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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화 (4/252)

4화

성현은 다급히 아기 엄마를 향해 몸을 던졌다.

찰나의 순간, 아기 엄마의 앞에 설 수 있었다.

푸우우욱!

쥐의 이빨이 성현의 어깨를 깊이 찔러 들어갔다.

“끄읍!”

미래의 성현은 고통에 익숙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연약한 신체는 가벼운 통증에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다.

게다가 피가 어깨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바닥에 고일 만큼…….

-키이익!

난데없이 나타난 성현 때문에 쥐가 당황했다.

그것은 아기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더듬더듬 묻는다.

“괘, 괜찮아요?”

그 순간, 성현은 쥐의 목구멍에 콱, 칼을 꽂아 넣었다.

쥐의 동공이 확 커졌고 쥐의 피와 침이 성현의 손에 뒤엉켰다.

기분 나쁘고 찝찝한 느낌.

성현은 더욱 힘을 줬다.

“죽어!”

칼끝에 뼈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더!”

쥐의 뇌에까지 칼이 파고들어 갔다.

퍽!

쥐의 뒤통수에서 칼끝이 보였다.

쥐의 눈과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더니…….

‘쿵!’

검붉은 피를 꿀렁이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쥐는 파르르 몸을 떨다가 그대로 굳어 갔다.

성현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쥐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우웩!”

성현은 바닥에 구토를 시작했다.

방금 쥐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한 행동은 평범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육체를 혹사시킨 거다.

그런 성현을 향해 아기 엄마가 울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하지만 그녀의 감사 인사는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꺄아아아악!”

구토를 멈춘 성현이 칼로 쥐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그것도 능숙하게…….

성현은 매개체를 찾고 있었다.

원래의 역사대로 흘렀다면 이 병원에서 나타난 짐승은 모두 계약자에게 죽는다.

그리고 ‘한국 짐승 연구소’에 보내져 해부를 당한 후 매개체가 나타났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매개체가 나타나는 장소가 랜덤이라고 하지만 짐승의 몸속에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그게 이 쥐라고 했어.’

잠시 후, 성현은 붕대를 찾아 상처를 동여맨 후 병원을 빠져나갔다.

* * *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성현은 방문에 귀를 대 봤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곤히 들려왔다.

‘주무시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잠시 후, 피 묻은 옷과 붕대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뒤 샤워를 마쳤다.

소파에 파묻히듯 앉은 후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어떤 문양이나 보석도 박히지 않은 흔한 은반지, 이것이 존재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다.

‘시작하자.’

성현은 거침없이 반지를 끼었다.

조금은 큼직했던 반지가 스스로 크기를 줄이더니 손가락에 딱 맞아떨어졌다.

동시에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글씨가 나타났다.

[A급 매개체]

형태 : 반지

존재를 불러낼 수 있다.

존재의 권능을 10%까지 견딜 수 있다.

매개체는 존재의 힘을 얼마나 버티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보통 3~5%만 견디는데 그 2배인 10%까지 견딜 수 있다면 꽤 유용한 아이템이다.

이어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매개체가 존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선택할 존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십시오. 세상이 어두워질 겁니다.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성현은 눈을 떴다.

분명 거실의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하얀 공간이다.

하얀 벽지에 하얀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하얀 금고…….

성현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창고야.’

약 30평 넓이의 이곳은 창고라 불렸다.

게임에서 자신의 장비를 보관하고 스텟과 스킬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좋아…….’

성현은 다시 집중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누가 나를 선택할까?’

최소 왕이나 여왕급과 계약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연우 그리고 ‘교’에게 비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하의 존재가 찾아왔다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지.’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당신에게 관심 있는 존재가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존재에게 선택받는 것이다.

이 역시 게임에서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의 플레이어가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인간은 선택을 받아 짐승과 싸워야 하는 ‘캐릭터’다.

성현은 앞을 바라봤다.

어두운 곳에서 4개의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 안에 허옇고 뻘건, 그리고 금빛의 눈동자들이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을 찾아온 존재들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위대한 존재는 당신의 삶과 함께할 겁니다. 당신이 천국을 원한다면 존재는 천국의 열쇠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성현의 눈앞에 꽃밭이 펼쳐졌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중앙에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 성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리 오세요.”

지금 당장 여성에게 달려가 무릎을 베고 잠에 빠지고 싶었다.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 가슴을 채워 가며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이다.

성현은 선베드에 누워 있었고 아찔한 몸매를 가진 여성 2명이 성현의 가슴을 더듬는다.

그녀들의 뜨거운 입김이 뺨에 닿을 때 견딜 수 없는 쾌락이 말초신경을 건드렸다.

-우주의 끝과 사후 세계를 엿볼 수도 있죠. 세상의 모든 지식은 별것 아니게 될 겁니다.

배경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우주에 떠 있다.

우주가 점점 작아지며 빅뱅 이전의 세상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배경 역시 휙 바뀐다.

-끝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장면, 그중에는 대단한 권력자가 되었는지 군중 앞에 선 모습도 있었고 한류스타가 된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이 보였다.

이곳은 낚시터다.

그리고 성현의 옆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사랑을 듬뿍 담은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찌를 봐야지.”

아버지가 성현의 등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는다.

하지만 잠깐이다.

스르륵, 모든 것이 사라지며 성현은 검은 공간에 섰다.

