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장 - 스타 이찬 >
“어? 어머! 배우 맞죠? <684> 나온······?”
중년 여성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꾸벅였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맞구나! 어머, 어떡해, 어머. 여긴 왜 왔니? 뭐 먹게? 진짜 신기하다. 얘, 나한테 싸인 좀 해주지 않을래? 우리 딸이 너 엄청 팬인데.”
팬의 모친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엔 다른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간판도 바뀌고 사장님도 바뀌었네요.”
“어머, 예전 가게 단골이었니? 그거 좀 됐어. 터미널 옮기고 상권도 떠나가니까 정리를 한 것 같더라. 분식을 좋아하는구나? 국밥은 별로니? 이모가 떡볶이 만들어줄까?”
터미널이 없어지자 덩달아 분식집도 사라졌다. 이제 형사와의 추억을 되새길 만한 공간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가 살던 단칸방이라도 사들여 놓을 걸 그랬나 생각하며,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싸인 해드릴게요, 펜 주세요.”
“여기, 여기! 그런데 넌 어쩜, 참 잘생기기도 했다. 어, 거기 밑에다가 정말 잘 먹었다고······ 아직 먹지는 않았지만, 잘 먹었다고 그렇게 좀 써줘. 얘, 영화 정말 잘 봤다? 아줌마 남편이랑 딸이랑 셋이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어. 딸애랑 보기에 좀 심하다 싶긴 했지만, 끝에 가서는 셋이 같이 울었어.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어, 고마워 얘. 이거 벽에 좀 걸어놔도 되지? 이따 액자를 사러 가야 되겠다. 사실은 사진도 좀 찍어야 되는데, 내가 카메라 핸드폰이 없어서······.”
“예.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어? 아이, 어딜 가려고? 자, 여기 앉아. 아줌마가 떡볶이 해줄게. 재료도······ 얼추 있으니까, 국밥이랑 떡볶이랑 먹고 가. 알았지? 자, 여기 앉아 있어야 돼!”
벽시계를 한 차례 확인하고 나서, 이찬은 창밖의 염수진에게 손짓했다. 인테리어는 달라졌어도 추억이 깃든 장소에 떡볶이를 먹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엄마, 엄마!”
“어, 재료 사왔어? 어머, 넌 친구들을 이렇게······.”
“우와! 정말 이찬이야······!”
떡볶이 재료를 사들고 온 주인의 딸은, 혼자서 온 게 아니었다.
일곱 명에 달하는 또래 여성들이 그 어깨 뒤에서 올망졸망 이찬을 바라본다. 이찬이 나타났다는 문자를 받고 황급히 뛰쳐나온 동네 친구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완전 팬인데······ 제 친구들도······.”
“감사합니다. 사진 찍으셔도 돼요.”
“저, 저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
“저도요! 밥 먹는 거, 구경만 할 건데······.”
그때라도 빨리 거절하고 돌아갔어야 하는 것을, 이찬은 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떡볶이가 나오기 전에 26인 정도의 청춘 남녀가 더 몰려들었다. 7인의 친구들이 문어발식으로 불러낸 또 다른 친구들.
가게 안에 들어설 수 없는 대인원의 소란은 인근을 지나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 이내 ‘엄마국밥’ 앞으로 인파의 벽이 형성되고,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가 끊일 줄 모르게 됐다.
그 시점에 이찬은 생각했다.
마치 터미널 대합실의 사람들 같다고. 어린 노숙자에게 의무적으로 눈길을 주던 그들처럼, 다들 눈을 떼질 않는다고.
남들의 관심을 피하는 법을 모르던 때에는 그 눈동자들에 꽤 심란해지곤 했었다.
그렇지만 들리지 않게 혀를 차며 훑던 그들과는 달리, 배우 이찬을 바라보는 수십 시민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저 유명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큼 온도가 바뀌어 있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생각했다.
이 모습을 형사가 봤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고.
*
“널 처음 만난 날부터 벌써 4년이 돼가네. 그때는 어리고 작은 신인배우였는데, 이제는 스타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 팬카페 회원 수도 이번 영화를 계기로 40만을 넘겼지? 어때? 인기를 좀 실감하고 있어?”
스포츠고려 이차원 기자의 질문에, 이찬은 낮에 겪었던 홍역을 생각했다.
하필 점심시간이어서 싸인을 100장 가까이 해주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던 장사진. 그러느라 이후 스케줄이 잔뜩 밀리기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왜 얼굴을 드러내고 수원을 찾았는지 설명해야 할 터. 소년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별로요. 밖에 나다닐 일이 없어서. 기자님이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변함이 없는 거 아니에요? 승진 안 해요?”
