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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화 (2/252)

2화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성현은 만화 그리기를 즐겨했고 이날, 곽동진이 무서워서 수학 선생님의 누드를 그렸다가…….

‘걸렸어.’

성현이 그림을 완성하자 곽동진은 그 그림을 들고 수학 선생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저 새끼가 선생님을 그렸어요!”

이제 막 임용된 수학 선생은 책상에 엎어져 펑펑 울었고 성현은 체육 선생님에게 개 터지듯 맞았다.

“빨리 그려, 새끼야.”

곽동진이 성현을 보며 최대한 흉악하게 인상을 썼다.

옛날 같으면 무서웠을 거다.

하지만 짐승과 싸워 왔던 성현에게 곽동진의 협박은…….

“신선하네.”

“뭐? 신선?”

곽동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성현이 곽동진의 얼굴을 그대로 가격했다.

쩌억!

곽동진의 얼굴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비틀거릴 뿐이다.

성현은 자신의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확실히 과거로 돌아오긴 했나 보다.

이런 고등학생 하나 한 방에 제압 못 하는 것을 보니…….

뭐, 상관없다.

쓰러질 때까지 때리면 되니까.

정신을 차린 곽동진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성현은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콰당탕탕!

균형을 잃은 곽동진이 교실 바닥에 처박혔고…….

성현이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너 생각보다 더 약하구나?”

곽동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만 깜빡…….

그 순간 성현이 곽동진의 몸을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콱! 콱! 콱! 콱!

교실은 한순간에 서늘해졌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유성현이 곽동진을?’

괴롭힘을 당하던 성현의 폭력은 잔인했고 두려웠다.

곽동진의 코와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허우적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 그만…….”

하지만 성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코를 발로 짓이겼다.

꽈직!

급기야 곽동진이 울기 시작한다.

“미안해……. 살려 줘…….”

“살려 줘?”

“미안해, 제발…….”

성현이 곽동진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바들바들 떠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무서웠던 놈인데 알고 보니 덩치만 커다란 애송이다.

이런 놈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이 지옥 같았고 학교 오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니…….

“곽동진…… 눈 떠 봐.”

뺨을 툭툭 치자 곽동진이 눈을 조심스레 뜨고 성현을 바라봤다.

더 때리지 않는 것을 보며 조금 안심한 눈빛이다.

그런데…….

“넌 내가 봐 달라고 하면 봐줬어?”

“어? 봐줬냐고?”

봐준 적 없다.

웃으면서 더 괴롭혔지…….

“나도 마찬가지야.”

성현이 의자를 손에 쥐었다.

곽동진의 얼굴이 공포로 휩싸였고…….

쾅!

곽동진이 성현에게 맞았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교로 퍼졌다.

그리고 그 소식은 학교 뒤에서 담배를 피우던 5명의 양아치에게도 전해졌다.

“유성현? 누구지?”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진 주열호였다.

그 질문에 삭발한 학생이 대답한다.

“곽동진이 데리고 다니던 애 있잖아. 뼈다귀만 남은 애.”

주열호는 잠시 성현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억났는지 미간을 콱 일그러뜨렸다.

“그런 놈한테 곽동진이 맞았다고? 말이 안 되잖아?”

사납게 생긴 여자애가 팔짱을 꼈다.

“걔도 계약자 아니야? 어제까지 찐따가 갑자기 힘을 얻었다면 답은 하나잖아? 존재와의 계약, 권능. 그거면 답이 되지 않나?”

생각해 보면 답은 그것뿐이다.

학생들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 갔다.

그들의 시선이 주열호에게 향한다.

주열호가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며 미소를 지었다.

“계약자? 그게 사실이면 죽여야지.”

50년 전, 전 세계에 괴현상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종이처럼 찢어지더니 텅 빈 공간을 내보인 거다.

그것은 끝이 없을 만큼 깊은 어둠이었고, 공간은 거대한 괴물을 내뱉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괴물을 짐승이라 불렀다.

