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장 - 소녀 송유리 (3.) >
학생들의 간식비로 써달라는 말에, 원장은 별반 고민하지도 않고 이찬의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덕분에 송유리와의 면담 역시 자연스러웠다.
염수진과 김도철을 문 앞에 세워둔 원장실 안에서, 이찬은 소녀와 단둘이 마주앉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송유리.”
“이······ 나쁜 사람. 왜 남의 뒷조사를 해요? 내보내줘요!”
“내보내줄 수는 있는데, 일단 내 말부터 들어. 난 네가 나랑 비슷한 부류라고 확신하고 있어. 도망쳐봤자 소용없다는 말이야.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은 인간 드물다는 거. 처음으로 만난 동류를 그냥 보낼 수야 있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고집 피워봐야 소용없어. 생각을 좀 해봐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지 말이야. 그것만 해소되면 앞으로는 널 쫓아다닐 일도 없어질 거 아냐? 똑똑하게 대응을 해야지?”
잠깐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하던 소녀는, 이내 그 말이 타당함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하는 게 뭔데요?”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 거짓말은 바로 들킨다는 거 알지? 주관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말하면 돼. 판단은 어디까지나 내가 할 거니까.”
타인의 삶을 자기 주관으로 재단하겠다는 말이었지만, 송유리는 그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소녀답지 않은 눈으로 물었다.
“얘기하면, 보내줄 거죠?”
“의문이 충분히 풀린다면.”
“······알았어요. 그럼 얘기할래요.”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연 소녀에게, 이찬은 귀를 기울였다.
송유리의 기억은 세 살 무렵부터 시작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부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는 뜻은 아니고, 열한 살이 된 현재에 이르러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딱 그 시점부터라는 얘기.
당시 송유리는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유명 댄스가수의 춤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움직임이 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던지라, 모두가 신동이라며 추켜세웠던 것.
자연히 TV 프로그램에 제보를 넣자며 들뜨게 되었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의 특별한 사정을 내보내는 정보 프로그램에서 취재팀이 나와 송유리의 언행을 촬영했다.
그렇게 보도된 댄스신동 편이 대단한 관심을 끌어, 이내 송유리 가족은 동네의 유명인사로 등극했다.
“그랬던 건데, 나 본 적 없어요?”
“그깟 꼬맹이 나오는 방송을 왜 봐? 기억할 거리도 못 돼.”
“와······ 스타랍시고 너무하시네요. 뒷조사해도 안 나오나?”
“안 나오더라. 그 뒤로 재능을 잘 숨겼나 봐?”
“······TV에 또 나왔는데요. 요즘 같았으면 인터넷에서 유명해졌을 텐데, 다행히도 그때는 동영상이 잘 돌지 않던 시절이었죠.”
1999년.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출연한 전국노래자랑에서, 그녀는 대상을 타내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만 해도 해당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대단하던 무렵이라, 지역의 수천 시민이 전부 노래신동 송유리를 알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송유리의 부모는 그 유명세를 즐겨, 길을 나설 때마다 알아보고 인사하는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웃어주곤 했다.
그에 더불어 언젠가는 송유리를 가수 기획사로 보내서 스타로 만들자는 꿈을 꿨다.
그렇기에 교회의 성가대에 어린 딸을 포함시켰다.
그게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때쯤 자신의 안목과 신체능력에 더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던 송유리는, 재능을 뽐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기에 건드려서는 안 될 곳에까지 손을 뻗었다.
“교회 목사님이 아줌마 신도들이랑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나 봐요.”
“그걸 누구한테 말했는데?”
“노래 부르고 나서, 봉헌예배 기도에서요. 목사님이야말로 사탄이라고, 십계명을 위반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네.”
“다 잘 해결될 줄 알았어요. 어른의 사정으로 진실이 묻히고 내가 귀신 들린 아이가 될 줄은, 몰랐어요.”
“그건 네가 멍청했던 부분 같은데.”
“알아요, 멍청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멍청하게 안 살려고 하는 거예요. 이제 됐죠? 보내줄 거죠?”
“하나도 안 됐어. 정작 핵심적인 부분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들은 이야기만 해도 동기가 이해될 법한 일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성을 발휘하며 주변의 관심을 산 꼬마가 그로 인해 괴물 취급을 당하게 되고, 그로써 얌전히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숨겨왔다-
히어로물에서 흔히 나오는 자연스런 클리셰였다.
그렇지만 이찬에게는 그 이야기가 몹시 어처구니없었다.
“어린 마음에 자기 관찰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야. 나도 그랬어. 내 경우엔 시설 원장의 비리였는데, 그걸 빌미로 원내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받았지.”
