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222화 (222/250)

< 80장 - 아들 구진철 (1) >

<선비 : 영웅의 탄생> 촬영을 마친 뒤, 구진철은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가진 능력 이상의 연기를 수행한 뒤의 정신적 탈진.

이후 후반작업과 CG 작업으로 제작진이 정신없어진 나날 동안, 그는 모든 외부활동을 취소하고 칩거했다.

그 잠적이 일주일쯤 됐을 때 조혁수가 방문했다.

<승부>에서 자신의 아역으로 데뷔해 이제는 마침내 같은 영화에서 동료로서 활약한 그를 치하하기 위해서.

물론 화법은 평범한 칭찬과 달랐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너 <승부> 때 진짜 형편없었다. 그 전에 겪은 아역이 이찬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하하······ 너무하십니다. 그때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던 건 다 마음에 없는 얘기였네요? 그야 <가을하늘> 이찬 선배 연기는 정말 대단했었죠. 그 뒤로 3년이나 쉬고 출연한 <684>에서는,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고요.”

“흥. 너 아직도 선배선배 그러고 있냐?”

“예? 아, 아녜요. 개인적으론 편하게 부르죠. 그냥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하면서 말해본 겁니다.”

“걔 너무 치켜세우지 마라. 아직 스물하나야. 괜히 헛바람 들면 성장이 더뎌질 수 있어.”

“어······ 선배님? 걔가 더 성장할 게 있습니까? 이번 연기 보면서 전 아득해서 가늠도 안 될 지경이었는데.”

그 말에는 조혁수도 잠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투덜대듯 대꾸가 나왔다.

“뭔 개소리냐. 연기의 길엔 끝이 없어. 우리가 볼 때 대단하다 싶은 연기도, 더 뛰어난 사람이 보면 한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거야.”

“이찬보다 연기력 뛰어난 사람이요? 그게 누굽니까?”

“······자꾸 말대답 할 거냐?”

“하하하하.”

“그리고 인마. 내가 지금 너 칭찬하고 있는 거잖아.”

“예? 절요?”

“그래. 그때는 형편없었지만 지금은 이찬하고 충분히 연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얘기다. 이해가 어렵냐?”

“어······ 전혀 그렇게 안 들렸는데요?”

“찰떡같이 좀 알아먹을 것이지.”

“하하하.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다 선배님 덕분이에요.”

“까고 있네. 이찬 덕분이겠지.”

조혁수의 아역으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찬과 구진철은, 이제껏 세 편의 작품에 함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이 든 후배는 어린 선배를 따라잡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684> 때는 이찬이 동작 하나하나를 지시해준 ‘이동만’ 역을 재현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아저씨>에서는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고자 몇 달 동안 무수한 캐릭터들을 만들고 지우며 칩거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비>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조혁수의 드문 칭찬에도 놀라지 않은 건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까닭.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구진철의 칩거를 부른 원인이었다.

“선배님. 저 있잖습니까······ 진짜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면서 무슨 연기를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뭔가······ 뭔가에 사로잡힌 채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는데도 딱 한 가지는 정확히 알겠더라고요. 아직도 멀었구나. 그렇게 홀려서 연기하면서도 이찬이나 선배님한테 비비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습니다. 당장 다음 작품에서 찬이 실망시키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무섭습니다.”

“개소리가 길다.”

“하하하. 개소리가 아니라요 선배님, 진짜로요. 자신이 없습니다.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수준에서 무슨 자신 운운이야- 그런 말을 간신히 입 안에서 억누른 뒤, 조혁수는 차분하게 위로하려 노력했다.

“뭔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정말요? 선배님도요? 에이, 설마.”

“설마는 무슨. 너랑 별다를 것 없어. 아니, 거의 똑같았지. 나도 그 이찬 놈 때문이었다. 그놈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에 쫓기는 심정이 됐던 거야.”

“하하. 그거 반대잖습니까? 전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아니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인데요?”

“말대답 좀 하지 마라. 열 몇 살 어린 놈한테 쫓기는 기분을 네가 아냐? 그리고 이번엔 그것도 아니었단 말이다. 탈 쓰고 얼굴 하나 드러내지 않은 놈 기백에 밀려서, 내가 주인공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었어. 히스가 뭐라고 했는지 아냐? 걔는 연기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탈을 쓴 것 같다고 하더라.”

