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장 - 야인 이군영 (2) >
“가끔 아저씨에 대해 얘기하시곤 했어요.”
늙은 패자의 눈물이 그친 뒤, 이찬은 그렇게 서두를 뗐다.
“제 입장에선 듣기 싫은 얘기였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죠. 제가 싸가지는 없어도 예의는 있는 애라서요.”
“······그래.”
“안정록 이사님은 아저씨를 좀 특별하게 생각했어요. 솔직히 저는 대놓고 똥구녕이라고 부르면서 괴롭힐 거라고 예고하고 그랬는데,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말리시더라고요.”
“그 녀석이?”
“예. 자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거라고, 아저씨가 한 나쁜 짓들이 결국 당신 탓이라고 하셨죠. 황당하죠?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저 같으면 진작 손절했을 텐데.”
이군영은 무심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퍼뜩 놀라서 코웃음을 쳤다.
“흥. 개차반 미치광이 주제에.”
“아, 그 얘기도 들었어요. 극단 떠날 때 그렇게 부르셨다면서요? 그 말에 충격을 많이 받으신 것 같더라고요.”
“음······.”
“그러니까, 내가 아는 안정록 이사님의 형성에는 아저씨라는 반면교사도 작용을 했던 거겠죠. 그 점은 고마워요.”
“허······.”
“<684>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생전에 아저씨랑 그걸 같이 볼 수 없다는 점을 굉장히 안타까워하셨죠. 그래서 다음 스케줄은 한국 최초의 천만영화 시청회입니다.”
이후 이찬의 연습실에서 <684>를 시청하며, 이군영은 안정록이 자신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저 교육대장 이성일이란 배역은, 시대의 풍파 속에서 양심을 저버려야 했던 인간. 그게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래, 그런 소리를 여러 번 했었어. 연기는 돈벌이 상품이 아니라 인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지. 우스운 이상주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가. 젠장. 몹쓸 녀석이 죽어서도 날 가르치려고 드는구만······.’
이군영은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보셨어요? 감상은 어떠셨어요?”
“······시끄러워.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쿨하시네요. 또 어디 가세요? 의탁할 사람은 있으신가?”
“누구한테 의지할 생각은 없다.”
“그래요? 그게 아니라 할 수가 없으신 거 아니고? 평생을 더러운 방법으로만 사셨는데 진정한 친구가 있었을 리 있나. 신사옥 때문에 사비까지 털고, 벌금에 배상에 다 물고, 이제 거지 아녜요? 정 힘들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왕따 아저씨.”
하여튼 끝까지 싸가지 없는 새끼-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선 이군영은, 건물을 나서며 피식 웃었다.
*
“누가 와?”
“이군영······ 씨요.”
“아니, 그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회장의 노한 음성에도 비서는 썩 두려워하지 않았다.
KE그룹을 이끄는 조금양이라는 노인이, 말은 거칠게 하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잘하기로 유명한 까닭이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왔다고 하는데요.”
“뭐? 허, 참. 그게 뭔데?”
“거기까진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쫓아낼까요?”
“······아니, 그럴 것까진 없겠지. 올려보내.”
비서가 나간 뒤에야 조금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새끼가 미쳤나? 평생 서로 욕하며 살아온 사이에, 출소한 날 나를 찾아와? 갈 곳이 없게 돼서 나한테라도 손 좀 벌리려는 건가? 이 새끼, 마침 잘됐다. 비열한 협잡질로 살아온 그 인생을 처절하게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두 사람의 첫 만남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탤런트 매니저였던 조금양에게 잘나가는 배우였던 이군영이 안하무인으로 굴며, 시작부터 엇갈렸던 관계.
그게 90년대에 이르러 금양과 나라의 거리감으로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후로 혐오감이 더욱 커져갔다.
정직한 방법은 쓸 생각이 없고 상납과 끼워팔기로 연예인들 키우는 경쟁사의 대표를, 조금양은 인간 취급도 안 했다.
그렇기에 나라 배우들이 들어간 작품엔 자기 배우를 보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용인해준 게 진아랑 이찬이 만난 <가을하늘>이었지. 사실 꽤 고민을 했었는데. 연기 경력도 없는 꼬맹이 따위 말 한마디면 캐스팅 막을 수 있었단 말이야. 하지만 애가 하도 연기를 잘한대서 어쩔 수 없이 놔뒀던 건데······ 그게 참 잘한 일이 됐지. 요즘 진아가 그 이찬 옆에서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니까.’
