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48화 (148/250)

< 52장 - 거장 박무열 (2) >

마침내 <친절한 살인자>의 기술시사용 A프린트가 완성된 4월 중순 무렵, 이찬은 자신의 집에서 박준호와 김성대를 교육하던 중이었다.

“아······ 그렇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고생은 뭘. 너나 수진 씨가 계속 불려나오느라 고생했지.]

“저희야 뭐, 거장 박무열 감독님이 나오라고 하시면 당장 나가야죠. 제 커리어를 위해서기도 하니까요.”

[그래. 아무튼 기술시사 때도 편집이 끝난 게 아니니까, 날카로운 눈으로 또 많은 걸 지적해줬으면 좋겠어. 어디까지나 네 커리어를 위해서 말이야.]

“하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독님.”

대화를 마치고 돌아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두 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그거야?”

“칸 초청작 리스트 나온 거? 경쟁부문 확정?”

“······그건 17일이라고 했잖아요.”

“아, 아냐?”

“혹시 감독님한테는 먼저 연락이 오나 했지.”

“그럴 리가 있나요. 미리 알려져서 좋을 일이 아닌데.”

“그거야 그렇지만.”

김성대는 어깨를 으쓱이며 창가 쪽으로 돌아섰다.

“칸! 아······ 진짜 최고다. 10대에 칸을 밟는다니······ 상상이 안 돼. 얼마나 짜릿할까? 심지어 거기서 트로피까지 받게 된다면!”

“트로피야 감독님이 받으시는 거지, 인마.”

“그렇지만, 박 감독님이 이찬 선배 칭찬을 엄청 하시던데? 아마 같이 트로피 드는 세리머니 같은 거 하지 않으실까?”

“흠. 그럴까, 찬아?”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쓸데없는 데 신경 끄시고, 마저 연습하고 가세요. 전 또 일정이 있어서.”

“앗, 또 혼자 나가네.”

“어디 가는 건데? 우리도 데려가지.”

“3H 분들 뵈러 가는 거예요. 다음 작품 고르는 중인데 제 의견도 듣고 싶다고 하시네요. 두 분은 가봤자 병풍이죠.”

“아······ 신랄하네.”

“맞는 말이지 뭐. 그래, 우린 연습부터 해야지.”

나이에 맞게 어른스러운 박준호가 투덜거리는 김성대를 달랬다.

그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 뒤, 이찬과 염수진은 새로 매입한 하늘기획의 사옥을 향해 달렸다.

강남 외곽의 작은 빌딩이다. 그럼에도 매입에 50억 정도의 자금이 들어갔다.

목돈을 아끼기 위해 신축 건물의 몇 층 정도를 임대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건물 매입 쪽으로 진행됐던 것.

덕분에 소년은 팬들의 눈에 띄지 않고 편안하게 회의실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벌써 와 계셨구나. 제가 늦었네요.”

“어, 왔냐? 들어와라.”

홍주석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의자를 내줬다.

약속시간보다 30분도 더 전이기에 황상태도 현우정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고등형사>의 열연으로 충무로의 기대주가 된 이 중년만은 홀로 일찌감치 나와서 각본을 살피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사옥은 좀 둘러보셨어요? 편의시설은 아직 부족하긴 한데.”

“그런 건 관심 없다. 각본만 받으면 그만이지.”

“아, 예. 정말 철저하시군요.”

“······이 자식 말투 다시 바뀌었네. 야, 전에 그 고상한 척하는 그거 좋던데, 왜 계속 안 쓰냐?”

“그냥요. 촬영 끝나니까 좀 어색해져서.”

“뭐가 어색해? 영화 공개할 때까진 해도 되잖냐.”

“제가 어색하다는 거예요. 각본이나 볼래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게 이제 완전히 이찬 본연의 모습이었다. 홍주석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소년 쪽은, 각본에 집중하지 못한 채 홍주석의 지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크랭크업 때부터였지······? 그날 촬영 마치고부터, 이수가 너무 불편해졌어. 지나치게 몰입했던 탓일까. 그 마지막 씬에서 결과적으로 살인자가 돼버린 그 배역이······ 복잡하게 느껴져.’

작품의 제목인 <친절한 살인자>는, 마치 맥거핀(동기를 설명하며 작중에서만 중요하게 여겨질 뿐 극에서는 부수적인 장치)처럼 여겨지도록 의도했지만, 실제로는 최후의 스포일러.

친절한 성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이수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신주원’의 죽음을 선고한다.

