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장 - 가드 김도철 (3.) >
김도철이 이상함을 느낀 건, 차에 올라탄 직후부터였다.
“앞에 타요, 형. 같이 앉기 싫으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조수석에 앉아 운전석을 쳐다봤을 때.
매니저인 듯한 젊은 여성이,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사람처럼 경악한 얼굴로 뒷좌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흡, 어흠. 네, 안녕하세요. 찬이 매니저 염수진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우리 법정에서 봤죠?”
“예? 그랬나······?”
“네, 네. 찬이가 시켜서 보러 갔었는데, 의외로 감동적이었어요. 짭새- 아니, 윤대흥 형사님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신 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변명하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듣다가 눈물 나서 혼났어요.”
“······아 예.”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여 보였을 때, 뒷좌석의 이찬이 투덜거렸다.
“아, 좀 가죠? 바빠 죽겠는데. 회사도 들러야 돼요. 그러니까 김도철 형은 안전벨트나 좀 매시고.”
“······근데 김도철 형이 뭐냐? 도철이 형이라고 하든가.”
“그것까진 싫거든요? 반말 안 하는 걸 감지덕지 하세요.”
“아, 그러냐.”
답한 뒤에 벨트를 매며 다시 옆을 돌아봤을 때, 김도철은 또 보게 되었다.
경악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염수진의 얼굴을.
‘왜 저래? 일상적인 대화인데······ 아, 생각해보면 이 녀석 잡지에서 볼 땐 엄청 착한 놈 같던데. 혹시 평소에도 그런 순둥이인데, 내 앞에서만 이상하게 까칠하게 구는 거? 그래서 매니저가 놀랐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하지만 그 판단은 오산이었다.
이후 강남 인근의 하늘기획 사옥에 도착한 뒤, 김도철은 이상한 기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제 경호원으로 일할 김도철 형이에요.”
“뭐······? 형? 친형이야?”
“뭐래. 그냥 아는 사람이요. 급료는 제가 개인적으로 지불할 거고, 이후로 일거수일투족 따라다닐 거니까, 수진 누나가 전화 안 받을 땐 이 형한테 연락하시면 돼요.”
“어······ 이 형이라고······?”
시원하게 머리를 밀어버린 장년이었다. 거뭇거뭇 남아있는 모근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아마도 원형탈모로 인해 억지 삭발을 하게 된 듯한 남자.
그가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흐음. 반가워. 정창영이라고, 이 회사 대표야.”
“예. 김도철입니다.”
“찬이랑은 무슨 사이야?”
“예?”
“아니, 원래 알던 사이 같아서. 친하던 사인가?”
“안 친한데요.”
“그래? 그럼 왜-”
“아 좀 그만하세요. 저 바쁘다고요.”
“어, 그러냐. 미안 미안. 그럼, 또 보자고 도철 씨.”
“예······.”
그 대화로 김도철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자신이 형사 윤대흥을 죽인 혐의로 복역하다 방금 막 출소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직 로드매니저 염수진뿐.
회사 대표조차 그저 개인적으로 뽑은 경호원 정도로만 알고 있는 듯했다.
그에 더해, 이찬이라는 소년은 어지간해선 ‘형’이라는 호칭을 잘 안 붙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형 소리만 나오면 다들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거겠지. 희한하네. 일반적으론 친근해서 붙이는 호칭인데, 그걸 얘는 원수한테만 쓰는 건가?’
자기가 생각하고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추론이었다.
일단 판단을 유보한 김도철은, 이찬이 직원들로부터 대본을 수령해 살펴보는 동안 멀거니 서서 사무실을 구경했다.
‘깔끔하고 좋네······. 밖에 하늘기획이라고 크게 붙여놓은 거 보면 이게 다 회사 소유인 모양인데. 건물 위치도 좋고, 3층짜리고. 이런 건물은 얼마나 하려나? 한 10억 하려나?’
거기까지 생각할 무렵에 이찬이 고개를 돌렸다.
“50억짜리예요.”
“어? 어······ 건물? 뭐냐? 독심술도 하냐?”
“티 나게 둘러보고 있던 주제에 뭔 독심술까지 바래. 됐고, 이거나 들어요. 이제 내려가요.”
“어······ 경호원이라며? 보디가드가 뭔 짐을 들어?”
“싸움 잘해요?”
“좀 하지.”
“나보다?”
“뭐 이 시발아. 한 판 뜰까?”
