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장 - 의장 박무열 (1) >
“하자, 마이 찬! 응? 하자, 응?”
안길 듯이 다가와 팔을 잡고 조르는 신수영의 키는 173cm.
보통은 쉽게 내려다보기 힘든 키였지만, 이제 187cm까지 자라난 이찬에겐 작기만 했다. 연인 연기를 수행하기엔 최적이라 할 수 있는 신장 차이.
그렇게 한 뼘 아래에서 미모를 뽐내는 톱스타를 바라보며,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해요. 누나랑 키스씬 찍기 싫어요.”
“야, 대한민국 이천만 남성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인데?”
“거기서 난 빼줘요.”
“빼지 말고, 하자, 응? 나 진짜 이거 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면서 건네주는 건 <연애의 조건> 각본이었다.
제작 엎어지고 헛돌고 있던 걸 주동한이 낚아챈 뒤, 이찬에게 꾸준히 오퍼를 넣는 한편으로 여주인공 캐스팅을 위해 각본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자연히 ‘500만 여신’ 신수영에게도 그게 흘러들게 됐다.
그로 인해 쉴 때마다 이렇게 시달리게 됐다. 소속사가 같으니 일정을 숨기기도 어려워,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응? 찬아, 내가 진짜 열심히 할게. 아니, 잘할게. 진아보다 훨씬 더! 나도 내 드라마로 폐인 만들고 싶단 말이야.”
“누나 잘하는 거 알죠. 그러니까 다른 배우랑 해요. 난 드라마 하기 싫어요.”
“아이 참, 너랑 같이 해야 된단 말이야. 100만 어사폐인을 양성한 게 누군데? 다른 배우가 어떻게 또 그렇게 하겠어?”
“저도 못 해요. <어사>는 운이 좋았죠.”
“아 정말! 사랑이 식었어!”
“사랑한 적도 없었거든요? 나 이제 곧 미팅이야, 나가요.”
신수영은 이후로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렸지만, 소년의 굳은 결의를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톱스타가 쫓겨나고 대표 정창영과 감독 오덕환, 예비 투자자인 이찬 세 명이 둘러앉아 <고등형사>의 첫 공식 미팅을 시작했다.
“로케이션 섭외는 얼추 다 됐어. 일동호텔이랑 동순고 등지에서 촬영 들어갈 건데, 여름에 밀도 있게 찍고 나면 겨울 개봉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빠르네요. 이번에도 70회차 정도로 끝내실 거예요?”
“그거보다 덜 할 수도 있어. 더 고칠 게 없을 정도로 수정하고 수정한 각본이니까.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50회차로 끝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다른 일정 잡아도 돼. 드라마라든지.”
“······감독님. 수영 누나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했죠?”
“음, 들켰군.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어.”
빠른 인정에 황당해져서 킥 웃은 이찬은, 진지하게 드라마 <연애의 조건>의 장단점을 고찰했다.
‘일단 장점은, 주동한 아저씨 말대로 팬층을 만들기 좋다는 점. 잘나가는 고등학생 역으로 등장해서 인생역경을 극복하고 사랑까지 성취하게 되는 역할이니까 애들한테 제법 인기가 좋을 거야. 사극에 청불 찍으면서 요즘 청소년들한테는 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이 <고등형사>로도 충분할 거란 말이야. 아마 12세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메리트가 적은 선택지였다.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은데 입술을 내줘야만 한다.
‘내 소중한 입술을 아무한테나 줄 순 없지. 신혜 누나한테 뺏긴 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작품은 내가 고를 수 있는 부분이잖아? 굳이 자극적인 걸 할 필요는 없어.’
손꼽힐 정도로 자극적인 씬이 가득한 <684>의 주연 주제에, 남녀 관계에서만 지극히 보수적인 이찬이었다.
그렇기에 드라마 얘기는 미뤄두고 대본리딩 일정을 확정할 무렵. 소년의 핸드폰이 계진행의 전화번호를 표시했다.
“대표님? 웬일이세요?”
[어, 투자자님. 우리 일본에 판권 팔렸다!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스크린은 250개 정도 될 거고, 기본 300만 달러, 흥행수익 5:5, 광고비 최소 300만 달러 조항도 포함시켰어. 아주 대박이지? 이걸로 너도 한류스타 등극이야!]
