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장 - 감독 양진원 (1) >
<아저씨>의 마케팅은,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이찬의 전작 <설산>처럼 유튜브 광고만을 내놓고 시사회도 단 한 차례만 진행했던 상황.
자연히 대부분의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팬들의 관심이 호기심을 넘어 집착에 이르렀다.
그 핵심은 물론 이찬과 송유리였다.
<고등형사> 이후로 오랜만에 액션영화에 나서 그 스스로 액션감독을 겸임했다는 이찬. 그리고 그 이찬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알려진 송유리.
그 두 배우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작품에 관한 무수한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양진원은 매번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이찬은 대역 없이 모든 액션을 소화했고, 송유리는 이찬의 제자라는 말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주변이 없는 그로서는 그 이상 신선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그 대신 시사회에 참석했던 평론가들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기고해줬다.
이찬과 송유리, 그리고 감독 양진원에 대해서.
「 씨네맥 이달의 기대작 <아저씨>
이찬이 아니고선 완성할 수 없었을 하류액션의 극치. 소자본으로 만들어낸 액션영화의 신기원이자, 인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 휴머니즘 영화라 평하고 싶다.
기존의 액션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특수부대 출신이나 살인병기 따위의 클리셰 속에서 등장했다. <레옹>의 장 르노가 그랬고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러했다.
관객을 감탄케 할 압도적인 액션에 핍진성을 입히기 위해서 그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한국의 액션히어로 이찬 역시, 커다랗고 재빠른 신체에 맞는 배역들을 통해 액션배우로서 주목받았다.
<고등형사>에서 노련한 형사의 정신과 완벽하게 단련된 신체의 이중주를 연기해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그 필모그래피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찬은 <아저씨>에서 그 반대쪽 극한에 도전한다.
타이틀 그대로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한 하류인생으로 분해, 겁 많고 평범한 인간이 거대한 악을 상대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시사회 관객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이 영화에는 오직 냉병기만이 등장한다. 그조차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칼이나 나이프, 야구배트 등에 불과하다.
조폭영화 전성시대 속에서 이제껏 지겹도록 본 시퀀스가 예상되는 대목이었다.
거기에 주인공이 가벼운 운동조차 하지 않는 외팔이였기에, 액션에 대한 기대감은 결코 클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저씨>의 액션은 어떤 조폭영화와도 달랐다.
하나하나의 시퀀스 속에서 수십 명의 액션배우가 단 한 명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었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으며, 그 결과물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특히 연약한 개인의 억척스런 투쟁을 그려낸 이찬만의 액션은 흔들리는 핸드헬드 시퀀스 속에서 영웅처럼 빛났다.
그렇게 기대 이상의 액션 시퀀스가 극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면, 혹자는 가벼운 범죄영화를 생각할 수 있다. 흥미본위의 조폭영화가 대체로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인물들의 마음 또한 놓치지 않았다.
액션의 와중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표정연기가 관객들이 타자화되어 구경하는 역할에 머물기를 허락지 않는다. 그들을 영화 속의 비극으로 끌어들이고, 넘쳐흐르는 감동 속에서 끊임없이 눈물짓게 만든다.
그 믿어지지 않는 연기의 중추는, 놀랍게도 만 9세의 신인배우 송유리.
범죄 속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이 무력한 소녀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조명되는 그 감정의 변주가 시사회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천재배우 이찬이 무엇 하나 증명된 바 없는 소녀를 주연으로 올린 것이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어쩌면 근시일 내에, 이찬으로 대표되는 국보급 배우의 라인업에 또 한 명의 미성년자를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토록 놀라움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 오직 배우들의 힘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개개의 배우가 활약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그 프레임을 배치한 양진원 감독의 등장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
그는 이찬의 파격적인 액션을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게 캐치했으며, 큰 기대를 받지 못했던 송유리라는 소녀가 그 깊은 감성을 표현해내도록 현장을 이끌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였던 그가 감독으로서 일궈나갈 필모그래피가 더없이 기대되는 이유다. 」
개봉일 전날에 게재된 그 글에 양진원은 크게 민망해했다.
액션 씬의 스토리보드를 짠 것은 그가 아니고 이찬이었다. 또한 송유리는 감독의 어떤 디렉션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성된 배우였다.
한 일도 없이 찬사를 받는 것만 같아서 속이 거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7월 12일이 되어 마침내 일반대중에게 <아저씨>가 공개된 이후로, 양진원은 그 전보다도 한참은 더 민망해져야 했다.
“앗! 양 감독님, 내일스포츠에서 왔습니다!”
“어, 어어······ 죄송합니다!”
“감독님! 잠시만요! 한 말씀만 좀 부탁드립니다!”
“평일 객석점유율 93%라는 대기록을 쓰셨는데요!”
