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3화 (3/252)

3화

갓난아기가 ‘교’에게 제물로 바쳐지게 된 원인.

구악이 반역자가 된 이유.

성현이 과거로 돌아오게 된 목적…….

그 모든 것에 지연우가 있다.

‘쓰레기 새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성현의 힘은 지연우를 상대하기에 부족하다.

힘이 온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성현은 천 명을 순식간에 죽일 정도로 강했지만 지연우의 앞에서는 개미와 같았다.

‘강해져야 해, 예전보다 더.’

성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 * *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지?”

저녁이 되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밥상에 삼겹살을 놓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없다니까요.”

“믿어도 되는 거야?”

“네.”

“힘든 일 있으면 얼마든지 엄마한테 말해.”

고등학교 시절, 그때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시의 성현은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홀로 성현을 키운 어머니께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괜찮았다.

성현은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딱 먹는 순간…….

‘삼겹살은 진리야.’

오랜만에 맛보는 삼겹살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천천히 먹어.”

“아…….”

허겁지겁 먹었나 보다.

밤 10시.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셨고 성현은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하지만 바로 자리에 눕지 않고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가방에 있었지만 하루 종일 한 번도 울리지 않은 휴대폰이다.

주소록을 확인해 봤다.

전화번호는 딱 하나 어머니만 저장되어 있다.

연락이 오는 곳은 모두…… 스팸…….

‘휴대폰은 왜 가지고 다녔던 거야?’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곽동진 그놈 때문에 친구도 없었으니까.

성현은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변해 간다.

‘빨리 존재와 계약해야 해.’

과거의 성현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존재들과 계약했다.

그 시간을 앞당기면…….

‘더 강해질 수 있어.’

성현은 휴대폰을 만지며 모든 기억 세포를 최대한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MJ종합병원?’

성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 * *

새벽 1시 30분…….

성현은 트레이닝복에 모자, 마스크까지 착용한 후 MJ종합병원의 로비에 앉아 있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 시작은 존재와의 계약이다.

그리고 계약을 위해서는 존재를 불러내는 도구…… 매개체가 필요하다.

매개체는 팔찌나 반지 또는 목걸이나 부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무속인이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무구와 비슷한 용도다.

‘매개체를 찾는 것은 운발이라고 말하지.’

매개체는 뭔가 결핍된 사람들이 발견한다.

하지만 나타나는 장소는 말 그대로 랜덤, 길가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흉가나 폐병원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심지어 자고 일어났는데 베개 밑에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매개체를 찾아 존재와 계약하면 10년을 앞당기는 거야.’

거기에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서 온갖 기연과 아이템을 모조리 손에 얻으면…….

‘지연우의 발뒤꿈치는 볼 수 있겠지.’

성현은 미래를 알고 있고 이 병원에 매개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곽동진한테 고맙네.’

양아치 곽동진 때문에 이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학 선생의 누드를 그렸다는 이유로 체육 선생에게 엄청나게 쳐 맞았던 날…….

성현은 울면서 밤을 샜고 텔레비전에서 속보를 봤다.

-MJ종합병원에 짐승 출현.

기억을 떠올리던 성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출입구가 바로 앞, 계단은 우측……. 주변에 있는 사람은 모두 11명.’

11명은 성현을 포함한 로비에 보이는 사람들의 숫자다.

병원의 경비 아저씨와, 돌아다니는 간호사 그리고 주변에 앉은 사람들…….

그중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아기 엄마도 있었고 회사원도 존재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통화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성현은 손목을 틀어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2시.

‘됐어.’

성현은 가져왔던 가방의 지퍼를 열고 손을 집어넣었다.

서늘한 칼날이 만져진다.

‘이제 곧.’

그때 로비의 전등이 일정한 속도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원의 입에서 두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흘렀다.

“저…… 저건 뭐야!”

병원 로비의 허공이 아지랑이가 핀 것처럼 일렁이더니 옆으로 확 찢어졌다.