인류의 살상 무기는 짐승을 상대하기에 충분했지만 짐승은 끝없이 나타났고,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했던 인간이 터전을 빼앗긴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인류가 살 수 있는 땅이 줄어들었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 그리고 전라도의 대부분이 짐승의 땅으로 변했다.

하지만 신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르지만 ‘존재’가 나타났고 짐승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선물했다.

그 힘은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마법과 검기를 사용하는 권능…….

그 힘을 가진 자들이 짐승과 싸웠고 더 이상의 토지를 잃지 않았으며 다시 평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존재에게 힘을 받은 인간을 계약자라 불렀는데, 인간의 힘을 초월한 그들을 법의 울타리에 가둬 둘 방법이 없었던 거다.

경찰도 군대도 그들의 앞에 무력했고 사람들은 계약자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약자연맹과 정부가 손잡고 법을 만들었잖아. 계약자는 평범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병신 같은 법.”

주열호의 말에 사납게 생긴 여자애가 묻는다.

“그래서 연맹에 신고할 거야?”

주열호가 낄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신고를 왜 해? 계약자와 싸울 수 있는 기회잖아?”

주열호는 2년 전에 존재와 계약한 계약자였고 사춘기에 얻은 힘은 삐뚤어져 있었다.

주열호가 휴대폰을 꺼내 계약자연맹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유성현의 이름을 적는다.

-등록되지 않은 계약자입니다.

존재와 계약하게 되면 한 달 이내에 연맹에 등록해야 한다.

이 역시 계약자를 법의 테두리에 잡아 두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도록 등록하지 않은 계약자를 건드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사냥이지…….

주열호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웃기 시작했다.

“최근에 계약 테스트가 언제 있었지?”

“한 달 넘었어.”

“됐네. 사냥 준비해라. 흐흐흐.”

* * *

그 시각, 성현의 교실.

곽동진은 성현에게 두들겨 맞은 게 창피했는지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과거의 소소한 복수를 마친 성현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어.’

성현에게 오늘은 잔인한 날이었다.

독에 중독되어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봤고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이 벌떡 일어섰다.

‘어, 어머니!’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이다.

그럼……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실 거다.

홀로 성현을 키웠던 어머니…….

성현은 책상에서 일어나 다급히 교실을 벗어났다.

성현은 교문을 벗어나 달리고 있었다.

‘살아 계셔.’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앞뒤 보지 않고 거침없이 차도를 건넜다.

빠아아앙!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

마음이 급했는지 달려오는 차도 보지 못했다.

성현은 운전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달렸다.

‘어머니…….’

성현의 머릿속에 비극적인 사고가 떠올랐다.

도심 한복판에 레미콘만 한 전갈이 나타났었다.

전갈은 닿기만 해도 녹아 버릴 독을 뿜어 대며 도심을 휘저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계약자 5명이 나타났고 그 안에는 지연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안심했다.

보통의 계약자가 아니라 지연우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들의 공격은 전갈의 껍데기에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함께 출동했던 여성 계약자가 위기에 처했고…….

‘지연우 그 새끼가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집어 던졌어.’

전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여자를 향하던 전갈이 몸을 틀어 지연우를 향한 거다.

그런데 지연우가 도망간 곳이…….

‘어머니가 계셨던 요양 병원이었어.’

기억을 이어 가던 성현은 눈을 감았다.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지연우는 일부러 그랬어.’

지연우와 함께 그 자리에 있던 계약자가 이야기해 줬다.

지연우가 일부러 그랬다고…….

“당시 지연우는 어떤 법안을 두고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었어. 극적인 승리가 필요했고 감동적인 히어로의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인 불쌍한 할머니를 미끼로 삼은 거야. 그 앞에서 짐승과 맞서는 모습은 최고잖아.”

그게 인기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대중의 광적인 환호는 정치인에게 부담을 쥐여 줄 테고.

그 새끼의 쇼에 성현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반드시 죽인다.’

성현의 눈동자에 시퍼런 살기가 번뜩였다.

도착한 곳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지하에는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 있고 어머니는 이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계단 앞에 선 성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수십 년간 짐승과 싸워 왔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아들일 뿐이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성현은 긴장하고 있었다.

‘어머니…….’