당시 금양기획 소속이었던 명진아는, 지금도 과거의 은혜를 잊지 않고 연에 몇 차례씩 인사하러 오곤 한다.
이제는 KE그룹의 회장이 된 조금양에게도 그 인연은 반가운 추억.
그렇기에 잘나가게 될 배우들 한꺼번에 뺏어간 이찬에게도 별다른 억하심정이 없었다.
‘진아나 정하나, 가치를 몰라봤던 내가 멍청한 거지. 그 신기한 꼬맹이 곁에서 날로 일취월장하는 게 참 보기 좋아. 특히나 진아가 <선비>에도 투입된다는 건 괜히 나까지 기분 좋아지는 일이란 말이야.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지. 이군영 밑에 있어서 고까웠던 꼬맹이가, 이제는 매일 웃으며 진아 기사 찾아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니.’
그런 생각의 와중에 문이 열렸다.
만나지 못한 세월 이상으로 나이를 먹은 듯한 평생의 숙적이, 어색한 몸짓으로 회장실 안에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조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허허, 태도 달라진 것 좀 보게? 야, 이놈아. 이제 처지가 변하니까 그 뻣뻣하던 목이 숙여지냐? 한심하다, 한심해.”
“······에이 씨. 못해먹겠네.”
“어, 그래? 벌써 인내심이 바닥났냐? 그래,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제 잘난 맛에 살던 놈이 그 버릇 개 줄까?”
“거 좀 말 좀 좋게 합시다. 나 잘난 맛에 산 적 없소.”
그때쯤이 되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그건 또 뭔 소리냐?”
“잘난 게 없으니까 뻐기면서 살았던 거지. 다친 개가 더 으르렁거리는 그런 꼴이었소. 아무튼 그건 됐고, 오늘은 시비 걸러 온 거 아뇨. 미안하다는 말 하러 왔어.”
“뭐?”
“조 형한테 미안한 게 많으니까, 사과하러 왔다고. 척하면 척하고 좀 알아들으실 거지는······ 꼭 이렇게 성을 내게 만든다니까. 나도 나지만 형도 그런 건 좀 고치쇼.”
툭툭 내뱉는 말이지만 내용이 퍽 황당하다.
두 살 연하의 전과자를 바라보며, 조금양은 눈을 가늘게 떴다.
“허······ 농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구만.”
“돈 벌 구석도 없는데 농이나 던지러 여기까지 왔을까.”
“흠. 그런 거면 뭐, 잠깐 앉아. 차는 내줄 테니까.”
미안하단 한마디에 풀릴 만한 앙금들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어딘지 달라진 느낌의 이군영에게 계속 욕을 내뱉기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
차를 마시며, 조금양은 과거의 일을 탓하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거, 너 나라엔터는 가봤어?”
“들러봤지. 신사옥을 멋지게 올렸더구만.”
“흠, 그렇지. 강정후랑 조혁수가 대단히 활약을 했거든. 거기다 이제는 조연식 그 친구까지 들어가서 아주 라인업이 대단해. 하늘기획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어. 거기 하늘기획에도 가봤어? 이찬 걔라면 웃으면서 반겨줬으려나?”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녀석 속도 없이 착하다고 명성이 자자한데? 진아도 늘 찬이 착하다는 말만 한다고.”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생각했지만, 이군영은 말을 아꼈다.
“아무튼······ 그 회사가 참 재밌어. 물론 나야 하늘기획 거기가 확 뜨면서 배우 쪽에서는 좀 철수하게 됐지. 하지만 덕분에 가수들 잘 키워서 여기까지 오게 됐단 말이야. 거기에 이찬 그놈이 T.O.P를 소개해준 게 좀 컸지.”
“신문 봤소. 팬들한테 칭송도 받고, 실적도 대단했다고.”
“대단할 거야 뭐 있나. 매출 규모로 보면 하늘기획 거기를 이겨본 적이 없어. 네가 데리고 다니던 그 정창영이란 녀석이 참 많이 컸다고. 허······ 생각해보면 참 세월 빠르네. 솜털 보송보송하던 그 녀석이, 이젠 아시아 최고의 승부사라 불려.”
