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178화 (178/250)

< 63장 - 스타 구진철 (3.) >

“유리가 쓰러졌어요?”

별로 놀라지도 않는 투의 반문에, 염수진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그랬대! 일단 진철이가 같이 응급차 탔는데, 집에도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아. 찬이 네가 하는 게 낫겠지?”

“그럴 것까진 없어요. 심인성일 테니까.”

“어? 어······ 응? 찬이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잘은 몰라요. 혼절할 정도라곤 생각도 못했고. 어쨌든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거 아녜요. 계약할 때 메디컬테스트도 다 했는데요 뭐.”

“어······ 그건 그렇지. 지병이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그냥 놔둬요. 아, 매니저들도 그냥 퇴근하게 해요. 구진철 후배님이 챙기게.”

“으아, 그래도 되는 건가······?”

혼란한 매니저에게 답해주지 않은 채, 이찬은 송유리의 심인성 혼절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람 많은 곳에 데려갈 때마다 종종 느낄 수 있었지. 우연히 시선이 자기 쪽으로 집중될 때마다 움찔거리곤 했어. 아마도 트라우마 같은 거겠지. 나하고는 종류가 반대지만, 어쨌든 과거의 악령이 발을 붙잡고 있는 거야.’

더없이 특별한 재능으로도 평범을 추구했던 송유리는, 그렇기에 어느 시점 이후로는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학업성적도 평균, 교우관계도 평균, 여타의 어떤 활동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게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아이들은 원래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모두가 자기만 바라보길 바라는 거야.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주목이란 게 부끄러움을 만들 수도 있음을 깨닫고 평범함을 받아들이게 돼. 하지만 송유리는······ 그 과정이 터무니없이 일찍 진행됐어. 그 후로는 남의 이목을 안 끌 일만 해왔으니까, 구진철 후배님하고 함께 돌아다니며 받게 된 시선에 어지러워질 순 있겠다고 생각했지.’

거기까지가 이찬의 추론이며 염려였다.

영화가 흥행해 유명인이 되고 나면, 이찬의 제자로 알려진 소녀의 삶은 일반인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찬 본인이야 일상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거기에 작은 불편조차 느끼지 않았지만, 송유리에겐 그렇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영화의 완성 전에 적응할 시간을 주고자 했다.

스타가 된다는 것이 삶의 색깔을 어떻게 바꿀지 미리 경험하라는 의미에서 구진철의 야외 인터뷰에 딸려 보낸 것.

그게 설마 혼절까지 갈 거라곤 그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이건 좀 걱정되는데. 혹시 오늘 경험 때문에 스타 되기 싫다고 하면서 영화 엎어버리면, 무척 곤란해지는데. 그야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로 스타가 되게 놔두는 건 그것보다 더 나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완성해야 한단 말이지.’

그런 생각에 병원을 찾아가볼까 생각하던 이찬은, 잠시 후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차라리 잘됐나. 이 꼬맹이는 내가 하는 말은 어차피 귓등으로도 안 듣는단 말이야. 나보다는 구진철 후배님 말이 더 먹힐지도 몰라. 그 후배님은······ 이쪽도 나하고는 다르지만, 반드시 스타가 돼야만 했던 사람이니까. 나한텐 말해주지 않았던 그 이유도, 꼬마 후배한테라면 술술 나오겠지.’

*

눈을 떴을 때 마주한 흰 천장은 아주 높았다. 열 살 소녀에겐 그게 무척 까마득해서,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곧 얼굴을 들이민 구진철이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유리야! 유리야, 괜찮아? 정신이 들어? 여기 병원이야.”

“병원······ 왔어요?”

“그래, 그래. 너 갑자기 쓰러졌잖아. 의사가······ 뭐라더라? 심인성 실신? 몸은 멀쩡하대. 원인불명인 거래.”

“아······ 네.”

본인에게는 원인불명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비록 처음 겪는 일이지만, 소녀는 신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천재. 자신의 몸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발생했던 기작들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날 쳐다보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졌어. 심인성······ 마음에 기인한 증상이란 거겠지? 그러면 이건, 그때 일 때문이겠구나.’

속으로만 한 생각을 읽은 듯이, 구진철이 물었다.

“무슨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 거야? 놀이공원에 안 좋은 추억 같은 게 있었어? 그게 아니면 사람이 많은 것 때문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요?”

“의사선생님이 그러더라고. 이런 원인불명 실신은 보통 정신과적인······ 아니 그러니까 정신병이라는 뜻은 아니고, 마음이 아플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던 거야.”

“아, 네. 그런 비슷한 거예요.”

“야, 그랬으면 놀이공원 가면 안 됐지! 왜 말 안 했어? 이찬 그 자식 무서워서 말 못 한 거야? 내가 혼내줄까?”

“아저씨가요? 찬이 오빠한테 맨날 혼나면서요?”

“엇, 누, 누가 혼나? 그냥······ 연기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거지······.”

스타 배우로 거듭난 구진철이 그러나 이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건, 역시 심인성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신인 시절에 경험한 소년의 압도적인 연기가 일종의 우상화를 촉발한 탓.