“하핫! 승진이라니, 아직 멀었지. 요즘 생겨난 인터넷매체면 몰라도 이쪽 동네는 30대 후반은 돼야 차장 달아. 그러다 50 바라볼 때쯤에나 부장 대우 얘기가 나오고. 나야 뭐 일선에서 취재하는 게 체질에 맞아서, 썩 나쁘지 않아.”
“오늘처럼 제가 단독 자주 드리면 최연소 차장도 달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만약에 네가 한 3년 사이에 세 번의 열애와 결별을 한 뒤 남자배우 중 최연소로 결혼했다가 이혼까지 겪는 과정을 전부 내가 단독으로 취재한다면, 위에서 아 이 녀석 없으면 안 되겠다 해서 차장 대우를 해줄 수도 있겠지.”
“어우. 거기까진 좀.”
“그래. 좀 그래. 그런 식으로 출세하고 싶진 않다. 그냥 이렇게 너 졸졸 따라다니면서 넉넉한 기사 쓰는 걸로 만족해.”
소년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느긋한 미소에는 작은 아쉬움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그건 아주 흡족한 일은 아니었다. 소년의 미래엔 충실히 나팔수 역할을 해줄 파워 있는 언론인이 필요했기에.
종종 기사거리가 있을 때마다 이차원에게만 연락을 넣어 단독 타이틀을 달게 해줬던 게 다 그런 까닭이었다.
다만 큰 임팩트가 있는 소재들은 아니었던 탓에, 이차원의 사내 입지는 크게 바뀐 게 없는 듯했다.
‘도무지 출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하지만 그렇게 소탈한 사람이라서 더 믿음이 가는 면도 있어. 똥파리 같은 기자들만 판치는 연예부에서, 이만 한 사람도 드물 거야. 허성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인격자······.’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연예기획사 홍보팀과 스포츠지 연예부 사이는 가까운 친척과도 같다.
그렇기에 기획사에서 스포츠지로 특채된다거나 홍보팀에 데스크 간부가 넘어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4년간 관찰해온 이차원의 문장력과 기획력은 결코 허성윤에 뒤지지 않았다. 다만 억지로 자극적인 소재를 피해온 탓에 연예부에서 대성하지 못했을 뿐.
그런 정황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소년이 마침내 제안했다.
“차라리 저희 회사로 넘어오실래요?”
“응? 너희 회사? 무슨 말이야?”
“저희가 급하게 독립하느라 홍보부서가 없어요. 기획사에서 홍보문구 뽑으면서 갑으로 일하고 싶지 않으세요?”
“하하하, 이 착한 녀석 같으니. 그래서 네 회사 홍보팀에 추천을 해주겠다고? 됐다, 됐어. 너한테 기댈 생각 없어. 뭐 해준 것도 없이 그렇게 받을 수야 있나.”
“그게 아니라, 저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 건데.”
“날 뭘 보고? 나 같은 실력 없는 기자 말고, 진짜 도움 될 베테랑을 찾아봐.”
재고의 여지 없이 거절을 입에 담은 이차원은, 구체적인 제안을 듣지도 않고 바로 질문자로 돌아섰다.
“자, 그러니까 인기는 크게 실감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케줄은 정말 많이 늘었지? 저번에 잡지 표지모델도 찍었잖아?”
“그랬는데······ 방금 대화도 기사에 쓰실 거죠?”
“농담조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정도로?”
“어휴. 하여튼 사차원이라니까. 스케줄이야 정말 많죠. 천만배우 타이틀 때문인지 CF도 몇 개 더 들어왔고, 일간지나 영화 매체 인터뷰가 거의 하루에 하나씩 있으니까요. 그래도 단독 표지모델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원래는 안정록 이사님이랑 부자(父子) 컨셉으로 같이 찍는 거였는데, 그분이 계속 고사를 하셨거든요. 뙤약볕에서 촬영하느라 주름 자글자글해진 게 민망하다고.”
“하하하. 어려서 팽팽한 네 옆에 서기 싫으셨나 보지?”
“그냥 둘러대신 거예요. 제가 고집 부렸으면 아마 같이 해주셨겠지만, 에디터가 이찬 단독으로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르는 사람이 좀체 없는 국민배우 안정록은, 그러나 인터뷰조차 잘 하지 않는 은둔자.
그렇기 때문에 <684>의 취재는 이찬에게 집중되곤 했다.
다만 그 소년조차도 곧 일정이 꽉꽉 들어차 얼굴 한 번 보기가 까다롭게 됐다. 아마 인기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답변도 그 때문일 터였다.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에 청불 영화의 주연을 맡아, 마침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천만 신화를 달성한 소년.
<어사>에서 미소년 ‘유관’ 역할을 맡은 동시기에 촬영을 진행하면서도, ‘인하’ 역으로 야성미 넘치는 젊은 양아치마저도 완벽하게 소화해낸 팔색조.