“다 내 덕이지. 처음에 이찬을 전담시킨 게 나였으니까.”
“거, 흰소리 하긴. 아무튼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어. 이제는 예전 너처럼 정재계에 선 대려고 개지랄 떠는 기획사는 없다고. 그 대신 다른 문화가 좀 생겼지.”
“그게 뭐요?”
“계진행이 그 친구가 진짜 충무로의 군주가 됐다는 거야. 연에 거의 수십 편씩 영화제작을 지원해주는데, 거기서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하늘기획 나라엔터 이런 검증된 배우들 쓰지만, 중저예산 영화의 경우엔 철저하게 실력주의래. 사실은 <선비>만 해도 신인 이채진이가 들어갔잖아? 그렇게 회사 경력 무관하게 연기만 잘하면 캐스팅 따낼 수 있다는 거야. 그 계진행발 문화가 이찬 지시라고 하더라. 믿어지냐?”
이군영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6년 전까지 업계 1인자였던 그는, 수감되어 있는 중에도 신문을 통해 세상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읽어냈다.
그렇기에 자신을 축출한 것과 업계를 변화시킨 것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치는 있구만. 네가 그런 쪽으론 빨랐지.”
“그래, 눈칫밥으로 살아온 30년이요.”
“하.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 내가 너 같은 양아치 새끼들 몰아내서 일궈내려고 했던 변화를, 핏덩이 같은 꼬마 배우가 다 이뤄주고 있으니까.”
“좋으시다니 다행이구만.”
“뭐? 말 쉽게 하긴. 너 같은 새끼는 다시는 이 바닥에 발도 들일 수 없다는 얘기야!”
“나도 그럴 생각 없소.”
“······그럼 뭐 해먹고 살 건데?”
“걱정해주는 거요?”
“내가?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왜 널 걱정해?”
어깨를 으쓱여 보인 뒤, 이군영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산 입에 풀칠할까. 뭐든 하면 먹고 살기야 하겠지요.”
“이 나라에 너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텐데. 어딜 가든 욕을 먹을 거야.”
“욕하면 먹지요. 뭐 별 거라고.”
“하, 아주 해탈을 하셨구나? 별난 놈, 별난 놈. 넌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재수가 없어. 양아치 새끼.”
“미안하게 됐다니까.”
“······연기나 해볼 테냐?”
그 말에는 눈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황당함을 가득 담아서, 이군영은 진절머리를 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라, 어차피 밥 빌어먹을 거라면 엑스트라나 하란 말이야. 평생 이쪽에서 살아온 녀석이 다른 거 뭘 할 건데? 얼굴 안 나오는 보조출연이래도 다른 어중이떠중이보단 잘할 거고, 요즘은 또 근로기준법 준수하는 풍토가 돼놔서 밥벌이로도 충분하다. 그것도 그 계진행이가 만든 문화다만······. 나도 아직까진 나름 인맥이 있으니까, 너한테 행인 역 주라고 얘기는 할 수 있어.”
“그야 하실 순 있겠지. 조 형은 나랑 다르게 인망이 있었으니까. 멍청하기 짝이 없는 수법으로만 일하면서도 대형 기획사를 만들어냈던 게 다 그 덕분이었겠지.”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는구나.”
“······찬사였는데.”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두 번 안 말한다. 지금 대답하든가, 아니면 썩 꺼져!”
이군영은 대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이 손에 스스로의 연기를 위해서 대본을 쥐어본 건 거의 20년 가까운 과거.
거인 안정록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멀리멀리 떠나왔던 연기의 길이, 모퉁이 하나 돌아서 보니 여전히 코앞이었다.
“······현장 나가면, 서로 많이 불편할 텐데. 내가 워낙······ 사람들한테 함부로 대했잖소.”
“지랄을 하네. 네놈이 잘나가는 거장들 아니면 상종이나 했었냐? 그때 네가 겸상도 안 할 만큼 무명이던 PD한테나 소개해줄 거야. 그러니까 가서 잘해보란 말이야.”
“음······ 그렇다면 뭐······.”
“알았으면 꺼져. 전화번호는 그대로냐?”
멋쩍게 웃으며, 이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조금양은 약속을 지켰다. 이군영이 현장에서 마주한 PD는 정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 주연배우는 반대였다.