나타난 것은 끝없는 어둠.

그리고 그곳에서 짐승이 튀어나왔다.

로비에 나타난 것은 승합차만 한 쥐다.

그 쥐가 포효한다.

-카아아악!

쥐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영화 촬영 같은 게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은 순수한 공포심으로 이어졌고 비명으로 튀어나왔다.

“꺄아아악!”

사람들의 다급한 시선이 늙은 경비원에게 향했다.

“겨, 경비 아저씨? 총 꺼내요! 어서요!”

짐승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세상이라 주요 기관의 경비원은 총을 소지할 수 있었다.

“……자, 잠시만요.”

경비원이 턱에 힘을 준 채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경비원은 총을 꺼낼 수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쥐가 그의 머리통을 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그작…… 아그작…….

비명 소리조차 없었다.

로비에는 뼈 으깨지는 소리만 들렸다.

경비원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로비 바닥을 적시는 잔혹하고 원초적인 모습…….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심장이 얼어붙어 도망도 치지 못한다.

눈만 크게 뜬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지, 지옥이야…….”

그 말이 맞다.

이것은 지옥의 시작이며 사람들은 먼저 죽은 사람을 부러워할 거다.

순간, 간호사가 구토를 시작했다.

간호사는 매일 피를 마주하는 직업이지만 쥐가 인간을 뜯어먹는 모습은 그만큼 끔직했다.

“우웩! 우웩!”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욕하지 않는다.

내장이 쏟아지고 핏물로 가득한 이곳에서 구토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구토에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회사원이었다.

“도, 도망쳐야 해!”

그는 들고 있던 가방을 집어 던지더니 엘리베이터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콱콱콱 눌렀다.

“와! 빨리 와! 왜 이렇게 안 와!”

겁에 질렸던 다른 사람들도 행동에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보다 계단이 빨라요! 이쪽으로 가죠!”

“응급실! 응급실에 알려야 해! 거기에 내 여자 친구가 있어!”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계단을 통해 위로, 또 다른 이는 아래로.

어떤 사람은 건물 정문으로 튀어 나갔다.

모두 병원에 나타난 거대한 쥐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이니까.

하지만 성현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망칠 시간에 싸울 준비를 해야지.’

짐승은 1마리만 등장하지 않는다.

병원의 많은 공간에는 이미 짐승들이 등장해 있을 거다.

위로 올라가면 굶주린 호랑이, 지하로 내려가면 지네.

밖으로 나가도 마찬가지, 또 다른 짐승이 침을 질질 흘리며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도망갈 곳은 없어.’

짐승과 마주치는 순간 잡아먹히고 갈기갈기 찢겨 죽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 안전한 곳은…….

바로 여기!

거대한 쥐 새끼와 마주 보고 있는 이 로비다.

‘저 쥐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추는 개체야.’

낮은 등급의 짐승이다.

경비원을 먹고 배부름을 느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 사실은 성현만 알고 있다.

그리고…….

‘역시.’

쥐는 포만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은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하품을 하며 느긋이 앉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급했다.

그들은 병원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다.

“차례대로 나가요! 저쪽 문도 있잖아요!”

“저기는 안 열려!”

“아, 좀!”

성현은 그들을 뒤로하고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날 길이 20cm의 식도.

그때 성현의 앞으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가 스쳤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출구, 쥐의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걷고 있다.

성현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가면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아기도.

‘어린아이는 지켜야 해.’

그게 구악의 신념이다.

갑자기 나타난 성현 때문에 아기 엄마가 당황했다.

“뭐, 뭐예요…….”

성현은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칼까지 들고 있다.

분명 예사스럽지 않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기 엄마는 용기를 내서 애원했다.

“비켜 주세요…… 제발……. 아이라도 살릴 수 있게…….”

“안 됩니다.”

“왜요! 왜! 비켜! 비키라고!”

그 순간…….

“악!”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창문에 핏방울이 확 튀었다.

