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장 - 초선 명진아 (2) >
이용빈 감독이 이찬의 아이디어를 단편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동안, 그 영화의 입안자는 명진아를 찾아갔다.
스스로 말했던 대로 설득은 쉽기만 했다.
“재밌겠네. 알았어, 찬아. 그럼 난 중국어부터 공부해야 되겠다.”
“기초적인 발음만 연습해. 나머지는 내가 알려줄게.”
“정말? 개인교습인 거야?”
“그렇지. 아니면 선생님 따로 붙여줘?”
“아, 아냐! 예산 아껴야지, 바보야.”
“······그거 알아? 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 누나밖에 없는 거?”
“아······ 미안해, 찬아.”
“애칭이라고 생각할게. 나름 듣기 좋아.”
“정말? 그럼······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그만해. 미안하니까 그만해.”
슬슬 진심이 담기기 시작하는 애칭에 이찬은 머쓱해졌다.
눈가에 물기를 띤 초선 역 배우의 마음을, 그는 모를 수 없었다.
히어로무비의 흥행이라는 특별 미션 때문에 무려 1년 가까이 얼굴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이다.
그러다가 다시 연락한 목적조차 그 영화를 중국에서 흥행시키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던 것.
아무리 천사 같은 사람이라도 거기엔 울분이 터지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진짜 미안. 빌어먹을 히스 레저 때문에 좀 그렇게 됐어.”
“응······?”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고. 지기 싫어서 이것저것 연구하다보니까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이젠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바보. 내가 이 역할 안 맡으면 자주 볼 수 없는 건데?”
“누나가 안 받아주면 안 하지.”
“어······ 정말? 내가 안 한다 그러면, 이거 안 하는 거야?”
“그래. 키스 씬도 있는데 이걸 누구랑 해?”
“앗······ 키스 씬, 있어?”
“어. 그러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러면 그냥 한국에 있을 테니까.”
“음······ 하, 하지 뭐. 누나가 인심 썼다, 헤헤.”
인심 좋은 명진아의 얼굴이 발그레 물드는 걸 보며, 이찬은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하하하하. 아, 참 좋다. 하여튼 누나는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일편단심이야? 나 말고 다른 남자한텐 끌린 적도 없었지?”
“마, 많았거든? 내가 뭘 일편단심이래······.”
꼭 관찰의 천재가 아니더라도 거짓말임을 바로 알 수 있을 얼굴.
그런 그녀에게 이찬은 장담해줬다.
“이젠 멀리 안 갈게. 해외 프로모션 일정 아니면 굳이 한국 땅 벗어날 일 없을 거······ 아, 아니다. 4월에 골프 한 번 치긴 할 건데.”
“······나도 같이 갈래.”
“그래, 그러자. 그땐 같이 가도 돼.”
“어? 진짜? 어······ 그런 데서 같이 있는 거 들키면, 엄청 위험한 거 아냐? 어, 혹시 별로 안 유명한 대회라서 괜찮아?”
세계 골프 팬들의 모든 이목이 집중될 마스터스 토너먼트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이찬은 그저 빙글빙글 웃었다.
*
패기만만한 백 발 시퀀스는 금세 폐기됐다.
성공 가능성을 떠나서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 탓에 끝까지 보는 사람이 없을 터였기에.
며칠간 잠 한 숨 못 자고 각본을 완성한 이용빈 감독이 그런 부분을 먼저 설명했을 때, 이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귀찮네요 참. 차라리 작년에 올림픽 나갈걸 그랬어.”
“어휴. 말을 해도. 국가대표는 뭐 아무나 시켜주냐?”
“선수촌 들어가고 어쩌고 하는 게 불편한 일이긴 하죠. 아무튼 대안이 있긴 해요. 기사(騎射)로 하죠.”
“기사? 말 타고 쏘겠다고?”
“예. 말 타고 달리면서 열 발만 쏠게요. 그럼 됐죠?”
“그러면 뭐 트래킹(레일 위를 이동하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찍으면 되겠네? 말을 타고 달리며 고작! 열 발만 쏘는 거니까, 참 너무나도 쉽겠는걸? 하하!”
“그런 거죠. 정말 쉬운 일이에요.”
“······으, 너란 놈은 정말이지······.”
이용빈은 다시금 박무열의 말을 되새겼다. 이찬에게 상식은 별무소용이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그 뒤에야 차분하게 시나리오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일단 네가 말한 대로 전개하기 위해서 역사왜곡이 불가피했어. 포악하고 앞뒤 없었다고 전해지는 여포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거니까 말이야.”
