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훔치는 연기자-237화 (237/250)

< 85장 - 영웅 송유리 (3.) >

수화기를 울리는 웃음 속에서, 강정후는 한숨처럼 말했다.

“초대 톱셰프에, 이 시대의 다 빈치라고요.”

[그렇다니까? 하하하, 레오나르도 다 이찬이랜다.]

조혁수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기쁘다는 투였다.

그야 그 이찬과 함께 출연한 영화가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호재이니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경쟁자의 유명세를 진심으로 반기는 태도가 고까웠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찬의 행적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뭐 하는 짓이랍니까? 배우가 연기로 승부를 해야지.”

[연기로 승부하기엔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이 너무 커. 그 정도는 해줘야 서구권 배우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

“그렇다곤 해도······ 너무 막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멋대로 나대고 다니다 NASA에서 납치라도 안 당할지 원.”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은데?]

“흥. 후배 배우를 아끼는 마음 정도는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인의 혈육이기에 아끼는 마음도 일정 부분 들어가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조혁수의 질문은, 그러나 다른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게 아니라 NASA 말이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보냐? 거기가 됐건 다른 정보기관이 됐건. 정말 이찬을 외계인이나 유전자조작 신인류라고 판단한 곳이 있을까?]

“······없을 리 있습니까? 고작 스물둘에 손대는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솜씨를 내고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뒷조사를 안 한 국가가 없을 겁니다. 자제할 필요가 있어요.”

[흠······ 그건 좀 걱정되네. 얘기를 해봐야 되겠어.]

“내가 말 안 했겠습니까? 해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다 과정일 뿐이라면서 코웃음만 치더군요.”

조혁수는 잠시 신음한 뒤에 말을 이었다.

[어쨌든 당장 문제를 만드는 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그야 그렇겠죠.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월드스타한테 위해를 가할 만큼 중대한 사안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활동이 뜸해지는 순간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게 간단한 신체검사로 끝날 리 없고요.”

[그렇다면······ 너, 뭔가 대비하고 있구나?]

“가능한 한요. 그 녀석 전용기 스탭들이 내 사람이죠.”

[소광그룹 깡패들?]

“아닙니다. 제대로 훈련받은 보디가드들이에요.”

세계 최고의 격투가인 이찬이 정말 위기를 맞는다면, 그들로서도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렇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하하. 너도 참 헌신적이다.]

“헛소리 마십쇼. 내 연기의 숙적이 괜한 일로 위협받는 걸 원하지 않을 뿐이니까. 이제 끊겠습니다.”

[그래. 촬영 잘해라.]

통화를 마치고 차에서 나서며, 강정후는 이찬을 생각했다.

‘멍청한 자식 같으니. 제가 하는 짓이 뭔 짓인지도 모르고 나대고 있으니, 어른인 척 하지만 꼬맹이일 뿐인 거지.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다. 외할아버지의 기업을 빼앗아서라도 내가 지켜. 그게 선생님의 뜻이니까. 안정록의 유일한 제자는 나지만, 그의 유지를 이을 인간은 이찬이니까······’

“캉! 이봐요, 캉 맞죠? 당신 연기를 인상적으로 봤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해주세요.”

주차장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스튜디오까지 이동하며 강정후는 무수한 영화인들의 인사에 시달렸다.

그건 <인셉션>이후의 변화.

한국의 1452만 관객을 포함해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그 영화는 북미에서만 2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였고, 자연히 그들의 뇌리에 동양인 ‘관광객’이 진하게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도달한 스튜디오에선 히스 레저가 그를 반겼다.

“아, 프로미. 내 비밀스런 친구가 등장했군.”

“그렇게 부르지 마라, 조크. 프로메테우스야.”

“하하. 네가 제대로 조커라고 불러준다면야.”

“······그건 됐고, 저쪽 상황은 들었어?”

“저쪽? 리? 물론이지. 매일 구글링하고 있어. 정말이지 나쁜 녀석이야. 그렇게 요리를 잘하면서 촬영하는 동안 한 번도 대접해주지 않았다니. 다음엔 꼭 리의 하우스파티에 가겠어.”

“······참 속도 편하군.”

이찬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강정후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저런 멍청한 것들과 영화 찍고 있으니 네가 꼬맹이라는 거다. 빨리 위기에 처해라. 내가 널 구하고 뻐길 수 있도록.’