“아, 기쁜 일이네요.”
[반응이 고작 그거야? 하여튼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그나저나 너 지금 바쁘니?]
“<고등형사> 미팅 중이에요. 왜요?”
[아, 그래? 그럼 빨리 끝내야지. 나 지금 어디 가고 있게?]
“어디 가시는데요?”
계진행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대답은 몇 초 뒤에나 나왔다.
*
영화의 초기 관객을 끌어들이는 주요인은 스타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대중이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집중하는 건 주로 배우 쪽. 그 배우의 연기력, 외모, 이미지, 평소의 언행 등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바꾼다.
그렇기에 스타 배우를 기용한 작품의 오프닝스코어는 기본적으로 10만 이상을 채우곤 했다.
다만 그 배우가 영화의 흥행 전체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스타 한 명만 보고 영화를 보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 대부분의 관객은 주변의 입소문이나 인터넷 평을 확인한 뒤에 관람을 결정하므로, 명망 높은 스타를 출연시키고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는 많고도 많았다.
그러니 흥행의 기본요건은 결국 감독이었다.
영상미가 됐건 박진감 넘치는 플롯이 됐건 감독이 프로덕션 과정의 총책임자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초기 관객들이 영화에 감동해 주변에 입소문을 내준다.
그렇기 때문에 ‘흥행감독’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
물론 대중의 취향을 꿰뚫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편 이상의 흥행작을 가진 감독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공적>의 500만에 이어서 <684>로 최초의 천만 흥행을 달성한 계진행, <키싱구라미>의 500만에 이어 <형제>로 두 번째 천만 감독이 된 강호영은 입지전적인 인물들. 흥행의 감에 있어서 감히 따를 자가 없다고 평가되었다.
<미스 스캔들>과 <칠월칠석>으로 400만과 500만을 달성한 오덕환 정도가 그들의 경쟁자로 거론되었다.
그런 한편으로, 상업성을 도외시한 채 예술성으로 거듭 성과를 낸 감독은 오히려 그 숫자가 많은 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안정록.
단 두 편뿐인 연출작이 모두 국제영화제에서 주요한 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예술영화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배우로서 이룬 것과 같은 흥행을 일궈내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세계 3대 영화제를 밟은 감독의 수가 적지 않다.
이제는 질적으로도 세계에 뒤처지지 않는 한국영화의 위상을 잘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그리고 개중에서 일부 감독들은, 흥행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무열이었다.
김은희와 임호준, 강정후를 캐스팅해 연출한 로 일찍이 500만에 달하는 관객을 열광시켰으며, 327만을 기록한 <오이디푸스>로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있다.
그는 문제의식으로 똘똘 뭉친 작가주의 속에서 대중적인 감정선을 찾아내는 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거기에 <레슬러>와 <배씨>로 기묘한 알레고리를 선보인 이용빈 감독, <날 보러 와요>로 대종상을 휩쓴 제준원 감독, 독립영화로 8만 관객을 동원한 신유벽 감독 등이 영화팬들 사이에서 박무열과 유사한 타입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작풍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 네 감독은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리곤 했으며, 박무열 의장 주최로 분기마다 열리는 ‘한국영화의 미장센을 아끼는 감독 모임’의 주요 회원이었다.
그 모임은 주변의 증언을 통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부르기 힘든 긴 명칭인 탓에, 박무열은 그걸 축약하여 ‘한미모’라 부르곤 했다.
미모가 뛰어난 감독들의 모임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물론 누구 하나 미모를 가진 회원은 없으니, 그건 박무열 나름의 사회고발적 자학개그였다.
“자, 이번 1/4분기 한미모의 주제는, 콧수염을 저렇게 수북하게 기른 제준원 감독이 과연 한미모에 어울리는가······.”
“아, 진지하게 좀 갑시다. 카페에서 대충 하는 거라도 나름 회의인데. 내 털은 내가 알아서 해요.”
대놓고 유머코드에 저항한 건 자신의 수염을 사랑하는 제준원 감독. 그 미적 감각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박무열은 곧 목을 가다듬고 말을 바꿨다.