“내일 예매율도 90% 이상이라는데, 들으셨습니까?”
“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거장의 역작과 맞서시게 된 소감이 어떠십니까!”
사계 프로덕션 정문에 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쫓기며, 양진원은 울고 싶은 심정이 됐다.
‘아이 씨······ 그게 무슨 말이야? 93%라고? 그런 게 도대체 나올 수 있는 수치야? 안정록 선생님의 도 주말 91%가 최고치였다고 했는데, 이건 뭐 말이 안 되잖아?’
그의 생각처럼 말이 안 되는 수치였다.
객석점유율이 70%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관객의 예매행렬은 주춤해질 수밖에 없다.
스크린 내 좌석의 상품성이 완전히 균일하지 않은 까닭에.
중간 좌석은 시야각과 스크린이 맞아 편안히 볼 수 있는 반면, 맨 앞 열은 고개를 불편하게 젖혀야 하며, 맨 뒷 열은 거리가 멀어 몰입하기 어렵고, 좌우 사이드는 내내 한쪽을 쳐다보느라 목이 아파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좌석에 매겨지는 관람료는 모두가 동일.
그러니 괜찮은 좌석들이 다 점유된 뒤에는 불편한 관람을 포기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개봉 초기라 하더라도 90% 이상의 점유율을 달성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심 주말 프라임시간대에 매진행렬이 나오긴 해도 그뿐.
전국 각지의 조조나 심야 시간대까지 가득 채우기에는, 한국의 극장 대비 영화인구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기존의 기록들은 제한된 스크린과 시간대의 독립영화가 주목을 받으며 서울에서 기록한 것이 대부분.
와이드릴리즈의 경우엔 주말 90%를 넘기는 것조차 사례가 드문 일인데, 평일 93%가 사실일 리 없었다.
그러나 기자들의 정보력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간신히 그들을 따돌리고 뒷문으로 들어설 무렵, 한 발 늦은 전화가 양진원 감독을 찾았다.
[감독님, 저예요.]
“어, 어. 찬이구나.”
[축하드려요. 우리 점유율 93% 나왔대요. 내일은 예매율부터가 90% 넘겼고요.]
“뭐······? 거, 거짓말이지? 너 나한테 몰카 찍는 거 아니니?”
[왜 이러신대. 감독님,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이번 영화는 스크린 충분히 못 딸 거라고요.]
“어? 어, 그래. 월계 시네마에만 걸어서 전부 150개라는 건 들었는데. 그렇지만 그것도 꽤 많은 거 아니냐? <설산>보다 많잖아? 독립영화 개봉관 최고기록이라고 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촬영 과정에서 제법 친해진 까닭인지, 굳이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하핫, 참. 촬영 땐 능숙하시더니, 이런 부분은 초짜 감독님이 맞네요. 저, <설산> 300개 스크린 됐을 때도 60% 점유율 찍었어요. 그것조차 특이한 독립영화라고 거부감이 있을 때 기록이에요. 지금은 달라요. 독립영화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는 게 입증됐고, 이건 스타배우 구진철 후배님에 이찬 제자 송유리까지 캐스팅이 된 작품이죠. 거기다 고작 150개 스크린, 그것도 업계 2위라 도심에만 집약된 월계 시네마에만 걸었잖아요? 사실 93도 아쉬운 수치라고요. 나 다른 영화들 점유율까지 쭉 오른 거 보면 우리 거 보려다가 선회한 사람들 꽤나 많았던 모양이니까.]
하반기를 맞이해 한국영화전용관으로 전환된 월계 시네마에는, 외에도 다수의 한국영화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의 점유율이 <아저씨> 개봉에 발맞춰 평균적으로 5% 이상 향상됐다.
예매 없이 <아저씨> 보러 왔다가 좌석이 없어 선회한 이들의 수가 많았다는 방증이었다.
“그럼······ 그러면, 주말엔 대체······.”
[주말엔 아마 98은 찍지 않을까요? 100%까지 가주면 참 좋겠지만, 아무래도 조조까지 채우긴 힘들 테니까요. 아무튼 관련해서 미팅 진행해야 될 것 같아요. 열 시까지 프로덕션으로 갈게요. 괜찮으시죠?]
“어, 어어. 저기, 스코어는?”
전화는 대답 없이 끊겼다.
그 상황에 불쾌함도 느끼지 못한 채,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양진원은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150개 스크린의 좌석 수는 대충 5만 석. 대부분 도심지니까 하루 7회 상영이라 가정하면······ 93%의 점유율이란 건······ 30만, 이상? 독립영화 개봉일 관객수가? 말이 돼?!’
230개 스크린이었던 의 개봉일 스코어는 25만. 최초의 천만영화인 <684>는 34만.
