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92화 (92/250)

< 33장 - 대표 정창영 (2) >

새 회사의 사무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며, 안정록은 조혁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 혁수니?”

[예, 선배님. 아. 이젠 이사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하하.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라. 하던 대로 불러.”

[알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전에 선배님 수업 들었던 친구들 중에서 저한테 질문하러 온 애들이 있어서요. 현수랑 동운데, 제가 간단하게 지도해줘도 괜찮을까요?]

“나야 상관없다만······ 너 요새 바쁘지 않니?”

[아직 영화 홍보 일정도 안 잡혀서 한가합니다. 기왕 도와주기로 한 거, 회사 나와서 무게나 잡고 있는 거죠. 나름대로 재미도 있습니다. 애들이 다들 열심이라서요.]

12월 23일의 최대 이슈가 이찬과 안정록의 하늘기획이라고 한다면, 그 이전 2주 동안은 조혁수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오랫동안 작은 기획사에 몸담았던 800만 배우가 논란 속의 나라엔터로 이적한 일대 사건.

<형제> 촬영을 통해 친해진 강정후와 손을 맞잡기로 했다는 그의 인터뷰가 방송되고, 향후 30년을 풍미할 만한 두 청년배우의 우정에 흥미본위의 기사들이 쏟아지자, 대중 역시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덕분에 나라엔터는 대표의 횡령과 향응 등 좋지 않은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본모습을 되찾는 중.

이찬을 잃었지만 그 대신 조혁수라는 명배우를 영입하며, 오히려 그 기대감은 전보다도 더 커졌다고 할 만했다.

“그래, 좋은 일이구나. 완전히 알려거든 남에게 가르치라는 말이 있지. 여러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네 연기도 한층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하. 선배님이라면 그 말씀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그리고 정후도. 사업적인 일들을 떠나서도 그 녀석에게 많은 조언들을 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그······ 정신적인 문제에 있어서 말이야.”

[어? 선배님, 어제 만나셨다더니, 바로 아셨나 보군요?]

아직 매니저가 돌아오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안정록은 전날 저녁의 기억을 떠올렸다.

강정후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방금 전에 입에 담았던 괴상한 말들은 그저 연습 중인 대사였다는 듯이, 이렇게 가끔씩 만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끝내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괴로움의 원흉인 옛 스승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안정록 역시 강정후를 추궁하지 않았다.

어떤 망령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도움들이 필요한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제자의 마음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기에.

하지만 본인에게 묻지는 않더라도,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너는, 언제부터 알았니.”

[이번 영화 찍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한 달쯤 같이 로케이션 돌 무렵이였나······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요. 그걸 읽으니 답이 나오더군요.]

“혼잣말을 읽었다고?”

[예. 제가 예전에 작품 때문에 독순술을 배운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입모양으로 얼추 내용파악이 됩니다.]

조혁수가 말한 작품은 아마 98년작 <꽃망울>일 터였다. 그가 청각장애인을 연기한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그렇지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청각장애인 배역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대본에 기초해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영화일 뿐인데. 그걸 구태여 독순술까지 익혀가며 준비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하지만 혁수는······ 배역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몇 주 정도 정말 귀를 막고 지냈던 모양이지. 정말이지 독종이란 말이야.’

조혁수는 실제로 영화 촬영을 진행하는 내내 헤드폰을 귀에 끼고 살았다. 그런 열성을 통해 만들어낸 독순술이었다.

그 솜씨가 이찬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가을하늘> 촬영 당시에 이찬이 선배 아역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던 것을, 마주선 정신혜의 입을 통해 알아봤던 것.

[그랬던 건데, 말하는 내용은 별 거 없었지만,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거기다 스스로 지칭하는 대명사마저 ‘나’가 아닌 ‘우리’더군요. 그래서 알게 됐죠. 그 녀석이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요.]

“······그 녀석, 진찰은 받아봤던 걸까?”

[안 그랬을 겁니다. 아무리 환자 비밀보호가 의사 윤리라곤 하지만, 정후 같은 유명인이 정신과에 갔다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소문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죠.]