그런 대세배우이니 영화 잡지의 단독 표지를 맡기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존재는, 악질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 이차원이 느긋하게 기자로 일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했다.
남들은 몇날 며칠 기다려도 잡기 힘든 이찬의 단독 인터뷰를 언제든 원할 때 수행할 수 있었기에.
심지어 국내 3대 영화시상식 중 하나인 백상예술대상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취재기자들은 스타의 한마디를 따려고 하이에나처럼 배회하고 있을 때에, 이차원은 톱스타 이찬의 차에 올라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 거였구나. 그러면 영화 얘기를 좀 더 해볼까? <684>는 지난 화요일에 공식적인 상영을 마쳤지? 최종 스코어가 1156만으로 집계되면서, 마침내 한국영화계에 아주 큰 족적을 남긴 셈인데······ 이 시점에서 <형제>의 상승세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 천만 달성 기간도 51일에서 40일로 단축시켰고, 1100만 넘긴 지금까지도 꾸준히 수만 관객이 들고 있으니까. 기록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저희보단 잘 나오겠죠. 내기는 포기했어요.”
“쉽게 인정하는걸? 아쉽진 않아?”
“아쉬울 게 뭐 있나요. 주연작으로 최초의 천만 기록 세운 것만 해도 정말 영광스러운데요.”
“조혁수 씨는 <형제>가 잘된 건 먼저 관객들이 극장에 친밀해지게 해준 <684> 덕분이라고 말했어. 어떻게 생각해?”
“겸손한 선배님이네요. 영화가 좋아서 잘된 거겠죠.”
진심을 말하자면 이찬 역시 그의 발언에 동의하는 쪽이었다. 선행주자인 <684>가 천만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형제> 역시 그렇게까지 흥행하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소년은 말을 아꼈다. 한국 대중은 겸손한 배우를 더 좋아하는 까닭.
“알겠어. 다음 질문이야. 조혁수 씨 아역으로 드라마에 데뷔하고, 강정후 씨랑은 오래 한솥밥을 먹었던 사인데,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 두 사람에 대해서 인물평을 하자면?”
“혁수 선배는 꽤 친해요. 요즘도 종종 통화하죠. 사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좀 더 착해요. 그리고 정후 선배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작품 외적인 면에서요.”
“전에 강정후 씨도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했던데.”
“그랬겠죠. 서로 도와준 거니까.”
“어떤 도움을 주고받은 거야? 자세한 걸 물어봐도 될까?”
“아뇨, 비밀이에요.”
자세하게 말한다면 연예면이 아니라 사회면 특종이 될 터였다. 세 내부자가 서로 싸우게 만들어 모조리 검찰로 보내버린 계략이 그 줄기를 이루고 있으니.
“알겠어. 그래서 내기의 조건으로 강정후 씨의 차기작에 합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데. 혹시 정해진 게 있어?”
“아직이에요. 그 선배가 회사 일로 바빠서 바로 새 영화를 고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렇군. 일단 지금 기분은 어때? 안정록 씨에 이어서 그 제자와 또 호흡을 맞추게 되는 건데.”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연기할 수 있다니 꿈만 같죠.”
이번에는 이차원도 그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구태여 감추지도 않고 입을 삐죽거렸기에.
그렇지만 한번 웃는 걸로 자신이 본 감정의 편린을 잊은 뒤, 인터뷰어는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좋아. 그럼 안정록 씨는······ 영화를 함께 한 데 이어서 신생 기획사에도 합류하면서 친분을 과시하게 됐는데, 사적으로는 어때? 아마 세대차이는 좀 날 것 같은데.”
“의외로 잘 맞아요. 그분이 차 좋아하시는 거 유명하잖아요? 회사에선 차 우려놓고 꼭 절 부르시거든요. 주로 사람 얘기, 연기 얘기를 하죠. 제가 떠들고 이사님께서 들으시고.”
“배우들 연기평도 하고 그래? 이를테면 경쟁작의 조혁수 씨나 강정후 씨에 대해서.”
“배우에 대해서보다는 배역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요. 제가 그 역할을 맡았다면 어떻게 연기를 했을까, 그런 부분을요. 제가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재해석을 하면, 이사님께선 웃으면서 평가를 해주시죠.”
그렇게 인간관계에 대한 대화가 잠시 더 이어지고, 곧 인터뷰가 핵심에 다다랐다.
“자······ 이건 전에도 물어봤던 거지만, 오늘을 맞아서 얘기해보지 않을 수 없겠지? 오늘 백상예술대상에 두 부문에 후보로 올랐어. 영화 부문 최우수연기상, 또 TV 부문 최우수연기상. 그것도 양쪽 모두 최연소 기록이야. 기분이 어때?”