그렇기에 그는 무조건적으로 하늘기획 이적을 결정했고, 이후 이찬과 다시 함께 연기할 날을 고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도 송유리는 구진철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이찬의 제자가 되어 데뷔작을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에 대단히 기뻐 보이지 않는 소녀.

그보다는 뭔가 아이답지 않은 사명감을 갖고 영화 촬영장에 적응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왜 쓰러졌던 거야? 어떤 게 문제였어?”

“그냥 사람 많은 거요. 사람들이 다 나 쳐다보니까 좀 불편했어요. 그래서 어지러워졌던 것 같아요.”

“어, 엇. 그거 위험한 거 아냐? 이번 영화 개봉하고 나면 너 완전 유명해질 텐데. 이번 인터뷰만 해도 찬이가 직접 선발한 제자라고 얘기를 했잖아? 그거 방영되면 사람들이 다 네 얘기 해서, 다들 얼굴 알아볼 텐데.”

“그렇겠죠. 살짝 불안하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찬이도 네 걱정 많이 하더라. 계속 전화해서 깨어났냐고 물어보고 그랬어.”

“네. 제가 영화 하차한다고 할까봐 걱정됐을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닐걸?”

“그런 거예요. 괜한 걱정이지만요.”

“어, 괜한 걱정이야?”

“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된다고 했어요. 엄마가요.”

언젠가 이찬에게도 들었던 말 같다고, 구진철은 생각했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명확해졌다.

<684> 오디션 때, 촬영 전까지 벗어도 보기 좋은 몸을 완성해오라는 계진행의 말에, 소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배우와는 함께 연기할 수 없다는 말을 보탰었다.

“······좋은 자세야. 그렇지만 유리야, 내 생각은 좀 달라. 약속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건강이 중요하잖아? 네가 만약에 유명해지는 게 불편하겠다 싶으면, 영화는 하차하는 게 맞다고 봐. 아까 찍은 인터뷰도 지금이라면 폐기할 수 있어.”

이찬이 들으면 이 후배님이 뭔 헛소리야 따위의 반응이 나왔을 법한 이야기. 송유리는 힘없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히히. 아저씨, 안 그래도 돼요. 적응하면 어떻게든 되니까.”

“적응······ 적응한다고 괜찮아질까?”

“네.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에요. 문제는 인식이니까, 초점을 흐려서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인지를 없애면······ 흠흠.”

말을 멈추고 헛기침을 한 꼬마숙녀는, 이내 상체를 일으키려다, 머리가 띵했는지 베개에 뒤통수를 묻었다.

“유리야, 가만히 있어. 너 좀 안정을 취해야 된대.”

“음. 안정이요.”

“그래, 안정. 안정록 선생님처럼 안정을 취해야지.”

“······그거 웃기다고 생각하고 하는 말이에요?”

“어······ 안 웃겨?”

“하나도 안 웃겨요. 초딩도 안 웃겠어요.”

실제 초딩의 신랄한 발언에 울상을 지은 구진철은, 잠시 후에는 전혀 다른 질문에 직면했다.

“근데 아저씨는 왜 연예인 했어요?”

“응? 그건 왜 물어봐?”

“잘 이해가 안 돼요. 유명해지면 불편하잖아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요, 친구 만들기도 힘들어진댔어요.”

“앗. 찬이가 해준 얘기야?”

“아뇨. 찬이 오빠 경호원 오빠요.”

“아, 도철이. 그건 맞지. 사람들이 알아보면 불편하지. 얼굴 안 가리면 돌아다니기도 힘드니까. 뭐 이것도 행복한 투정이긴 해. 세상엔 그 유명세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

“그러니까요. 왜 그런 거예요? 그냥 선망 같은 거예요?”

일반적으로 스타를 선망하는 심리에 대해 잠깐 고민하다가, 구진철은 곧 고개를 저었다.

그 스스로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은 입에 담기가 조심스러운 까닭이었다.

“그게 많이 궁금해?”

“네. 저는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좋은 것도 많고 안 좋은 것도 많은 일이지. 나 같은 경우엔 좋은 점에 집중했던 거고.”

“좋은 건 어떤 게 있어요?”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점이 있지.”

“그건 안 좋은 점 아니었어요?”

“보통은 그런데, 나한테는 좋은 점이었어. 아저씨는 엄마가 멀리 가버리셨거든. 내가 어렸을 때 잘못한 게 있는데, 그게 문제가 돼서 집이 어려워진 거야. 그래서 엄마가 떠나갔어.”

오랫동안 삭혀서 닳고 닳은 둥그런 말.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면 그냥 안됐다 정도의 생각도 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렇지만 내면을 바라보는 송유리는 달랐다.

스타라는 칭호에 걸맞은 구진철의 잘생긴 얼굴에서, 소녀는 짙디짙은 그리움과 죄책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 죄송해요.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봐요.”

“응? 하하하,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오래 전 일이니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어. 멀리 가버린 엄마가 혹시 나 보고 찾아와주지 않을까 해서. 왜, 찬이 데뷔작 <미스 스캔들>에 그런 내용이 있잖아? 버림받은 딸이 부모님한테 자기 모습 보여주려고 연예인이 되는. 그거처럼, 나도 스타가 되면 다시 엄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

“그럼 이제 스타 됐으니까, 엄마 만났어요?”

