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장 - 제자 강정후 (2) >
안정록의 부고는 금세 각 방송사로 퍼져나갔다.
가족이 없는 그의 장례에 제자인 강정후가 상주를 맡는다는 얘기까지 덧붙여져, 자연스레 모든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특히 그가 명작 드라마로 활약했던 KBC와 MSB에서는 메인 뉴스의 헤드라인에 고인의 소식을 담았다.
그 보도가 극장가에 변동을 불러일으켰다.
<용의 시대>로 국민배우가 되고 <장승업>으로 칸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던 거장 안정록.
두 편의 천만영화에 출연하며 이제는 중년층에게도 큰 지지를 받게 된 톱스타 강정후.
사제관계인 것으로 유명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만든 영화가 아직까지도 극장가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이튿날부터 월계 시네마에 검은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장례식에는 참여할 수 없으니 고인의 유작을 통해서나마 조의를 표하려는 팬들의 행렬.
그에 의 좌석점유율이 다시금 90%에 육박하게 됐다.
그 상황은 월계 시네마 회장인 계진행에게 복잡한 고민을 심어줬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보태는 것이 자본의 이치이니 개봉관을 늘려야 마땅하지만, 존경하는 거장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에 양심적인 거부감이 들었던 탓.
“아무래도······ 예정대로 내일 내려야 할 것 같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찬이 빠르게도 그 양심을 비판했다.
“제자를 위해서 남은 수명을 태워가면서 완성하신 영화예요. 당연히 전 국민이 다 봐야죠. ‘ 안 보면 싸이코패스’ 소리가 나올 정도로 푸시해야 됩니다. <아저씨> 내리고 거기다 전부 그 영화 거세요. 수익금은 연극 발전을 위해서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히시고요. 고인께서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강정후 선배한테는 제가 얘기해둘게요.”
“하하······ 그래, 그게 더 낫겠구나. 하여튼 넌 참 냉철하단 말이야. 난 부고 듣고부터 머리가 전혀 돌아가질 않는데.”
그의 생각과 달리 이찬이 몹시 냉철한 상태인 건 아니었다.
다만 안정록의 테이프는 수십 개나 되었고, 개중에 이찬을 위한 유언도 있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괴로움 속에서도 강해져야 했다.
[찬아. 네게는 여행 중에 많은 이야기를 해줄 셈이라서 짧게만 하겠다. 내 사후 연극계 지원을 네게 부탁하마. 정후는 입대도 해야 하고, 한동안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라엔터에 있는 내 제자들도 가끔 봐주면 고맙겠구나. 또 나머지 테이프들을 받아야 할 이들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 아, 다기 역시 네게 맡기마. 차를 많이 마시렴. 아끼는 후배들에게 차를 달여주면서, 그들이 새 시대를 이끌 배우로 자라나게 도와주렴.]
딱 거기까지였다. 사적인 이야기는 여행 중에 충분히 할 테니 일종의 사후관리만 위임하는 태도.
함께 테이프를 보던 강정후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도 당연했다.
“저 신뢰가 참 부럽다. 네가 아니라 내가 모든 후사를 이어받았어야 했는데.”
“아, 불난 데 부채질하나. 남은 귀찮아 죽겠는데 그딴 소리 하지 마시죠? 이거야말로 편애야. 선배한텐 유일한 제자라고 명예만 주고 나한테는 일만 잔뜩 남기셨잖아요. 됐어요. 테이프나 챙겨요. 거의 다 장례식장 올 테니까 거기서 보여주자고요. 귀찮게 하나하나 언제 다 찾아가?”
그렇게 유언들이 가방에 담겨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다만 그걸 받아야 될 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은, 이찬이 아닌 강정후가 직접 수행하기로 했다. 상주로서 그 일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 유언을 받게 된 이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몇몇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인들이었고, 몇몇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은퇴 영화인들.
그들과 함께 가족실에서 유언을 들으며 강정후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고인의 삶까지 회고할 수 있었다.
개중 <패>의 최형준 감독이 특이한 사례였다.
[최 감독. 형준아. 내가 너한테는 이래저래 미안한 일이 참 많아. 그간 날 많이도 원망했을 거야. 다 내 죄다. 내가 어리석어서 바른말을 들을 줄 몰랐던 탓이야. 그걸 뒤늦게나마 사과할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얘기를 정정하마. 넌 훌륭한 연출자야. <패> 시사회 보고 나니 잘 알겠더라. 씨네맥 편집장한테 편지를 한 통 써놨어. 정신이 똑바르지 않아서 좋은 글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번에는 호평만 써뒀다. 좋은 영화니까 말이야.]
“아······ 참, 못되셨습니다. 돌아가실 걸 알고서야 사과하러 오셨던 거구만? 참 너무하시네. 배우 제자한테는 상주까지 맡기시고, 연출 제자한테는 꼴랑 이게 끝이라니.”
불평불만 속에서 강정후를 흘겨보는 최형준의 눈은, 그러나 새빨간 색깔이었다.
직후에 그가 한 말이 상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 영화는 좀 미룰 거다.”