그리고 핏물이 주르륵 흐른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의 피다.

창밖을 보자 컨테이너 박스만 한 멧돼지가 사람의 머리를 물고 질질질 끌고 가는 게 보였다.

“이 병원에 안전한 곳은 없어요. 밖도 마찬가지고요. 이곳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죽을 거예요.”

아기 엄마가 달달달 떨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가만히 있어요.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네?”

성현은 황당해하는 아기 엄마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반갑다, 쥐 새끼야.’

조용히 포만감을 느끼던 쥐는 성현이 노려보자 몸을 일으켰다.

살기를 느낀 거다.

-크르르르.

쥐가 뿜어내는 낮은 저주파에 성현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흔들렸다.

포식자 앞에 선 먹잇감이 이런 기분일 거다.

‘미래에서 만났다면 눈도 못 마주쳤을 쥐 새끼가…….’

하지만 지금의 성현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아니, 평범 이하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진 것은 미래를 살며 몸에 쌓은 경험치뿐이다.

그때…….

-자극하지 말아요!

긴박한 상황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

고개를 틀어 보니 아기 엄마가 휴대폰을 들고 있다.

‘영상통화?’

그녀는 마지막 인사라도 남기고 싶었는지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화면 속 남편이 간절한 얼굴로 말한다.

-부탁이에요. 지금 계약자연맹에서 그쪽으로 가고 있대요. 그러니까 자극하지 말아요. 언론에서도 자극하지 않고 있으면 살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성현이 픽 웃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어.’

앞으로 10분 후면 저 쥐 새끼는 또 배가 고플 거다.

그럼 아기 엄마나 성현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며 이빨을 드러낼 테고.

“쥐 새끼의 반찬이 되느니 싸워야지.”

성현이 쥐를 향해 몸을 돌리자 남자의 목소리가 발악하듯 들려왔다.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지금 영상 녹화하고 있어! 그 짐승을 자극해서 우리 가족이 다치면……. 그, 그래! 짐승이랑 싸우는 걸 보니까 너 계약자지! 연맹에 신고할 거야! 그러니까 제발 움직이지 마!

하지만 성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성현은 지금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다.

휴대폰의 영상만으로 성현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제발! 제……!

남자의 목소리는 거대한 쥐가 움직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큼, 성큼…….

쥐는 어느새 성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날카로운 앞니가 누렇게 보인다.

하지만 성현은 여전히 침착하다.

쥐가 입을 쩌억 벌리고 달려드는 순간 성현은 몸을 틀었다.

쥐는 뒤늦게 허공을 물었다.

터업!

쥐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이 없었는지 그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른다.

-키이이익!

다시 달려든다.

그리고 살짝만 닿아도 살이 팰 것 같은 이빨이 성현을 스쳤다.

터업! 터업! 터업!

그런데 쥐의 이빨은 성현의 살갗이 닿지도 못한다.

허공만 물어뜯고 있다.

과거로 돌아오며 가진 능력을 모두 잃었어도 녹아든 경험이 있다.

‘반격은 힘들어도 피할 수는 있어. 그러니까 어서 지쳐라.’

성현은 쥐가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쥐는 낮은 등급의 짐승이다.

지구의 낯선 환경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몇 번의 공격이 더 이어지며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을 끝으로 쥐의 행동이 멎었다.

쥐의 숨소리가 거칠다.

‘지쳤나?’

입에서 시궁창 냄새가 진하게 흘렀지만 성현은 승기를 잡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를 낮추며 최후의 한 방을 준비했다.

‘죽여 주마.’

그런데 갑자기 쥐의 대가리가 틀어졌다.

그리고 아기 엄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이이익!

쥐가 달려들자 아기 엄마는 아기를 보호하며 몸을 확 웅크린다.

“꺄아아악!”

그 순간, 성현은 다리에 힘을 줬다.

근육이 꿈틀거렸다.

‘쥐 새끼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