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안 돼!”
성현은 벌떡 일어섰다.
부릅뜬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과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책상…….
학교다.
그것도 교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지 몹시 시끄럽다.
“야! 담배 있냐?”
“골초 새끼.”
“없어? 진짜?”
“없어, 새끼야.”
“구라치네.”
낄낄거리는 양아치 학생들…….
“어제 우리 오빠 예능 나온 거 봤어?”
“어! 당연히 봤지!”
꺅꺅거리며 아이돌 가수를 이야기하는 여학생들, 시시할 정도로 시답잖은 평화다.
하지만 성현의 표정은 달랐다.
그는 다급한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얇디얇은 팔과 다리가 만져진다.
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오고 싶지 않다니까.’
성현은 몇 초 전만 해도 미래에 있었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미래에서…….
* * *
성현이 있던 수십 년 후의 미래, 그곳은 시린 눈으로 덮인 평원이었다.
그곳에 흰색 위장복을 입은 자들이 스르륵 나타났다.
그 숫자가 약 2천 명…….
그중에 검은 가면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눈밭에 쓰러져 죽은 남자.
앞으로 다가가 맥을 짚었다.
검은 가면이 빙긋이 웃었다.
“이태산은 사망했다. 이제 구악은 2명 남았어!”
이들은 토벌대다.
토벌 대상은 ‘구악(九惡)’. 지금껏 3천 명이 희생되며 구악 중에 7명을 죽였지만…….
“긴장을 풀지 마라. 아직 악마가 남아 있어!”
아직 구악의 마스터 유성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성현은 높은 언덕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본 그의 눈빛은 이곳의 바람보다 차가웠다.
‘내가 악마라고?’
한때 성현과 구악은 세상의 영웅으로 불렸었다.
구악이라 불린 이유도 악마 같아서가 아니다.
악을 무찌르는 9명이라는 뜻의 자랑스러운 이름……. 그러나 지금은 반역자다.
모든 원인은 지연우에게 있다.
지연우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위선자…….
놈은 자신의 권력과 생존을 위해 ‘교’에게 인간을 팔아먹은 자였다.
‘교…….’
‘교’는 존재들의 단체, 어머니급 존재 여섯과 군주급 존재 일곱이 모여 만든 곳이다.
군주급 존재 하나만 해도 지구 정도는 손쉽게 박살 낼 수 있으니 교의 그 끝없는 힘은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놈들의 약점은 분명했다.
존재가 가진 힘이 크면 클수록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다.
그 약점을 공략하면 방법이 생길 거다.
하지만 지연우는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갓난아기를 바쳤고 갓 태어난 아기의 비명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중이다.
그리고 당장 찢어 죽여도 모자란 그 놈이 세상을 위해서라며 성현을 반역으로 몰아세웠다.
“과거로 가세요.”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이름은 이서아.
성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본 미래에서 우리의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그런데 과거에는 가서 뭐 해? 또 지연우한테 농락당하면서 죽으라고? 그건 싫어.”
“제가 본 것은 고작 수억 가지의 미래였어요. 만약 무량대수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중에 단 한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도박이야. 난 도박을 좋아하지 않고 과거로 돌리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 대가는 네 영혼의 소멸이잖아.”
“삶이 두렵지, 소멸은 두렵지 않아요. 그리고 꿈틀은 해 봐야죠. 그게 이 지옥에서 살아가는 법이잖아요.”
“됐어. 내 결정은 끝났어. 그러니까 떠나. 도망갈 시간은 내가 벌어 줄게.”
“……시간을 벌어 준다고요?”
“충분히 쉬었어.”
성현이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을 보며 이서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성현은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아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심지어 독에도 중독되어 있었다.
입에서 흐르는 검은 피……. 성현이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는 시간을 벌어 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생명을 쥐어짜는 힘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때…….
“쏴!”
두 사람이 있는 장소가 들켰다.
화살이 하늘을 가득 채웠고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몇 초 후면 저 화살이 성현과 이서아의 몸을 뚫을 거다.