“괜찮네요. 중국 사람들이 역사왜곡 참 좋아하니까.”
“그게······ 아무튼 그렇게 됐는데, 기본적인 인물상은 정사의 묘사를 따라갈 거야. 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흉노족과 어울렸고 잘생긴 용모에 기골이 장대했다······ 너랑 잘 어울리긴 하지?”
“물론이죠. 그때에나 인중여포(人中呂布)였지, 현대에는 인중이찬이니까요.”
“그래 그래. 그런 부분을 남겨두고 여포의 행적을 미화해야 했어. 건안 원년이면 여포가 하비성에 있을 때잖아? 그때 이미 정원과 동탁과 유비를 배신하고 원술과 원소와 장양과······ 또 누구냐?”
“장막이요.”
“어, 장막까지. 그렇게 의탁했다 반목하기를 반복하면서, 배신의 아이콘이 돼 있었단 말이지. 일단 그걸 중화해야 했어.”
“아,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막 도착한 명진아를 보며, 이용빈은 환하게 웃었다.
“여기 도착했네. 그걸 다 저 진아 때문인 걸로 하자고. 비주얼만 봐도 벌써 설득력이 있잖아?”
“아, 지나치게 예쁜 초선이 여포의 약점이었다고요?”
“그래. 달도 얼굴을 가릴 정도의 저 미모라면 무수한 반목의 원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지. 일단 정원이랑 동탁을 배반한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뒤로는 전부 다 태수들이 초선을 탐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반목해야 했던 걸로 하는 거야.”
“하하. 단순하지만 깔끔한데요?”
장본인인 초선만이 이해하지 못해서 갸웃거리는 가운데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무용이 뛰어난 반면 마음은 출세욕으로 가득해서 정원과 동탁을 배반했지만, 결국 초선이라는 미인에게 마음을 모두 빼앗긴 여포. 이후로 세상을 떠돌며 세력을 모으려고 했던 건 전부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필부들이 파렴치하게 탐을 내니 거듭 반목하고 쫓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유비에게는 작은 미안함이 남아 있었더라.”
“아하. 유비만큼은 초선에게 탐을 내지 않았군요?”
“그렇지. 그렇게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어준 인물이었는데, 초선을 지키기 위해서 유비의 서주를 빼앗아야 했던 거야. 거기에 죄책감을 갖고 있다가 그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거지.”
“약자인 유비를 돕는 동기로는 충분하겠네요.”
“그러나 클라이막스니까 그 일은 여포에게도 어려운 문제여야만 해. 원술의 장군 기령이 성격이 폭급한 인물이라서 병력도 많이 끌고 갈 수 없는 상황. 화해를 시키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죽게 되는 상황인 거야. 그래서 출정을 준비하며 초선에게 작별을 고하는 게 첫 시퀀스가 되는 거지. 그간의 사정을 전부 대화로 드러내야 하는데······ 번역은 정말 괜찮은 거지?”
이찬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만져볼게요. 저 중국어 진짜 잘한다고요.”
“오케이, 믿어보겠어. 그 이후에 이제 여포가 죽음을 각오하고 은혜를 갚으러 가는데, 극을 쏘아 맞춘다고 하는데도 기령이 코웃음만 치는 거야. 그깟 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 대단할 것도 없다면서. 그래서 여포가 적토마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외치는 거지. 나 여봉선, 평생 천하를 주유하며 견자라 불렸으나 지금만큼은 한 의인을 지키고 싶다!”
“하하, 그거 좀 괜찮네요.”
“그렇지? 그래서 그 뒤엔 네 말대로 말을 달리면서 열 발의 화살을 쏜다······ 그러면 기령이 어이쿠 하늘의 신장이로구나 하면서 여포를 다시 보는 거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물러나는 그 병력을 보다가, 유비가 묘한 표정으로 여포 쪽을 돌아보고. 약간 의뭉스럽게 말이야.”
“어, 그건 진짜 좋네요. 大耳兒最叵信!”
“어······ 그건 뭐냐?”
이용빈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명진아에게서 나왔다.
“귀 큰 아이 믿지 마라?”
“정답. 누나 공부 열심히 했네? 귀 큰 유비에 대한 경고죠. 최후에 조조에게 사로잡혔을 때, 그 막하에 있던 유비가 여포를 죽이라고 간언하거든요. 그때 여포가 외치는 거죠. 저 귀 큰 녀석이 가장 못 믿을 놈이다! 만약 그 말이 화급한 변명이 아니라 진실이었다고 한다면, 기존에 알려진 선악의 캐릭터를 뒤집는 포인트가 될 수 있겠죠.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것까지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초선을 지키기 위함이었던 걸로 해석될 수 있겠어요.”
