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목소리가 들린 곳은 1분단 창가,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이었다.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면…….
‘한아성?’
그녀는 분명 ‘가계약’과 ‘테스트’라는 이야기를 했다.
노리개로 살아갈 사람은 테스트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테스트를 본다는 것은 전투형 계약자라는 뜻.
‘전투형이라고?’
개미 1마리 못 죽일 것 같은 얼굴인데 전투형이라니…….
성현은 계속해서 친구와 대화하는 그녀를 지켜봤다.
친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테스트 받을 거야? 그거 무섭다고 하던데……. 하지 마. 위험해.”
“해야 해. 아진이를 살릴 방법은 이것뿐이야.”
아진이는 식물인간으로 있는 한아성의 동생이다.
“……아진이는 나 때문에 아프잖아.”
그녀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는 한아성 때문이다.
한아성과 한아진은 독서실을 마치고 함께 집에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비극적인 이야기.
음주운전을 한 승용차가 한아성을 향해 달려왔고…….
“아진이가 나를 밀쳤어.”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아진은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한아성은 동생이 자신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했다.
“존재와 계약하면 신비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어. 그중에 아진이를 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어디선가 들었다.
존재와 계약한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식물인간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고.
“살릴 거야, 존재가 아니라 악마와 계약해서라도…….”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성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의 사연은 안쓰럽지만…….
‘존재가 도움을 줘?’
헛소리다.
존재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벌써 수십 년…….
하지만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진 것이 없다.
심지어 존재가 천사인지 악마인지, 왜 인간과 권능을 공유하는지도 모른다.
‘가설만 세우고 있지.’
연구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하나는 억겁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유희가 필요했고 그 선택이 인간이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존재가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악마라는 것.
또는 존재가 신의 사도라는 것 등등…….
하지만 모두 틀렸다.
일단 놈들은 천사나 악마가 아니다.
천사라고 하기엔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심지어 ‘교’라는 단체는 마스터 지연우에게 매달 갓난아기를 바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다.
인간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도 있다.
즉, 존재를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거다.
놈들은 각각의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 목적을 몰라서 문제지…….
성현의 시선이 다시 한아성에게 향했다.
그녀는 존재가 자신의 동생을 깨워 줄 것을 소망하고 있다.
성현은 안쓰러운 눈빛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존재는 대가 없이 도움을 주지 않아. 언제나 거래를 하지. 거래의 대가로 네 목숨을 원할 수도 있고.’
순간, 한아성이 고개를 틀었고 성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황급히 입을 가린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얼굴마저 붉어졌다.
상당히 당황한 얼굴…….
‘다른 사람이 듣는 게 싫었나?’
성현은 슬쩍 웃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때 성현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글씨가 떠올랐다.
[테스트 일정]
장소 : 천마근린공원 축구장
시간 : 새벽 2시
-다른 존재의 계약자도 테스트에 임하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갈 것.
-무기는 자유롭게 사용 가능.
테스트의 일정이 잡혔다.
‘좋아.’
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테스트는 전투형 계약자를 선별하는 최소한의 과정이다.
10%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며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전원 사망은 성현의 기억에도 한 번뿐이었지만…….
‘그때가 시험 감독관으로 ‘낫을 든 마녀 아리’가 왔을 때였지?’
테스트에는 감독관이 있다.
마인급의 존재가 감독을 보는데, 만사가 귀찮은 존재를 만나면 거의 통과지만 깐깐하거나 변태 같은 새끼를 만나면 지옥이 펼쳐진다.
성현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다.
‘전원 사망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있던 일이야. 그럼 난이도는 무난하겠네.’
전원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일만 없다면 상관없다.
성현의 실력이면 다수의 사망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으니까.
성현은 다시 한아성에게 시선을 틀었다.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녀 역시 일정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테스트는 같은 지역 내에서 이뤄지고 같은 학군인 그녀와 성현은 99% 같은 테스트를 받게 될 거다.
‘죽지 마라. 찝찝하니까.’
성현이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응원이었다.
그곳에서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저기…… 유성현이지?”
성현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성현의 시선이 움직였다.
한 남학생이 서 있다.
성현만큼 말랐고 얼굴에 여드름이 꽤 많은 학생, 쓰고 있는 안경알이 꽤 두껍게 느껴졌다.
“누구?”
“주, 주열호가 학교 끝나고 분리수거장으로 오래.”
“주열호? 그게 누군데?”
“어?”
안경 학생이 당황했다.
주열호는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진 양아치다.
그런데 모른다니…….
성현의 표정을 보면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네가 곽동진을 때렸다며……. 어, 어쨌든…… 학교 끝나고 분리수거장으로 와. 꼭 와야 해. 안 오면 너 진짜 큰일 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다른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큰일 난 거 아냐?”
“주열호랑 곽동진이랑 친했잖아. 진짜 살인날 수도 있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미친 새끼야. 신고? 주열호한테 찍히면 네가 죽어.”
그 목소리는 성현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
‘주열호?’
미안하지만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됐다. 만날 사람이면 언젠가 만나겠지.’
* * *
“와씨, 이게 뭐야?”
“아오, 역겨워.”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분리수거장, 그곳에 주열호와 양아치들이 모여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모자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보인다.
그 남자는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거대한 쥐의 뱃가죽을 자르는 중이다.
폭력적이며 징그럽고 잔인한 모습은 충격이란 단어를 넘어서고 있다.
“이거 진짜야? CG 아니야? 작은 쥐도 징그러운데 어떻게 저 큰 쥐를…….”
