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68화 (168/250)

< 59장 - 엄마 강정후 (3.) >

「 자주제작이나 소자본영화를 통칭하는 독립영화의 역사는,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시작한다. 그 시기부터 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사회운동 기조의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이후 그 인력들이 작가주의적 독립영화로 이행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독립영화의 시초라고 보기는 어렵다. Independent라는 명명 자체가 상업자본과 상업주의적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주제작이 흔했던 시절이라면 그 대부분을 독립영화로 칭해도 심각한 오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독립영화를 분류하는지와 무관하게, <설산>의 성과는 한국독립영화사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이후 수십 년이 더 흐른다고 할지라도 그 영화는 기억되고 기록되고 논의될 수밖에 없으리라.

이는 개봉일 객수만으로 기존 독립영화들의 모든 기록을 깨뜨려버린 천재소년의 흥행파워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 또한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미증유의 기록이되, 독립영화인들의 뜻에 부합하는 이상에 합치되는 바는 아닌 까닭이다.

다만 필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록을 통해서 역사에 아로새겨질 변곡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99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발족한 이후로 매해 점점 더 많은 독립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무려 65편의 독립영화가 개봉하며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개중에 전용관 단관개봉이 아니라 일반극장에 걸린 작품이 무려 20편을 넘겨, 작년 한 해는 분명 독립영화사에 주요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막상 1년을 모두 보낸 현재 시점에서 2005년을 평가해보자면, 제작의 다양성은 증가했으나 관중의 다양성은 오히려 압도적으로 퇴보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00만 관객 이상의 영화가 총 7편이나 개봉하고 그중 하나가 역대 최고 기록에 근접한 1229만 관객의 <친절한 살인자>였던 2005년. 그 해에 개봉한 독립영화의 총 관객수는 고작 100만에도 이르지 못했다.

65편의 흥행실적이 <친절한 살인자> 한 편의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 특히 개봉하는 작품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되 전체 대비 관객수는 2003년의 0.8%에서 2005년의 0.5%까지 오히려 매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실 독립영화들의 질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상업영화의 폭발적 성장에 기인한다 봄이 타당하다. 매해 한두 편의 천만영화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압도적인 흥행배우들이 탄생하게 됐으니, 다양한 영화를 관람해온 관객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그 영화들을 여러 번 관람하게 된 탓이다.

그 중심에 이찬이 있었다. 최초의 천만영화인 <684>의 흥행을 견인하고, 아직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을 수립한 <고등형사>의 단독주연이며, 마침내 <친절한 살인자>로 세계마저 사로잡은 명실상부 국보급 배우. 그의 압도적인 연기력은 이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인지라,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극찬을 오롯이 받곤 했다.

그런 이찬이, 한 영화상에서의 공약을 계기로 독립영화계에 투신했다. 그리고 독립영화 가운데서도 유례가 드문 단일 로케이션 일정의 <설산>으로 관객을 찾았다.

그 결과는 상업영화들도 장담하기 어려운 개봉 당일 20만 관객 달성. 심지어 이는 이미 다섯 번째 천만 흥행을 달성한 <왕의 광대>가 여전히 400개의 스크린을 점령한 박스오피스에서 이룬 성과다.

그렇게 충격적으로 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한 <설산>의 행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평론가들의 극찬에 뒤이어 일반관객들의 리뷰 역시 호평만으로 뒤덮인 까닭에, 여전히 예매율이 개봉작 중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한정된 예산 때문에 제약이 있었던 <설산> 프린트 현상에 극장 측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후 멀티플렉스와의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200개관 이상으로 스크린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독립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까마득히 높은 흥행실적을 이뤄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추세는 비단 2006년 한 해 독립영화의 객수 증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독립영화계 전체의 약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세 가지 관점에서 <설산>의 성과를 논하고자 한다.

첫째. 기존에 연간 상업영화 한두 편 이외에는 관람을 하지 않던 일반관객들이 최초로 독립영화와 마주하게 됐다. 그것도 가장 혁신적인 시나리오와 가장 완성도 높은 연기가 수놓인 작품을 통해서.

그 충격이 단지 이찬의 작품 고르는 안목과 그 연기력에만 국한될 리가 없다. 그보다는, 한 소년배우 때문에 해괴한 장르를 접하게 된 관객들이, 오히려 그로써 이연진 감독과 이기자를 비롯한 신인배우 군단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거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독립영화계. <설산>의 추억이 있기에, 이후로 평소 시선도 주지 않던 여타의 독립영화들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독립영화의 잠재적인 관객층이 이전의 몇 배로 확대된다. 이것이야말로 작년 이찬의 시나리오 공모에 영화인들이 ‘찬 영화제’라는 대단한 별칭을 붙여준 가장 큰 이유였다.