“아, 그렇지. 그런 거지.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 의해 쓰이니까, 어쩌면 여포도 시대의 희생자였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준다면 좋겠지. 어쨌든 여기까지가 내가 구상한 시나리오야. 그 뒤에 근거지로 돌아와서 초선이랑 나누는 대화는 이찬 네가 쓴다고 했지?”
“예. 감독님은 한국 로맨스 느낌 나게 촬영 준비만 해주세요.”
“오케이. 촬영팀 퍼스트를 멜로 쪽에서 뽑아볼게. 배우 캐스팅은 명단 벌써 정해놨다고?”
“예. 메일로 소통 중인데, 잘해줄 것 같습니다. 사실 대타도 한 명 있고요.”
“대타는 또 뭐야? 현지에서 잘 안 풀렸을 때 쓸 사람?”
“그렇죠.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그런 식으로 검토를 다 마친 뒤, 이찬은 명진아와 함께 사옥의 옥상으로 올랐다.
“생각보다 잘 나올 것 같아. 감독님이 컨셉을 잘 잡아서, 그냥 이슈만 만들고 버리기엔 아까울 수도 있겠어. 어쩌면 다음 삼국지 시리즈에서 나한테 여포 역 제안 넣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거 맡을 거야?”
“내가 왜? 남의 나라 드라마 찍어서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누나한테도 초선 역 준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한번 진지하게 논의를 해보자.”
“아, 내가 한다고 하면 할 거야?”
“아니. 못 하게 설득할 거야. 우리 앞으로 찍을 게 많거든.”
“우리······? 우리 또 다음 작품도 같이 해?”
“어. <선비> 2부부터 나와 줬으면 해. 괜찮지?”
이번에도, 설득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응! 괜찮아. 그럼, 나 작품 따로 안 잡고 기다릴게.”
“하하. 잘 부탁해, 누나.”
*
오직 중국 현지 로케이션만으로 촬영하는 영화란, 이찬에게도 아주 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중국어는 분명 능숙하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배웠을 뿐이지만 이미 현지인 수준인지라, 이찬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중국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문화의 차이만큼은 그로서도 극복하기 힘들었다.
“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당장 오늘 촬영해야 되는데, 계약까지 해놓고 갑자기 안 나오는 게 어디 있냐고요.”
“그러게······.”
“한국인이 여포 초선 역 한다는 게 그렇게 황당한가? 나 참. 이것도 미엔즈(面子) 때문인 걸까요?”
“미엔즈······ 체면 차리는 거랑은 좀 다르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단역들까지 수백 명 불러놓고 촬영을 안 할 수는 없단 말이야. 빨리 대역을 마련해야 돼. 저 사람들 중에서 한 명 찾아볼까?”
촬영장을 박차고 떠난 유비 역 배우 대신 단역들 중 한 사람을 올리자는 의견은, 일견 타당한 말.
그렇지만 이찬은 고개를 저었다.
“대사는 적어도 표정에 무게감이 실려야 되는 배역이에요. 단역들을 올리기는 힘들죠.”
“그렇지만 대안이 없잖아? 당장······ 아, 혹시 나 시키려고?”
“그럴 리가요. 어지간하면 안 쓰려고 했던 비장의 무기를 써야 되겠어요.”
“비장의 무기······? 아, 맞다. 전에 대타가 있다고 했었지?”
“예. 김도철 형!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중앙 모니터로 불려온 김도철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꼴이었다.
“어흠. 애들이 좀 거칠게 구네.”
“힘자랑 좀 하지 마시라니까요. 대사는 안 까먹었죠?”
“다 까먹었는데. 제발 그만 좀 시켜라. 네 상대역 해주는 사람 아니다. 경호원이면 경호원답게 써먹어.”
“경호원은 무슨. 수염 붙이고 유비나 하세요.”
“······뭘 해?”
“유비 역 맡으시라고요. 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지랄하네.”
“진짜 지랄하기 전에 얌전히 대본 보세요. 바로 발음 교정 들어갈 테니까.”
이용빈 감독은 그 대화에 황망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단역들보다도 더 연기 경험이 적은 한국인을 갑자기 중요한 배역에 올렸다간, 단편영화 수준조차 유지가 안 될 터였다.
“야 야, 너 왜 그래? 미쳤어? 갑자기 얘가 뭔 연기야?”
