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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1화 (11/252)

11화

* * *

-버림받은 악 지르힐의 권능을 1%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작 1%의 권능인데 최대 출력의 전기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꽉 쥔 주먹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며 피까지 흐른다.

‘진통제라더니…….’

성현은 이계의 시장에서 산 진통제를 먹었다.

그런데 효과가 전혀 없다.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그 고통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이 갈기갈기 찢기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

‘사기꾼 새끼.’

성현은 약을 판 꼬마를 찾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다.

물론 진통제의 효과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중이다.

고통이 진통제의 효과를 넘어섰을 뿐이지…….

‘계속하지.’

욕할 시간은 없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손끝에 모아 둔 전기를 혈관으로 이동시켜야 해.’

손목, 팔꿈치, 어깨, 척추…….

몸이 전기를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날카로운 칼이 혈관을 가르며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 또 한 계단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버림받은 악 지르힐의 권능을 1.01%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아, 계속…… 어?’

잠깐의 안도감에 정신을 놓았나 보다.

척추를 타고 이동하던 전기의 일부가 날뛰기 시작했다.

몸의 사방으로 전기가 튀고 통제를 벗어나 역류한다.

‘심장으로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해.’

전기가 혈관을 타고 심장에 닿으면 끝이다.

그대로 즉사…….

성현은 빠르게 판단했고 심장으로 향하는 혈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순간…….

-검은 알약의 효과가 종료되었습니다.

진통 효과가 끝나며 최악의 상황이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고통을 생으로 느껴야 한다.

‘끄으읍!’

온몸에 심줄이 툭툭 튀어나왔고 꽉 다문 입에서 치아가 부서질 것처럼 갈렸다.

하지만 집중해야 한다.

날뛰는 전기를 잡아서 본연의 자리로 보내야 한다.

‘젠장!’

성현은 날뛰는 전기를 찾았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다.

전기는 예상했던 심장으로 향하지 않고 뇌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막, 막아야 해.’

하지만 늦었다.

전기는 이미 뇌를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쇠파이프가 사정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이다.

뼈가 가루가 되는 느낌이 들며 급기야 달달달 몸이 떨려 왔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다.

극심한 고통은 생각마저 마비시켰다.

“으으으으…….”

성현은 의식을 붙들기 위해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구악’이라 불리며 세상을 위해 싸웠는데 반역 죄인이 되어 죽었던 불쌍한 사람들.

그들의 죄는 성현을 만난 것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현을 보며 빙긋이 웃는다.

“대장……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어.”

과거로 돌아가면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을 사 달라던 이태산이다.

그가 뒤로 물러나고 성현을 과거로 보낸 이서아가 앞에 섰다.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성현을 보며 입을 연다.

“이제 그만해도 좋아요. 그 정도 했으면 됐어요. 그리고 지연우도 처음에는 1%를 조금 넘긴 수준이었대요. 그러니까 포기해도 괜찮아요.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거예요.”

지연우의 이름이 또렷하게 박혔다.

그리고 성현의 머릿속에 동료들의 얼굴이 사라지며 지연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놈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유성현……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위해서다. 미안하다.

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이런 개새끼가!”

분노는 고통을 넘어섰다.

“너는 반드시 죽인다. 그때까지 난 죽지 않아.”

* * *

-버림받은 악 지르힐의 권능을 2%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현이 눈을 떴다.

옷은 다 타 버렸고 팬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알몸이다.

하지만 창피한 것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지르힐뿐이니까.

성현은 고개를 들었다.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현이 전기의 통제를 놓치고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내버려 둔 채로…….

그게 존재이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은 없었다.

“됐지? 지금부터 내 스텟은 내가 올린다.”

지르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킬 수밖에 없을 거다.

이미 계약서에 적은 것이고 맹세의 계약은 존재라 해도 어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성현은 손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와 마주했다.

“대답해.”

-원하는 게 있나?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말 바꿀 생각 하지 마. 내가 원하는 것은 스텟의 자유야.”

-걱정 마라, 인간. 계약은 지킨다. 다시 묻지. 원하는 게 있나? 계약의 선물로 네가 바라는 것을 말하라.

존재는 계약의 선물로 인간의 욕망을 해소해 준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해서지만…….

그리고 인간은 ‘돈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 ‘잘생겨지게 해 주세요.’ 같은 같잖은 소원을 말한다.

하지만 성현은 달랐다.

