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장 - 스타 송유리 (1) >
이찬의 파티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비공식 행사로서 어떤 취재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동양 배우들의 독특한 쇼가 오직 참석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만 대중에 알려졌는데, 그게 상당한 화제가 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짧고 굵은 발언 때문이었다.
“배우 이찬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습니다. 그를 보자마자 영화에 참여해주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죠. 그 이후에 그가 준비한 공연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자그마한 배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는 아마······ 2대 배트맨, 로빈 정도는 돼야 가능할 것 같네요.”
거기에 더해 헐리웃이 자랑하는 명배우들의 찬탄까지 기사화되며 인터넷이 달아올랐다.
당장 이찬의 무용과 액션 쇼를 상품화해서 극장에 걸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 마침내 이찬의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양진원 감독님이 찍은 거야. 그냥 캐릭터 구상용으로 찍어만 두라고 캠코더 드렸던 건데, 아예 영화를 만드셨더라고. 그거 유튜브 올라간 뒤로 좀 정신이 없어. 매일같이 배우들한테서 파티 초대장 날아오고, 오디션 없이 바로 캐스팅하겠다는 감독도 넘쳐나고, DC코믹스 작가가 내 캐릭터를 중심으로 신작 내겠다고도 제안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이찬의 담담한 목소리에 담긴다.
어떤 배우라도 감격할 수밖에 없는 헐리웃의 유명세 속에서도, 시카고에 머물고 있다는 소년은 기뻐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런 무심함이 명진아에겐 낯설지 않았다.
칸에서 최고의 상을 받았을 때도 이찬은 그랬다. 정비된 도로를 달리는 트레일러처럼 그저 계획의 추진에만 집중했다.
그런 자기본위 때문에 때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이찬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로 받아들인 부분이었다.
“그러면 찬아, 미국에는 언제까지 있는 거야?”
[두어 달 있지 싶어. 올드먼 아저씨랑 프리먼 아저씨한테 배울 게 좀 있을 것 같거든. 조 선배 연기만 가끔 봐주고 그분들 따라다닐 생각이야. 그 다음에 브라질로 가야지.]
“브라질에선 뭐 할 거야?”
[카포에라랑 발리투두 좀 배우고, 시간 나는 대로 삼바도 해보고. 그런 식으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차례로 돌고 유럽으로 가는 거.]
“유럽에선 콩쿨에 나가는 거지?”
[그렇지. 일단 계획은 그래. 누나는? 영화 곧 개봉이지?]
“응. 여기 시각으론 내일이야.”
명진아가 주연이 되고 임희재와 정신혜가 조연 롤을 맡은 이연진 감독의 독립영화 <강아지>.
그 영화는 크게 주목받는 작품은 아니었다.
오랜 휴식기 끝에 성인이 돼서 돌아온 명진아의 영화라는 점에서 화제성은 있었지만, 작품 자체가 소소한 애견 영화로 비춰지고 있는 까닭.
물론 실제 영화의 내용은 그렇게 단조롭지 않았다.
애초에 감독부터가 <설산>의 이연진 감독인 까닭에, 영화광들은 오히려 반전을 기대하며 흥분한 상황.
다만 이번에도 시사회를 여러 차례 열지 않아 관객들의 입소문이 충분치 못했다.
[잘될 거야.]
“치. 영화 보지도 못했으면서.”
[이연진 감독에 명진아 주연이면 안 될 리가 없지. 아무튼 누나, 유리 좀 잘 챙겨줘. 걔 슬슬 차기작 들어가야 되거든. 누나랑 같이 한 작품 정도 했으면 좋겠는데.]
“······나랑? 음······ 여자애 배역이 둘이나 있는 게 있을까?”
[안 되면 할 수 없고. 아무튼 부탁해.]
제자를 맡기고 전화를 끊으려는 것 같던 이찬은, 잠깐 뜸을 들인 뒤에 수줍게 물었다.