“음. 다시 하지. 오늘의 주제는, 쌍천만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하, 베리 퍼니. 우리하곤 상관없잖아요? 형님들이나 저나 천만영화는 평생 못 만들 텐데?”
떠버리 신유벽 감독은 좋지도 않은 발음의 영어로 의장을 비웃었다. 다만 이용빈 감독이 편을 들어줬다.
“아주 없다고는 못 하지. 박 형 영화가 그 천만영화 열풍 때문에 두 달도 못 돼서 막 내려야 했잖아? <오이디푸스> 그거, 더 잘될 영화였는데. 우리 박 형이 속 좀 상했나 보지.”
“에이, 그 정도면 잘됐죠 뭐. 300만은 넘겼으니까. 애초에 많이들 보라고 만든 영화도 아니었잖우? 안 그래요, 형님?”
“그러니까. 소재부터가 근친······ 참······ 절대로 가족이 함께 보긴 힘든 영화였어. 그걸 300만이 본 것도 기적 아뇨?”
“하하하.”
머쓱해져서 웃어 보인 박무열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넘긴 뒤에 말을 이었다.
“우선은 두 천만영화에 대해 평가해볼까. 각자 둘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분석해보자는 거죠? 전 <형제>는 솔직히 별로였어요. 갈등구조라고 해봐야 외적인 억압과 극복이고, 뻔한 가족애 신파만 주구장창 이어졌으니. 그저 헐리우드식 전쟁영화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성과 같은데. 천만에 걸맞는 건 투톱 주연의 열연뿐이었다고 봐요. 그에 비해 <684>는 메시지도 뚜렷하고,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청불 딱지까지 감수한 배짱이 멋있어요. 계진행 선배가 마침내 상업주의를 탈피한 것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이 됐으니 아이러니하죠.”
“흠······ 그럼 유벽이는 <684>고, 용빈이는?”
“난 <형제> 쪽. 다른 건 몰라도 연기 때문에 모든 게 좋았어요. 두 배우 보는 재미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거든. 그 나이대에 그렇게 역할을 잘 소화하는 배우는 찾기 힘들죠. 덕분에 뻔한 것도 뻔하지 않게 포장이 잘된 거고. 반면에 <684>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어서 긴장감이 떨어졌달까.”
“그거야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마지막으로 준원이는?”
“저는 반대로 연기 때문에 <684>가 좋던데. 시나리오야 특별할 건 없었지만, 안정록 선배님 연기가 참 끝내줬습니다. 그 선배는 무형문화재예요. 봐도봐도 감탄이 나와. 다음 작품엔 꼭 캐스팅을 하고 싶은데, 워낙 까다로운 분이라. <684>는 대체 왜 하신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내 건 친절하게 까셨으면서.”
세 감독의 평가를 다 들은 뒤, 박무열은 어깨를 으쓱였다.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직 나오지 않은 까닭.
“왜 표정이 그래요, 형님? 혹시 형님도 다음엔 천만을 찍고 싶다, 그런 포부입니까? 그깟 거 나도 만들 수 있다?”
“그럴 리가. 흥행작 만들자고 말 꺼낸 게 아니야. 판이 바뀌고 있어. 단성사(한국 최초의 상설영화관)는 철거됐고, 대기업 소유의 멀티플렉스가 스크린 천 개 시대를 열었고, 두 편의 천만영화가 연달아 출현하며 영화계 전반에 돈이 넘쳐나게 됐고.”
“아! 정말 부러워 죽겠어요. 난 작년에 투자 따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정말 명작인데 그것도 몰라주고 말이야. 요새는 대충 쓴 시나리오도 30억쯤은 쉽게 타내더라고요.”
“하하하! 너 그래서 결국 후반작업 졸속으로 해버렸지? 얼마나 망쳤을지 기대가 되는데?”
“뭐야? 60억 투자 받았다고 지금 괄시하시는 거예요?”
“물론. 이번에 아주 대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조혁수랑 미팅 몇 번 해봤는데, 느낌이 좋아. 이것도 천만 갈 수 있을 것 같다.”
“배우한테 꽂혀가지고선, 하지도 않던 느와르를 갑자기 왜 찍으시는지 몰라. 쫄딱 말아먹겠지 뭐.”
“이 자식이 어디 형님한테.”
