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장 - 달인 이찬 >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두된 각종 민간 기념일 중에, 만우절이란 것이 있다. 유럽에서 기원해 미국의 미디어를 통해 세계에 퍼진 April fools' day를 일컬음이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서로를 속이고 그 반응을 즐기는 날.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강의실에 가거나, 중고등학생들이 교실을 바꿔서 앉아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의 눈이 동그랗게 될 장난을 친다.
그에 더해 친구들 사이에서는 몰래카메라 같은 거짓말로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가짜 청첩장을 보내거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알리는 일 등이 대표적인 예.
그렇게 자행된 기만은, 결국 서로 한바탕 웃어버리고 지나가는 일이 된다. 악의적인 속임수가 아닌 이상 한때의 장난으로 용인된다.
하지만 그건 만우절이 1년 중 하루일 때의 얘기.
하루가 멀다 하고 거짓말쟁이들이 속이려고 달려든다면, 아무리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골치가 아파질 터였다.
그건 대부분의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이찬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참이었다.
“찬아. 내가 조카가 한 명 있는데, 연기를 하고 싶어해.”
“땡. 티 엄청 나요.”
“아······ 안 되나. 너 속이려고 프로필까지 뽑아왔는데.”
“대표님까지 이러실 거예요?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거짓말 쳐대서 피곤해 죽겠는데.”
“하하하. 전례가 없는 캐릭터가 돼버린 탓이지 뭐. 달인 이찬인데, 누구든 속여보고 싶게 마련이잖아?”
속지 않는 연기의 달인, 이찬.
특집편성 ‘돌아온 몰래카메라 ? 연애의 조건 편’을 통해 생겨난 그 별명은, 보통 약칭으로 ‘달인 이찬’이라고 불리며, 소년 배우의 사생활을 만우절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만나는 배우들마다 그를 속이지 못해 안달이 나버린 것.
“전 죽겠다고요. 뭔 자막을 그딴 식으로 붙여서는. ‘날 속일 수 있는 자 누가 있으랴’ 같은 소리 한 적 없는데.”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마라, 찬아. 그 프로그램 덕분에 네 이미지가 예전보다 몇 배는 더 고급스러워졌어.”
“이미지 원래 좋았거든요? 팔색조 연기천재였는데?”
“그게 그렇긴 한데, 천만영화에 40% 드라마 찍었다곤 해도 실제로 네 연기를 제대로 본 사람은 천만에 한참 못 미쳤을 거거든. 그랬는데 ‘연기의 달인’이라고 자막 붙은 스크린샷이 인터넷을 도는 지금은······ 이찬이란 배우의 인식 자체가 달라진 거지. 전설적인 배우의 등장이라는 식으로 말이야.”
그거야말로 배우가 예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이점.
이찬이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MSB 예능국을 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연기력이라는 건 작품 속의 맥락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CF가 끊임없이 TV를 수놓고 모델 사진과 스크린샷이 인터넷에 돌고 돌아도, 배우의 실력이 입증되진 않는다.
그를 운 좋은 아역배우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게 그런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과장스런 자막이 붙은 특집 프로그램 하나가 상황을 바꿨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동참한 대규모 속임수에서, 첫 대사를 듣자마자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파악하고, 그 확신 속에서 상황실에 ‘역몰카’를 제안한 소년.
그러나 몰래카메라 초기에 이찬이 주동한을 찾아가는 장면은 방송 끝에야 공개됐다.
그러니 중반부의 몰래카메라는 어색해야 마땅했다. ‘혹시 짜고 치는 거 아냐?’라는 의심이 들 만한 전개였으니.
그렇지만 누구 하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이찬이 심요셉과 주동한의 갈등에 당황해 울먹이던 장면도, 울부짖듯이 노래를 부르던 황당한 모습까지도, 시청자들은 이찬이 속고 있는 상황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뒤에 역몰카를 제안하는 장면이 나오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완벽한 연기였다. 객관적으로 어색한 전개조차도 신뢰성을 획득하게 만드는 표정과 말투와 제스쳐였다.
시청자들은 40분이 지나도록 이찬을 안쓰럽게만 생각했고, 그래서 후반부의 반전에 경악했다.
그 탓이었다. 연기의 달인이란 표현은, 장난 같은 별명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칭호가 되었다.
이찬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지도가 수직상승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업계 사람들은 연기보다도 그의 눈썰미 쪽에 집중했다.