[나, 혹시 많이 보고 싶어?]
“어? 아이······ 왜 그래?”
[궁금해서 그래. 어때? 많이 그리워?]
“이, 바보야. 그거야······ 당연하지······.”
[음. 그렇구나. 미안해, 누나. 그렇지만 군대보단 낫지? 이렇게 통화도 할 수 있고. 빨리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해볼게. 아무튼······ 음······ 나도 좀 그래.]
“어? 뭐가 그래?”
[좀 보고 싶다고. 다시 걸게, 누나.]
전화가 끊긴 뒤로도 명진아는 볼의 핸드폰을 오래 떼지 못했다.
그 볼이 새빨간 색깔로 변한 뒤에야, 황급히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막바지 홍보 인터뷰를 진행할 시간이었다.
*
<아저씨> 개봉 이후 송유리의 삶은 180도 전환됐다.
과거 별다른 재능 없이 그저 발랄하고 성실한 초등학생으로 생활해왔지만, 이제는 이찬의 제자이자 연기신동.
모든 영화인과 관객들이 그녀의 연기를 극찬했다. 벼락스타라는 말이 어색할 일 없는 충격적인 데뷔였다.
자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의 존재는 별이 되었다.
“저기, 유리야? 저기······ 싸인 좀 해주면 안 돼?”
“내 싸인? 야, 뭘 싸인이야? 친구끼리 그런 거 이상해.”
“아니 아니, 나 말고, 우리 아빠가. 너 나온 영화 봤는데 완전 팬 됐다고, 그런 친구 있다고 왜 말 안 했냐고 그랬어. 싸인 꼭 받아오라고······.”
“아, 이상한데. 나 싸인도 없어. 야, 이걸로 사진이나 찍자. 내가 나중에 메일로 보내드릴게.”
“아 진짜? 어, 그럼 좋아하시겠다.”
또래들 중 가진 아이가 드문 천만 화소급 카메라의 휴대폰은, 이찬이 종종 사진 찍어 보내라고 던져줬던 선물.
그것 역시 그녀가 경외를 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대단한 유명인이 된 작은 초등학생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무수한 관심만을 받게 됐다.
그렇듯 변화한 위상에 대해 송유리 본인은 좀 황당한 심경이었다.
아직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직접 본 일이 없는 까닭.
이찬이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었던 <684>도 멋대로 모니터링하곤 했지만, 그녀는 법을 준수할 줄 아는 모범학생이었다.
그리고 송유리는 주변의 변화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편했던 친구들이 불편하게 대해서 좀 별로긴 한데, 그 대신 연예계에 생긴 언니 오빠들은 마음에 들어.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정도야. 그리고······ 내가 연기를 잘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이유야 뻔하지. 괴물 같은 이찬이 스승이라고 하니까, 자연히 납득이 돼버리는 거야. 그 우산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덕분에 괴물 취급을 면할 수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송유리의 마음은 편안했다.
그리고 개봉 후 사흘쯤이 지나자 몹시 행복해졌다.
그녀의 부모가 보여준 반응 덕분에.
“우리 유리 덕분에 아빠가 요즘 살맛이 난다.”
“응? 나 때문에? 왜?”
“왜는 왜야? 회사에 우리 유리 사진 많이 붙여놨더니, 사무실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거야. 얘가 송 과장님 딸이었냐면서, 정말 예쁘고 연기도 잘한다면서, 칭찬이 끝이 없어요. 싸인 받아달라는 직원들도 정말 많더라.”
“응······ 싸인 없는데. 해주면, 아빠 좋아?”
“아니! 우리 딸 싸인하느라 손 아프면 슬퍼요. 아빠는 그냥 유리가 내 딸이라서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대신 엄마는 유리 사진 좀 많이 찍을게? 엄마들이 부럽다면서 난리다? 딸 덕분에 엄마가 매일 웃고 살아.”
“응······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라고, 송유리는 생각했다.
