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15화 (115/250)

< 41장 - 여신 신수영 (3.) >

「 강정후 “내 이상형? 신수영보다는 이소연”

······로맨스 코미디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영화 ‘칠월칠석’의 강정후-신수영 커플은, 대중으로부터 진정한 선남선녀라는 찬사를 받으며 53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그렇지만 강정후는 그 인기가 조금은 어색했다고 밝혔다.

“촬영하면서 잘 맞는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개인적으로 수영 씨처럼 키가 큰 여성은 부담스러워서요. 힐 신었을 때는 예쁜 그림 만들기 위해 발판 댄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그는 또 “연기활동 하면서 참 많은 여배우들과 작품을 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잘 맞는 게 소연 씨 같다”고 밝혔다.

“사람을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사람이에요. 덕분에 촬영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인터넷에서 말하는 소위 ‘츤데레’ 같은 인물을 그려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웃어서 NG가 날 정도였죠. 최고의 파트너예요.”

강정후와 이소연은 KBC ‘스위트 프리즌’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2000년대 최고의 커플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고 있는 ‘칠월칠석’의 인기를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 강정후의 이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연예면의 기사를 확인하고, 신수영은 왈칵 얼굴을 구겼다.

“으······ 이게 뭐야. 너무하시네, 진짜. 내가 촬영할 때 그렇게 잘해드렸는데. 이거 완전히, 나는 배려심이 하나도 없어서 불편했다는 소리 같잖아?”

“뭘 또 그렇게 받고 그래요? 신작 띄우려고 전작 파트너 돌려 까는 거야 드문 일도 아닌데. 영화랑 드라마를 어거지로 엮은 게 다 티가 나잖아요.”

나름대로 위로하겠답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심드렁한 이찬의 반응은 울화만 더 키웠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난 이런 거 처음이란 말이야. 혹시라도 외모 때문에 이기적인 이미지 생길까봐, 말 한마디 한마디 얼마나 조심했는데. 강정후 이 오빠 진짜 너무해.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매너가 없어.”

“그건 동의.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대중이 이런 거 하나 가지고 배우의 평가를 바꾸지는 않으니까.”

신수영의 손에서 스포츠지를 빼앗아 접어버리며, 소년은 강정후의 수법에 대해 생각했다.

‘배우의 평가는 바뀌지 않더라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바꿀 수 있는 전략이지. 여태껏 단 한 번도 상대역에 대해 직접적인 평을 하지 않던 강정후의 인터뷰니까. 골수팬들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꼭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게다가 이쪽 여주인공을 은근히 까면서 저쪽 여주인공을 치켜세우는 이야기다. 동시간대에 방송될 <연애의 조건>에는 악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소하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신기하네. 이렇게 안 하던 짓까지 한다 이거지? 뒷얘기에 신경 쓰는 건 신수영 누나보다도 더해서, 절대로 남한테 악감정 줄 만한 인터뷰는 안 하던 인간인데. 이번 내기에서 결코 지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만큼이나······ 천세영 누나가 그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

뭔가 좀 이상하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강정후는 쉽게 타인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가면을 쓰고 살아온 만큼, 낯선 이에 대한 의심 역시 누구보다 클 터였다.

그런 사람이 고작 하루 만나본 천세영에게 이토록 열성적인 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분석을 다시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좀 걸어다니면서 생각해볼까. 일단 회사에 전화 한 통 넣고······.’

그렇게 생각한 이찬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

주변을 얼쩡거리며 대화를 엿듣던 심요셉이, 조심스레 그 스포츠지를 집어 들었다.

“······헉? 이게 뭐야? 아, 이 사람 안 되겠네. 인터뷰를 뭐 이딴 식으로 했대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렇죠? 어이없죠? 저 배려심 없는 사람 아닌데.”

“그러니까요. 수영 씨가 워낙 잘 배려해주셔서 저 같은 초짜도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데. 스타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주 못됐어.”

“진짜로요. 내가 볼땐 이거, 아마 자격지심 같은데요? 자기가 키가 별로 안 크니까 혼자 찔렸나 보지 뭐. 나한테는 수영 씨 그냥 좋게만 보이는데? 하여튼 아역 출신들은 이렇다니까. 뭐든지 자기중심으로 생각해버린단 말이에요.”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찬이는 안 그러거든요?”

사실 이찬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아역 출신 배우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심요셉은, 한동안 입만 뻐끔거려야 했다.

그렇지만 잠시 후에는 황급히 말을 보탰다.

“물론, 예외는 있죠. 찬이처럼 좋은 애들도 있죠.”

“그리고 진아도요. 애가 싹싹하더라고요.”

“그렇죠. 명진아 배우도 있죠.”

“······참나. 오빠, 귀 얇으시죠?”

“어, 그게······ 어, 오빠요?”