휴대폰을 손에 쥔 삭발 양아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뉴스 봤지? 어제 사거리에 있는 MJ종합병원에서 짐승 나타났잖아. 이 사람이 쥐를 죽이고 해체 쇼를 하는 거야. CG가 아니라 리얼 현실인 거지.”
“미친, 이걸 찍은 새끼는 또 뭐야?”
“애 엄마가 불안해서 남편이랑 영상통화했는데, 이 남자 때문에 살았대. 그래서 남편이 영상을 녹화했고 이 남자한테 보답하고 싶어서 올린 거래. 이 영상을 보면 찾아오라고.”
“보상? 돈 준대? 내가 저 남자라고 뻥치고 가 볼까?”
양아치들이 담배를 물고 낄낄거렸다.
그들의 앞으로 안경 학생이 쭈뼛쭈뼛 나타났다.
그는 아침에 성현을 찾아갔던 학생이다.
안경 학생이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갔어.”
담배 연기를 내뿜던 주열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갔다고? 유성현인가 그놈이?”
싸늘한 살기에 안경 학생이 바들바들 떤다.
“수업 끝나고 바로 찾아갔는데, 이미 집에 갔어.”
주열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내 이름을 댔는데도 갔다는 거지? 이 새끼가 곽동진이랑 나랑 같은 급으로 생각하나?”
* * *
그날 밤.
성현은 하얀 공간, 그러니까 창고에 있었다.
금고를 열자 회중시계가 보인다.
버튼을 누르면 1초간 세상을 멈출 수 있고 그 횟수는 여섯 번 남았다.
한쪽에는 알약 6개가 있다.
모두 이번 테스트에 필요한 물품이다.
성현은 회중시계와 알약을 품에 넣은 채 현실로 돌아왔다.
‘미리 준비해야지.’
전투 준비는 미리미리 해 둬야 한다.
전투가 시작되면 창고에 오는 게 제한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파에 놓인 가방을 열었다.
망치와 칼 그리고 어떤 문양도 없는 흰 가면이 보인다.
학교를 마치고 마트에서 산 거다.
성현은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테스트 장소는 천마근린공원 축구장이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새벽 1시 50분.
성현은 입구로 들어서며 마트에서 산 하얀 가면을 얼굴에 썼다.
보름달이 떴고 가로등도 켜져 있지만 어두운 밤이다.
가면까지 쓰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가로등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그 숫자가 오십 명.
역시 가면을 쓰고 있다. 저들이 함께 테스트를 볼 사람들이다.
시선을 돌리자 한쪽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긴장된 표정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다리를 발발발 떨기도 한다.
겁이 나는 게 당연하다.
이 중에 10% 이상이 사망한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고 그 사망자에 자신이 포함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빨간색 악마 가면을 쓴 사람이 물었다.
“……왜 계약했어요?”
질문을 받은 녹색 가면 남자가 억지로 웃는다.
“하하, 계약자가 되면 짐승을 잡고 가죽을 팔아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잖아요. 길드에 들어가면 계약금을 받을 수도 있고요.”
“돈 때문에?”
“네, 난 돈이 필요해요. 우리 집 아기가 심장이 아픈데…… 돈이 없거든요. 그쪽은요?”
빨간색 악마 가면이 한숨을 내뱉었다.
“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 딸을 죽인 새끼…… 그런데 내년이면 출소하는 그 새끼……. 내 자식의 인생은 사라졌는데, 그런 놈이 숨 쉬고 산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권능을 얻어서 가장 아프고 잔인하게 죽일 거예요, 꼭…….”
빨간색 악마 가면의 입에서 씁쓸한 담배 연기가 흘렀다.
사연 없는 계약자는 없다.
다들 구구절절하며 원통하다.
하지만…….
‘겁에 질린 사람은 일찍 죽어.’
성현의 평가는 냉정했다.
저들이 떨고 있어서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겁에 질린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겁은 몸을 움츠리게 하고 심장을 멈추게 한다.
그럼 짐승의 먹잇감이다.
성현이 확신하는 이유…….
‘난 이 테스트를 겪어 봤어.’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처참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짐승을 죽이고 그 뜨듯한 피로 옷을 적실 수 있는지, 타인의 시체를 밟고 걸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겁쟁이가 설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살고 싶으면 짐승의 목에 칼을 쑤셔 넣을 각오, 타인의 시체를 방패 삼아서라도 목숨을 이어 갈 생존 본능이 있어야 한다.
성현은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손에 들었다.
그 눈빛이 점차 서늘해진다.
그렇게 새벽 2시…….
“어? 저거 뭐야?”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달빛을 가린 소녀가 떠 있다.
중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금발 머리에 검은 드레스 그리고 마녀 모자를 썼다.
마치 마녀 코스프레를 한 것 같은 복장, 그녀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중이다.
“귀, 귀여워…….”
“아이돌이야?”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외모를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성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왜, 저 여자가?’
알고 있는 존재다.
귀엽고 깜찍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신의 낫.’
그녀가 들고 있는 사신의 낫, 그녀의 키보다 훨씬 길고 날카로운 낫이 그 정체를 말해 주고 있다.
‘젠장!’
그녀는 테스트에서 50명을 모두 죽여 버렸던 시험 감독관, 낫을 든 마녀 아리.
그리고 이 테스트장에 있는 사람도 50명!
그녀가 잔디를 밟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C00310호의 테스트 감독관을 맡은 아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