결국 이찬이 옳았다. 그녀의 재능은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는 일에 어울렸으며, 그 성과는 평범한 가정에 행복 가득한 자랑거리가 돼서 돌아왔다.
‘거기에 러닝개런티까지 있었다면 몇 배는 더 좋았을 건데. 찬이 오빠가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면 오히려 불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랬어. 우리 엄마아빠는 안 그럴 거 알지만······ 돈이야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런 생각으로 학교생활에 충실하던 와중, <아저씨>가 921만 관객으로 흥행을 마감했다.
그때부터는 주변의 관심이 소녀의 차기작을 논하곤 했다.
친구들은 이번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했고, 선생님들은 이찬이 출연하는 영화에 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찬은 이내 한국을 떠났다. 1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말과 함께.
‘치사해 진짜. 맨날 자기 맘대로야. 제자라고 들였으면 연기를 잘 가르쳐줘야지, 나한텐 관심도 없고 자기 일만 해.’
당시 송유리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스승이 무시무시한 제자에게 자극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을.
그렇지만 몇 주가 흘러 이찬의 영상이 유튜브 메인화면을 완전히 장악해버렸을 때에는, 조금쯤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오빠······ 진짜 획기적인 걸 하려나 봐. 배역에 몰입하는 걸 넘어서 배역의 삶을 아예 실천하려는 것 같아. 무용 콩쿨에서 입상할 거라 그랬지? 정말 그게 된다면······ 찬이 오빠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배우가 될 거야. 무용과 연기, 어느 한 우물만 파도 쉽지 않은 예술 두 개를 모두 움켜쥐는 셈이니까.’
그 영상을 본 친구들이 매일같이 몰려와 너도 저런 거 할 줄 아냐며 귀찮게 굴기를 1주일.
<강아지>의 개봉일을 맞이해, 송유리는 양친과 함께 수원 월계 시네마를 방문했다.
“명진아 언니가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다고?”
“응. 언니 완전 착한데, 내가 귀찮게 해도 잘해줬어.”
“하하, 그랬어? 언니를 왜 귀찮게 했어?”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찬이 오빠가 시켰어.”
“찬이 오빠가 우리 유리하고 진아 언니하고 친해졌으면 하고 바랐나 보다. 그렇지?”
“그런 건 아니고 혹시 스캔······ 아냐. 그런 건가 봐.”
귀여운 강아지를 안은 명진아의 포스터로 화제를 끌었던 전체관람가 영화 <강아지>는, 그렇지만 내용 면에서 전체관람가에 적합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없을 뿐 부모 없는 세 자매 사이의 치열한 갈등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었던 까닭.
보통 초등학생이라면 금세 흥미를 잃고 딴청을 피웠을 터였다.
그렇지만, 물론, 송유리는 달랐다.
그녀는 이찬의 곁에서 스타가 된 세 여배우의 연기와 이연진 감독의 센스 있는 연출에 거의 감동했다.
‘자매들의 성장과 갈등. 어떻게 봐도 재미없을 소재인데, 배우들이 너무 잘해. 방금 전엔 스릴러 영화 클라이막스 같았는데, 다음 순간엔 행복한 가족영화가 돼버려. 거기에 강아지가 관찰자로 기능하면서 화해의 매개체가 되고······ 이거 되게 재밌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데도 흥미진진해.’
그렇기에 자매가 있는 여성층의 반응이 대단히 뜨거웠다. 송유리 가족 뒤쪽에 앉은 여대생들은 거의 다큐멘터리 아니냐고 수군거렸을 정도.
‘하지만······ 아무래도 괴작 같아. 대화와 감정묘사는 섬세하지만 에피소드가 잔잔하니까, 크게 흥행은 못 할 거야. <설산>도 괴작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괴작이라서 완전 괴작감독 이연진 언니 될 것 같아. 그나마 마지막에 힐링 시퀀스로 끝나서 다행이지. 그런 건데······ 어쨌든 이번 영화로 진아 언니 연기력은 정평이 날 거야. 소녀부터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는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줬으니까. 이 언니가 작품을 아주 잘 선택한 것 같아.’
