ 이찬이도 이게 괜찮겠다고 하더라고요.”
“찬이가요?”
“예. 엊그제 <고등형사> 미팅하면서 잠깐 얘기할 틈이 있었는데, 민주주의 상징성 어쩌고 하면서 좋은 작품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참.”
뜬금없는 소릴 잘하는 이찬이니 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소년이 고른 작품은 실패한 적이 없다.
50% 시청률을 달성한 <가을하늘>이야 예정된 대작이었지만, <미스 스캔들>과 <어사>는 그야말로 예상할 수 없는 슬리퍼히트를 기록한 작품. 시나리오 보는 눈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였다.
“우리 호준 씨도 좋게 보시고 찬이도 좋게 봤으면, 이 작품은 분명히 되겠네요. 하하하, 이걸로 하시죠. 저희가 꼭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이나 캐릭터 설정에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10분 정도 지속됐고, 그 뒤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신변잡기로 30분을 떠들었다.
한시가 바쁜 대표지만 그 시간은 휴식과도 같았다. 진중하고 사려 깊은 스타 배우와의 대화란, 매니저 이전에 영화애호가였던 그에게 사적으로도 기쁨을 안겨줬기에.
다만 마지막 화제만큼은 좀 불편했다.
“정 대표. 나도 원래 M자 탈모가 조금 있었거든요?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서 그렇다고 하던데, 찬물로 샤워를 하면서 그게 좀 차도를 보이더라니까? 한번 해봐요. 속는 셈 치고 일주일 정도만 그렇게 하면, 달라질 수도 있어요.”
소속 배우에게 샤워는커녕 집에 들어가기도 힘든 처지라고는 말할 수는 없어서, 정창영은 그저 허허 웃었다.
“뭐 그래요. 못 믿어도 할 수 없고. 아무튼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정 대표. 다음엔 술자리에서 다시 봅시다.”
그렇게 임호준이 돌아가고 1시간쯤이 지나서, 회사의 기둥과도 같은 등기이사 안정록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정 대표? 나라엔터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들러봤어.”
“어서 오십쇼, 이사님. 오늘 정신없으시죠?”
“정신없다고 해봐야 정 대표만 할까. 음······ 가서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정후가 여기 왔었다고?”
“예. 투자자로서 실사도 할 겸 왔던 건데, 회사 운영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갔습니다.”
“허헛. 그거 참, 자기도 이제 막 적응하고 있는 녀석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흐뭇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저기······ 그 외에도 이적 얘기를 꺼내기도 했는데요. 정후 본인이 우리 회사로 넘어온다면 어떨 것 같냐고요.”
“뭐? 하하하. 보나마나 찬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겠군.”
“어? 그렇습니다. 우리 배우들한테 집중할 때라면서요.”
“그렇게 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더 나을 테니.”
한 사람은 업계 최고의 회사 대표직을 대뜸 내려놓겠다 말하고, 한 사람은 그 톱스타를 필요 없다며 내치고, 한 사람은 흘러가는 대로 두라며 웃어버린다.
참 모를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정창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전 결정권자도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흠. 그나저나 사무실이 좁구만. 일하는 데 지장은 없나?”
“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 넓은 팀장실 쓰던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교수님. 저희가 고생하는 만큼 배우들한테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고, 그래야 더 좋은 작품에 더 좋은 모습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도 그······ 잘 챙겨먹어. 탈모에는 영양 섭취가 많이 중요하다고 하더구만. 나야 그냥 들은 얘기지만······ 하하. 그리고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바쁜 하루가 되겠지만, 내일은 푹 쉬어. 피로가 모근에 그렇게 안 좋다더라고. 이것도 그냥 들은 얘기지만.”
머리카락 풍성한 교수의 조언에, 정창영은 울듯이 웃었다.
< 33장 - 대표 정창영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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