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64화 (164/250)

< 58장 - 소녀 송유리 (2) >

먼저 다가간 건 이찬이었다. 그는 희열 속에서 곧장 걸어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소녀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 야! 거기 서!”

“찬아? 야, 어디 가! 저기, 도철 씨.”

“아······ 귀찮게 진짜.”

차 문에 기대 서서 담배를 빼어 물던 김도철이 황급히 이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5초가 채 지나지 않아, 소녀를 따라잡은 이찬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게······ 너 왜 도망치냐?”

“쫓아오니까요. 이거 놔요.”

“너 나 몰라?”

“아는데 왜요.”

“아니······ 날 아는데 왜 도망쳐? 쫓아오진 못할망정.”

“내가 왜요. 이거 놓으라니까요?”

조그마한 아이였다. 이제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작은 몸에,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귀엽게 묶은 평범한 소녀.

그렇지만 하는 행동이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배우도 아니고 이찬이다.

팬들은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오대산까지 찾아오는 톱스타를 보고 도망친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이찬은 그 스스로가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 그렇기에 일부 해괴한 행동 정도는 이해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태도 따위가 아니기에.

“너, 이름이 뭐야?”

“아저씨는요?”

“뭐? 나 안다며?”

“유명한 사람이면 자기소개도 안 하고 막 붙잡아도 되나?”

“······나참. 이찬이야. 넌 이름이 뭐냐?”

“송유리요. 이제 놔주실래요?”

이름을 말하는 태도에 거짓의 징후는 없다. 그걸 확인하고 손을 떼자, 소녀는 다시 달아나려 들었다.

그렇지만 곧 김도철에 허리께에 머리를 박았다.

“읏······ 아, 씨.”

“이 꼬맹이, 왜 자꾸 도망가냐? 너 뭐야? 소매치기야?”

“아니거든요? 아저씬 뭔데요?”

“나? 이찬 경호원.”

“그럼 경호나 하시죠? 저 바쁘거든요?”

“와······ 참 별난 꼬마네. 야, 찬아. 얘 뭐냐? 아는 애야?”

그 질문을 듣고, 이찬은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김순영 형사가 그렇게 질문했었지. 그때 형은 뭐라고 했더라? 좀 알아, 그랬나? 그냥 알아, 그랬나?’

따스한 추억. 어린 소년은 그날 생애 처음으로 부모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알게 됐다.

비록 시작하는 상황의 느낌이 좀 다르지만, 이찬은 자신 역시 소녀에게 그런 존재가 돼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좀 알아요. 차로 데려와줘요, 형.”

“그래도 되냐? 이거 혹시 납치 아냐?”

“납치다! 납치범이다!”

“이 꼬맹이가? 야, 이 대낮에 뭔 납치야? 너 쟤 모르냐?”

“모른다고 하면 놔주는 거죠?”

“그건 아니고. 나야 돈 받으니까 시킨 대로 해야지.”

“이 자본의 개!”

“응? 하핫, 이 꼬맹이 봐라? 어디 개한테 물려봐라.”

낄낄거리는 개에 의해 차 뒷좌석에 집어넣어진 소녀는, 분기탱천한 얼굴로 옆자리의 이찬을 노려봤다.

그 표정을 살피며 이찬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묘하네. 나 같은 애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는 게 어째 빤히 보여. 나랑 동류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마음을 감추는 데 누구보다 익숙해야 할 재능으로 이렇게 본심을 다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이내 시선은 소녀의 행색으로 옮아갔다.

‘깔끔하게 다려진 옷에 책가방. 초등학교는 방학일 테고 학원 다녀오는 길인가? 이상하네. 나 같은 애라면 학원 따위 다닐 이유가 없는데······. 아니, 아니지. 꼭 나하고 전부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지. 보이는 걸 따라하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머리까지 좋지는 않을 수도 있어.’

거기까지 생각한 시간은 짧았다. 이찬은 소녀가 뭐라 불평을 말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얘. 너 연기 해볼래?”

“아니요.”

터무니없이 빠른 거절.

하지만 이찬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 자신이 윤대흥을 상대로 연기 같은 거 안 할 거라며 뻗댔던 경험이 있으니.

“그래, 하기 싫을 수도 있지. 다른 걸 더 하고 싶을 수도 있겠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수도 있겠고. 근데 그렇게 딱 잘라 말할 필요는 없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거든. 분명히 연기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관심 없거든요?”

조금 이상한 건, 표정에서 드러나는 소녀의 마음이 불쾌보다는 공포 쪽에 더 가깝다는 점.