“예? 시설······ 무슨 시설이요?”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중요한 건 이거야. 누군가의 약점을 잡는 거야 우리한테는 쉬운 일이지. 그렇지만 그걸 드러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 아무리 꼬마였어도 남의 비밀을 캐내는 일에서 역풍이 생길 수 있음은 모를 수 없으니까.”
“그야······ 그 정도는 알고 있었죠.”
“그러니까. 그런데 왜 그런 거야? 왜 네가 위험에 처하게 될 짓을 한 거야?”
“그야, 그래야, 더 피해자가 안 생겼을 테니까요!”
소녀의 비명 같은 외침을 들으며, 이찬은 혼란에 빠졌다.
‘피해자가 안 생겼을 테니까······? 그딴 게 이유야?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한 게, 고작 그런 멍청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이찬의 경우에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으로 굴리던 원장이 보조금을 빼돌리고 있었다는 정황을 알게 됐을 때, 그는 다른 아이들의 처우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고아원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원장과 교섭했고, 그 결과 시설에서 무소불위가 되었다.
그게 천재 소년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나 같은 부류한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같은 재능을 갖고 있어도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건가? 난, 형을 만나고 난 뒤에야 변했는데, 이 꼬마는 그 전에 이미······ 아.’
이찬은 그 시점에 결정적인 오해를 깨달았다.
소년과 소녀는 거의 같은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소년은 소녀가 가진 것을 오랫동안 갖지 못했었다.
부모라는 존재를.
“······좋아. 일단 알겠어. 그래서 그 이후로 이사를 가서, 이후로는 평범하게 살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구나. 그럼 그 이유는? 이제는 피해자가 생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
“그럴 리가 있어요? 그냥······ 엄마아빠한테 폐가 될까봐.”
“엄마아빠라. 그 사람들은 너한테 소중해?”
“당연하죠! 제일 소중해요.”
“흠. 그렇다는 거군.”
이찬은 건성으로 답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발육이 빠른 만큼 2차성징과 함께 수염의 발모 역시 빨라졌지만, 초인적인 손재주로 매일 면도하고 있기에 걸리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치 평범을 연기해온 어린 소녀의 삶처럼.
‘그렇게, 부모의 존재 때문에 나와는 달라진 걸까? 말은 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워. 애초에 부모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더 빨리 세상에 절망했어야 마땅해. 사랑만으로 가득해야 할 부모라는 존재가 사실은 온갖 저열한 생각을 해대고 있음을, 금세 알게 되었을 테니까.’
터미널 대합실 등지에서 무수한 가족을 관찰해 내린 결론.
가족이란 터무니없는 애정으로 결속되는 존재지만, 그렇다 해서 일상적인 감정이 모두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부모조차 자식에게 불쾌나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다만 유아가 인지하기 전에 이성적으로 자제하는 까닭에 공포와 단절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순식간에 알아볼 수 있는 천재는, 결코 가족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터였다.
‘그거야말로 조혁수나 강정후가 이상한 인간이 된 원인일 거야. 내 경우엔, 오히려 부모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지. 그런데 이 꼬마는 그런 부모 때문에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됐다······ 정말 말이 안 돼.’
“좋아. 결심했다.”
“아······ 저 이제 보내주시는 거죠?”
“아니. 데리고 다녀야 되겠어.”
“아, 왜!”
“성깔부리긴. 괜한 걱정 하지 마. 네가 괴물 같은 천재라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네가 우연히 내 팬이 됐고, 그래서 연기를 배우고 싶어진 거야.”
“아닌데요!”
“그래? 그러면 따로 너희 엄마아빠를 만나볼게. 그래서 댁의 자녀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감추고 있는지-”
“아 좀!”
“싫으면 내 말 따라. 그냥 견학만 시킬 테니까.”
송유리는 반신반의한 듯 눈썹으로 팔(八)자를 그렸다.
“진짜죠······? 진짜 아무것도 안 시킬 거죠?”
“그래. 궁금한 게 풀릴 때까지만 데리고 다닐 거다.”
“다 말했는데 또 뭘요!”
“너 자신도 설명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알아보려는 거야.”
“······이상한 소리만 해. 진짜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학원도 안 빼먹을 거예요. 친구들도 아무도 몰라야 돼요.”
“너랑 너희 부모님만 입조심하면 돼. 아. 하나만 더 묻자. 그렇게 괴물이 되기 싫은 애가, 길에서 나 따라한 건 왜였냐? 언행일치가 전혀 안 되는 짓이었잖아?”