“그렇다면, 내가, 믿을 만한 의사를 좀 찾아봐야 되겠어.”

[그러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녀석 요즘 많이 좋아졌는데, 그냥 두고 보시죠.]

“혁수야. 네가 의사는 아니잖니.”

수화기 너머의 조혁수가 살짝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비웃거나 한 건 아니고······ 이렇게나 아끼는 제자를 어떻게 그렇게 멀리하셨던 건지, 참 대단하신 것 같아서요.]

“쓸데없는 소리.”

[그렇지만 제 얘길 들으시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선배님, 저 어렸을 적에 정신과도 다녀본 적이 있어요. 그걸 기준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후 그 녀석은, 진료를 받으면 오히려 더 나빠질 겁니다.]

“그건······ 혹시 의사와의 관계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의료인으로서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익혀본들, 저희 같은 사람들한테는 빤히 들여다보인단 말이죠. 그때부터는 진료가 아니라 괴롭힘이 됩니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에 안정록은 신음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이냐? 혁수야. 너는 답이 있는 거야? 정후를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뭐긴요. 그냥 가끔 어제처럼 만나주십쇼. 오늘 그 녀석이 얼마나 멀쩡해 보였는지 모르실 겁니다. 평소하곤 전혀 다르게 혐오감이 전혀 안 들더란 말이죠. 최고의 치료약입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어처구니없는 진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정록은 조혁수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그와 동류의 인간일 터.

세상의 상식을 무너뜨리며 살아온 강정후에게, 안정록의 상식이란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럼······ 그렇게 하마. 네 말을 믿어보마.”

[좋은 선택입니다, 선배님. 그럼, 메리크리스마스.]

“오냐. 메리크리스마스.”

통화를 마친 안정록은 눈을 감았다.

떠오르는 건 앳된 소년의 얼굴. 열여섯의 나이로 예술대학교 영재원에 찾아왔을 때, 잘생긴 소년은 그늘진 얼굴에 돌연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안겼다.

보고 싶었다고. 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연기 잘하는 배우 같다고.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그는 말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나 다시 만난 날에도 강정후는 말했다.

보고 싶었다고. 그래도 보고 싶었다고.

‘······안쓰러운 녀석 같으니. 나 같은 한심한 배우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때 내가 무리하게 극단에 데려가지만 않았더라도, 그토록 마음이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무렵에 운전석이 열리고, 전태양 실장이 허겁지겁 차에 올랐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먹고 오려고 했는데 그놈의 가게가 카드가 계속 안 읽혀서······.”

“됐어. 이제 출발해도 전혀 늦을 것 없으니까. 하지만 찬이는 지금쯤 극장에 도착해 있겠지?”

“그렇겠죠? 어떤 무대든 일찌감치 오기로 유명한 애가, 주연작 무대인사에 느긋하게 가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 혹시 정후는 어땠어? 그 녀석도 무대인사 자리에 급하게 나오고 그랬나?”

한 달 전까지 강정후를 담당했던 실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어버렸다.

“하핫. 정후는- 아이고, 이젠 강 대표지. 강 대표는 안 그랬죠. 애가 성격은 참 좋은데 움직이는 데는 굼떠서, 방에 있을 땐 아무리 불러도 한참 지나서야 나오곤 했어요. 그게 새 작품을 맡을 때마다 조금씩 더 길어졌죠. 아, 그렇지만 어떨 때는 의외로 또 후딱후딱 준비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그게 기준이 있더라고요. 우리 교수님이 나오시는 자리면 빨리 준비하고, 그렇지 않으면 느긋하고, 그랬더랬죠.”

“······그랬군. 그래, 알겠어. 출발하지.”

“예, 교수님. 이 전태양이가 퍼스트클래스로 모시겠습니다. 정말이지, 정후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안 선생님’을 제가 모시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세상 일 모르는 거네요, 하하.”

수다스런 실장의 너스레에도 미소를 짓지 못한 채, 안정록은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

안정록이 기둥이라고 한다면, 하늘기획의 뿌리는 이찬이다.