민속촌에서 마주치게 된 여배우는, 이군영이 결코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으잉? 뭐야, 대표님?”
“어······ 소연이구나.”
“여긴 왜 오셨······ 어······ 그 복장 그거, 설마 엑스트라?”
“음. 보조출연자다.”
“왜요?”
“왜는······ 밥 빌어먹으려고 하는 거지.”
“와. 쩐다.”
‘쩐다’라는 신조어의 의미는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속으로는 조금양에게 욕도 잔뜩 씨부렁거렸지만, 이군영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작품은 MSB의 대하사극.
노인 분장을 하고 수염을 잔뜩 붙이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법도 해, 연출이 이내 그에게 조연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이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PD에게 고맙다며 고개 꾸벅이고는, 보조출연자로서 등으로만 연기했다.
그 드라마를 촬영하며 이군영은 변화한 세상을 실감했다.
기획사 사람들은 현장에 나와 괜한 고집을 말하지 않았다. 스탭들은 욕을 내뱉지 않았으며, 배우들은 겸허하게 연출진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과거 턱없이 제멋대로였던 이소연이 특히나 열정적이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그런데······ 감독님. 저기, 저도 할 수 있겠죠? <어사> 때 조연출 하셨었잖아요?”
“아이고······ 소연 씨, 내가 뭐 그렇게까지 대작을 만들겠다고 장담은 못 하는데요.”
“그래도 열심히 해주실 거죠? 잘해주셔야 돼요. 혁수 오빠는 아무리 부탁해도 청탁은 안 된다고 무시한단 말이에요. <선비> 출연하고 싶으면 실력으로 보여주라는 거 있죠? 하여튼 사람 참 꽉 막혔어. 그래도 하고 싶어요. 저도 월드스타 되고 싶어요. <선비> 출연하고 싶단 말이에요.”
“아이고, 하하하. 그래요. 열심히 할게요.”
그게 <선비>로 데뷔해 일약 월드스타가 되어버린 이채진 때문이라는 것을, 이군영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실력이 있어야만 좋은 작품을 따낼 수 있는 업계. 헐리웃조차 떨게 할 만큼 압도적인 대작을 내놓는 선배 배우들.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편법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 잃어버린 순수한 열정을 되살려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정록이······ 네가 바란 게 이런 세상이었던 거야? 이찬 그놈을 나한테 빼앗기면서도 볼멘소리 하나 하지 않았던 게, 이런 미래를 예상했던 까닭이었어? 참······ 별나군, 별나. 만약에 너랑 내가 그렇게 찢어지지 않고 손을 잡았다면······ 우리 둘이서 뭉쳐서 한 회사를 운영했다면······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날 이군영의 어깨 연기는 특히나 더 자연스러웠다.
여주인공 이소연이 활짝 웃으면서 치켜세울 만큼.
“아, 우리 대표- 으흠. 우리 아저씨 연기 진짜 좋네요. 진짜 연기 다시 해보시면 어때요? 내가 어디 선 좀 대줘요?”
“됐어. 얼굴 드러내고 살 처지 아니다. 그런데 넌······ 내가 밉지도 않냐? 거 왜······ 지금 회사랑 비교해보면.”
“지금 회사? 흐음. 하긴, 아저씨 계셨을 때라면 나도 <선비> 배역 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좀 편법이지만?”
“그 편법들을 시킨 게 원망스럽진 않았어?”
“그때야 좀 그랬죠. 남자가 무섭기도 했고. 이젠 상관없어요. 어쨌든 아저씨 덕분에 유명해져서 많은 기회 잡았던 게 사실이니까. 적어도 아저씨는 나한테 직접 그러진 않았잖아? 남심엔터 대표 잡혀갔단 얘기는 들었죠? 그 변태새끼에 비하면 우리 아저씨는 양반이었지. 그래서 밉지는 않아요.”
그 속없는 말에 구원을 얻은 것처럼 기뻐졌던 이군영은, 잠시 뒤에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에게 구원 같은 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뿐이었던 진정한 친구에게 사과 한마디 전하지 못한 인간은, 평생 야인으로 사는 게 적합할 터였다.
< 83장 - 야인 이군영 (2) > 끝
ⓒ 비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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