그 스스로의 손으로는 단 하나의 상처조차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그렇기에 주인공은 ‘친절한 살인자’가 되고 만다.

그 판결에 다다를 때까지 눈밭을 구르고 무수히 자학하며 고뇌하는 것이 후반부 이찬의 시퀀스.

그 배역에 몰입한 시간들은, 이수를 받아들여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자 했던 소년에게 오히려 더한 혼란만을 안겨줬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문제······라는 거지. 중반부까지의 이수가 아니라 후반부 그 선택의 이수가, 마음에 쏙 들어버렸어. 그래서 당장이라도 형을 죽인 원수를 죽이고 싶어졌어. 이수는, 폐기야. 그건 안 돼. 오히려 대비효과 때문에 더 악의가 커져버릴 것 같아. 그러면 안 된단 말이야······.’

이수는 이찬보다 훨씬 더 선량한 인물이다.

신부와 수녀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자신의 감정을 누르려 한, 신성하고 고고한 캐릭터.

그런 그조차 반성하지 않는 신주원을 용서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니, 그에 다시금 몰입해본들 이찬 자신이 행복에 이르게 될 가능성은 낮다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보며 홍주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야. 너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내가 조언 좀 해줄까?”

“무슨 조언요?”

“잘 알려지진 않은 일화야. 어떤 유망한 감독이, 젊은 시절에 어떤 배우하고 크게 다툰 일이 있었어. 주먹다짐까지 갔었다고 하더라. 평소 두 사람의 성품을 생각하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이유가 뭐였는데요?”

“주식 추천을 잘못 해줬던 모양이야. 덕분에 감독은 신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거의 전 재산을 날려먹었는데, 배우는 자기도 속은 거라면서 적반하장으로 나갔다지.”

“흠. 주먹다짐 할 만도 하네요.”

“그리고 그 다음 작품에, 감독이 그 배우를 썼어.”

이해할 수 없는 반전. 소년은 황당해져 코웃음을 쳤다.

“뭐예요? 뭐가 그렇게 쉬워요?”

“쉽다······ 쉽지는 않았을걸. 그 주먹다짐 때 감독 아들이 몇 바늘 찢어지기까지 했다고 하니까. 실수였다곤 하던데, 어쨌든 내 새끼 다치게 한 배우가 예뻐 보였을 리 없잖냐.”

“······그러네요. 다시는 꼴도 보기 싫었을 텐데, 왜 자기 작품에 그런 사람을 쓰게 된 거죠?”

“그놈 연기력이 좋았으니까. 술만 안 먹으면 실수도 안 하는 사람이고,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놓치기는 아까운 배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나온 작품이 야.”

재차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에, 이찬이 기함했다.

“설마······! 박무열 감독님하고 임호준 선배님? 다쳤다는 아들은 박호암······.”

“아, 벌써 아들도 만나봤냐? 그래. 그게 두 사람의 역사야. 더럽게 불편하게 시작해서,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됐지. 그 작품 이후로 박 감독 영화마다 호준이가 까메오로 나가는 것도 그때 일이 미안해서라고 하더라.”

“······내치기 아까운 배우였겠다 싶긴 한데. 그런데 왜 그런 얘길 해주시는 거예요? 그게 무슨 조언이라고.”

“배역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아서 해준 말인데, 아니었냐? 용서와 복수, 그런 것 때문에 도덕적인 고뇌를 하는 줄 알았지. 마지막 시퀀스 얘기도 들었거든. 조연식 선배라서 스포일러 하지 말라고 화낼 수도 없었어.”

그거 참 곤란한 일이었겠다 생각하며,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들 몸에 생채기가 나게 만든 배우를 주연으로 중용한다라······ 참 쉽지 않은 일이었겠어.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조언이 될 리가 있나. 이쪽은 살인이란 말이야. 내가 용서해야 하는 건, 하나뿐인 형을 죽인 놈······. 박무열 감독님도 나랑 다르지 않을 거야. 매번 복수극 만드시던 분이고 결국 이수도 신주원을 죽게 만들잖아? 그걸 보면, 반성하지 않는 놈에겐 아주 무자비한 사람인 거지.’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에, 안정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찬아. 기술시사 전에······ 교도소에 가보지 않겠니.]

“교도소요? 제가 왜······ 예? 에이,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다. 윤대흥 형사를 살해한 범인, 김도철. 그 녀석을 내가 한번 만나봤어. 그리고······ 너도 한번쯤 만나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 만들어진 영화를 네 눈으로 보기 전에 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이찬은 생각했다. 그런 일 따위 하고 싶지도 않고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그는 속으로 뇌까렸다.