고작 4년차 배우가 뿌리에 비유되는 건 물론 어불성설. 그러나 하늘기획의 대표이사는 그 단언에 의구심이 없었다.

배우들을 모은 것도 자금을 끌어온 것도 모두 그 소년이었다. 기둥인 안정록조차 이찬 때문에 처음으로 소속사를 갖게 된 마당에, 다른 뿌리를 거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하늘기획’이라는 제호만큼은 그 둘 중 누구의 작품도 아니었다.

그 지극히 한국적인 네이밍센스의 주인공은, 지금 정창영의 앞에 앉아서 손목시계를 연신 쳐다보는 소녀였다.

“아······ 찬이 지금 무대인사 준비 중이겠네요. 그렇죠?”

“그래. 다섯 시 반부터 종영 인사 들어간다고 했잖아.”

“아, 네. 그러니까요. 신촌부터 시작해서 대학가를 다 돈다고 했었죠? 정말 정신없겠네요. 크리스마스이브라 길도 막히고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을 텐데. 혹시라도 무슨 사고 생기진 않겠죠?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지. 그렇지만 진아 너도 이러면 안 되지? 감독님 오실 시간 다 돼가는데, 딴 생각만 하면 어떡해?”

“아······ 그렇죠. 저는 그냥 걱정이 돼서요.”

소녀 명진아는 하늘기획의 여러 가지들 중 하나.

시청률 40%를 넘기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어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국민배우 임호준과 500만 여신 신수영조차 가지에 불과한 기획사에선 그저 자그마한 소녀일 뿐이다.

다만 명진아는 그 스타들에게 마스코트 대접을 받았다.

그녀가 제안한 ‘하늘기획’이 뿌리인 이찬이 제시한 ‘브랜뉴 엔터테인먼트’보다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게 그런 까닭.

개인적으로는 좀 더 있어보이는 브랜뉴 쪽에 끌렸던 정창영조차, 소녀가 말한 이유를 듣고는 마음을 돌리고 말았다.

‘<가을하늘>에서 분했던 지혜 역의 대사가 모티브였다고 했지. 하늘은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 다시 태어나면 하늘이 되고 싶다고 했던 대사. 그것처럼 우리도 누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배우들이면 좋겠다고 하는 데에는, 누구도 저항할 수가 없었던 거지. 애늙은이 찬이 녀석이야 계속 브랜뉴 브랜뉴 떠들고 다녔지만, 그 네이밍의 연결고리가 이슈가 된 지금은 만족스러워하는 눈치고.’

이찬과 명진아가 처음 만났던 <가을하늘>은, 사실 새 회사에 소속된 모든 배우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천재배우 이찬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데뷔작.

그렇기에 이찬의 팬들은 하늘기획이라는 이름에 크게 흡족해서 홍보성 게시물들을 올리곤 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아는데, 하늘기획 배우들이야말로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오, 뭐 그런 식으로 떠들곤 했지. 이 친구들은 언제까지 하오체를 쓰려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도 뒤처지지 말아야지. 유행에 뒤쳐진 매니저는 절대로 좋은 기획을 만들지 못하니까 말이야.’

정창영이 스스로 다짐하고 있을 때쯤, 문이 열렸다.

환하게 웃는 낯으로 들어선 건 김세진 감독. 명진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직후에, 안쓰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야, 이렇게 도메스틱한 사무실은 또 오랜만에 보네요. 정 팀장······ 아니지. 정 대표님, 고생이 많으신가 봐요?”

“어흠.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희가 지금 사옥 매입을 준비하면서 자금을 아끼느라 그런 거예요. 여긴 임시 사무실일 뿐입니다.”

“하하하, 물론 그렇겠죠. 스타들이 즐비한 하늘기획인데, 자금이야 대출로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는 그 즐비한 스타들을 데려오느라 투자금 20억 중 상당량을 소모한 입장이지만, 정창영은 느긋하게 웃었다.

소속 배우의 주연 데뷔작을 연출할 감독에게 얕보여서는 협상력에서 손해를 볼지도 모르기에.