그리고, 위기는 빠르게도 닥쳐왔다.

강정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

“상영·배급 분리라고요······.”

어이없다는 투의 이찬을 보며, 계진행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걸 딱 7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거야. 올 게 온 거지. 전부터 좀 간당간당하긴 했거든.”

“이건 뭐, 내가 유럽 가 있는 틈을 노린 거네요. 우파 정권의 보복이에요.”

“그렇지. 사실 이번 프리프로덕션 때 국정원에 한번 불려갔었어. 진아랑 유리 빼라고 하더군. 안 그럼 곤란할 거라고.”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습니까?”

“말하면 뭐 해? 쓸데없는 개소리일 뿐인데. 그래서 어디서 개가 짖나 하면서 무시했더니, 세무조사 들어오더라고.”

정권 교체 전 <폭동>의 주연으로서 활약한 명진아와 송유리는, 우파 정권 집권 직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렇기에 한동안 섭외가 뚝 끊겨 있었던 것.

그런데 이찬이 세계적 인기 시리즈인 <선비>에 그들을 전격 캐스팅했으니, 자연히 정권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 외에도 이전 정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박무열, 제준원 등의 유명 감독 역시 블랙리스트의 핵심인물.

계속해서 그들의 작품을 지원해왔으며 반독재 정서의 영화에 꾸준히 투자해온 충무로의 군주는, 기득권의 눈엣가시였다.

물론 그런 사정을 계진행은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하게만 짐작하고 있는 부분이고, 이찬에게 폐가 되지 않고자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정도로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했기에 표적 세무조사조차 피해갈 수 있었을 뿐.

“그것까지 안 통하니까 세계적으로 인기 끄는 시리즈의 제작을 막을 방법이 없었겠지. 그래서 결국 날 타겟 삼은 거야. 극장이든 배급사든 하나는 망하게 하겠다는 거지. 거의 2천억 쏟아 부은 영화라, 배급을 못 하든 상영을 못 하든 사정이 궁해질 테니까. 그냥 두면 적자 파티가 될 거야.”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계진행은 영화계의 공룡이라 불렸다.

업계에서 가장 견실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와 상영관을 갖춰 연간 매출이 대기업 OJ의 30%에 육박할 정도였기에.

그러나 그 명성은 사실 빛 좋은 개살구로, 한국영화 전용관으로 전환된 월계 시네마에서도 예술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배급사 세계에서도 큰 수익은 나오지 않았다.

반복해서 수백억의 순이익을 안겨준 이찬이 아니었다면 이미 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

그런 상황에서 나온 상영·배급 분리 법안은 위협적이었다.

돈도 안 되는 한국 예술영화를 집요하게 세계에 배급해온 투자배급사 세계. 이찬 영화의 상영을 통해 간신히 고객층을 유치한 한국영화 전용관 월계 시네마.

계진행의 둘뿐인 캐시카우는, 양쪽 모두 <선비>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수익구조가 빈약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이찬 역시 표정이 굳었다.

<선비> 2부가 세계적으로 큰 투자수익을 낸다 한들, 그게 현금화되어 들어오는 건 나중 일.

당장 닥쳐온 위기의 대응책은 될 수 없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런저런 영화들 딱 아슬아슬할 정도로 투자해와서, 좀 애매해. 내가 실은 올해를 한국영화 제2의 르네상스로 만들고 싶었거든.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예술영화 투자했단 말이야. 배급을 독립시키든 우리 영화를 상영관에서 빼든······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야. 매각 진행해야지.”

“영화인들 반응은요. 그래도 충무로의 군준데.”

“군주는 무슨. 내가 있어 보이려고 떠들고 다니는 말이지, 별 거 없더라. 스크린독과점 해소하기 위한 과업이라고 하면서 전부 다 찬성하는 분위기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부 다는 아니었다.

그가 한국영화계에서 이룩한 일들은 그야말로 금자탑. 상식 있는 영화인들은 계진행을 노린 그 규제법안에 항거했다.

다만 새 정권의 눈치를 보던 영세 영화인들이 기회주의적으로 흐름에 올라탔다.

그들이 독과점을 철폐하고 영화산업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한 혁신이라며 지지하고 나서자, 대중 역시 그간 영웅시하던 계진행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냥 둘 수 없겠네요.”