“아니, 아직이야. 아직도 모자란가봐. 어쩌면 시트콤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청춘시트콤은 어린 애들이 더 좋아하잖아? 그래서 빨리 영화로 복귀해서 찬이 영화에서 좋은 배역 맡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송유리는 이찬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덩치 큰 소년은 부모라 해도 언제든 아이를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훌륭한 연기력으로도 채 다 가리지 못한 진한 비애 속에서.

“찬이 오빠도, 그런 걸까요?”

“응? 찬이? 걔가 왜? 걔는 부모님 멀쩡히 계시지 않나?”

“아, 네 네. 물론 그렇죠. 그냥 뭐 혹시나 해서요.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멀리 간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을 수 있잖아요?”

“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말 하니까 찬이 칸 영화제 수상소감 생각난다. 넌 그거 혹시 알아?”

“몰라요. 뭔데요?”

“되게 유명한 건데······ 하긴, 넌 신문 볼 나이는 아니지. 그게 내용이 뭐였냐면,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인간을 용서합니다’라고 했었어.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혹시 찬이도 그런 걸까? 그 소중한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

송유리는 한동안 입속으로 생각을 우물거렸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형 얘기가 생각나는데. 도철이 오빠 전에 형이라고 부른 사람이 한 명 있었댔지.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인 거 아닐까? 하지만 그 사람은 아마 죽었을 거야. 찬이 오빠가 유명해져서 찾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닐 거야. 그보다는······ 오래전에 헤어진 부모님······ 읏······.’

스스로 떠올린 가능성에 울컥한 소녀는, 몸을 돌려 베갯잇에 얼굴을 묻었다.

‘불쌍해. 불쌍한 사람이야.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졌는데도 아직도 엄마아빠 못 만난 모양이야. 그 오빠에 비하면 난 하나도 불행하지 않아. 힘든 일도 있었지만 엄마아빠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난······ 괜한 걱정인 거야. 난 연기를 할 거야. 오빠가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게, 내가 옆에서 좋은 조연을 해줄 거야.’

이후 컨디션을 회복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송유리는 구진철에게 작은 부탁을 건넸다.

“아저씨. 집 앞에서 같이 내려주면 안 돼요?”

“응? 어, 뭐?! 야, 그럼 안 되지! 나 알아보고 또 사람들 몰리면 어떡해? 그러면 너 또 힘들어질 텐데.”

“적응하면 괜찮다니까요. 수원은 사람도 별로 없어서 아주 많이는 안 모일 거예요. 부탁해요, 아저씨.”

“아니······ 아, 걱정되는데. 아, 이걸 어떡하지.”

깊어지려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양갈래 머리를 한 열 살 소녀의 끈질긴 부탁을 무시하기엔, 구진철은 지나치게 마음이 약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내린 거리에 순식간에 수십 명의 인파가 ‘진철 오빠’를 외치며 몰려들었을 때.

소녀는, 굳은 얼굴로나마 자신의 발로 꼿꼿이 섰다.

“음······ 괜찮은 것 같아요. 적응이 돼요.”

“유리야······ 넌 참, 멋있는 것 같다.”

“아니에요. 난 평범해요, 아저씨. 내일 촬영장에서 봐요.”

전보다 더욱 깊어진 사명감으로 웃어버린 소녀의 뒷모습을, 구진철은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그 끝에 생각했다.

‘어쩌면······ 저런 면인지도 모르겠어. 정신적인 한계마저 극복해서 꿋꿋이 자기 길을 개척하는 저 마인드. 저런 정신력이야말로, 찬이랑 유리가 나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연기를 해내는 비결일지도. 참······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냐. 빨리 유명해져서 찬이처럼 칸 영화제에 가려면, 더 연습해야 해.’

큰 오해 속에서, 구진철은 다시금 각본을 탐독했다.

*

그보다 더 큰 오해를 한 소녀가, 이튿날 이찬의 앞에 섰다.

“오빠. 나 왔어요.”

“어 그래. 김도철 형, 별일 없었죠?”

“나야 별일 없었지. 넌 괜찮았냐? 밤샘촬영 힘들었겠네.”

“전혀요. 빨리 끝내고 쉬어야죠. 송유리, 오늘 씬 연습하자.”

걱정했다 괜찮냐 따위의 말도 없이 논하는 연습.

그 앞에서 송유리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습해요. 연습해서 최고의 씬을 만들어요.”

“······뭐야? 얘가 왜 이래?”

“왜냐면, 연습은 최고의 스승이기 때문이에요.”

“그 얘기가 아니라······ 하아. 야, 뭔 생각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발 표정 컨트롤 좀 해라. 그렇게 얼굴에 대놓고 동정하고 있다고 티를 내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거거든?”

“앗. 티 많이 나요? 미안해요. 조심할게요······.”

동정하는 쪽이 미안해진 사제는, 그날도 OK컷만을 찍었다.

< 63장 - 스타 구진철 (3.)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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