그렇지만 안정록의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왜······ 그러시는 건데요. 그놈을 만나서 뭘 어쩌라고요.”

[어쩌라는 게 아니다. 그저, 봐야 하지 않겠니. 직접 만나보고 나서 생각해야 되지 않겠니. 나 같은 늙은이가 뭐라고 떠들어본들 의미는 없겠지만······ 부탁하마. 내일, 같이 가자.]

“······진짜 쓸데없는 일이 될 겁니다. 시간낭비예요.”

[그래도 좋다. 그렇다 해도, 부탁하고 싶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간절하게 말하는 그 목소리에 담긴 건 50년의 세월. 그리고 발화의 주인공은 이찬이 지금의 톱스타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소년은 그 제안을 끝끝내 무시할 수 없었다.

다만 퉁명스레 조건을 붙이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제3자의 시선도 필요하겠다 싶네요. 바쁘신 박무열 감독님도 가신다고 하면, 저도 갈게요.”

[무열이? 그래, 좋다. 내가 설득하마.]

그리고 안정록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기술시사를 하루 앞둔 칸의 거장이, 영화계의 거목과 자라나는 대배우를 모시고 교도소로 이동하는 일에 동의했다.

*

“저는 뭣도 모르고 따라가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영광입니다. 대한민국 영화사를 만들어나가는 두 사람을 모실 수 있다는 점이요.”

박무열은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이찬이 보기에 그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영화를 점검했을 감독은, 작은 피로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위대한 거장 안정록을 모시는 길이라서 그런 걸까. 영화광이라서 안 본 작품만 찾아서 보는 이 감독님이 유일하게 여러 번 돌려본 작품이 안정록 아저씨 영화라고 했었지. 하여튼 매니아들의 독특한 취향은 알아줘야 해.’

소년 본인은 한 번 보는 것도 고역인 영화들이었다.

국제영화제들을 휩쓸었던 안정록의 작품들은, 마치 절간의 스님들이나 즐겨 볼 법한 고즈넉한 이야기들. 빠르고 격렬해야 잘되는 상업성 측면에선 거의 낙제점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마음의 온도가 죄인 김도철에 대한 인식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김도철은······ 아주 불우한 아이였다고 하더구나. 그가 어렸을 때에, 그 부모가 칼을 들고 서로를 죽이려고 들었다는 모양이다. 그 이후로 집을 나와 떠돌았다더라. 그러다 불량한 가출 청소년들 서클에 들어갔고, 나쁜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 다른 녀석들과 싸움도 많이 벌였던 모양이야. 폭력범이 된 게 그런 까닭이었고.”

“······안 궁금한데요.”

“이 녀석,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엄한 얼굴로 타박한 건 박무열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잘못된 동행자를 선택했음을 그때 깨달았다.

‘아, 젠장. 이 아저씨도 이런 식이면 완전 나가린데.’

이후 안양교도소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김도철이 수원에서도 유명한 꼴통이었던지라, 강력계의 핵심인 윤대흥 형사와는 구면이었다는 것. 몇 번은 그를 안쓰럽게 여겨서 유치장에서 꺼내주기도 했었다는 것 등.

그럴수록 이찬의 마음은 점점 거칠어졌다.

‘구면이었다고? 정말 답도 없는 개새끼네. 자길 도와줬던 사람을 칼로 찔러? 그런 새끼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어. 이수처럼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거야. 그놈이 출소할 때까지 완전범죄를 준비해서 확 죽여······ 죽이면······ 안 되지. 후우.’

복잡한 마음으로 도착한 교정시설은, 무려 63년도에 건축된 가장 오래된 교도소. 음습한 냄새 속에서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면회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사진으로만 봤던 얼굴이 나타났다.

이찬보다 겨우 일곱 살이 더 많을 터인 김도철은, 낮춰 잡아도 서른은 됐을 것처럼 보이는 노안이었다.

“아······ 누가 왔나 했더니, 또 오셨네.”

“그래, 나야. 그때 이후로 다른 면회가 없었어?”

“전혀요. 가족한테도 버림받은 걸 찾아줄 놈이 어디 있나.”

스스로를 사물처럼 지칭하는 말. 박무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이찬은 홀린 듯이 창을 향해 다가섰다.

“이리, 이쪽으로 와봐요. 내 얼굴 앞에.”

“어······? 뭐야, 유명하신 친구네.”

“날 알아요?”