“아서요, 뒈지게 맞기 싫으면. 빨리 들어요. 운동 하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했죠? 쪽팔려서 어디 데리고 다니겠나. 집에 운동기구 많으니까 그걸로 몸 키워요. 그래야 길막이라도 시키지. 숙식은 책임져줄 건데, 급여는 딱 일한 만큼만 드릴 겁니다. 수진 누나! 이제 가요!”
길막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대화 뒤에는 또 생각이 복잡해졌다.
‘뭐지 이 자식? 말은 싸가지 없이 하는데, 욕을 해도 화를 안 내네. 진짜 내가 안 밉나? 진심으로 용서를 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로 한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 손으로 직접 찌르지 않았을 뿐, 김도철은 윤대흥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
모르긴 몰라도 그와 가까운 사이였을 이찬은 자신에게 악감정을 잔뜩 품고 있어야 마땅했다.
그게 김도철이 아는 세상이었다.
악의와 경멸과 복수와 폭력만의 세계관.
가정 내에서 호의란 것을 받아본 적 없는 청년에겐, 이찬이 하는 모든 행동이 그저 이상하게만 보였다.
“흠······. 야. 가면 그 영화 있냐?”
“무슨 영화요?”
“친절한 뭐시기.”
“<친절한 살인자>야 DVD로 갖고 있죠. 왜, 보고 싶어요?”
“어······. 칸에서 대상 받았다길래, 궁금하네.”
“형 같은 사람한텐 별로 재미없을걸요. 그래도 보고 싶으면 봐요. 오늘은 이제 스케줄 없으니까.”
거기까지 대화하며 막 층계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던 소녀 한 명이, 이찬을 보고 마구 소리를 쳐댔다.
“이카안!”
“······아, 시끄러. 똑바로 안 불러요?”
“이츠칸?”
“이찬.”
“이크찬. 어디 가? 옆에 분은 누구?”
“내 경호원이요. 인사해요, 형. 알죠? 드라마스타 정신혜.”
김도철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찬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알게 된 인물.
정신혜라고 하면, 그가 경호해야 할 대상과 5년간 열애한 끝에 최근 결별하게 된 소녀였다.
“음, 반갑다.”
“인사 제대로 하시죠? 이제 한 식군데. 김도철 형이에요.”
“······형?”
얘도 놀라는 포인트가 똑같네- 멋쩍게 뒤통수만 긁는 김도철 대신, 이찬이 정신혜를 옆으로 밀어냈다.
“바쁘니까 할 말 있으면 전화로. 형, 안 따라오고 뭐 해요?”
“어, 어.”
쫄래쫄래 거구의 소년을 따라가 조수석에 오른 뒤, 김도철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쟤랑 너랑, 깨진 거 아니냐?”
“깨졌죠. 왜요?”
“사이가 좋아 보여서······.”
“헤어지면 사이가 안 좋아져야 되나? 편견이에요.”
세상의 편견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일들에 붙는 법.
별다른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하는 이찬이 김도철에겐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소년은 몇 분 뒤에 전화를 받았는데, 그 대화 역시 기묘했다.
“또 뭔데요? 아······ 아니. 아 좀 그만 놀리죠? 짜증나네. 독립영화가 뭐 어때서? 잘할 수 있거든요? 아······ 안다니까요? 저도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요. 진짜라고. 최고의 작품으로 고를 거라고요. 예? 봐줘요? 작품 보는 눈 더럽게 없는 분이 뭘 봐줘요? 아······ 선배가 제일 재미없는 거 고르면 잘된다고요? 그래서 고른 게 <달콤한 꿈>이셨다? 예? 안 팔릴 거 알고도 출연한 거라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끊어요.”
“칸아 칸아! 혁수 오빠야?”
“칸 아니고, 그 선배가 왜 누나 오빠예요?”
“헤헤.”
“운전에 집중하시죠?”
매니저 염수진은 이내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김도철은 다시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
“조혁수면, 너랑 되게 친한 배우 아니냐?”
“그렇다고 하네요. 친형제 같은 사이라나.”
“남 일처럼 말하네. 그런데 형이라곤 안 부르냐?”
그 말에 염수진이 귀를 쫑긋 세우는 게 느껴졌다. 말을 안 했을 뿐 그녀 역시 무척 궁금한 포인트였던 모양.
그리고 이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나한테 형은 두 명뿐이에요. 그 외엔 그냥 남.”
“두 명뿐이라고?”
“원래 한 명이었는데!”
염수진의 낮은 외침까지 듣고 나자, 김도철은 아연해졌다.
“원래 한 명이었으면, 혹시 짭새?”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면 피떡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존나 무섭네. 그럼 난 뭐냐? 내가, 너한테 남이 아니라고?”