“뭘 그냥 둘 수 없어? 찬아, 넌 여기서 빠져라. 애초에 철 지난 수직계열화로 영화계 이끌겠다는 발상이 잘못이었던 거야. 배급 포기하지 뭐. 워너 쪽으로 판권 넘기고 제대로 푸시 받으면 <선비> 흥행은 더 탄력을 받을 거야.”

“헛소리 마세요. 계 회장님 수직계열화는 영리 독과점이 아니라 영화산업을 위한 희생이었어요. 그걸 뻔히 아는 주제에 정권에 야합하는 인간들? 다 족쳐야 됩니다. 그리고 버러지 같은 수법으로 입맛에 맞는 영화인만 남기려는 정부도요.”

“아이고! 야, 좀 놔둬. 이것도 괜찮다니까? 판권 넘기면 극장 적자 만회할 여유가 생길 거야. 그러면 충분히-”

“그게 헛소리예요.”

마지막 말은 이찬의 발언이 아니었다.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송유리를 보며, 열띤 토론 중이던 계진행과 이찬이 모두 당황했다.

“아, 젠장. 넌 또 거기서 뭐 하냐? 어른들 일이야.”

“영화인들 일이죠. 제가 출연한 영화 일이기도 하고요. 저도 이제 알 거 알아요. 아저씨, 오빠. 이거 저한테 맡겨줘요.”

“뭐? 뭔 개소리야? 송유리, 넌 빠져 있어.”

“뭐래. 오빠는 빠져 있으라면 빠져 있는 사람인가?”

그 톡 쏘는 말에 계진행이 웃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하하! 그래, 얘가 웃긴 놈이지. 지는 낄 데 안 낄 데 다 끼면서 제자한테는 그러지 말라는 건 웃기단 말이야. 그렇지만······ 유리야. 네가 낄 일은 아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제가 낄 일 맞아요. 이번에 유럽 다녀오면서 생각 많이 했어요. 사람들의 마음이란 건 참 재밌어요. 어떤 때는 바위처럼 완고하고 어떤 때는 흙처럼 부드러워요. 저한텐 그게 보여요. 바위에 물을 부어볼게요. 흙이 될 수 있게요.”

“야, 유리야-”

“잠시만요. 회장님, 제가 따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이후 이찬은 송유리를 끌고 나와 차에 올랐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뭘 어떻게 하겠다고?”

“간단해요, 오빠. 요즘 인터넷에서 본 거 알려드릴게요. 누군가가 널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그놈에게 이유를 만들어줘라. 히스 삼촌 사진이랑 붙어 다니던데, 대사는 아니죠?”

차 안에서 10분 정도 설명을 들은 뒤, 이찬은 생각했다.

‘이 자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순진하고 얌전한 애였는데 완전 모사꾼이 돼버렸네. 대체 누굴 보고 배운 건지 원.’

송유리는 보고 배운 스승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찬의 동반자로서 조금이나마 공헌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

14세가 되어 중학교 1학년생이 된 송유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무려 1668만이 시청한 흥행작 <선비>의 후반부에서 압도적인 초능력으로 댄서를 쓰러뜨린 히어로.

충격적인 연기력에 더해 어린 나이에 걸맞은 귀여움까지 겸비한 그녀를 싫어하는 청소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건 청년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월드스타 이찬의 절대적인 추종자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청년들은 그의 공식적인 제자를 몹시 환영했고, 그녀가 트위터 계정을 만들자 단숨에 10만의 팔로워를 안겨준 바 있었다.

요즘 아이답게 SNS를 열심히 활용해온 송유리는 종종 이찬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게 베일 속에서 살아가던 톱스타의 일상을 드러내는 유일한 창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인맥 좋은 소녀가 이런 스타 저런 스타들과 사진 찍는 것을 즐겼기에, 또 수십만의 팔로워가 증가했다.

3월 2일에 그 계정에 독특한 사진이 올라왔다.

국회 앞에서 영화 속 장면처럼 울상을 지은 송유리가, 자기 몸보다 커다란 피켓을 머리 위로 들고 찍은 사진.

개강으로 신이 나 있던 청년층조차 흥분할 만한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 저희 아저씨를 도와주세요.

계진행 아저씨는요 지금도 작은 단칸방에 살아요.

순이익이 100억이나 되던 월계 시네마를 한국영화 전용관으로 바꿔서 그렇대요.

월계 시네마랑 배급사 세계 직원들 중에 비정규직이 하나도 없어서 그렇대요.