“이 형이 연기 좀 해요.”
“응? 정말로? 도철아, 너 연기 좀 해봤어?”
“······꼬맹이보다도 못한 연기라고 깠던 놈이, 뭐래.”
“그거야 송유리보다는 못하니까 한 말이죠. 입 닫고 빨리 대본이나 읽어요. 감독님은 걱정 그만하시고 더블 카메라 세팅하시고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 경호원으로 몇 년을 굴렀는데 이깟 조연 하나 못 하겠냐고요.”
그런 이찬의 장담은, 이후 리허설 과정에서 입증됐다.
“여 장군, 내 위기에 그대만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구려. 오늘의 위기를 벗어난다면 내 죽어서도 은공을 잊지 않겠소.”
“오케이. 표정은 좋았어요. 하여튼 이것저것 본 건 많아서 나름 잘하시는데, 성조 좀 더 신경 써요.”
“······씨발. 그냥 후시 따면 안 되냐? 립싱크만 하자.”
“그럴 돈 없다고 말했죠? 전용기 사야 된다고요.”
김도철은 조금 어눌한 발음이나마 자신의 대사를 충실히 수행했다. 몇몇 실수를 제외하면 중국 배우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혹시나 싶어서 이찬이 미리 가르쳐둔 한어가 유용하게 쓰인 셈이었다.
그리고 30분쯤이 지나 마침내 시작된 촬영은, 극을 휘두르며 달리는 이찬의 씬이었다.
“그만! 그만들 두라! 내가 왔으니 군을 물려라!”
“여 장군! 그대가 어찌 천자께서 끄나풀을 제거하시는 일을 방해하려 드는가! 과연 방자하게 또 싸움을 일으키는구나!”
“······나는 평생 싸움을 싫어하고 오직 화해시키는 것을 좋아할 뿐이오! 중군에서 백오십 보 떨어진 원문 밖에 이 극을 꽂아두겠소! 내가 만약 화살 한 대를 쏘아 화극의 작은 가지를 맞추면 양군은 군사를 거두고, 만약 맞추지 못하면 각자 군영으로 돌아가 서로 전투 준비를 하시오.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힘을 합하여 치겠소!”
“허허, 그깟 화살 한 대가 대수라고! 천자의 지엄한 명을 거역한다면, 여 장군 그대 역시 적으로 간주할 것이야!”
“······이 여포 봉선, 평생 천하를 주유하며 견자라 불렸으나 지금만큼은 한 의인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오. 그러니 좋소! 한 대로 안 된다면 두 대, 그래도 안 된다면 열 대를 쏘지! 말을 달리며 그대가 만족할 때까지 맞추겠소!”
백오십 보란 200m에 달하는 먼 거리.
서서 쏘더라도 사람을 맞추기 힘든 거리에서 말을 달리며 극을 맞춘다는 건, 원문사극(轅門射戟)의 전승에서조차 감히 과장되지 못한 미증유였다.
그러나 이찬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리감 좋고······ 일단 한 발. 골프를 해봤던 게 여기서 도움이 되네. 트래킹 카메라는 잘 따라오고 있고······ 좋아, 두 발. 바람이 많이 안 불어서 다행이지. 세 발. 나라고 해도 강풍이 불었다면 한 발을 맞추기 힘들었을 거야. 네 발. 아무튼 활이란 건 참 재밌는 무기야. 워낙 다루기가 어렵다보니 역사적으로 무수한 명장들이 활로 유명해졌지. 다섯 발. 그렇지만 역시 활 하면 한국이란 말이야. 여섯 발. 아무리 자국 올림픽이라고 해도 페트병 두드려서 방해한 건 정말 끔찍해. 일곱 발. 우린 대표선수 선발이 곧 세계선수권대회라는 말까지 있는데 말이야. 여덟 발. 그러니까 내가 갚아줘야지. 아홉 발. 내 나라는, 윤대흥의 나라고, 안정록의 나라니까. 그리고 명진아의 나라니까······ 열 발. 어디 기령 표정 좀 볼까?’
유비 역의 배우와 달리, 이찬은 기령 역을 맡을 배우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동네 아저씨를 데려다 앉혀둔대도 무방한 존재였으니.
“장군은 참으로 하늘의 위엄을 가졌구려(將軍天威也)!”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놀라 떨며 외치는 소리.
이용빈 감독이 직접 든 카메라가 그 클로즈업까지 잘 딴 것을 확인하고, 이찬은 마침내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시퀀스가 2009년의 중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리라는 것을.
< 79장 - 초선 명진아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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