“아······ 참, 대단하긴 했죠.”

“그래. 그래서 안다는 거다. 네 그 두려움이 얼마나 한심하고 머저리 같은 소린지 말이야.”

하여튼 말 참 못되게 하는 선배라고 생각하면서도, 구진철은 작은 기대를 담아 그를 올려다봤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뭔가 좀······ 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뭘 본받아? 그냥 닥치고 연기해라. 집에서 혼자 캠코더라도 켜놓고 계속 연기해. 그렇게 미치고 또 미쳐라. 그래야 망령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거야.”

“아······ 선배도 참. 그게 다예요?”

“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남이 친절하게 조언해주면 감사합니다 그럴 것이지.”

“아, 죄송합니다. 그야 감사하죠······.”

일단 윽박질러서 감사인사를 받아냈지만, 제대로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음을 조혁수는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말주변이 없어 더 뭐라고 격려할 수가 없었다.

“흠······ 밥이나 먹자. 따라와.”

이후 국밥집에서 순댓국을 들이켜면서, 두 사람은 무수한 팬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 뒤에는 구진철이 너스레를 떨었다.

“가끔 하는 생각인데, 선배님 참 일상생활이 힘드시겠어요.”

“나야 뭐 별 거 있나. 대체로 젊은 축이라 힘들 거 없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말하면 거의 이해해주니까.”

“어······ 선배님? 그건 무서워서 꼬리 마는 거 아닐까요?”

“그런 거 아냐. 내 이미지가 그 정도는 아니다.”

“하하하. 아무튼 이찬 걔가 대단하다니까요. 걔는 어떻게 된 게 사람 많은 거리도 마음대로 걸어 다니더라고요. 인간의 인지체계를 이해하면 어려운 일 아니라고 그러던데, 참 무슨 소린지 원. 선배님, 걔는 요새 뭐 한답니까?”

“내일 중국 간다더라.”

“어······ 와, 전혀 몰랐네요. 중국은 왜 간대요?”

“진아랑 단편영화를 하나 찍을 거라던데. 나도 잘은 모르겠다. 집에만 있지 말고 회사 좀 나가라, 이 자식아.”

“예······ 뭐······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지만, 구진철은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그저 집에 틀어박힌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구진철은 때때로 오랜 과거를 떠올렸다.

왜 그러는 거예요? 프로필 봤는데 스무 살까지 연기에는 관심 없이 사셨잖아요? 너무 열정적이셔서 좀 신기해요.

<684>의 이동만 역을 맡아 이찬의 호텔방에서 연기교습을 받았던 날 들었던 질문.

그 물음에 뒤늦게 자조적인 답변을 건네줬다.

‘엄마가 봤으면 했어. 학창시절 내내 사고만 치고 다녔던 내가, 그래서 일수 빚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집 떠나시게 만들었던 못난 아들이, 이렇게 장성했다고. 남들한테 폐 안 끼치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훌륭한 배우가 됐다고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괴롭힘 같은 찬이 교습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는 그 녀석처럼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실미도의 나날에, 구진철은 이찬에게 질문했었다.

나는 너 같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냥, 삶의 지표 같은 게 필요해서 그래.

그때 소년은 웃으며 대답해줬다.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보다는 좀 오래 걸리겠지만.

‘······좀 오래 걸릴 수준이 아니잖아. 아직도 그 당시의 이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스물한 살이 돼서 히스 레저 같은 슈퍼스타한테도 찬사를 듣는 이찬을, 대체 어느 세월에 따라잡을 수 있냔 말이야. 터무니없어. 아무리 해도 무리야. 나는 여기까지야. 더는······ 무리야······.’

그렇지만 한 달쯤이 지나서는 놀라서 벌떡 일어서게 됐다.

이채진의 전화가 그 원인이었다.

“뭐? 영화를 무료로 공개했다고?”

[응. 벌써 유튜브에도 올라왔으니까 봐봐. 완전 감동적이야. 마지막 키스 씬에서 나 울었잖아.]

“키스 씬······ 진아랑 멜로를 찍은 거구나?”