찬이 오빠 영화로 번 수익을 다 <워낭소리> 같은 다양성영화 제작에 지원해서 그렇대요.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이 버는 아저씨지만 세계에서 제일 돈 많이 쓰는 아저씨라서 그렇대요.

그런 아저씨가 이제 하나를 포기해야 된대요.

한국영화를 많은 사람한테 보여드렸던 한국영화 전용관이나 인기 없는 예술영화에 투자해왔던 배급사 세계.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대요.

저희 아저씨를 도와주세요. 」

해당 사진이 단숨에 수만 건의 리트윗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서울 전역의 청년들이 상황을 확인하고자 여의도로 달려왔다.

그런 이들의 숫자가 천 명을 넘어서고 금세 기자들이 달려와 카메라를 들이댄 뒤.

그들의 눈앞에서 한편의 영화가 펼쳐졌다.

“송유리! 야, 그만하고 내려와! 진짜 내가 끌어내릴까!”

“경찰 아저씨들 가라고 해요! 저는 1인시위 하는 건데, 자꾸 경찰들이 와서 못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안 내려가요!”

“그런다고 담벼락 위에 올라가면 어떡하냐! 위험하다니까!”

“싫어요! 우리 아저씨 구해줘요!”

“내가 구해줄 테니까 그만하고 내려와! 어른들 일에 꼬맹이가 왜 나서냔 말이야!”

“좋아하니까요! 아저씨가 투자해서 만들어진 영화들 좋아하니까, 아저씨가 안 망했으면 좋겠어요!”

두 톱스타의 국회 앞 설전은 곧바로 방송을 탔다.

동시에 인터넷 언론에서 1분마다 속보를 내보내며 수천 개의 검색결과를 만들어냈고, 모여든 청년들 역시 트위터를 통해서 상황을 알리며 총계 2213만의 트렌딩 토픽을 기록했다.

상황이 종료된 뒤에 수치를 들은 송유리가 기뻐했다.

“와아! 2천만배우예요! 현실 영화로 2천만 해냈어요!”

“······자랑이다. 배우가 현실에서 사람들 속이는 게 뭐 즐거운 일이라고.”

“연기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오빠, 이거 오빠가 먼저 했어요. 전에 몰래카메라에서 막 역으로 몰카 짜서 다 속여버린 거. 전 그거 보고 배운 건데요?”

“······영상 클립 다 지우라고 하든가 해야지. 이상한 거 배우지 마라. 넌 그냥 연기만 하면 돼. 앞으론 나서지 마.”

“헤헤. 그래도 도움이 되긴 했죠? 저는 엄청엄청 평범하디 평범한 이미지니까, 이번 SNS 영화는 전혀 의심을 받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렇죠? 이젠 바위가 흙이 됐죠?”

송유리의 흰소리는 이내 사실이 되었다.

용기 있는 소녀의 목소리에 심장을 움켜쥔 한국의 수백만 대학생들이 현실로 나섰다.

영화제작을 꿈꾸는 예술계 대학생들이 한국의 영화산업을 무너뜨리지 말라며 행진에 나섰고, 그 산업과 무관한 인문대 학생들조차 21세기의 감동적인 다양성영화가 다 계진행의 투자로 만들어졌다며 1인시위를 이어갔다.

나중에는 이공계 대학생들마저 계진행 소유 회사의 공시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업을 운영해왔는지를 입증했다.

그야말로 거대한 급류와도 같은 흐름.

계진행의 역사에 송유리라는 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그녀는 2010년의 잔 다르크가 되었고, 바위는 진흙으로 변했으며, 규제법안을 통과시키려던 국회는 전 국민의 주적이 됐다.

그 전개를 보며 이찬은 생각했던 것이다.

‘송유리 이 녀석은······ 내 생각보다 더 커질지도 모르겠어. 이찬과 명진아의 딸은 이런 느낌인 거야. 배트맨과 조커가 결합한 거나 다름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그런 주제에 늘 입에 평범을 달고 살고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야. 그게 아니면 거의 다크히어로였을 텐데.’

다크히어로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그해 봄.

상영·배급 분리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선비 : 폭풍전야>는 세계 전역에서 10513개의 스크린을 배정받았다.

대한민국의 영화가 세계의 스크린을 과점했다.

< 85장 - 영웅 송유리 (3.) > 끝

ⓒ 비벗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