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51화 (151/250)

< 54장 - 가드 김도철 (1) >

김도철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춥네······ 추워.’

감방은 춥다. 심지어 여름에도 오전에는 무척 서늘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도시의 열기와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다는 점, 높다란 담벼락으로 인해 대낮이 아니면 햇빛이 사동에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두텁게 만들어진 벽과 작은 채광창으로 인해 외부의 열이 잘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 등.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다.

따스한 인간의 온기를 느끼기 어려운 좌절의 공간. 그곳에서는 가장 정열적인 사람조차도 이내 마음이 식어버리고 말 터였다.

그리고 김도철이라는 사내는, 사회에 있을 때조차도 의욕 없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살면 뭐 하나. 인생 다 좆같은 거. 어디서 좀 쉽게 죽을 만한 방법 안 나오려나. 출소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든데. 지금이라도 싹싹한 척 굴면서 모범수를 노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무렵에, 교도관이 그가 있는 사동의 문을 두드렸다.

“1620. 나와.”

자신의 수인번호. 김도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나오라면 나와.”

용건도 없이 무조건 나오라고 하는 막무가내에 황당해졌지만, 거부권은 없다. 수갑을 차고 고즈넉한 아침의 교도소를 걸었다.

그 종착지는 교도소장의 집무실이었다.

“갑자기 소장 호출? 뭡니까 이거?”

“닥치고 들어가. 너희······ 얘 수갑 풀고, 너희가 붙어.”

경비교도대 두 명이 김도철을 끌고 소장실에 들어섰다.

그 직후에, 김도철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늘 수용자들을 경멸하듯 쳐다보던 흰머리의 소장이, 그를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것.

“아, 김도철이. 어서 와라.”

“······왜 이래요? 속셈이 뭔데?”

“어흠. 거, 아직도 교화가 덜 됐구만. 이쪽에 앉혀라.”

소장의 앞쪽 소파에 앉자, 그가 외산 담배를 꺼내들었다.

“한 대 피우겠어?”

“좋긴 한데요, 별일이네. 진짜 별일이야.”

그 별일의 이유를 알게 된 건, 소장이 읽고 있던 일간지를 그의 앞 테이블에 던져준 뒤였다.

일면에 커다랗게 삽입된 사진 속 인물이 낯익었다.

한 달 전, 그를 접견하기 위해 찾아왔던 인물 중 하나였다.

「 대한민국의 배우 이찬, 칸을 점령하다

칸 남우주연상, <고등형사>의 이찬······ 박무열 <친절한 살인자>는 황금종려상

오덕환 <고등형사> 각본상 수상으로 전례 없는 3관왕의 주인공이 된 이찬

동양의 천재가 칸 국제영화제의 역사를 새로 썼다. 21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58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배우 이찬(17)이 3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세계 영화사 최초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친절한 살인자>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박무열(43) 감독 역시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찬은 단독주연으로 출연한 <친절한 살인자>의 황금종려상과 <고등형사>의 각본상, 그리고 <고등형사>의 ‘백이한’ 역으로 수상한 남우주연상까지 총 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껏 하나의 영화가 기술상이나 음향상을 포함해 여러 개의 트로피를 받은 사례는 있지만, 한 배우가 여러 작품으로 칸 경쟁부문의 주요한 3개 부문을 휩쓴 일은 유례가 없다.

심사위원장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은 “이견이 없는 결정이었다. <친절한 살인자>는 올해 최고의 발견이다. <고등형사> 역시 유력한 심사위원상 후보였지만 작은 차이로 밀려났다. 그러나 각본상 시상에는 단 한 명의 이견도 없었다. 두 감독과 한 주연이 심사위원 모두에게 가장 강렬한 영감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이날의 수상소감은 수상작 선정 이상으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박무열은 황금종려상 수상소감을 통해 이찬의 매니저로 알려진 인물을 공동작가로 거론하며 “그녀가 없이는 친절한 살인자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바통을 이어받은 이찬 역시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인간을 용서한다. 죽지 마, 나의 원수”라고 말해 기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렇지만 폐막식 직후에 진행된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그 사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

거기까지 읽고 나서, 김도철은 소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지만 곧바로 입을 열어 아는 척할 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당황해서 입술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은 까닭에.

‘가장 소중한 사람······ 짭새 윤 씨? 그럼······ 용서한다고 한 건, 나? 이 자식이, 완전 제멋대로 말하네? 죽지 말라고? 나보고 한 말이야? 와, 어이 털리네. 이 새끼는 지가 죽지 말라고 하면 내가 예 알겠습니다 할 줄 알았나? 참나. 하하, 참.’