둘째. 단관으로 운영되는 독립영화관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멀티플렉스 박스오피스에서 이찬의 신작을 예매하지 못한 관객들이 전용관을 찾아나선 덕분에, 황금시간대조차 텅텅 비어 있기 마련이었던 독립영화관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매진되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렇기에, 영진위와 독립영화협회의 지원 속에서도 적자만을 거듭하던 독립영화관은 체질개선의 적기를 맞았다. 필요성에 의해 유치된 관객들에게 독립영화관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보여준다면, 그곳은 더 이상 일부 마니아들만의 공간이 아니게 된다. 그로써 향후 더 많은 독립영화관이 개관하고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이찬과 하늘기획 사단의 독립영화 출연은 <설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후 적어도 두 편의 독립영화에서 활약하리라 필자에게 확언한 바 있다.

그 영화들이 <설산>처럼 충격적이고 압도적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에야말로 배우 이찬이 처음으로 실패라는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전혀 보지 않던 관객들이 지속적으로 이 세계의 자그마한 이야기들에 시선을 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 문화의 진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 무수한 시선과 목소리 속에서 독립영화계는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으로 도약할 것이며, 그 다양성의 결실은 관객들에게 더욱 다채로워진 즐거움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처럼 꿈만 같은 예측 속에서 필자가 바라는 것은 단 두 가지다.

첫째로, 이찬과 그의 동료들이 지치지 않고 많은 영화에 출연하길 소원한다. 가능하면 지금처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활약하면서.

둘째로, 그러나 가능하면 내 영화가 개봉하지 않는 시기에 그 영화들이 개봉하길 소원한다. 흥행의 기세가 꺾인 일로 <왕의 광대> 제작진이 모쪼록 상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

안정록의 눈이 원고지 마지막 페이지의 맨 아래까지 닿은 것을 확인한 뒤, 강정후는 아주 조심스레 질문했다.

“저······ 어떻습니까, 선생님? 그렇게 기고해도 될까요?”

“하하. 정후야.”

“예, 선생님.”

“너, 글재주가 놀랍도록 늘었구나. 영화계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어. 이거야······ 스승이라는 내가 부끄러운걸.”

“그, 그렇지 않습니다. 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아니, 아닐 거야.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며 공부한 겁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 주제에 문재(文才)를 키울 일이 있었겠어요?”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하고 지냈던 긴 시간 동안, 안 선생님이 아닌 대학교수 안정록의 저서를 읽어왔다는 말.

그 이야기에 죄책감의 스승은 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그랬구나. 넌 정말이지 성실한 아이야.”

“음, 흠. 그래봤자, 연기 빼곤 잘하는 게 없지만요.”

“하하하. 또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하는구나. 이찬 같은 아이와 대조해서 괴로워하는 건 그만하렴. 말했잖니. 내게 있어선 그 위대한 소년보다도 네가 더 소중하다고.”

빨갛게 된 눈을 감추려 고개를 돌린 강정후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안정록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소외된 장르에 출연해줬으면 좋겠다는 첫 번째 소망은-”

“그,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계의 발전을 위한 바람일 뿐입니다.”

“하하하. 물론 그렇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넌 언제나 그렇게 모두에게 상냥했으니 말이야.”

강정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수하게 웃는 스승의 얼굴을 마주하기엔 자신이 너무 졸렬한 것 같았다.

*

“이 인간이 기어이 돌아버렸나?”

모니터에 뜬 기사를 중간쯤까지 읽은 뒤, 이찬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옆에서 작은 머리 기웃거리던 송유리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뭔데요? 왜요? 이거 너무 어려워요. 모르는 단어 너무 많은데. 뭐라고 써놓은 거예요?”

“대충 내가 대단한 업적을 이뤄가고 있다는 내용.”

“그래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 거니까 황당하다는 거지. 그 인간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지 영화도 아직 극장에 걸려 있는 상황이잖아? 박스오피스 1위 뺏긴 것도 억울할 판에 이렇게 기고까지 해서 내가 해낸 위업에 대해서 해설한다? 말이 안 되지.”

“왜 안 돼요?”

눈 동그랗게 뜬 송유리를 보며 이찬은 묘한 감흥을 느꼈다.

소녀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음을 드러냈는데, 그게 낯선 동시에 편안하게 느껴졌다.

“야. 넌 진짜 애가 왜 그러냐?”

“네? 갑자기 뭐가요?”