5년 단위로 3막이 되어 총 10년에 걸친 세 자매의 가족사.
그 통시적 연출을 위해 3대를 이어 활약 중인 리트리버 연기견 집안이 총동원됐고, 여배우들은 짧은 기간에 10대에서 20대까지를 모두 연기해야 했다.
그러나 10대 후반의 임희재도 20대 중반의 정신혜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명진아는, 모든 시퀀스에서 관객을 빨아들이며 자신의 연기력을 뽐냈다. 모르고 본다면 실제로 10년 동안 나눠서 촬영한 영화라고 의심할 만했다.
‘하여튼 대단해. 찬이 오빠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저만큼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유리야, 영화 어땠어? 우리 딸한텐 조금 어려웠을까?”
“웅······ 어려웠어. 강아지 귀여웠어.”
“후후, 그랬구나. 엄마는 되게 재밌게 봤는데. 엄마가 대가족이잖아? 언니들도 많고. 그래서 공감대가 많았어. 나중에 이모들이랑 만나면 엄마 옛날 얘기 해줄게.”
“응. 가자 가자. 나 배고파, 엄마.”
냉철하게 분석한 영화평은 가슴속에만 묻어둔 채, 소녀는 그렇게 극장을 떠났다.
바로 그 다음날에 명진아가 송유리를 찾아왔다.
학교 앞까지 찾아와준 선배 배우의 밴에 올라타,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언니, 영화 완전 좋았어요. 연기 진짜 잘해!”
“어, 어? 아이 참. 유리한테 칭찬받으니까 되게 좋네? 하지만 난 네 연기가 더 좋아. 언니도 언젠가 그런 연기 할 거야.”
양쪽 모두 진심으로만 하는 말.
그렇게 칭찬을 주고받은 뒤에야, 명진아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찬이가 유리 네 차기작 얘길 했었어.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다작은 힘들 테니까, 초등학생인 지금 몇 편 더 찍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네 생각은 어때? 요즘 많이 유명해진 거, 힘들진 않아?”
“전 좋아요. 친구들은 좀 찌질하게······ 그러니까 불편하게 굴긴 하는데요, 엄마아빠가 되게 좋아해요.”
“정말? 후후, 다행이다. 그러면······ 이거 한번 볼래?”
소녀에게 주어진 시놉시스는 총 세 편. 명진아와 송유리가 함께 출연할 만한 작품이 많지는 않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세 시놉 중 소녀의 관심을 끈 건, <폭동>이라는 제목의 근현대 시대극이었다.
“이게 재밌을 것 같아요.”
“어? 이, 이거? 이건······ 되게 무거운 영화라, 괜찮을지 잘 모르겠는데. 유리 너, 5.18이 뭔지 알아?”
“모르겠어요. 그런데요 언니, 솔직히 말해도 돼요?”
“어, 응. 편하게 말해, 유리야.”
“저 찬이 오빠 닮아가나 봐요.”
“응? 찬이?”
“네. 스펙터클한 게 끌려요. <강아지>도 재밌게 봤고 여기 다른 시놉들도······ 나쁘진 않았는데요, 말만 하는 이런 영화들 좀 지루해요. <아저씨> 찍으면서 얼마나 좀 쑤셨는데요. 추격전 같은 거 찍고 싶어요. 솔직히 말하면 추격하는 쪽이 더 좋은데, 아직은 안 될 테니까.”
열 살 소녀의 말이라곤 믿기지 않는 포부.
명진아는 혼란에 빠진 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찬이랑 얘기해볼게. 음······ 내일 통화하자, 유리야.”
“네. 제가 엄청 하고 싶어했다고 얘기해줘요.”
스무 살 소녀는 열 살 소녀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71장 - 스타 송유리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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