그렇게 속으로 웅얼거렸지만, 그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

그 변화를 확인한 소장이 마침내 씩 웃었다. 그리고 교도대원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하······ 참 신기한 일이야.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았던 것 같구만. 이게 김도철이 네 얘기였던 거야. 그렇지? 네가 죽인 형사가 이 배우의 친인척이었던 게지. 내 말이 틀렸나?”

“······몰라요 그딴 거.”

“어흠. 인마, 그러지 말고 털어놔봐. 이 꼬마랑 어떤 관계였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고? 그걸 알아야, 나도 네 편의를 좀 봐주든가 할 거 아니야?”

“필요 없거든요?”

그쯤에서 소장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극도의 인내력으로 좋은 말을 이어갔다.

“크흠. 야, 인마. 너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이 칸이라는 게 굉장히 유명한 거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신문 1면에 딱 실린 게지. 3관왕이라는 게 대상 탄 감독보다도 더 화제가 될 만한 일인 거라고. 그럼, 혹시라도 누가 알면, 어떻겠냐? 이찬이 용서한 죄수가 있다고 해서 우리 교도소에 엄청 시선이 몰리게 될 거 아니야.”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때 면회 왔던 거 아는 교도관들만 입단속 하시면 될 걸요.”

“정말이야? 아무도 모르는 게 맞아?”

“아, 모른다고요. 걔가 어디 가서 뭐라고 떠들었을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하, 나 원 참. 넌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냐? 인마, 상황을 알아야 내가 뭐라도 챙겨줄 수 있다니까?”

그때쯤 담배를 필터 앞까지 빨아들인 김도철은,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걸 재떨이에 비벼 껐다.

“전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습니다. 신경 끄시죠.”

“뭐? 이 자식이······ 그래, 이 새끼야. 신경 끄마. 야! 들어와서 이 꼴통 데려가!”

그렇게 벌컥 화를 낸 소장이었지만, 이후 김도철의 대우는 크게 달라졌다.

무슨 특별지시가 내려온 건지 교도관들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사동 내에서도 각종 특혜를 제공받아, 그가 수용된 감방에는 영치금도 쓰지 않았는데 각종 사제 물품이 줄줄이 들어오곤 했다.

개중에 캔 음료가 있었다.

잘 찢어서 면을 펴면 손목의 동맥을 자르기에 충분할 만큼 날카로워지는.

밤중에 창가에 앉아 그 캔을 만지작거리며, 김도철은 생각했다.

‘편하게 죽을 수 있게 됐으니까 참 고맙긴 한데······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 새낀 도대체 뭐 하는 새끼지? 말하는 꼬라지 보면 그 짭새랑 되게 친했다는 건 분명한데······ 근데 용서한다는 건 또 뭐야? 씨발, 당장 죽으라고 저주를 했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용서. 그건 김도철이 평생 받아보지 못한 선물이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서도.

부모가 서로에게 식칼을 들이댄 끝에 그의 모친이 부친을 살해한 날, 김도철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도박장 근처에서 부친을 봤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 바로 어린 김도철이었기에.

스스로의 유일한 안식처를 깨부순 것이 그 자신이었기에, 그는 세상을 욕함으로써 자신을 저주하며 살아왔다.

그런 김도철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칸인지 깐느인지 하는 어마어마한 대회에서 우승 같은 걸 한 꼬마가, 수상소감으로 그에게 죽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수처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게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영화 얘기겠지. 그럼······ 좀 궁금하긴 하네.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영화 정도는 보고 나서 죽는 게 어떨까? 아니 너무 억울하잖아. 날 멋대로 용서했다는 그 새끼가 대체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도 모른 채로 죽어버리면 말이야. 그러면······ 씨발, 진짜 모범수라도 돼야 하나······?’

그날 이후, 김도철은 성실해졌다.

다른 수감자들과의 싸움도 없어졌고, 노역에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임해 교도관들의 눈길을 샀다.

그 이후로 또 종종 소장의 호출이 있었다.

“요즘 너 하는 게 참 보기 좋다. 그렇게만 해라. 네가 얌전히 있어만 주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여다 줄 테니까. 그래, 담배 땡기지? 여기, 이거 피워라. 마음껏 피워.”

다른 수감자들이 보면 무척이나 부러워했을 호사를 누리며, 김도철은 소장이 구해다준 영화잡지들을 읽었다.

그중 대다수가 이찬과 그 주변을 조명하고 있었다.