“말씀하셨다시피 저희 회사가 미래가 아주 창창합니다.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떠오른 안정록 교수님도 계시지만, 임호준 배우나 신수영 배우나 티켓파워가 입증된 톱스타들이죠. 앞으로도 저희하고 많은 작품을 같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이죠. 다들 참 엑셀런트한 배우들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우리 영화들 참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 저는 <미스 스캔들>이 참 좋았습니다. 거기 출연한 배우 중에서 세 명이 여기로 옮겼잖아요?”

“예? 아, 태형이까지. 그렇죠. 이찬, 신수영, 남태형, 셋이서 사이좋게 손을 잡았지요.”

“사실은 그래서······ 이게 지금 드릴 말씀은 아니긴 한데. 개인적으로 남태형 그 친구도 좀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스케줄이 맞으면, 이번 작품에 써보면 어떨까 하고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발언에, 정창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

“남태형 선배요? 되게 뜬금없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헌데 진심인 것 같더라고. 오늘은 진아랑 수정된 각본 논의하러 온 거라 자세한 얘기까진 안 갔는데,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 같더라. <미스 스캔들> 보고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고, 그런 훌륭한 배우가 왜 계속 작품을 안 하고 있는 거냐면서 떠보더라니까?]

정창영의 설명을 듣고, 이찬은 잠깐 고민했다.

새 기획사의 대표이사에게도 그는 많은 사실들을 감춰두고 있다. 이찬의 지도가 없으면 단역만도 못한 초보 연기자가 되는 남태형에 대해서는 특히.

바지사장이라고 무시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말로 설명하기가 복잡한 탓이었다.

“음······ 그 선배는 뭐 다른 작품 생각한 건 없다죠?”

[그렇다더라. 이적 전에 미팅했을 때도 무조건 네가 추천하는 작품만 하겠다고 했잖아? 뭐 그런 별종이 있나 싶긴 했는데, 좋은 일이지. 그만큼 널 믿는다는 거니까.]

“그렇죠. 어떤 영화예요? 간략하게만 얘기해주세요.”

[어. <꼬마 신부>라고, 로맨스라고 하긴 좀 애매한 코메디 영화야. 두 집안이 조부 대부터 친교를 다지면서 아이를 낳으면 결혼시키자고 약속했는데, 양쪽 모두 아들만 줄줄이 낳으면서 무산이 됐다가, 손자 대에 남녀 아이들이 나오면서 그게 성사될 상황이 된 거지. 포인트는 이거야.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가 이제는 갈 날이 머지않아서 빨리 결혼을 시키려고 하는데, 남자애는 대학생이지만 여자애는 아직 고등학생인 상황인 거지. 그러다보니까 이런저런 난관도 있고 사건들도 생기고 하는데, 결국은 결혼에 성공하게 되는.]

입을 떡 벌리고 듣다가, 소년은 한마디 되물었다.

“고등학생 신부라니, 뭐 그런 돼먹지 못한 각본이 있죠?”

[하하하.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아. 통속적인 가족영화에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청춘 로맨스까지 집어넣은 거니까.]

이찬은 전혀 흐뭇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남고생과 여교사의 로맨스에 이어서, 이제는 여고생과 대학생의 결혼까지 나오네. 대체 이 나라는 로맨스란 요소를 어디까지 우려먹을 생각인 거야? 나중에는 할아버지랑 어린 소녀의 연애까지 나오겠는걸. 뭐 그건 <롤리타>도 있지만.’

열다섯 소년에겐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만큼이나 황당하게만 들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사>로 스타가 된 명진아가 차기작으로 확정한 영화에 남태형까지 참전한다면, 하늘기획의 배우 풀을 과시하는 데에는 그만한 호재가 또 없을 터.

그렇기에 이찬은 긍정적인 답을 내줬다.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이제 전화 끊어야 되겠어요.”

[어, 그래. 무대인사 잘하고, 파이팅! <684> 천만 찍자!]

<684>의 개봉일이자 크리스마스이브인 날의 저녁이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 33장 - 대표 정창영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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