상황이 종료된 뒤의 인터뷰에서 신수영이 꺼낸 말 때문에.
[제가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마이 찬은 절대로 안 속아요. 찬이 눈 속일 수 있으면, 진짜 연기의 달인인 거죠. 아마 안정록 교수님 아니면 안 될 걸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소년 배우와 호흡을 맞췄던 여신의 호언장담.
그로 인해 ‘이찬 속이기’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소년을 속여 연기의 달인이라고 인정받겠다는 마음에 배우들 특유의 장난기가 더해져, 하루에도 수십 개씩 거짓말이 쏟아졌다.
그날 <고등형사>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들도 그런 맥락이었다.
“와······ 진짜야?”
“그렇다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냐?”
“대박이네. 어, 찬이 왔다. 찬아, 축하해!”
“뭘요?”
“못 들었어? 사귀고 싶은 연예인 1위로 네가 뽑혔잖아.”
“<꼬마신부>에서 활약한 덕분이겠지. 벌써 300만 돌파한 영화에서 완전 인상적인 까메오로 활약했으니 말이야. 여자들은 노래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하하.”
박준호와 김성대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장난을 부단히 준비한 게 분명했다. 합동 연기가 꽤나 정교했다.
그러나 이찬을 속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땡. 전보단 좀 낫네요. 눈 똑바로 쳐다본 것까진 좋았는데, 웃는 타이밍이 작위적이었어요. 티가 난다니까요?”
“아, 준호 형! 형 때문에 실패했잖아.”
“김성대 후배님은 뭐 다른 줄 알아요? 시선처리도 못 하면서 거짓말은 무슨. 그건 됐고, 안정록 이사님 어디 계세요?”
“어? 안정록 선생님? 오늘 오시기로 했어?”
“몰랐어요? 오늘 휴강이라 후배님들 연기하는 거 봐주러 오신댔는데. 앗. 일부러 얘기 안 하신 건가?”
“헉······ 야, 야, 연습해야 되겠다.”
“준호 형, 저쪽으로 가자.”
역으로 속아서 허겁지겁 대본을 챙긴 두 사람 뒤에는, 경륜 있는 괴짜 감독 오덕환이 장난에 동참했다.
“이찬. 76씬을 좀 수정해야 될 것 같아.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로맨스 요소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여기서 천세영하고 키스 씬 하나 찍자. 세영이는 괜찮다고 했어.”
“그래요? 키스 씬 받고, 베드씬까지 찍죠.”
“······음. 들켰나?”
“예. 포커페이스는 좋은데요, 감독님 거짓말 하실 때 손 꼼지락거리는 버릇이 있네요.”
“그래? 그것만 고치면 되겠어?”
“에이. 대표적으로 그런 게 있다는 거죠. 목소리부터 말투까지 하나도 자연스러운 게 없었다고요. 게다가 디렉션도 이상하잖아요? 로맨스가 아니라 인간애가 중심이 되는 파튼데.”
오덕환은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섰다. 남들 다 하니까 따라해봤을 뿐, 딱히 성공을 기대하진 않은 듯했다.
다음 도전자는 그간 열정 가득한 연습으로 연기력을 향상시킨 천세영이었다.
“찬아! 엄마가,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대. 나 집에 가봐야 될 것 같은데, 무서워서······. 감독님한테 대신 말해주면 안 돼?”
“그럴게. 신인배우가 빠져가지고 연기 연습은 안 하고 쓸데없는 장난이나 치고 있다고 말씀드릴게. 이젠 거짓말 칠 게 없어서 가족까지 들먹여? 패륜이야, 패륜.”
“아이······ 어떻게 알았지? 방금 눈물연기 괜찮지 않았어?”
“슬퍼하는 감정이 그럴싸하긴 했는데, 디테일이 엉망이었어. 거짓말의 죄책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표정에 섞여 있었거든. 다윈의 억제가설에 따르면, 개인의 감정표현은 의식적인 표정의 발생하고는 뇌의 영역 자체가 달라. 그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구도 속일 수 없어.”
“음······ 넌 진짜 애어른이다, 애어른. 아, 말 나온 김에 우리 엄마 사진 볼래? 나 지갑에 넣고 다니거든.”
“됐어. 누나 집안에 관심 없거든?”
“어? 아······ 너무해.”
천세영 집안에 대한 관심을 애써 접으며 돌아선 이찬은, 이후 황상태와 현우정의 도전까지 뿌리쳤다.