「 이찬, 세계를 주목시킨 수상소감

2005년 5월은 세계 영화인들에게 영원토록 기억될 시기임에 분명하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5월 20일 백상예술대상의 남우주연상으로 <주룩주룩>의 강정후가 호명될 때까지만 해도, 두 개의 작품으로 칸에 입성한 소년배우 이찬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그저 박무열 감독의 황금종려상만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찬은 그 이상의 성과를 이뤘다. 주연한 두 작품을 경쟁부문의 주요한 상에 올려놓은 채, 그 스스로는 영화사에 유례가 없는 액션을 선보인 <고등형사>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남우주연상까지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수상소감이 세계를 주목시켰다. <친절한 살인자>에서 원수를 사랑하려 애쓰다 종내 실패하는 ‘이수’ 역으로 평단을 환호시킨 이찬은, 그 이수와는 달리 자신의 원수를 용서할 것이며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통해서, 이수가 아닌 이찬의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에서도 그 대상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전 나라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이군영일 것이라고. 배임과 횡령으로 복역 중인 이군영은 이찬을 처음으로 발굴한 인물이며, 나라엔터 소속으로 <가을하늘>과 <미스 스캔들>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3년 동안 소년은 더 이상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가 다시 <어사>와 <684>로 날개를 펴기 시작할 무렵에 이군영의 범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일견 합리적인 의혹이다.

익명의 네티즌은 이찬이 지난 4월 중 한 교도소에서 살인범을 접견했다는 내용의 댓글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아이디를 삭제했기에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

소장이 빠르게 손을 썼군- 김도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보신주의의 총화 같은 인물이라는 경멸과 함께.

「 이찬은 현재 모든 미디어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매니저와 유럽을 여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국내에 개봉한 <친절한 살인자>의 어떤 시사회에서도 그를 만나볼 수 없었지만, 해당 영화는 칸 영화제의 화제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기대 이상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10일 만에 400만 관객을 달성하며 역대 최고의 흥행스코어를 써나가는 중.

다만, 작품의 결말을 주연 본인이 누설한 수상소감으로 인해 영화팬들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하다. 현재 인터넷 영화사이트 <봉씨네>에는 “친.살 불매운동하자! 이거 잘되면 앞으로 주연들의 스포를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etk*****)” “실패한 이수 이야기는 됐고 이찬 배우님 네 썰이나 좀 풀어줘요(788*****)” “내 가장 소중한 작품을 스포일러한 이찬을 용서합니다(KKI*****)” 등의 게시물이 수천 개의 추천으로 공감을 사고 있다. 」

그 대목에서는, 김도철조차 킥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

화제의 <친절한 살인자>가 9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네 번째 천만영화를 목전에 둔 6월 30일.

히죽거리고 웃는 김도철을 보며, 이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웃어요?”

“흐흐. 그냥 웃겨서.”

“뭐가 웃긴데요?”

“지금 상황이. 야, 너 어제 귀국했다며? 그래놓고 GV 한 번 하고 나서 다른 일정은 전혀 안 했다던데. 그런 주제에 짬 내서 안양까지 내 얼굴 보러 온 거냐?”

“남이사······ 아니, 뭐 그렇게 빠삭해? 여기 감옥 맞아요? 인터넷기자라고 해도 믿겠네.”

“그럴 수밖에 없잖냐. 방금 전까지 신문 읽고 있었는데.”

영화의 상영이 한 달째에 이르렀을 때에 귀국한 이찬은, 다시 한 번 미디어의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인터뷰에 나서서 화제 속 수상소감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더운 날씨에도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한 채 교도소를 찾았을 뿐.

“흥. 팔자 좋으시네요. 한국 참 좋은 나라야.”

“뭐······ 그런 걸로 하자. 왜 왔냐?”

“왜 왔는지 짐작 안 돼요? 잘 살고 있나 보러 왔죠.”

“잘 살고 있는 거 보니까 어떠냐?”

“괜찮네요. 다행히 계획에 차질은 없겠어.”

김도철은 이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직 17세라고 했지만, 이미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듯한 얼굴과 골격. 유럽에서 햇볕 좀 쬐었는지 살짝 그을린 피부까지 더해 배우의 품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담담한 행동에는, 일종의 경외감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김도철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계획이고 뭐고 모르겠고, 너 좀 작작해라. 좆같은 꼬맹이가 살아라 어째라 요구가 너무 많아. 그건 내 마음이야.”

“그쪽 마음에 관심 없고, 운동 좀 해둬요.”

“운동? 내가 왜.”

“출소한 뒤에 내 가드로 일하려면, 몸이 좋아야 되거든요.”

기약 없는 미래에 제시된, 김도철 인생 최초의 초대였다.

< 54장 - 가드 김도철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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