“예? 아. 예? 개봉일 확정돼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그대로 걸기로 했어. 프린트 비용은 계진행 그 친구가 부담한다고 했고. 월계가 없는 도시에서도 상영이 돼야 할 거 아냐. 도심에만 거는 걸론 분이 안 풀린다.”
“분이요······?”
“그래, 분. 왕창 보라고 해. 그래서 전 국민이 다 비교를 해야 된다 이 말이야. 당신 영화가 나은지, 내 영화가 나은지. 그래서 볼 사람 다 보고 나서 내 거 틀겠다 이 말이야.”
<패>의 제작사 역시 사계 프로덕션이었기에 가능한 일.
그렇지만 긴 추석연휴의 흥행실적을 통으로 날리겠다는 얘기를 가벼운 생각으로 꺼냈을 리는 없었다.
마음과 달리 참 거칠게 말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강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성격 탓에 선생님과도 자주 부딪쳤던 거겠지. 하지만 이제는 앙금도 풀리고 선생님의 작품을 더 널리 알리려 하고 있으니, 제대 후엔 같이 작업해보는 것도 좋겠어.’
그 풀린 앙금이 다시금 대서특필되고 추석연휴가 시작된 이튿날.
<아저씨>를 내린 스크린까지 포함해 600개관으로 확대된 의 일간 객수는, 개봉 주말의 기록을 한참 뛰어넘어 60만에 육박했다.
그러나 강정후는 그 상황을 전달받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끈 채 오직 조문객과만 얼굴을 마주하며, 그는 잠조차 한숨 자지 않은 채 입관과 화장과 매장을 치렀다.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이찬이 마침내 끝을 알렸다.
“이제 됐어요. 상주도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입니다.”
“······너나 복귀해. 난 여기 있을 거다.”
“고인의 유지를 담아서, 잠깐 실례할게요.”
“뭐? 아, 어, 야! 이 새꺄! 이거 안 놔!”
이찬은 들쳐 업은 톱스타를 놔주지 않았다. 그대로 차에 싣고 집으로 데려가 침실에 눕힌 뒤에야, 그 방문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힘드네, 힘들어. 꼬마도 아니고 뭐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아무튼 이제 남은 테이프는 두 갠데······.’
조혁수와 이군영 앞으로 되어 있는 유언들.
전자는 고인의 뜻에 따라 귀국하지 않도록 강제됐으며, 후자는 교도소에 수감된 탓에 조문할 수 없었다.
그 두 개만큼은 이찬이 직접 전해줘야 할 터였다.
‘이군영이야 출소할 때까지 비디오를 보여주긴 힘든 노릇이니까······ 일단은 미국에 가봐야 되겠네. 간 김에 그쪽 무술인들을 좀 만나보고, 거기서 브라질 쪽으로 넘어가는 거야. 그러려면 일단 강 선배가 좀 안정이 돼야 할 텐데······ 언제쯤 깨어나려나?’
*
강정후가 눈을 뜬 건, 이틀 뒤였다.
그의 집 거실을 내 집처럼 이용하며 천세영을 지도하던 이찬이 반색하며 레토르트 카레를 내줬다.
“밥은 새로 했어요. 전자렌지 돌려서 먹어요.”
“······좀 해주지 그러냐.”
“내가 선배 하인입니까? 차려 먹어요. 세영 누나, 한눈팔지 말고 집중하지? 물러터진 선생님한테 배우면서 감이 많이 떨어졌지?”
울상을 지으며 각본으로 눈을 돌리는 천세영을 빤히 보다가,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밥 위에 카레를 부을 무렵.
이찬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축하해요, 삼천만배우.”
“뭔 개소리야.”
“ 천만 돌파했다는 소리예요.”
“······뭐?”
“들은 그대로. 그것도 어제까지 일이고 아마 이달 안에 천오백까진 가지 싶어요. 거장의 유작을 보려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줄을 서는 판이라고 하니까.”
“뭔 말도 안 되는······ 개봉한 지 100일이 된 작품인데.”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선배가 정하는 게 아녜요.”
“아니, 그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는 게 이상할 건 없었다.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찬과 달리, 강정후의 재능은 어디까지나 연기 하나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니.
“<아저씨> 내린 스크린이랑 <패> 개봉할 예정이던 스크린에 전부 올렸어요. 그래서 600개 좀 넘었는데, 거기가 거의 다 채워졌대요. 연예정보프로만이 아니라 뉴스에서도 사제의 정을 집중 조명했거든. 어떻게 그걸 안 보겠어요? 이미 본 사람들도 다시 극장 찾아가는 마당에.”
“아······ 그렇군.”
“오랫동안 남을 기록을 만들 거예요. 감독 안정록과 배우 안정록을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게, 오랫동안 걸어둘 겁니다. 그동안 선배는 연극 하나 준비해요.”
“뭐? 그건 또 무슨······?”
“연극판 후배들이 안정록 선배님의 삶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래요. 거기 참여해요. 대본부터 주연까지 다 맡아서, 입대 전까지 그 일만 하세요. 그러고 나면 좀 후련할 거야.”