성현이 비틀 거리며 일어섰다.
“과거는 됐어. 여기가 내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도망가라.”
그의 손에서 스파크가 파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꽝!’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올랐다.
솟아오른 성현을 보며 이서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현은 자신의 생명력을 태우고 있다.
구악의 마지막 남은 동료인 그녀를 구하려고…….
하늘로 뛰어오른 성현의 손에서 스파크가 파직거렸고 곧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그것은 버림받은 악 지르힐의 창!
창이 나타나자 성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창을 만들어 내며 엄청난 기력을 소비했고 그로 인해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반드시 죽고 만다.
하지만 성현은 상관 않고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오던 화살이 갈 길을 잃고 흩뿌려졌다.
이어서…….
성현이 창을 들어 올렸다.
세상을 뒤덮을 만큼 먹구름이 일더니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릉!
세상이 어두워졌다 번쩍이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죽어 간다.
핏물이 눈을 녹이고 번개에 맞은 사람들이 뒹굴고 있다.
악에 찬 비명 소리, 이곳은 지옥이다.
그럼 이 지옥의 시작은…….
‘내 선택인가?’
선택…….
구악이 반역으로 몰리기 전에 지연우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선한 얼굴로 말했다.
-성현아, 난 ‘교’에게 인간을 팔아먹는 게 아니야. 인류의 생존을 위해 협상한 거야. 그러니까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니, 눈이라도 감아 줘. 그게 인류를 위한 길이야.
성현은 단박에 거절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갓 태어난 아기를 바치는 게 협상의 결과라니…….
그리고 그 시간이 되돌아온다 해도 성현은 지연우와 손잡지 않을 거다.
‘내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어.’
성현이 세상을 내려다봤다.
번개가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며 설원에는 시체가 쌓였다.
떨어져 내리는 번개를 피해 숨은 자들은 몸을 바르르르 떨었다.
“살인마 새끼. 저 새끼는 사이코패스일 거야.”
“무, 무서워! 난 살고 싶어…….”
“……어떻게 저렇게 강한거야?”
그들의 시선은 검은 가면에게 모였다.
그가 이 토벌대를 이끄는 대장이다.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검은 가면은 입을 열지 않는다.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치는 성현만 보고 있다.
‘말도 안 돼.’
그는 구악을 죽이기 위해 5천의 군대를 끌고 왔다.
비록 부대 구성원이 삼류로 채워져 있지만 머릿수를 믿었다.
그런데 성현의 힘은 예상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는 것은 거기까지다.
검은 가면은 차분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지연우가 준 게 있어서다.
-유성현과 대치하게 되면 이걸 쓰도록.
검은 가면은 품을 더듬거렸고 마법 족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족자 안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연우가 준 것인 만큼 허접하지는 않을 거다.
‘유성현을 죽일 수 있겠지.’
지연우는 치밀하다.
이 상황까지 예상했을 거다.
‘유성현, 이제 그만 죽어라.’
검은 가면은 지연우를 믿고 다급히 족자를 찢었다.
그런데 검은 가면의 몸에서 불길이 확 치솟아 올랐다.
몸을 잿더미로 만들 것처럼 뜨거운 불길이…….
그가 눈밭에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른다.
“끄아아악! 뜨, 뜨거워……! 살려 줘!”
그는 이제야 자신이 지연우한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낮은 관리직인 그에게 5천의 부대를 허락한 이유, 일류는커녕 이류도 없는 삼류 토벌대를 맡긴 이유를 생각했어야 한다.
그들은 구악을 없애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존재를 강림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이곳에 온 삼류 전사는 모두 죽어도 상관없는 제물이다.
검은 가면은 이제야 그걸 깨달았고 이 상황을 모르는 토벌대의 시선은 검은 가면에게 향했다.
“뭐야?”
“왜? 무슨 일이야?”
그들은 갑자기 불에 휩싸여 뒹구는 검은 가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은 가면의 몸에 붙은 불을 시작으로 허공 여기저기에 수만 개의 불꽃들이 만들어졌다.