이찬은 그 반응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날 모르는 게 아니라면 공포 같은 감정이 나올 리가 없는데? 무엇보다 난 지금 감정을 감추고 있지 않아. 그러니까 순수하게 호의로 하고 있는 말이란 걸 알 수 있어야 정상인데- 앗, 또.’

정상이 아닌 듯한 소녀는, 이찬이 말이 없는 틈을 타서 차 문을 열고 도주하려다 팔목을 붙잡혔다.

“이······! 죄송한데 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겠어. 너한테 확인할 게 좀 있거든.”

그 말에 소녀의 얼굴 위로 더 큰 공포가 번져갔다.

“아니······ 저 진짜 가야 되거든요? 학원 늦었어요.”

“무슨 학원인데?”

“속셈학원이요.”

“문제 맞추면 보내줄게. 8241 빼기 1522는?”

“응? 6719요. 이제 놔주세요.”

“······머리는 분명히 좋은 것 같은데. 이상하네.”

여전히 손을 놓아주지 않는 이찬을 보며, 극에 달한 공포 속에서, 소녀는 이제 숫제 짜증을 냈다.

“제발 좀요! 난 그런 거 아니니까, 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게 뭔데?”

“아저씨 같은 거 아니라고요!”

“나 같은 게 뭔데?”

“괴물 같은 거 아니라고요!”

“······아하.”

그제야 이찬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가 두려워하는 게 이찬이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는 그와 가까워지며 자신의 비인간성이 드러나는 것을 최악의 가능성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이찬은 지금껏 오랫동안 자신과 비슷한 재능을 찾아왔다.

만약 한 명이라도 그런 이를 찾아내 제자로 들인다면, 이후의 플랜이 몇 만 배는 더 쉬워질 것이기에.

비록 이찬 사단을 꾸리고는 있다지만 그들은 한계가 있다.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온 남태형처럼 극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 이상, 극의 중심에서 활약할 주연감은 되지 못할 터였다.

그렇기에 이찬이 키워낼 수 있는 건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조연감 정도.

그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는, 교육의 방법을 떠나 초인적인 수준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기에 종종 눈이 밖으로 향했다.

시사회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길 즐겼던 것도, 매번 오디션을 열 때마다 가능하면 직접 참관했던 것도, 혹시라도 유망한 천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그러나 지금껏 단 한 번도 동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만큼 드물고 특별한 재능이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종종 생각해왔다.

만약 그 자신처럼 완벽에 가까운 천재가 또 존재한다면, 그 인간의 성장환경은 그야말로 끔찍했을 거라고.

강정후나 조혁수만큼만 되는 재능조차도 일그러진 일상 속에서 비뚤어진 성향으로 자라나기 쉬운 세상인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이찬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어떻게? 나와 같다면, 내내 힘들게 살아왔을 텐데? 누군가를 보면 그 악의를 곧바로 읽게 되어버릴 거잖아? 그래서 무수한 상처를 받으면서 커왔을 거잖아? 그런데도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게 기쁘지 않다고? 자길 둘러싼 세상을 저주하며 가출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홈스쿨링이 아니라 부수적인 속셈학원까지 다닌다고? 나였다면······ 앗.’

복잡한 마음에 손에서 힘을 푼 순간, 소녀가 문을 열고 탈주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아이답지 않은 날렵함을 발휘한 결과였다.

다다다 뛰어가는 뒷모습에 양갈래 머리가 찰랑거린다.

잠시 후에, 자본의 개가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어오라고 안 시키냐? 준비됐어요, 왈왈.”

“아뇨······ 그건 됐고, 수진 누나.”

“어, 찬아. 쟤 누구였어? 아는 분 딸이었어?”

“아뇨. 송유리라고 하는데, 조사 좀 해주세요.”

“앗······ 뒷조사 하는 거야? 약간 흥신소 느낌?”

“예, 그쪽으로 맡겨요. 돈 많이 줘도 되니까 최대한 빨리 알아보고 상세하게 보고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배우님! 후후, 완전 재밌겠다.”

오랜만에 비일상적인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염수진을 쳐다보지 않은 채, 다시 김도철이 뒤를 돌아봤다.

“뒷조사 그런 거 불법인 건 알고 있는 거지?”

“잘 알죠.”

“톱스타가 그런 짓 해도 되는 거냐?”

“들키지만 않으면 되죠.”

“아주 제멋대로 사는구나. 그래, 내가 뭐라고 하겠냐. 니 배우 인생 쫑나면 나야 족쇄 풀려서 좋지 뭐.”