여성의 목소리가 계속된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함께할 위대한 존재가 당신과의 계약을 원합니다.

꽹과리와 북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고 4개의 존재가 성현을 집어삼킬 것처럼 노려봤다.

그리고 첫 번째 존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를 숭배하라. 너는 배곯지 않고 풍족히 먹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날 무시하면 지금 당장 뼈까지 씹어 먹겠다.

‘씹어 먹어?’

이런 말을 할 존재는 ‘폭식의 여왕 맨티스’일 가능성이 크다.

맨티스는 전투력으로 따지면 여왕급 존재 중에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지만 그 위험성 역시 최고다.

계약한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잡아먹어 버린다.

다음으로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위해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라. 인간이 맛볼 수 없는 쾌락을 주겠노라. 물론,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날 선택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선택하지 마라. 나를 버린 새끼가 다른 존재의 손을 잡으면…… 찢어 죽일 테니까.

성현은 이번 존재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질투의 여왕 미니나.’

역시 여왕급 존재, 계약을 하면 세상 모든 것을 얼려 버릴 ‘한기’를 얻을 수 있지만 평생 솔로로 살아야 한다.

미니나만 바라보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이어서 비꼬는 목소리가 흘렀다.

-네 운명을 선택하라. 불에 타 죽을 텐가 아니면 기름에 튀겨 죽을 텐가? 아니면 내 옆에서 쾌락을 느낄 텐가?

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불? 기름? 쾌락? 협박의 목소리가 명확하지 않아. 그럼 마녀급인가?’

마녀급은 관심 밖이다.

마녀급과 계약하면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와 계약한 지연우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대항하려면 적어도 여왕급은 되어야 한다.

성현은 마녀급 존재를 뒤로하며 마지막으로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번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협박성 구애가 아니라…….

-네 영혼에서 왜 내 냄새가 나는 거지?

그 말에 성현이 픽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마지막 존재를 바라봤다.

목소리부터 익숙하다.

‘설마 했는데, 정말 지르힐이구나.’

성현은 그녀의 금빛 눈동자를 알고 있다.

‘안 오면 아쉬울 뻔했어.’

성현은 과거에도 그녀와 계약했었다.

신급은 아니지만 신에 가까운 존재 ‘버림받은 악 지르힐’.

그녀는 번개를 권능으로 사용하는 존재다.

성현은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지르힐과 계약했던 나이가 스물아홉 살.

평균보다 늦은 나이에 계약했지만 엄청난 속도로 강해졌고 구악의 마스터까지 되었다.

‘그 계약의 시간이 10년 앞당겨진다면?’

성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게다가 난 미래를 알고 있어.’

성현은 이번에도 지르힐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맨티스와 미니나도 강한 존재지만 두 여왕이 가진 권능의 이해도는 제로.

반면 지르힐과 계약하면 권능의 이해도는 누구보다 빠를 것이다.

성현의 선택에 망설임은 없었다.

“난 지르힐을 선택하겠다.”

성현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 결정에 꽹과리와 북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며 다른 존재의 기척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다.

-내가 그대를 쓰기에 충분한지 시험하겠노라.

존재에게 선택받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정식으로 계약을 하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가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테스트 일정은 추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더 할 말은 없었다.

지르힐의 그림자가 사라지려 한다.

“잠깐만.”

성현이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를 붙잡았다.

그러자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성현을 향한다.

-말하라.

“돈을 좀 빌리고 싶은데……. 인간의 돈 말고 이계에서 쓰이는 돈.”

-이계의 돈?

이계에도 돈이 있다.

하지만 이제 막 가계약한 성현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

돈이 있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테니까.

물론 성현은 돈의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담겼다.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에게 돈이 필요한가?

“조금.”

지르힐은 성현이 이계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억겁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존재에게 이런 이벤트는 꽤 괜찮은 유흿거리다.

-좋다. 그대, 필요한 액수를 말하라.

“10실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대에게 실버를 줌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대가는 무엇인가?

성현이 자신의 가슴, 그러니까 심장이 있는 부분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테스트에 떨어지면 이 목숨을 가져가.”

-계약은 성립됐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는가?

“없어.”

그 말을 끝으로 지르힐의 기척이 사라졌고 성현 역시 다시 하얀 창고에 서 있었다.

‘끝났나?’

가계약은 끝났다.

이제 테스트의 일정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다.

성현은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텟.’

책장에서 ‘스텟’이라고 제목이 적힌 책 하나가 둥실 떠올라 성현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성명 : 유성현

계약한 존재 : 버림받은 악 지르힐

파워 : 2

스태미너 : 2

스피드 : 1

마력 : 0

신체 평균 : 1.25

권능 이해도 : 0

‘예상대로 허접해.’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의 평균이 2점대 중반이다.

그런데 이 말라비틀어진 몸은 평균에 한참을 못 미친다.

양아치 곽동진을 때려눕히고 쥐를 죽인 것은 경험과 기술에 따른 실력이었지 절대 개인의 힘은 아니었다.

‘일단 스태미너부터 올려야겠어.’

그래야 뛰어다니든 기어 다니든 전투에서 버틸 수 있다.

그때 딩동, 테이블에 놓인 태블릿 PC에서 알람이 울렸다.

물론 모습만 태블릿 PC다.

인터넷은 안 된다.

성현은 태블릿 PC를 손에 들었다.

-계약된 존재에게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계약된 존재가 선물로 10 실버를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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