“그럼, 알지. 요즘은 TV도 볼 수 있거든. 예전에는······ 수원교도소에서는 독방 처박혀서 뭐 하나도 못 봤지만, 여기로 이감되고부턴 가끔 봤지. 영화나 그런 건 못 보는데, 뉴스는 본다고. 뉴스에 나오던데? 천만영화······ 두 개······.”

“됐고, 이쪽으로. 더 가까이.”

“하하. 뭐야? 뭔 장난 같은 거야? 재밌네.”

소년의 눈은 장난을 치는 중이 아니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늙은 청년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반성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달라. 조연식 아저씨가 연기한 미치광이 살인마하고도 다르고, 죄책감 따위 전혀 없던 <유주얼 서스펙트>의 진범하고도 다르고······ 살인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저 무감정은, 저건 마치······.’

그 순간, 김도철은 기묘한 것을 목격하게 됐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유명 배우. 그 배우의 얼굴이 찰나 간에 변신하듯 여러 차례 바뀌었다.

경악한 노인이 됐다가, 분노한 청년이 됐다가, 오열하는 소녀가 되기도 했다.

‘와, 뭐야? 뭐가 저러나. 배우들은 다 저러나? 외계인 같네. 변신 외계인, 쿠와아······.’

그러나 배우는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잘생겼지만 무척이나 불만이 많은 듯한 소년이 되어,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며 입을 열었다.

“젠장······. 김도철, 당신······ 수원교도소에서 독방 처박혔었다는 거, 자살기도 때문에 그랬던 거지?”

“갑자기 반말이네. 맞긴 한데.”

“행복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개새끼네. 맞지?”

“이 씹새끼가, 하핫? 야, 개새끼는 맨날 행복하던데?”

“그러니까······ 너, 윤대흥 형사를 죽인 게 아니지?”

“어? 아, 씨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꼰대.”

“닥치고 설명해. 뭐야. 어떻게 됐던 거야.”

소년은 눈동자로 울고 있었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없었지만, 김도철은 어째선지 그 감정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배우의 힘인 걸까 생각하며 그는 떠들었다.

“형사들한테 쫓기고 있었는데, 좆같더라고. 뭘 굳이 도망치면서 살아야 되나······ 살아남는다고 반겨줄 사람도 없는데. 그런 생각 들더라고. 그래서 내가 자살하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달려들었지. 씨발, 좆같은 새끼. 멍청하게 죽겠다는 놈 살리겠다고 뒹굴다가 칼 찔리기나 하고. 그래서 팽개치고 도망치다가 다른 형사도 때렸는데······ 난 걔가 뇌진탕 일으켰을 줄은 몰랐어. 걔가 금방 일어나서 응급차 부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도망쳤는데, 죽었다 그러데? 씨발.”

“······미친 새끼야.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어?”

“뭐 하러? 어차피 죽을 건데, 살인자로 죽나 폭력범으로 죽나 상관없잖아? 그리고 씨발, 남은 가족들이 미워할 사람은 있어야지.”

“뭐······?”

“미워할 사람. 난······ 야, 꼬마야. 난 우리 엄마가 아빠를 죽였어. 그게 왜였냐 하면 술 먹고 도박해서 돈 탕진해서였고. 그러면 씨발, 난 좆같지 않겠냐? 아빠 죽인 년이 엄마야. 씨발, 미워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고. 그러면······ 씨발 좆같다는 거지. 그냥 나 미워하라 그래. 내가 죽인 걸로 하자.”

거기까지 듣고, 이찬은 자리에서 일어서 면회실을 나섰다. 안정록이 급히 따라가 복도에서 그를 붙잡았다.

“너도, 봤지? 저 녀석,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아.”

“······그래요. 그래서, 이걸 들려주시려고 부르셨다······?”

“처음엔 많이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네게 알려줘야 할 일이 맞는지도 혼란스러웠어. 저 녀석 말대로, 진실을 모르는 게 더 편할 테니까. 하지만······ 언제가는 알게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니까. 넌, 보면 아는 아이니까. 그리고······ 저놈이 예전의 널 닮았으니까.”

무감정하게 전달된 김도철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리고 안정록의 판단 역시 정확한 것이었다.

“찬아. 내가 괜한 짓을 한 걸까 걱정도 된다만······ 알아다오. 복수라는 게, 증오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그걸 다시 한 번 생각해다오. 할 수 있잖니? 그럴 수 있는 아이잖아?”

안정록의 눈을 바라보고, 그 뒤를 따라 나온 박무열의 얼굴까지 본 뒤에, 소년은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터널 같은 교도소의 바깥을 향해서.

< 52장 - 거장 박무열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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