“여전히 실감이 안 나요. 어느 쪽이든 저한테는 과분한 상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영화 부문은 안정록 이사님이, TV 부문은 강정후 선배가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욕심나지 않아? 후보만 해도 최연소 기록이지만, 만약에 수상까지 한다면 정말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진기록이 될 텐데.”
“괜찮아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 계속해서 보여드릴 테니까. 저한텐 시간이 많잖아요? 예전엔 어리다는 게 아쉽고 그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좋아요. 그만큼 더 많은 작품들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굉장히 긍정적인 자세인걸? 좋아. 그럼 다음 질문이야.”
노트의 페이지를 넘기고 잠깐 뜸을 들인 이차원은, 목소리를 깔면서 질문했다.
“MSB 연기대상 노미네이트에 이어서 백상에서도 최고의 연기자 반열에 올랐음을 입증한 배우 이찬은, 네 말대로 이제 겨우 16세지. 이제부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
“엄청 전형적인 질문이네요?”
“하하하. 민망해서 잘 안 하는데, 가끔은 필요해서.”
“저야 뭐, 정해져 있어요. 완벽한 연기자가 될 거예요.”
“완벽한 연기자?”
“예. 흠잡을 곳이 단 하나도 없는 완전무결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은 먼 얘기지만, 완벽한 연기자가 됐을 때 꼭 찍고 싶은 영화가 있거든요.”
“그래? 어떤 영환데?”
“비밀이에요.”
“아, 너무 비밀이 많은 거 아니야? 신비주의 그런 거야?”
“스포일러는 재미없잖아요. 언젠가 작품으로 보여드릴게요.”
이찬은 싱그럽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뭔지 모를 집념마저 담겨 있어, 보고 있자니 왠지 안쓰러운 느낌이었다.
“음······ 그래. 알겠어.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이야. 유례없이 어린 나이에 최고의 상에 후보로 오르면서, 이제 이찬은 유망주가 아니라 스타라고 불리게 됐어.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마 곧 알게 될 거야. 이제는 네가 가는 곳마다 카메라가 따라붙을 거고, 연애나, 친구, 가족, 일상에서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로 만들어질 거야. 사실은 그게······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거든? 스타의 스캔들은, 이 빌어먹을 스포츠지들의 탯줄 같은 거니까.”
말하면서, 이차원은 겨울에 자살한 친구를 떠올렸다.
밝은 여자였다.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미소가 아름다운 스타였다. 그녀가 유부남 감독과의 스캔들 때문에 하루하루 말라가다가 어느 날 자살을 기도했다.
이차원을 사차원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기자는 소년의 빠른 유명세를 보며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그에게 일말의 동정을 품고 있었다.
소년은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 수 없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얼굴을 드러내고 갈 수 없다.
<미스 스캔들>의 ‘심유리’가 그랬듯, 놀이공원에 가고 싶을 때에는 거액을 내고 대관을 해야 할 터였다.
고작 16세에 공인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말······ 괜찮겠어? 난 네가, 이런 말 하면 웃기겠지만, 솔직히 좀······ 걱정이 돼.”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근데요 기자님. 오프더레코드로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제 인생은, 그보다 더 밑바닥이었어요.”
감정을 알아보는 소년의 삶은 밑바닥에서 더욱 비참했다.
고아에게도 노숙자에게도 가식이란 신의 축복과 같은 것. 신에게서 버림받은 집시의 마음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가면을 쓰고 세상 속으로 들어서자, 오히려 그 안에 아늑한 휴식처가 있었다. 스타 이찬은 집시일 때보다 더 많이 웃게 되었다.
“충분하진 않지만, 전 지금의 이찬이 좋아요.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계속 오프더레코드로······ 여기저기 기자들 인맥 잘 만들어놓으세요. 재정 좋아지는 대로 계약서 보낼 테니까. 회사가 좀 작긴 하지만, 우리 홍보팀장은 부장 대우예요. 단숨에 두 계단 승진인 거죠.”
뒷부분 이야기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차원은 소년의 말대로 걱정 대신 응원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 소년은, TV 부문에서도 영화 부문에서도 최우수연기상 수상에 실패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영예의 대상입니다. 축하합니다, <684>입니다. 수십 명의 배우가 모두 살아 숨 쉬는 스토리텔링으로 분단 현실의 어두운 과거사를 조명해, 천만이라는 대기록에 어울리는 걸작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공헌할 수 있는지 보여준 가장 좋은 사례였습니다. 계진행 감독이 대표로서······ 어, 이찬 군의 손을 끌고 무대로 향하는군요. 지금, 마이크가 이찬 군에게 전달됩니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냐는 표정으로 감독을 쳐다보던 이찬은, 이내 카메라 프레임을 확인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어······ 감사합니다. 저기, 그······ 행복하네요.]
마지막에 소년의 눈길은 어두워진 하늘을 향했다.
짧은 수상소감이 하늘나라까지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 36장 - 스타 이찬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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