그렇지만 설마 홍주석까지 그 행렬에 동참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야. 너, 그거 사실이냐? 명진아랑 사귄다고?”
“누가 그래요?”
“아는 기자가 그러던데. 우향일보 김민식이라고, 만나본 적 있지? 걔 말이 벌써 파파라치들 쫙 깔렸다더라. 조심해라.”
“퍽이나요. 선배님이나 박찬미 선배님하고 사귀세요.”
“이 자식이 못 믿네? 야, 내가 이런 걸로 사기 치겠냐?”
“임호준 선배가 아침부터 전화해서 이상한 소리 하시던데. 그 선배가 부추긴 거죠? 너도 이찬은 못 속일 거다 이러면서? 애들이에요? 그런 이상한 걸로 대결하시게.”
“음······ 허험. 다음 씬 대사나 좀 맞춰볼까······.”
그렇게 뛰어난 배우들을 줄줄이 패퇴시킨 이찬이었지만,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가 한 명 있긴 했다.
행동대장 주경호 역으로 특별출연하는 강정후가 그 주인공.
그러나 그는 괜한 장난에 동참할 기분이 아니었다.
“내 드라마는 십팔 퍼센트로 시작했더라. 십팔 퍼센트.”
“발음이 좀 그렇긴 한데, 축하드려요.”
“축하? 축하는 개뿔. 장난하냐?”
“장난은요. 절찬리에 방영 중이던 드라마랑 동시간대에서 첫방 18%면, 굉장히 선방한 거죠. 축하할 일 맞아요.”
“빌어먹을. 치사하게 예능으로 승부를 봤다 이거지?”
“내가 뭐 원해서 찍었나? 이상한 걸로 트집이시네.”
강정후 이소연 주연의 <스위트 프리즌>이 선전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주공산에서 초회시청률 30%를 돌파한 <연애의 조건>과는 상황이 다르다. 영상미와 주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6화에서 42%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를 38%까지 끌어내리며 기록한 18%인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20%의 차이였다.
경쟁작이 악평 속에 크게 흔들려야 역전이 가능해질 격차인데, 노련한 주동한 PD가 그런 실수를 범할 리 없다.
그런데다 이찬의 역몰카 이슈가 일주일 가까이 화제인 상황.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흥······ 치사한 놈. 연기의 달인? 우습지도 않아서 원.”
“성공적인 이미지메이킹의 교과서라고 칭찬하셔도 돼요.”
“그래, 그렇지. 허성윤이 봤으면 박수를 쳐댔을 거다.”
“아, 씨. 그 인간 얘긴 왜 꺼내요?”
“그럼 누구 얘길 할까? 아, 명진아 얘길 할까? 너 걔한테 푹 빠졌더라? <꼬마신부> 합주실 씬에서 눈이 하트가 되던데?”
의심보다는 장난으로 건넨 말.
이찬의 연기는 언제나 실제를 방불케 한다. ‘이윤애’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배역이었으니, 그 표정에서 엿보인 애정도 ‘달인’의 실감나는 연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소년은 순간적으로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강정후의 그 말로, 비로소 사랑의 시작을 깨달았기에.
‘그날이었구나······. 김세진 감독 디렉팅도 무시하고 아련하게 진아 누나 쳐다봤던 그 씬이, 내가 처음 사랑이란 걸 느낀 순간이었던 거야. 노래 잘하는 이성 좋아하는 게, 여자들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었던 거지······.’
짧은 생각 뒤, 이찬은 재빨리 표정을 정비했다.
그렇지만 강정후가 진짜 의심을 품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뭐야? 너 설마?”
“아, 뭐래? 연기였거든요?”
“······그래? 다 연기였다는 거지? 이거 재밌는데. 페이크였던 건가? 명진아하고의 관계를 숨기려고 천세영을 일부러 옆에 뒀다? 허성윤이 박수 칠 만한 속임수인데?”
“상상력도 풍부하시네. 그 인간 이름 그만 들먹이죠?”
“아, 뭐, 거기까진 아닐 수도 있겠네. 아무튼 흥미로워. 이찬과 명진아? 하하, 굉장한 이슈가 되겠는데?”
“아니라고. 연기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요?”
“그렇겠지. 연기의 달인이 하시는 말씀인데. 근데 그림이 나쁘지 않다. 잘해봐라. 그쪽은 방해 안 할 테니까.”