[응! 둘이 완전 잘 어울리더라. 아, 부러워 진짜. 나도 찬이랑 키스 씬 찍고 싶다.]

“하하. 너 찬이 엄청 좋아하네? 그러다 대시하겠는데?”

[아닌데? 나 혁수 오빠 좋아한다고 말 안 했나?]

“······뭐가 그렇게 오락가락해? 찬이 좋아한 거 아니었어?”

[내가? 촬영할 땐 좋았는데, 지금은 그냥 그래. 오빠, 혁수 오빠랑 요즘 연락 해? 한국에 있는 사람끼리라도 같이 뭉쳐서 회식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냐? 오빠가 추진 좀 해줘.]

“네가 하지 왜 날 시켜······.”

[내가 부르면 안 나오신단 말이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자애의 부름이라면 나라도 거절하겠다고 생각하며, 구진철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찬이 공개했다는 영화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원문사극>이라고······? 그게 무슨 사극이지? 영제가 ······ 그건 어디서 들어봤는데. 퀸 노래 제목 중에 있지 않았나? 아무튼 검색해보면······ 아, 나왔다. <어사> 커플이 찍은 사극 멜로라니, 참 기대되는데?’

물론 그 기대는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배신당했다.

고풍스런 중국인으로 분해 뭔지 모를 중국어를 주고받는 이찬과 명진아를 보며, 구진철은 급히 자막을 켜야 했다.

‘이건가······? 아, 됐다. 자막 기능도 있고 참 편리하단 말이야. 어디······ 아, 이런 얘기였구나. 대체 어쩌다가 중국어로 중국인을 연기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 초선? 여포? 어디서 들어봤는데. 삼국지 그런 거였나?’

불한당 같았던 소년기 속에서 책과는 거리를 뒀기에 사전지식이 거의 없던 구진철은, 이찬과 명진아의 대사를 자막으로 보며 조금씩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

‘전란 중에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로군. 흔한 클리셰지. 아마 위기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 그런 엔딩이 될 것 같아. 그나저나 둘 다 대단하네. 중국어가 굉장히 자연스러워. 나는 영어 하나 마스터하기도 힘들었는데, 언제 저렇게 준비한 건지 모르겠어. 되게 뜬금없이 출국한 거 아니었나?’

처음에는 그렇게 느긋한 심경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찬이 무수한 군사들 사이에서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쏘아낼 때는 심장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거······ 저건 후반작업이 아냐. 롱테이크로 흔들리는 트래킹 카메라에 저렇게 자연스러운 CG를 입힐 수는 없어. 저건 그냥 쏜 거야. 그냥, 열 발 쏴서, 저 멀리 있는 창을 계속 맞춘 거야······ 와, 진짜 말도 안 된다. 얘가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선비> 2부에서는 댄서가 활도 쏘고 그러겠네.’

거기까지의 반응은 딱 대중이 느끼는 바와 같았다.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유튜브 조회수도 200만을 넘긴 시점이었으니, 다수의 영화팬들이 이미 이찬의 진화한 무한액션을 기대하는 중.

그러나 그 시퀀스가 엔딩으로 치달았을 때에 구진철이 느낀 건, 대중의 경탄과 다른 절망이었다.

‘저게······ 연기라고? 저 들끓는 감정이 정말 연기라고?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야? 저건 아무리 봐도 정말로 사랑을 고백하는 청년이잖아? 아······ 말도 안 돼. 진아까지 저런 표정이라니. 이건, 자막을 안 봐도 내용을 알겠어. 얼굴만 봐도 두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야. 맙소사. 저게 진짜 연기구나. 난 저런 연기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거야. 저 두 사람은, 정말 차원이 다른 연기자야······!’

이후 구진철은 침대에도 오르지 않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터무니없이 멀고도 먼 완성형의 연기를 본 탓에, 심장이 옥죄고 뱃속이 울렁거려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에 조혁수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던 것이다.

‘미치고 또 미쳐라······ 망령에게서 도망쳐라······ 그래, 그래야 되겠어. 나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저 선배들로부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 나도 할 수 있어······!’

그렇게 구진철은 일주일가량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패배감과 갈 곳 잃은 감정들 속에서, 그는 신을 찾는 구도자로서 무한한 연기의 길을 걸었다.