그 질문에 송유리는 눈을 좌우로 팽글팽글 돌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대답했다.
“좀······ 궁금했어요. 나랑 비슷한데, 사람들 시선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스타 아저씨는, 하늘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따라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따라해보니까 차이가 좀 보였어?”
“아뇨.”
“그래. 관찰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다고 내면까지 훔칠 수 있는 건 아냐.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한 거지. 동행 같은 거.”
“······아저씨도 그런 거예요? 내가 궁금한 거예요?”
“그런 거지. 동기는 좀 불순할 수 있겠지만.”
“불순? 불순이 뭐예요?”
“평범해지고 싶다고 공부까지 멍청하게 한 거냐? 그건 나중에 사전 찾아보고, 일단 나가자.”
원장의 의자에서 일어서다, 이찬은 문득 한마디를 보탰다.
“영화나 드라마는 자주 보냐?”
“······아뇨. 별로 안 좋아해요.”
“왜?”
“그냥, 다 그게 그거 같아서요. 여기서 나온 거랑 저기서 나온 거랑 비슷하게 연기하고 그러니까요.”
형이랑 비슷한 이유네- 그런 생각에 이찬이 웃었다.
“그래서 내가 비슷한 부류인 걸 알았구나?”
“네. 아저씨는 한 번도 비슷하게 연기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 나한텐 그게 어렵지 않지. 너도 그럴 거야.”
“전 연기 안 할 건데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어떤 일에든 시간은 필요하다.
소녀를 관찰해 자신과의 차이를 알아내는 데에도, 그 뒤에 그녀를 다시금 설득해 연기에 꿈을 품게 만드는 데에도.
그렇게 생각하며, 이찬은 추억 속과는 좀 다른 어른의 길을 준비했다.
*
“우리 애가, 연기를 하고 싶어했구나······.”
“그래서 이찬 군······ 이찬 씨가 가르쳐주겠다고요?”
멍한 표정으로 되묻는 송유리의 부모를 보며, 이찬은 입 속에서 볼살을 깨물었다.
‘평범해. 지극히 평범해. 성인군자도 뭣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에 흔하게 널린 사람들인 것 같은데······ 대체 이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부모의 정을 느끼게 된 걸까?’
엄마가 쥐어준 쭈쭈바를 쪽쪽 빨고 있는 송유리는, 이찬이 뭔가 헛소리를 할까봐 걱정되는지 복잡한 표정.
그러면서도 부모님과 눈 마주칠 때마다 포근하게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런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업에 지장이 갈 정도로 데리고 다니지는 않을 거고, 어디까지나 방학 동안 틈틈이 견학만 시켜주려는 거니까요. 어린 나이에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보는 게 장래희망을 결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꼭 연기자가 되지 않더라도요.”
“어······ 저희 애가 연기에 재능이 있거나 한 건 아니고요?”
송유리는 빛처럼 빠르게 발을 뻗어 이찬의 정강이를 찼다.
버릇없는 행동이었지만 아이의 발길질이 아플 것은 없었고, 그 마음 역시 쉬이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오늘 처음 봤는데 재능이야 모를 일이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유리가 제가 분실한 지갑을 찾아줬는데, 가정교육을 잘 받았는지 돈으로는 보상을 절대 안 받겠다고 해서요. 그래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것뿐입니다.”
송 씨 내외는 이후로도 불안한지 여러 가지를 질문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철저하게 준비한 천재의 대본 앞에서 빈틈을 잡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찬이다.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영화계의 톱스타와 인맥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딸의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이후 학원과 방학숙제를 위한 시간을 제외하고 이찬의 활동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소녀 본인은 엘리베이터에서 연신 투덜거렸지만.
“으······ 진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이미 결정된 일에 투덜거리지 마. 그리고 내 팀이랑 인사 나눠. 여긴 염수진 누나. 매니저야. 이쪽은 전에 인사했지? 김도철 형. 내 경호원.”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 귀여운 유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네. 안녕하세요, 오빠.”
“하. 전에는 뭐 자본의 개라며? 이제 와서 오빠냐?”
비록 불쾌하다는 듯 이를 드러냈지만, 김도철 역시 자그마한 꼬마의 인사가 아주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렇게 넷이 된 일행과 차에 올라타며 이찬은 혀를 찼다.
‘어째 점점 주위에 사람이 많아지는 느낌인데. 좀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제 익숙해져야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로써, 열한 살 송유리가 포함된 4인이 강남으로 이동했다.
<이찬의 산장> 제작보고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 58장 - 소녀 송유리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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