“그만들 해요. 장담하는데, 둘 다 망한다. 나처럼 대중이 감동할 만할 명작을 좀 만드시란 말입니다.”
“준원이 얜 <날 보러 와요> 떴다고 코가 너무 높아졌어. 그게 어디 네 힘인 줄 아냐? 영화를 호준이가 다 살렸더만.”
“뭐요? 나야말로 배우를 살리는 명감독이거든요?”
늘 그랬듯 회의는 진지하게 나아가질 않았다. 저마다 자기 자랑과 남 험담에 매진하느라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늘 그랬듯 미소 지은 박무열은, 세 명의 후배 감독들이 마음껏 깔 수 있을 소재를 던져줬다.
“그럼 그 배우들······ 충무로의 트로이카에 대해서 말해볼까.”
“응? 트로이카면, 조연식 선배, 임호준 선배, 조동환 선배, 그렇게 셋을 두고 하는 말 아닙니까?”
“거기에 네티즌들이 신(新) 트로이카를 말하고 있던데.”
“신 트로이카? 젊은 애들 중에? 그러면 혁수는 무조건 들어가겠네. <네 친구>에 <형제>까지, 굵직한 족적들을 남기고 있으니까. 아, 그래서 천만영화 얘기를 꺼내신 건가? 오늘의 주제는 사실 배우 품평이었구만.”
“조혁수하고 호흡 맞췄던 강정후도 빼놓을 수 없죠. 의장님하고 찍었을 때가 고작 스물셋이었나······ 그랬는데 연기력은 이미 완성된 수준이었단 말이죠. 스펙트럼도 넓고.”
“이제 스물일곱이지만 여러 면에서 선배들을 씹어먹고 있죠. 그러면 조혁수에 강정후, 그렇게 둘은 완성됐는데······ 마지막 한 명이 어려운데요? 혹시 진유성?”
“걘 얼굴 빼곤 볼 게 없어. 오종만이 차라리 낫지.”
“오종만은 연기력은 훌륭한데 작품 보는 눈이 영. 나라면 거기에 주정원을 넣을 겁니다.”
“주정원? 가끔 놀랄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멀었어요. 차라리 박도영이면 모를까.”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 감독들은, 갑론을박을 할 뿐 한참 동안 마지막 카드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박무열이 직접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찬.”
“뭐요?”
“이찬. 그 녀석이 신 트로이카를 완성했어.”
“그 핏덩이가요? 이제 열여섯 됐나?”
“그러면 중학교 3학년이지, 걔가? 박 형 아들보다 어린데?”
“학교는 안 다닌다고 하던데, 나이는 그렇게 되죠.”
“아역이나 맡을 나이에 좋은 연기 보여준다는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조혁수나 강정후랑 동급으로 놓긴 좀. 이제 영화 두 편 한 배우를 평가하기도 좀 민망하고요.”
“우리가 언제 나이로 배우 따졌어? 한정된 작품이었지만 충분히 스스로를 드러낸 아이야. 그리고 그 주연작 두 편으로 진유성, 오종만, 주정원, 박도영, 그 친구들이 몇 년 동안 불러들인 관중 수를 능가했어. 평가를 더 미뤄야 할까?”
그제야 세 감독은 1/4분기 한미모의 숨은 주제를 알아챘다.
“다른 건 서론이었고, 이게 결론이군요? 이찬이라는 꼬마.”
“사실 한번쯤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얼굴 본 사람도 없는 터에 괜한 뒷담화가 될까봐 참고 있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진데? 걔랑 작품 해본 사람 없잖우?”
“그래서 오늘은 초대손님을 한 명 불렀는데.”
“설마, 계 감독? 그 사람 요즘 바쁠 텐데?”
“판권 문제로 정신없다고 하긴 했는데, 친절하게도 시간을 비워줬어. 이제 곧 도착할 거야.”
사계 프로덕션 계진행의 합류에 감독들은 난색을 표했다.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얕잡아보는 것은 아니되, 아무래도 영화인보다는 사업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까닭.
그 인물은 첫인사로 한미모 회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 후배 감독님들. 미리 연락 못 드렸는데, 10분 뒤에 찬이도 올 겁니다. 괜찮으시죠?”
박무열조차 예상치 못한 선전포고였다.
< 37장 - 의장 박무열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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