“아니죠. 어떻게 남이 돼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원순데. 그러니까 특별대우를 해주는 거예요.”
“특별대우가 형이라고 부르는 거냐?”
“불만 있어요?”
“아니, 불만은 없고.”
다만 이해할 수 없어서 머리가 지끈거릴 따름이다.
여의도까지 가는 동안, 김도철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이후 염수진이 모는 차량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고층 신축 아파트로 접어들었다.
거의 40층은 될 듯한 높이에 눈이 다 아찔해졌다.
“와······ 여기 엄청 비싸겠는데. 좋냐?”
“생각보다 조망이 별로예요. 새집 냄새도 좀 있고.”
“새집 냄새가 뭐냐?”
“그런 게 있어요. 들어가 보면 알아요.”
그 말을 듣고 궁금해 하며 들어섰지만, 김도철은 새집 냄새를 맡을 틈도 없이 혼란에 빠졌다.
그곳은 그가 살아봤거나 방문해본 어떤 집과도 달랐다.
당장 누워서 잠들어도 될 것처럼 세련된 복도, 자전거 세 대는 들어갈 법한 엘리베이터, 평생 본 적 없는 전자동 도어락, 그리고 축구를 해도 될 법한 너른 거실까지.
김도철은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또 물었다.
“야······ 씨발, 조망 좋구만 왜 별로래?”
“반지하에서 새우잠 자던 형한테나 그렇겠죠.”
“흐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냐? 좀 썰렁하네.”
“썰렁한 거 좋아해요. 방은 저쪽에서 아무 데나 골라잡고.”
“흠······. 야. 잠깐 나 좀 보자. 할 말 있어.”
“바빠서 다음에. 영화나 보고 있든가. 저기 DVD 있어요.”
“이 새끼가 진짜.”
이찬은 대답 없이 종이 뭉치를 뺏어들고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그중 어딘가에 그의 방이 있는 모양이었다.
얼이 빠져서 빤히 보고 있자, 염수진이 슬쩍 목소리를 냈다.
“흠 흠. 저도 여기서 같이 살아요.”
“예? 어······ 여자 분이?”
“화장실도 다 따로 있고, 제 방은 문 항상 잠가두니까, 이상한 생각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안 해요, 그딴 거.”
“흠 흠. 그럼, 저도 이만.”
그렇게 간략한 동거 설명을 들은 뒤, 김도철은 결국 웃어버리고 말았다.
‘별 희한한 인간들 다 보겠네. 그래도 시간 있을 때 사과나 해두려고 했는데 듣지도 않고······. 씨발, 나 또 자살하면 어쩌려고 저렇게 무관심해? 아, 모르겠다, 영화나 봐야지.’
*
밤이 깊을 무렵에야 독립영화 시놉시스의 검토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이찬은, 거실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흠칫했다.
‘뭐야? 뭐지? 귀신인가? 도둑인가?’
바람 새는 소리에 더해 뭔가 부스럭거리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흐느끼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덩치 좋은 소년조차 그 상황에선 긴장하며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살펴본 거실에는, 김도철이 앉아 있었다.
“흑······ 큼. 씨발놈이, 반성을 안 하냐······ 개새끼.”
누굴 보고 중얼거리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TV에 비친 얼굴은 조연식의 것이었으며, 그 차림새는 <친절한 살인자> 촬영 내내 지겹도록 본 의상.
김도철은 영화의 마지막 씬을 보며 울고 있었다.
“······어이, 형.”
“엇? 아······ 씨발. 뭐야. 소리도 안 내고 다녀.”
“눈물은 천천히 닦으시고, 할 얘기 있다면서요? 뭔데요?”
“눈물 아니다, 씨발. 흥.”
아무리 봐도 눈물이었지만, 이찬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김도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파 끝자리에 앉았다.
“할 말 해요. 그거 듣고 자야 되니까. 내일은 일정이 많아요. 형도 바빠질 겁니다. 돈 주는 만큼 부려먹을 거니까.”
“흥. 너한테 짭- 그, 윤 형사는, 뭔데? 어떤 사이였냐?”
“아빠 같은 사람이었죠. 형이라고 부르랬지만.”
“······그랬냐.”
“그래서 그쪽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저 영화 찍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사람 만들려고요. 자살 안 할 사람으로.”
“그 형사도 그랬는데. 귀찮게 들러붙으면서, 야 세상 살 만하다, 내가 있잖냐, 나 믿고 일단 기술부터 배워라······.”
“······개새끼. 그 말을 들었어야죠.”
“흥. 근데······ 미안하다. 그 사람, 죽게 만들어서.”
이찬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 54장 - 가드 김도철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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