“하하. 형은 정말 농담을 잘해요.”

김도철은 콧방귀를 뀌며 눈을 감아버렸다.

*

송유리에 대한 조사결과는 이틀이 지나기 전에 보고되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뒤에, 이찬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야? 이건 그냥 아주 평범한 아인데? 집안도 평범, 성적도 평범, 그 외에 특기사항이 하나도 없잖아?’

“수진 누나. 이거 제대로 의뢰한 거 맞아요?”

“그럼 그럼. 대표님 인맥 통해서 아주 제대로 된 사이즈 있는 흥신소에 의뢰한 결과지.”

“대표님한테 얘기했어요?”

“네가 시킨 거라곤 말 안 했지. 그냥 사적으로 조사해볼 사람이 있다고 얘기했던 거지. 그러니까 바로 명함 주시던데?”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휘하 매니저가 뭔가 문제를 만들까 염려한 정창영이 합법적인 범위에서만 활동하는 풋내기 사무소를 소개해줬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안 되겠네. 수원 직접 가봐야 되겠어요.”

“앗. 오늘이야말로 근사한 데서 외식하는 거야?”

“아니고요. 김도철 형, 준비하세요. 나갑시다.”

“아니······ 이 자식아. 그 꼬마는 대체 왜 조사하는 건데?”

“그건 프라이버시라고 말했을 텐데?”

“이놈이 이젠 말을 놓네 아주? 그래, 그래라. 씨발 자본의 개가 주인님한테 뭔 말을 더 하겠냐.”

사실은 자본과 무관하게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돕고 있는 것임을 알지만, 이찬은 별말 없이 웃어줬다.

그리고 수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만 이게 만약 진짜라고 한다면. 그 꼬맹이가, 자신의 재능을 철저하게 숨기고, 그저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스스로를 꾸미고 있는 거라면······? 그것도 가능성이 0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문제야. 그 이유가 이해가 안 될 뿐.’

타인의 모든 감정을 읽어내는, 신의 축복이자 악마의 저주 같은 재능이다.

그런 눈을 가진 채로는 가족조차 사랑하기 쉽지 않다.

그들이 은연중에 보이는 작은 귀찮음이나 불쾌감 하나하나가 거대한 상처가 되고 말 것이기에.

그런 존재가 특별함을 감추고 사람 사이에 녹아든다?

도대체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어야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이찬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었다.

‘그야 그 애는 여자니까 가출까지 하기는 힘들었겠지. 그렇지만 방법이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란 말이야. 남의 미세표현마저 훔쳐낼 수 있는 신체통제력이면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분야에 진출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제2의 박세리가 되겠다고 하면서 합숙훈련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방법을 설마 생각하지 못한 걸까? 궁하면 통한다고, 그 정도도 떠올리지 못했을 리는 없는데······.’

송유리는 어떤 특별한 활동도 하고 있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소녀로서, 등교거부 따위의 문제행동을 보인 적도 없고 교우관계 역시 원만했으며, 속셈학원과 컴퓨터학원에서도 말 잘 듣는 학생이라고 했다.

그날 염수진이 차를 몰아 간 곳이 바로 그 컴퓨터학원이었다.

“어······ 여기다. 여긴 것 같아, 찬아. 이제 어떡해?”

“누나, 현금 좀 있어요?”

“현금? 현금은 왜?”

“남의 사업장에 들어가는데 선물 정도는 줘야죠.”

염수진에게서 갈취한 20만원을 봉투에 넣고 계단을 올라간 이찬은, 텅 비어 있는 카운터를 지나 교실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곧 게임에 열중하는 소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러시! 야, 앞마당 러시 오잖아! 막아야지, 바보야! 야 야 야! 엘리 당하면 안 돼! 드론 빨리 안 빼냐? 야······ 거기서 저글링······ 아, 진짜! 완전 못하네 이시현!”

“아니······ 미안······ 근데, 어? 어어?”

“뭐가 어어야, 이 바보야.”

“저기, 밖에! 이찬이다!”

“뭐?”

대부분 초등학생인 걸로 보이는 소년소녀가 일제히 문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곧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찬은 돈봉투를 품에 넣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얘들아, 안녕? 송유리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

“우와! 유리야, 유리 너 보러 왔대!”

“뭔데 뭔데? 유리 너 이찬이랑 알아?”

톱스타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는 꼬마들의 얼굴을 살펴보며, 이찬은 이내 신음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호기심 외의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리고 송유리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 58장 - 소녀 송유리 (2) > 끝

ⓒ 비벗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