성현은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한 발짝, 두 발짝…….

“어? 성현이 왔어?”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가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성현을 발견하고는 반겼다.

“아, 네. 어머니는요?”

“잠깐만…….”

아주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은 후 공장으로 들어갔다.

성현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뵙고 싶었다.

‘몇 년 만이지? 20년? 25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삐걱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타났다.

성현을 키우느라 고된 일을 하셔서 초췌한 모습, 하지만 성현에게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어머니.

“엄마…….”

성현의 입에서 눈물 섞인 목소리가 흘렀다.

그런데 어머니는 놀란 눈이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들이 갑작스레 일터에 찾아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왜? 학교는? 무슨 일이야? 어?”

“아뇨, 그냥요.”

성현은 최대한 담담히 말하려 했다.

하지만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왜 울어?”

“눈에 뭐 들어갔나 봐요. 진짜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보고 싶어서 왔다고?”

“네.”

“오늘 학교 쉬는 날 아니잖아?”

“네.”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

“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 여기는 왜 온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그뿐?”

“……네.”

성현은 등짝을 맞았다.

짝!

“아파요!”

“이제 대답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짜고짜 등짝을 때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30분은 소비한 것 같다.

물론 어머니는 끝까지 믿지 않으셨다.

공장에 들어가 봐야 해서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끝냈다.

어머니가 들어가시고 성현은 다시 학교에 갈까 했지만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수십 년을 거슬러 온 세상이다.

추억 없는 학교보다 집이 그리웠다.

잠시 후, 성현은 오래된 아파트의 2층, 문 앞에 섰다.

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현도 이곳을 떠났는데…….

‘오랜만이네.’

성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15평, 방 하나에 거실이 전부였지만 정말 그리웠다.

이 모든 곳에 추억이 남아 있으니까.

어렸을 때 키를 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벽지, 아버지가 설치해 준 장난감 농구 골대.

벽을 만지며 옛 기억을 살피던 성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시선이 멈춘 곳은 거실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이다.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아버지, 성현은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아. 약속해.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으니까.

그것도 히어로 놀이를 하던 지연우 때문에…….

‘돌아왔어요. 이번에는 약속 지킬게요.’

잠시 더 집을 둘러보던 성현은 주방으로 향했다.

‘라면…….’

가장 그리웠던 음식이 있다면 라면이다.

반역 죄인이 되어 도망자가 되었을 때, 왜 그런지 몰라도 정말 라면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라면을 찾아 냄비에 물과 함께 담았다.

그리고 계란도 탁!

보글보글, 라면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좋아.’

거실로 라면을 가져와 상에 놓고 물끄러미 음식을 본다.

계란을 넣은 라면에 김치라니…….

재벌이라도 된 것 같다.

젓가락을 손에 쥐고 먹기 시작했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먹을 때마다 구악의 동료가 떠올랐다.

목이 울컥거렸지만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맛있네. 정말 맛있어!’

이제 슬픈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패배한 미래가 아니라 이기는 미래만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동료들은 아직 살아 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 테고.

‘너희는 내가 살릴 거야, 모두…….’

식사를 마친 후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에서 지연우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얀 피부, 살짝 처진 눈꼬리. 누가 봐도 선한 얼굴…….

이 세상에서 지연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가장 위험한 곳에 나타났고 최악의 순간도 이겨 냈다.

그러면서도 돈이나 명예를 바라지 않았다.

언제나 겸손 그리고 소탈.

게다가 원래 직업은 의사.

화면 속의 지연우가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연다.

-오늘도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윤나희, 서복한, 김지연……. 이 세 분의 성함을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살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대형 웨딩 컨벤션 센터에 나비 모양의 짐승이 나타났다.

웨딩과 돌잔치 등의 행사로 센터에 있던 사람은 847명.

지연우가 나타나 짐승을 물리쳤지만 3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844명을 살렸지만 3명을 살리지 못한 거다.

지연우는 울먹였고 그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는 실시간으로 그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차오른다.

-울지 마!

-지연우가 있어 세상이 밝다.

-믿습니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밥맛없는 얼굴과 목소리다.

‘가식적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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