물 외에는 무엇도 섭취하지 못한 고행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이채진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무척이나 무기력한 상태였다.

[오빠! 대박 대박! 뉴스 봤어?]

“뉴스······ 뭔데······.”

[이 오빠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 빨리 TV 틀어봐. 지금 인터넷이 난리야 난리! 빨리 골프 채널 틀어봐.]

“골프······ 찬이가 또 우승했구나. 당연한 일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진아랑 같이 있다니까?]

“그래······ 촬영 마치고 같이 갔나 보네······.”

[으아악! 키스했어! 우와! 또 키스했어!]

그제야 후다닥 리모콘을 쥔 구진철은, 10초쯤이 지나서야 간신히 스포츠 채널을 틀 수 있었다.

1934년부터 시작되어 세계 4대 메이저 골프대회 중 하나가 된 영예의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이제 막 끝난 시점.

트로피를 거머쥔 이찬의 옆에 명진아가 있었다.

에서 봤던 바로 그 사랑 넘치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저, 저! 저것들이! 진짜 사귀는 거였구나! 연기가 아니었어! 아으······ 난 대체 지금까지 뭣 때문에······ 으아아!’

*

“표정은 좋아 보인다만······ 뭔 다이어트를 이렇게 했냐?”

조혁수의 물음에, 구진철은 해탈한 듯 웃었다.

혼자 갈 수 있다는데 굳이 집까지 데리러 온 선배 배우의 마음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입니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뭐라는 거냐? 너 도 닦았냐?”

“공수래 공수거.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쯤 알게 됐달까요.”

“애가 영 이상해졌네.”

“하하하. 참 이상한 세상이죠? 정말 이상해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대꾸들.

그렇지만 조혁수의 눈은 구진철의 내면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냈다.

“너······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네. 보기 좋다.”

“하핫.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나아졌어요.”

“짐을 내려놓으면 연기도 한층 발전하는 법이지.”

“다행이네요. 이제 더는 폐 안 끼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만 할 거다. 이번 영화 매출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 같으니까. 기대치가 더욱 높아질 거야.”

이후 조혁수와 함께 하늘기획 사옥으로 이동하며, 구진철은 이찬의 기행이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만 천만 건이라니, 정말 엄청나네요.”

“그만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거겠지. 유비 역 맡았던 배우랑 SNS로 설전을 벌인 게 오히려 홍보효과가 됐다고 하더라.”

“유비 역? 도철 씨가 처음부터 맡은 거 아니었습니까?”

“아냐. 처음에 중견 배우 중에 한 명을 캐스팅했는데, 그 사람이 주연이 한국인들이란 걸 알고 팽개쳐버린 모양이더라. 그 이후에 이찬이 그 인간 웨이보에 욕을 잔뜩 적었는데, 거기에 한국인들 무시하는 투의 반박글이 달렸고, 또 이찬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는 소인배하고는 같이 일 안 한다, 당신 대신 내 경호원한테 연기 시켰더니 훨씬 더 잘하더라, 그렇게 속 긁었던 거지. 그 배우야 이름자나 알린 인물이더라만 이찬이라고 하면 월드스타잖냐. 그런 녀석이 자국 배우랑 시비를 트고 있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덕분에 파급력이 커진 거다.”

과정만 보면 참 유치하게 논다 싶은 전개.

그렇지만 그 결과까지 연장선상에 놓고 보자면, SNS 설전마저 이찬의 계획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된 영화의 도철 씨 연기가 또 파급력을 키웠겠네요.”

“그래. 자국인이라고 감싸줄 수도 없을 정도로 이쪽 대타가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 거야. 거기에 이찬과 명진아의 연기는 중국 그 어느 명배우들에도 못하지 않았지. 속 좁은 인간들조차 승복해서 홍보에 한 손 보태주게 됐던 거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태양 같은 한 수로군요.”

“태양······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자식 그냥 열 뻗쳐서 욕지거리 해댔을지도 몰라.”

“하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참 잘됐네요. 그 단편영화 속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공개연애까지도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잖아요? 정말 보기 좋은 커플입니다.”

어깨를 으쓱여 보인 조혁수의 차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선비>의 홍보전에 돌입할 시간이었다.

< 80장 - 아들 구진철 (1)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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