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리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 귀엽다.
하지만 뿜어지는 기운이 사나웠고 멀리서는 몰랐지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살이 베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낀 사람들은 생각했다.
‘인간이 아니야…….’
그녀는 존재다.
이곳에 모인 인간 따위는 생각만으로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아리는 사람들의 겁먹은 표정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테스트를 설명해 드릴게요. 테스트는 30분 동안 세 번의 웨이브로 진행돼요. 짐승 1마리에 8점이고 10점 이상을 획득하면 통과예요. 그러니까 2마리만 잡으면 되는 거죠. 어렵지 않죠? 전원 합격을 기원할게요! 아, 마지막으로……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심장이 터져 죽을 거랍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패하면 심장이 터져 죽는다니…….
“저, 저게 무슨 말이야?”
“심장이 터진다고?”
“통과를 못 하면 왜 죽는 건데? 그런 말은 못 들었어!”
사람들의 입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흐르자 아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짐승을 2마리나 잡으라고 하면 무리인가요? 시험 난이도가 높은가요? 그럼 좀 줄여 줄까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보인다.
하지만 성현은 달랐다.
‘또라이 같은 게…….’
‘짐승을 잡는다.’라는 테스트의 큰 틀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하지만 세부적인 난이도와 실패에 대한 조건은 감독관의 재량에 따라 바뀐다.
그런데 이번 감독관은 아리다.
그녀는 인간의 비명을 즐기는 미친 존재…….
죽어 가는 인간의 비명이 천상의 음악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심장을 터뜨리는 것도 그녀의 유흿거리 중 하나일 거다.
그러니 난이도를 내려 줄 일은 없다.
절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짐승 말고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걸 만들어 드릴게요. 어때요?”
사람들이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가 계속 말한다.
“인간 남자를 죽이면 10점! 여자를 죽이면 9점! 그러니까 짐승은 2마리를 잡아야 하지만 인간 남자는 1명만 죽여도 통과!”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 무슨…….”
하지만 아리는 폴짝폴짝 뛰고 있다.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요! 꺄!”
짐승을 죽여서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적어도 2마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 남자는 1명만 죽여도 10점.
대부분은 살인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몇몇 사람은 달랐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사람을 죽이면 훈련을 클리어하는 거야? 짐승을 죽이지 않아도?’라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테스트 통과 조건]
1. 30분 또는 짐승 토벌 완료까지 생명 유지.
2. 10점 이상 획득.
[종족별 점수]
남자 인간 : 10점
여자 인간 : 9점
짐승 : 8점
성공 : 계약
실패 : 심장이 터져 사망
시스템 메시지가 명확하게 적히며 통과 조건이 확실해졌다.
그러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살벌한 눈이 성현에게로 향했다.
‘저 새끼, 남자 맞지? 저 새끼가 제일 약해 보여.’
성현은 빼빼 말랐다.
특히 마른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팔과 다리는 훌륭한 사냥감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저 새끼를 죽이면 되는 건가?”
그 말이 시작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뒤집혔다.
어차피 존재와 관련된 세상은 인간의 법이 통하지 않는다.
“죽이면 10점이야! 그럼 정식 계약이고!”
서늘한 살기가 성현에게 쏘아졌다.
* * *
사람들의 시선이 성현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토끼 가면은 달랐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가면 안의 얼굴은 한아성, 그녀는 오늘 학교에서 가계약에 대해 말하던 학생이다.
‘뭐야? 너도 가계약했던 거야?’
성현은 얼굴 전부를 가리는 흰 가면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단박에 알아봤다.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지금 당장 씹어 먹지 않고는 참기 힘든 그런…… 달콤한 냄새…….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존재와 계약한 뒤로 이렇게 변했다.
사람을 보면 냄새로 기억하고 그중에서도 성현의 냄새는……. 생각만으로도 오들오들 몸이 떨려 왔다.
‘하…….’
그녀와 성현은 딱히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성현은 왕따였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 그녀 역시 왕따를 당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성현에게서 흐르는 냄새는…….
‘지금 죽어서는 안 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성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 * *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이곳은 인간의 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살인, 강간! 인간의 욕망에 따른 무엇을 해도 상관없어요! 물론 짐승에게서 살아남아야 하지만요!”
아리가 힘차게 외쳤다.
동시에 검은 연기가 축구장 전체를 막아 버렸다.
이제 이곳은 밖에서 보지 못한다.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축구장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글씨를 보고 있었다.
-테스트가 시작됐습니다.
-3분 후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위대한 존재가 당신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3분’이라는 글씨가 기억됐다.
3분 후 짐승이 나타나면 도망가기 바쁠 거다.
인간을 죽이려면 그 안에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10여 명의 사람이 슬금슬금 성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성현을 죽이려고.
성현을 죽여 자신이 살기 위해!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딱히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덤비는 사람을 봐줄 생각도 없다.
‘와라.’
그때 성현의 앞에 토끼 가면이 다가왔다.
성현은 토끼 가면 역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저, 저기…….”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한아성이다.
그녀가 성현의 앞을 막아서며 우물쭈물 말을 잇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요. 다들 간절한 게 있어서 왔을 텐데…….”
하지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말에 눈빛을 더 시퍼렇게 빛냈다.
“그래, 간절한 게 있어서 왔지. 그러니까 저 새끼를 죽여서라도 난 테스트에 통과해야 해.”
“비켜, 비키지 않으면 널 죽여서 9점을 얻을 테니까.”
성현을 향해 다가오던 사람들의 눈이 더욱 흉폭해졌고 칼과 낫 같은 무기가 달빛에 번쩍였다.