“왜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툭툭 내뱉어? 봐. 지금 내 표정 보면, 뭐가 느껴지냐?”

“글쎄요? 나한테 화가 나기도 하고 화가 안 나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

“······예리하긴 한데 말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아, 이상한 얘기 하지 말고 설명 좀 해줘요.”

잇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 이찬은, 마우스의 스크롤을 내리면서 자신의 분석을 전달해줬다.

“이 인간 식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강정후라는 네임밸류 때문에라도 조회수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기사야. 둘째. 그 강정후가 <고등형사> 기록 깰 기세로 흥행하던 <왕의 남자> 주연이라, 의외성 때문에라도 여기저기 퍼갈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셋째. 마지막으로 이 독립영화라는 게······ 굉장히 소외되어 있는 영역처럼 보여도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감독들이 여기서 시작하니까. 당장 천만감독인 계진행 감독님이나 오덕환 감독님도 입봉작은 독립영화였고.”

“앗.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지 않는다?”

“그래. 이쪽 계통에선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그래서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인들도 다양성영화에 대한 관심은 지대한 법이야. 그런데 이 톱스타가 날 무슨 독립영화계의 구원자 같은 느낌으로 칭송하는 글을 썼으니······”

“역으로 까이게 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냐. 그냥 진짜 우상 돼버리는 거지. 뭐 칸 영화제 이후로 이미 우상 느낌이긴 했지만.”

잘도 자기 입으로 우상 어쩌고 말하는 톱스타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가, 송유리가 또 물었다.

“누가 잘해주면 그냥 순수하게 고맙다고 하면 돼요.”

“······뭐?”

“엄마가 그랬어요.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먼저 도와주게 된다고요.”

“뭐래. 난 누가 안 도와줘도 완벽한 사람이야.”

“앗.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완전 밥맛이랬어요.”

“그렇게 말한 사람이 밥맛이다.”

“앗?! 지금 우리 엄마 욕했어요? 와, 진짜 나빴다!”

송유리가 작은 주먹으로 근육 가득한 팔뚝을 때려댄다.

아프거나 흔들림이 생기지는 않았기에, 이찬은 그저 평화롭게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10초쯤 뒤에 탄성을 냈다.

“아! 역시 그랬어. 이 인간, 꿍꿍이가 있었구만.”

“으······ 내 손만 아파요.”

“그건 포기해. 그보다 강정후 꿍꿍이가 뭔지 궁금하지?”

“하나도 안 궁금해요. 정후엄마는 꿍꿍이 같은 거 없어요.”

“뭐? 멍청하긴. 야, 그 인간도······ 너나 나하고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철저하게 가면 쓸 줄 아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표정만 보고 호인이라고 믿으면 안 돼.”

“표정만 보고 믿는 게 아니라, 진짜 정후엄마 안 나빠요.”

“아, 그러셔?”

꽃밭에서 뛰노는 소녀의 마음을 어둠으로 물들일 생각에 잔뜩 신난 이찬이 씩 웃었다.

“자, 여기 봐. 마지막 문단은 쉽게 썼으니까 너도 보면 알겠지. 자,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어?”

“별 생각 안 드는데요?”

“독해력이 엉망이네.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나.”

“어? 야, 이 나쁜 아저씨!”

또 통탕거리는 소녀의 주먹질을 느긋하게 맞으며, 이찬은 차분히 자신의 해석을 설명했다.

“이 인간, 날 완전히 독립영화 쪽에 묶어두려는 거야. 온갖 미사여구로 우상화를 해놓고선 「이찬과 그의 동료들이 지치지 않고 많은 영화에 출연하길 소원한다.」 같은 소리 해놨잖냐. 이러면 이 기사 본 독립영화 쪽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나한테 기대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지. 그걸 노린 거야. 내가 세 편으로 독립영화 커리어 끝내고 다시 상업영화판에 복귀할 때 저항이 생기도록 말이야. 민심을 이용한 계략인 거지. 이 인간이 드물게 머리를 좀 굴렸네.”

“······그런 거 아닌데요?”

“뭐? 뭐가 아니야?”

“그렇게 안 느껴지는데요? 아저씨 이용하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저항 생기게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 진짜로 독립영화계가 잘됐으면 해서, 아저씨한테 부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약간 엄마 같아요.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정후엄마.”

“······그건 스승의 은혜지. 시끄럽고, 가서 과자나 먹어.”

축객령 속에서 송유리가 입술 삐죽이며 물러난 뒤.

이찬은 혼란스런 표정을 감추며 속으로만 고민했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쟨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온갖 악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고······.’

< 59장 - 엄마 강정후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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