그 사이에 해당하는 31만이란 수치가, 10시에 회의실에 들어온 양진원 감독에게 전달되었다.
*
양진원의 일상은 급격하게 변했다.
마치 스타배우에게 그러하듯 무수한 기자들이 파파라치처럼 뒤를 쫓았으며, 영화사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예능 섭외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이제 30대 초반인 신예 감독이 이룬 성과에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까닭이었다.
그 예능에는 섭외만으로도 울렁증을 느껴 뭐 하나 대답을 주지 못했지만, 배우들과 함께하는 추가 인터뷰는 피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양진원은 이찬에게 투덜거리곤 했다.
“나보고 한국의 크리스토퍼 놀란이래.”
“<메멘토>의 그 놀란이요? 와, 놀랄 노 자네요.”
“말도 안 되는 거지. 나 같은 게 무슨. 이번 영화는 솔직히 너 혼자 다 만든 셈인데.”
이찬의 고개가 모로 뚝 떨어졌다.
“그건 또 뭔 소리예요?”
“응? 아니, 그렇잖아? 말이 안 되는 비윤데. 너도 방금 놀랄 노 자라며?”
“그거야 놀란이라 그래서 장난쳐본 거고요. 그게 아니라, 전 감독님 보면 대런 감독 생각나던데.”
“뭐, 뭐? 대런 아로노프스키? 선댄스 감독상 그분?”
“네. 클로즈업 잘 쓰시는 것도 그렇고, 편집이나 화면전환이 좀 그런 느낌이던데.”
“으으······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뭐 그렇죠. 잘 알려진 감독은 아니니까, 놀란 쪽으로 잡는 게 더 좋겠네요. 가시죠, 한국의 놀란 감독님.”
엉거주춤 그 뒤를 따르며, 양진원은 송유리를 쳐다봤다.
“유리야······ 너는 어때? 스타가 됐는데, 힘들지 않아?”
“저요? 저는 별로요.”
“정말? 길가다 알아보는 사람들 엄청 많아지지 않았어?”
“그거야······ 음······ 네, 좀 힘들긴 해요.”
이찬에게 배운 인상변화법을 쓰면 마스크만 써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는 할 수 없어서, 대충 둘러댄 말.
영혼 없는 대답에 양진원이 울상을 지었다.
*
개봉 주의 주말까지 5일간, <아저씨>는 152만의 관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주말 양일간 99%의 객석점유율을 달성한 결과.
17일 기준 2주차의 예매율조차 70%를 초과하며 신기록 달성의 기운이 점쳐졌다.
그 상황에서 나흘 뒤에 열릴 대종상의 초청장이 영화사 사무실로 송달되었다.
대신 수령해서 전달해준 건, 휘하 감독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프로덕션을 찾은 계진행이었다.
“야, 이거 왔어 이거. 양 감독, 축하해. 대종상 초청이야.”
“예!? 왜, 왜요? 심사기간, 아니잖습니까?”
“어, 아니지. 그렇지만 화제의 인물이잖아? <아저씨> 개봉 뒤의 첫 번째 시상식이니까, 화제성을 위해서 따로 테이블 만들어줄 모양이야. 이거 갖고 가서 빨리 정장 맞춰. 후줄근하게 가면 초청장 보고도 퇴짜 놓는다?”
마지막 말이 거짓인 건 알 수 있었지만, 영화제에 입고 갈 의상이 없는 건 사실인지라 돈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7월 21일이 도래했다.
그날 양진원은 송유리의 손을 잡고 생애 처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마치 부녀 같은 모습에 플래시 세례가 마구 터지는 동안, 그는 낮게 신음했다.
‘대종상······ 배우로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이곳에, 감독으로, 그것도 심사대상도 아닌 작품의 이슈로 오게 되다니. 이게 이찬의 힘이구나. 이게 찬 영화제라는 거구나.’
찬 영화제의 첫 번째 작품인 <설산>은 이미 상반기에 백상예술대상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양진원의 <아저씨>는 그 작품 이상의 흥행에,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싹쓸이하는 중.
그렇기에 초짜 감독인 그의 이름이 무려 거장 안정록과 나란히 실린 기사가 차고 넘쳤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난 절대로······ 이런 관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인물이야. 이건, 이건 다 가짜란 말이야······!’
다리가 무거워서 고꾸라질 것만 같다고 느껴질 무렵.
곁에서 걷던 송유리가, 그의 손가락을 강하게 쥐었다.
“감독님, 바보 같아요. 이상한 생각 마시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실력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이 되시면, 무너지지 말고 그걸 현실로 만들어요. 하실 수 있어요. 전 믿어요.”
독심술사 같은 이야기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금세 묻혔다.
그러나 양진원은, 더는 다리가 무겁지 않음을 느꼈다.
< 66장 - 감독 양진원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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