하지만 상대는 성현이었다.
성현이 자신의 앞에 그어진 축구장의 흰색 라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넘어서면 죽인다.”
성현이 가리킨 라인을 보던 사람들이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단 1명이 10여 명의 사람을 죽인다니.
계약자라면 가능할 거다.
하지만 이 중에 정식 계약자는 없다.
모두 가계약자이며 보통 사람이다.
게다가 성현은 마른 나뭇가지 같다.
이만큼 웃긴 말은 세상에 없을 거다.
“미친놈이 술 처먹고 액션 영화를 보고 나왔나.”
사람들이 낄낄대는 그 순간…….
“저 새끼는 내 거야!”
성현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가 있었다.
원채 강했던 사람인지 벌써부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를 자랑한다.
그 남자가 순식간에 성현의 앞에 서더니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성현을 향해 회칼을 휘둘렀다.
“10점 획득! 개쉽네!”
그 순간, 성현이 중얼거렸다.
‘알약 모두 사용.’
이계의 시장에서 산 6개의 알약을 모두 사용했다.
-30분 동안 스태미너가 2에서 4로 상승합니다.
-30분 동안 파워가 2에서 4로 상승합니다.
-30분 동안 스피드가 1에서 3으로 상승합니다.
-평균이 1.25에서 2.75로 상승했습니다.
끝이 아니다.
성현은 다시 중얼거렸다.
‘회중시계.’
회중시계의 사용 횟수가 6에서 5로 줄어들며 세상이 멎었다.
단 1초.
하지만 전투 중에 1초는 억겁의 시간이다.
성현은 망치를 휘둘렀고 망치는 그대로 남자의 얼굴을 찍어 눌렀다.
가차 없이…….
꽈앙! 꽈앙! 꽈앙!
그 순간, 1초가 지났다.
멈춰 있던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자의 가면이 산산조각 나며 머리가 움푹 팬 모습이다.
이어서 핏방울이 사방으로 떨어졌고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한 사람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가면이 깨졌고……. 눈에도 안 보인 공격이야. 이게 가능해?”
그리고 땅에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이 외쳤다.
“강, 강경태 선수?”
그는 격투기 선수다.
미국 유명 격투기 단체에 계약했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언론에 흘렀는데…….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챔피언이 되어 보겠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인터뷰.
사실 그는 두려웠다.
그래서 존재와 계약하며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격투기 챔피언을 원했다.
하지만 그 꿈은 여기서 끝났다.
파르르 떨던 강경태의 몸이 그대로 굳어 갔다.
성현이 서늘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그 말이 시작이었다.
“꺄아아악!”
“사, 살인!”
“사람이 죽었어!”
다양한 반응이다.
한아성 같은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난리법석을 치는 사람도 보인다.
또 조용히 서서 성현을 관찰하는 부류도 있다.
그들은 손에 쥔 무기를 꽉 잡으며 사망한 강경태를 비웃는다.
“격투기 선수도 별것 없네.”
“격투기 선수라고 배에 철판 깔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쑤시면 죽는 거야.”
“어쨌든, 저 새끼는 내 거다!”
이들은 살인 또는 강간에 능숙한 범죄자들, 살의가 주는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존재와 계약했다.
그들에게 성현은 매력적인 사냥감이다.
“죽어!”
그들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서는 기계음이 울리고 있었다.
-숨겨진 퀘스트 ‘최초의 득점’을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스피드에 3 투자.’
-스피드가 3에서 6으로 상승했습니다.
-평균이 2.75에서 3.5로 상승했습니다.
성현은 곧장 속으로 외쳤다.
‘회중시계.’
[회중시계]
-사용 횟수 : 4/8
또 시간이 멎었다.
성현은 가장 앞서 달려온 남자의 머리를 차례로 찍어 눌렀다.
꽝! 꽝! 꽝!
핏방울이 튀며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린다.
-숨겨진 퀘스트, 한 번에 20점 이상 득점을 달성하여 스텟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파워에 3 투자.’
-파워가 4에서 7로 상승했습니다.
-평균이 3.5에서 4.25로 상승했습니다.
고등학생의 평균이 2점대 후반.
20대 남성의 평균이 3점대 초반이다.
그런데 성현은 4점대로 접어들었으며 이것은 일류 운동선수의 평균이 이쯤 될 거다.
거기에 성현은 수십 년간의 전투 경험을 갖고 있다.
‘덤비는 놈은 모두 내 사냥감이다.’
인간답게 살려고 과거로 온 게 아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왔고 망설이는 순간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다음.”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더 덤비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성현의 앞에서 호랑이 앞에 선 초식동물 같다고 생각했다.
“더 없나?”
조용하다.
성현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성현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피 묻은 망치를 툭툭 털어 냈다.
“잠깐.”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낫을 든 마녀 아리가 성현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계약자가 아이템을 쓰고 스스로 스텟 포인트를 사용한다고? 부정행위 같은데?”
존재는 가계약자에게 어떤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계의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스텟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성현은 아이템을 2개나 사용했고 스텟도 올렸다.
아리의 눈이 살벌하게 변해 갔다.
“미리 듣고 왔나?”
만약 미리 듣고 왔다면 룰을 위반한 거다.
하지만 성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그녀의 얼굴만 바라본다.
“대답을 안 해?”
그녀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졌고.
후우웅!
그녀의 낫이 성현의 목에 닿았다.
서늘한 감촉이 오싹하게 느껴질 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해라. 인간. 너와 계약한 존재가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