그 불꽃들이 떨어지더니 토벌대의 몸에 달라붙었다.
“불! 불이야!”
“끄어어억!”
그들은 불덩이가 되었고 서로에게 뒤엉켰다.
조금 더 큰 불덩이가 된다.
또 달라붙는다.
수만 개의 불꽃들은 그렇게 거대한 불덩이가 되었다.
-우우우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덩이는 사람의 형상이 되어 간다.
그 크기가 아파트를 넘어선다.
점점 더 커지더니 눈 덮인 산은 무릎조차 되지 않는다.
불덩이는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여인의 몸.
하지만 그것은 시뻘건 지옥의 불덩이다.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
그것은 지연우와 계약한 ‘존재’
수천 명의 토벌대를 제물로 삼아 이 세상에 강림했다.
그 ‘존재’, 플로르가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찾았다.
플로르의 시뻘건 눈동자가 정확히 성현을 집어냇다.
천천히 머리를 숙이며 눈을 맞추더니 입을 쩍 벌린다.
그러자 침이 떨어지는 것처럼 용암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성현은 플로르의 강림을 지켜보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떨리는 손으로 라이타를 틱틱 튕겼지만 쥐어짠 생명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튕길 힘이 모자라 불이 붙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불을 붙인 후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서아야, 도망쳐.”
이서아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로 가면 지금 가진 힘은 모두 잃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본 수억 가지의 미래가 머릿속에 심길 거예요. 그걸 토대로…….”
“안 간다니까!”
“미안해요. 이런 세상을 또 반복하는 것은 괴롭겠죠. 외로울 테고요. 하지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서아는 칼로 손가락을 그어 피를 냈다.
그리고 펼쳐 둔 양피지에 성현의 이름을 적는다.
“서아야!”
이별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의 손가락이 이서아의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푸욱!
그녀는 축 늘어진다.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희미한 미소만 남긴 채…….
“아아아악!”
성현은 악을 질렀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혼자 살아남아 숨을 쉬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졌다.
성현이 서늘한 눈빛으로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를 노려봤다.
“죽어.”
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플로르를 향해 날았다.
플로르도 악을 지른다.
-키아아악!
놈은 불덩이를 집어 던졌고 그것은 그대로 성현을 덮쳤다.
힘과 힘이 맞부딪치며 세상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꽈아아아앙!
그때 이서아의 몸에서 흐른 피가 양피지를 적시는 중이었다.
피를 머금은 양피지가 둥실 떠오르더니 금빛을 뿜어낸다.
양피지에서 나온 힘이 세상을 흔든다.
꽈르르릉!
천둥이 울렸다.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하늘이 무너진다.
쾅! 쾅! 쾅!
행성이 떨어졌고 파도가 육지를 집어삼켰다.
솟아오른 먼지가 하늘을 가리며 암흑세계가 되었다.
세상을 얼려 버릴 냉기가 세상을 지배했고 불덩이에 파묻혔던 성현의 몸이 조각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거다.
수십 년 전으로…….
* * *
생각을 마친 성현은 눈을 떴다.
다시 학생들이 보인다.
슬퍼하거나 침울해할 시간은 없었다.
그런 감정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동료들에 대한 죄악이다.
지금은 기억을 더듬어야 할 때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찾아야 하는 것.
성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교과서에 적힌 글씨가 보인다.
3학년 7반 유성현
교실 앞에 걸린 달력은 8월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
성현은 자신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
‘지금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지?’
그때 담배 냄새가 확 느껴졌다.
시선을 올려 앞을 보니, 불량하게 생긴 학생이 성현 앞에서 낄낄거리고 있다.
“그림 안 그리냐?”
아, 이런 인간도 있었다.
지옥에서 살며 고등학교의 기억은 거의 잊었지만…….
‘곽동진.’
싸움 좀 한다고 아니, 같이 노는 친구들이 껄렁하다고 어깨에 힘주던 양아치.
“수학 선생 좀 그려 보라니까, 가슴을 강조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