키득거리고 돌아선 강정후를 째려보며, 소년은 자조했다.
‘달인은 무슨. 남의 속임수 캐치하다가 내 비밀을 들켜버리다니, 웃겨 진짜. 조폭 친척이라는 약점을 잡고 있으니까 어디 가서 입방정 떨고 돌아다니진 않겠지만······. 아, 짜증나. 쓸데없는 인간한테 쓸데없이 들켜가지고는.’
그렇게 연기 외적인 일들로 고단했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집. 이찬은 그곳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나 더 맞이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찬이의-”
“동작 그만. 뭐 하는 거야?”
생크림케이크를 손에 들고 해맑게 노래하던 명진아는, 눈이 동그랗게 돼서 염수진을 돌아봤다.
“어······ 오늘 아니에요?”
“7월 16일, 맞는데? 계약서에서 봤는데. 찬아, 생일 맞지?”
“주민등록 늦게 올라간 거예요. 헛짓거리들 하셨네요.”
그 말에는 염수진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헛짓거리라니······ 난 그냥, 한 번도 네 생일 챙겨준 적이 없는 게 미안해서, 진아가 물어본 김에 대표님한테 계약서 보여달라고 했던 건데. 그냥 축하해주려고 한 거야. 나쁜 뜻은 없었는데.”
“뜻은 어쨌건 나쁜 행동이죠? 프라이버시에요.”
“으, 미안. 근데, 네가 알려주질 않으니까-”
“안 알려주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귀찮게 굴지 마요.”
사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의 출생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찬은, 실제와 다른 날에 생일을 기념하는 걸 원치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과 비슷한 강박증이었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이 비밀인 상황. 소년은 추가적인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이, 드물게도 명진아를 분노하게끔 만들었다.
“너 진짜, 왜 그래? 왜 생일을 숨겨?”
“그냥. 애도 아니고 무슨 생일축하야? 누나는 시험기간 아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다가 성적 망쳐도 난 모른다?”
“이······ 바보야. 왜 쓸데없는 일이야? 생일은, 같이 축하해줘야 되는 날이잖아? 왜 안 알려주는 거야?”
“방금 듣고도 모르겠어? 나 원래 신비주의자야.”
“장난치지 마! 그런 식으로 대답해야 되겠어? 남의 속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 생일도······ 앗.”
‘좋아하는 사람 생일도 모르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아?’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사랑을 숨기는 연기에 달인이 된 명진아가 평소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언.
그렇지만 축복받아 마땅한 날을 끝끝내 숨기는 이찬을 보며, 그녀는 순간적으로 진심을 보이고 말았다.
“어······ 그러니까, 음······ 사람 대 사람으로······ 좋아하는······”
명진아의 두서없는 변명 속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생일이라고 말할 때 감정이 되게 복잡해 보였어. 거기에 얽힌 컴플렉스가 있는 건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강박이라······ 뭔지 궁금한데. 하지만······ 안 돼. 나한테 사랑이란 건 너무 무서운 일이야. 참 다행이지. 마침 이 시기에 이런 실수가 나와서.’
만우절은 1년에 단 하루.
그렇지만 유행 같은 ‘이찬 속이기’의 주인공에게는, 매일이 만우절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명진아에게 행운이 되었다.
“누나까지 이러기야? 진짜 너무하네. 마음 갖고 장난치는 거 정말 나쁜 거라고 안 배웠어?”
“어? 어······ 어?”
“감정표현이 자연스럽긴 했어. 말실수 하는 척하면서 좋아한다고 표현한 그 방식도 신선했고. 그렇지만 누나는 나한테 안 돼. 누나가 좋아하는 건 그냥 내 근육이잖아? 어디 감히 연기의 달인을 속이려고.”
“어······ 아. 그, 그러네. 근육, 좋지······.”
“속이고 싶으면 더 노력해. 아, 진짜 피곤해 죽겠다. 감독님이랑 홍주석 선배까지 나 한번 속여보겠다고 난리를 치시더라고. 한심해, 한심해. 앉아. 케이크나 먹고 가. 수진 누나, 주스 있죠? 베란다 테이블 갈까? 별 많이 보이던데.”
두 사람의 감정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들킨 그 밤.
소년과 소녀는 하얀 케이크를 나눠먹으며 자주 웃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처럼.
달콤한 케이크 앞에서, 달인들은 씁쓸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 45장 - 달인 이찬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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