전혀 주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결정된 자신의 일정에 당황한 강정후는 화를 내려 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그는 문득 깨달았다.
“너······ 꼭 만들어야 하는 영화가 있다고, 종종 그랬었지.”
“오, 추론 빠른데요?”
“일종의 장송곡이다······ 그런 거냐?”
“그런 거예요. 그러고 나면, 보내드리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거예요. 알았으면 빨리 그거 꺼내서 먹어요. 시간 없으니까.”
“······흥. 내가 알아서 한다.”
“내 시간이 없다고요.”
“응?”
“연극 안정록에는 강정후 배역도 필요하잖아요. 그 배역 누가 할까요? 나보다 잘생긴 청소년 생각나는 사람 있어요?”
굳이 말하자면 단숨에 세 개 이상의 이름을 댈 수 있는 강정후였지만, 빙긋 웃는 이찬의 얼굴이 반론을 틀어막았다.
결국 그는 고개를 흔들며 수저를 들었다.
*
강정후와 유호진과 유태식이 함께 집필한 연극 <안정록>의 시나리오에서, 이군영은 소박한 악당으로 묘사되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배려였다. 물밑에 감춰진 첨예한 갈등까지는 구태여 끌어내지 않았던 것.
그 대신 비뚤어진 친구와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거장,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휘둘리다가 마침내 진짜 스승과 영화를 찍게 된 청년의 이야기가 주된 얼개가 되었다.
극단 ‘별빛’의 소극장에서 그 극을 연습하며 이찬은 안정록의 다른 유언들을 떠올렸다.
‘내 안에 이미 연기의 신이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나는 송유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 꼬맹이가 나와 같은 경력을 쌓게 되면, 그때는 정말 연기의 신이 될 거야. 그렇다면 지금의 난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작은 차이 때문일지도 몰라. 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단순히 나르시스트라고만 말하면 해당될지도 모른다. 소년의 자아도취적인 면모는 그 재능만큼이나 대단하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아닐 터였다.
‘난 사람이 두려워. 날 싫어하게 될까봐, 내 믿음을 배신할까봐, 자꾸만 도망쳤어. 그건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공포······. 송유리가 나와 다른 포인트가 그거야. 그 꼬맹이는 희한하게 가족조차 무서워하지 않는단 말이지. 잠깐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리라고 믿는단 말이야. 그거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겠지. 자신을 사랑하니까, 남에게도 사랑받게 될 거라고 믿는 거겠지.’
송유리가 스스로를 감추려 했던 건 그저 가족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그에 비해 이찬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먼저 사랑하면 반드시 배신당할 거라고 믿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난······ 과거의 안정록 아저씨 같은 거로군. 강정후 선배한테 미움받을까봐 도망쳤던 그 아저씨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던 거야. 그래서 그토록 나르시스트를 강조했던 거겠지.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생각들을 했댔나······. 그럼 난 세계를 돌아봐야지. 예로부터 무(武)는 예(藝)라 했으니, 깊이 있는 성찰을 한 인물들이 많을 거야. 그들을 만나며 나를 돌아본다면, 그때는 연기의 신이 내 안에서 깨어날 터!’
그렇게 이찬이 유랑행의 두 번째 목표를 설정하는 동안, 강정후는 하루에 한 번씩 깜짝 놀라곤 했다.
“천오백만······? 정말입니까?”
[예, 대표님. 입소문에 민감하지 않은 중년층까지 몰려와 눈물을 뿌리고 있는데, 이제는 추모 열기가 아니라 영화 자체만으로도 반드시 봐야만 할 작품이라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천육백도 불가능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분이 만드셨는데.”
[예 예, 그렇죠. 그런데 대표님, 연극은 정말 소극장에서만 하실 생각입니까? 말만 하면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모든 대극장 관장들이 버선발로 뛰어올 텐데요.]
“됐습니다. 내가 쓴 연극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안 선생님이 그리운 사람들은 보러 가면 됩니다. 이 연극은 그저 자기만족이니까, 홍보도 크게 안 할 거예요.”
그 말처럼 홍보를 크게 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간 소식이 곧 대학로를 마비시켰다.
개중 티케팅에 성공한 극소수가 초연을 관람한 뒤엔 그들의 관람평이 인터넷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이내 공연을 여는 것이 민폐가 될 수준에 이르렀다.
하는 수 없이 예술의전당으로 선회해 이후의 일정을 이어가는 동안, 강정후는 종종 투덜거리곤 했다.
“이 새끼. 네가 소문 퍼뜨렸지?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제가요? 뭘 위해서요?”
“······넌, 오지랖 넓은 또라이니까.”
“땡. 틀렸습니다. 소문 퍼뜨린 건 맞지만요.”
이찬은 씩 웃으며 자신의 행적을 인정했다.
“레퀴엠은 성대할수록 좋은 법이거든요. 신기록은 그때까지만 유지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2천만 찍을 거라.”
“하여튼 미친 새끼······.”
의 객수가 1700만을 돌파한 날의 대화였다.
< 68장 - 제자 강정후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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