“네. 태형 오빠랑 동갑 아니에요? 빠른 생일이라고 하던데? 저 그 오빠보다 한 살 어려요.”

어려서 이민을 갔다 온 까닭에 빠른 생일과 무관한 나이 관념을 갖고 있던 심요셉이지만, 이내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남태 형이라고 부르지만, 오빠라는 말은 어감이 참 좋은 것 같아. 팬들이 불러줄 때랑은 전혀 느낌이 다른데. 충무로의 여신이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니······ 완전 좋은데?’

족보 정리를 위해서 남태형과도 말을 놓아야 하나 고민하며, 심요셉은 온갖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낯가림 따위는 갖다 버리고 온 것 같은 태도였다.

*

강정후의 인터뷰는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소연과 신수영이라고 하면 79년생 동갑내기 청춘스타로, <미스 스캔들>의 성공 이후로 끊임없이 라이벌로 지칭되어온 대표적인 미녀 배우들.

특히 동서양의 체형 스타일을 대표하며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타입들이다. 갑론을박이 치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는 이소연을 외치고 일부는 신수영을 외쳐대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외모 투표까지 벌어졌지만, 그 관심은 결국 <스위트 프리즌>으로 이어질 터였다.

10년 동안 ‘안정록 선생님’ 외에는 어떤 배우에게도 사감을 표현하지 않던 강정후.

그가 드라마의 상대역인 이소연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한편으로, 신수영보다 훨씬 더 호흡이 잘 맞아 촬영이 즐겁다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없던 관심도 생기게 만드는 워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오직 다음 촬영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던 남태형에겐, 심요셉의 전화가 좀 황당했다.

[남태 형, 진짜 어이없지 않아?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수영 씨가 이소연 씨보다 훨씬 더 착하고 예쁜데.]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 그러면 안 되지. 형이 반박기사를 내줘야 된단 말이야. 이소연보다 신수영이 훨씬 더 착하고 배려심 넘쳤다고.]

“어떻게 그러냐? 이소연하고 연기 해본 적이 없는데.”

[아······ 그건 그러네.]

“이상한 소리 말고 연기나 잘해. 찬이한테 소개시켜준 게 난데, 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안 된다.”

[응? 뭔 말이 그래? 찬이가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안 되는 거지. 근데······ 잘하고 있는 것 같아. 현장에서 반응이 좋더라고. 이찬 잔소리도 이젠 많이 줄었고. 예전엔 씬마다 열 몇 개씩 지적을 했는데, 지금은 한두 개야.]

아예 안 한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남태형 본인은 지금까지도 한 씬에 열 몇 개씩 지적받고 있었으니.

‘이 녀석이 재능이 있는 편인 건지, 내가 지나치게 둔한 건지······.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말자. 잡념 하나 떠올리는 시간도 아까워. 첫 주연작을 헛된 생각으로 망칠 수 없어. 그랬다간, 찬이한테도 명진아한테도 정말 못할 짓이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끊은 남태형이었지만, 잠시 후에 또 한 번 전화를 수신하게 됐다.

심요셉이 착하고 배려심 넘친다고 강조했던 바로 그 인물로부터.

“어······ 신수영?”

[오빠! 기사 봤어요?]

“아, 그거. 보진 못하고 들었는데.”

[들었어요? 누구한테? 아,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 진짜 억울해서 미치겠어요. 오빠, 오빠가 말해봐요. 내가 그렇게 막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멋대로고 그래요? <미스 스캔들> 찍으면서, 오빠도 힘들고 불편하고 그랬어요?]

강정후가 설마 그런 막말을 기사에 내진 않았을 터. 신수영은 혼자서 생각을 부풀려 상처를 받고 있는 듯했다.

연습으로 한시가 바쁜 입장이지만, 괴로워하는 데뷔작 상대역에게 한마디쯤 위로를 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전혀 그렇지 않았지. 너하고 연기하면서 정말 편하고 즐거웠지. 이소연 씨랑 호흡을 맞춰본 적은 없지만, 나처럼 경력도 없던 초보 연기자한테 그렇게 잘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요셉이도 그러더라. 너랑 연기하면서 참 좋다고. 그게 증거인 거야. 너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오해하지 않을 거야.”

[아······ 그야······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죠. 흥. 나쁜 사람들이야. 다들 외모만 보고서 이기적일 것 같다, 차가울 것 같다, 자기들 맘대로 말하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진정으로 위로받은 사람이, 그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억지로 퉁명스러움을 연기하는.

물론 지나치게 둔한 남태형은 그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이쪽 업계가 다 그러니까. 힘내. 괜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연기로 보여줘. 네가 어떤 사람인지.”

[······응. 알았어요. 음······ 고마워요, 오빠. 오늘 저녁에 뭐 해요?]

“어, 내일 촬영 연습.”

[흠. 별일 없다는 말이네요? 잠깐 보러 갈게요.]

“어? 아니, 나 진짜 연습해야 되는데.”

[그러니까요. 제가 봐주겠다고요. 싫어요? 뭐야, 빈말이었어? 나랑 같이 연습하는 거 불편한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의 연습이란 그저 반복 숙달. 이찬 아닌 누군가가 봐준다고 해서 효율이 늘진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미 해놓은 말이 있어서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

남태형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방문을 허락했다.

*

인천에서 돌아와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강정후는 뚱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이찬과 마주하게 됐다.

“······뭐야?”

“뭐긴 뭡니까? 따지러 온 사람이지.”

“인터뷰 때문에 그래? 그건 미안하게 됐다. 기자가 자극적인 걸 원하더라고. 그래도 수위는 조절했잖아?”

“거짓말. 이제 기획사 대표까지 된 마당에 뭐가 아쉽다고 기자 수작에 놀아나요? 선배가 일부러 소스 준 거죠?”

“헛소리. 바쁘니까 길이나 비켜라. 누가 열어준 거야, 대체.”

연말까지 소속돼 있던 천만배우가 놀러 왔다고 하는 말에 문을 열지 않을 직원은 없을 터. 그 말은 그저 투정이었다.

그리고 이찬은, 그런 강정후가 몹시 신기하게 여겨졌다.

“왜 그런 거예요?”

“뭐가 왜야? 비키라니까?”

“천세영 누나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요?”

“누가 그래? 그렇게 예쁜 여자가 또 어디 있다고.”

“이소연 선배나 신수영 누나도 예쁘기로 따지면 지지 않죠.”

“그래도 느낌이 다르지. 난 천세영 걔가 그렇게 예쁘더라.”

“흠. 혹시,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예요?”

“······누가? 헛소리 좀 그만해라.”

단칼에 끊는 듯한 어조였지만, 말하기 직전에 텀이 길었다. 진심을 들킨 것에 당황했다는 방증이었다.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기이한 것.

강정후는 스스로 천세영과 사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찬이 그녀와 가까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 내기를 제안한 것이다.

“와. 진짜 신기하네. 왜 그래요? 우리 이사님이 부탁했어요?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그분은 열애설 그런 거 걱정하시는 성격이 아니야.”

“······나도 아니다. 너 따위 걱정할 이유도 없고.”

“그래요? 그럼 순수하게 내기에 이기고 싶어서 그런 인터뷰를 하셨다?”

“그래. 장난삼아 한 내기라도 너한테 지기는 싫으니까.”

합리적인 이야기였지만, 이미 속이 들여다보이는 상황.

이찬은 결국 한숨을 토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이 새끼가?”

“근데 선배 생각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뭐? 왜?”

“선배는······ 미안하지만 나한테 안 돼요. 머리 쓰는 건 포기하고 연기로 승부하세요. 뭐, 그쪽도 내가 이기겠지만.”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울컥 화가 치밀어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이찬은 이미 등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에 강정후는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머리 쓰는 것으로는 소년을 당해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건, 한 편의 뮤직비디오였다.

<미스 스캔들> 엔딩 시퀀스에서 ‘심지호’가 부른 축가에, 그 영화를 촬영하며 누나처럼 엄마처럼 이찬을 보살피던 신수영의 모습이 담기고, 그 장면들이 자연스레 <연애의 조건> 메이킹필름으로 이어졌다.

이찬이 덕 필름과 MSB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준 결과였다.

데뷔작을 함께했던 남녀 스타가 새 드라마를 준비하며 만들어내는 호흡들이 소년의 노래 속에서 이어진 뮤직비디오.

그 영상이 아직까지도 하루 수만 명이 찾는 <어사>의 시청자게시판과 가입자 수 50만의 이찬 팬카페에 올라갔다.

그리고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한국의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 전파됐다.

그 안에 담긴 영상은 오덕환과 주동한이 협업한 결과물.

세련되고 도회적인 외모인지라 깍쟁이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신수영이 연신 ‘마이 찬’을 외치며 소년을 쫓아다니고, 과거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재회한 뒤에 해변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그로써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역전됐다.

“이제 됐죠? 누나가 미의 여신처럼 묘사된 영상이 조회수 백만을 넘겼어요. 봐봐, 반박기사 같은 거 낼 필요도 없다니까. 요즘 같은 때에 언플은 무슨. 진심이 통하는 시대라고요.”

뻐기듯이 말하며 회사의 간판스타를 내려다보던 이찬은, 곧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나? 왜 그래요? 울려고? 감동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으······. 찬아, 나 너무 못생긴 것 같아······.”

“응? 옛날 영상이? 그야 그때랑 화장법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못생겼다고 할 사람은 없을걸요? 진짜 여신 같다니까요?”

울먹이는 여신을 달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41장 - 여신 신수영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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