돈이야 괴물을 죽이거나 아이템을 팔면 되는 거다.

얼굴을 뜯어고쳐 봤자 상처투성이로 변할 테고.

“특혜를 하나 더 줬으면 좋겠는데.”

-특혜?

“내가 원할 때, 네가 나를 볼 수 없었으면 좋겠어.”

존재는 계약자의 일상을 24시간 확인할 수 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싸는 것도…….

-뭐라?

“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잖아. 왕성한 10대라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대의 욕망인가?

“그렇다고 해 두지.”

-알겠다. 그럼 약속하지. 나 지르힐은 그대의 모든 것을 관찰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대가 내 눈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최대 2시간이다. 괜찮겠나?

2시간이면 충분하다.

“좋아. 그럼 계약은 끝났지?”

계약서에 다시 글씨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2시간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성현을 향한다.

-인간, 계약은 끝났다. 다음에 보지.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스르륵 사라졌다.

성현 역시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오늘은 테스트가 끝난 날이다.

지금은 피곤하기만 하다.

‘밖으로.’

하얀 공간이 사라지며 눈앞에 텔레비전이 보였다.

‘거실?’

원래라면 창고로 넘어오기 직전에 있던 공원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집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지르힐이 배려해 주었다는 뜻이다.

성현은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2시 50분.’

테스트가 끝난 게 2시 30분이다.

창고에서 계약하고 2%를 달성하는 등 몇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고작 20분이 지났다.

창고의 시간은 현실보다 더디기 때문이다.

성현은 쭉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싶었다.

* * *

“들었어?”

“뭘?”

“어제 테스트가 있었대.”

이른 아침…….

분명 자율 학습 시간이지만 학생들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였다.

“37명 죽었잖아.”

어젯밤, 서울 동부에서 계약자의 테스트가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룻밤 사이에 37명이 실종되었으며……(중략)……존재와의 계약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사망된 것은 처음이기에 계약자연맹에서도……(후략)…….

실종이라 적었지만 사망이다.

“이렇게 많이 죽은 것은 처음 아니야?”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성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성현이 곽동진을 박살 내며 교실의 왕이 바뀌었다.

왕따였던 성현으로…….

그래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성현을 괴롭혔던 학생들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석고상처럼 굳어 있다.

아니, 그들만이 아니다.

교실의 모든 학생이 성현의 시선을 피한다.

폭력과 괴롭힘에 동참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성현을 외면했다.

그래서 모두가 가해자다.

성현도 교실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수업까지 1시간 남았지?’

지금은 아침 자율 학습 시간, 성현은 가방을 책상에 내려 둔 채 교실을 빠져나갔다.

괜히 교실에 앉아 학생들을 압박하는 못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갈 곳이 있어.’

성현은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잠시 후, 도서관.

성현은 신문을 펼쳐 두고 모든 글자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회귀를 했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이 시기의 성현은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이서아가 준 수억 가지의 미래 예측이 있지만 그것 역시 만능이 아니다.

지연우와 같은 계약자와 싸울 때나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성현은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인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찾는 것은…….

‘천도리 던전 참사…….’

짐승이 허공을 찢으며 나타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은 검은 문에서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그 문을 던전이라 불렀다.

‘길드는 던전을 탐사 또는 토벌하지.’

길드는 짐승을 잡기 위해 던전에 들어간다.

짐승의 가죽과 살 그리고 뼈는 여러 산업 현장에 사용되고 꽤 비싸게 팔리니까.

그리고 던전의 보물은 그게 끝이 아니다.

높은 확률로 강해지기 위한 아이템이나 금은보화도 발견될 수 있다.

‘그러니까 던전 안의 모든 것은 돈이 된다는 거지.’

던전은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탐욕의 공간이다.

성현의 머릿속에 이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있었던 천도리 던전 참사를 기억하세요?”

“기억하지.”

선발대는 D급 던전으로 보고했지만 막상 들어갔더니 B급에 가까웠던 곳.

던전 탐사를 주도했던 길드 토벌대장은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길드원 20명과 짐꾼 30명이 전원 사망하며 난리가 났던 사건…….

‘짐꾼 중에는 고등학생이 20명 가까이 있었어. 그 일을 시작으로 미성년자의 짐꾼 역할이 법으로 금지되었고…….’

그런데 이서아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참사로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뒤에 있었던 일, 지연우가 학생들의 복수를 외치며 천도리 던전에 들어갔고…….

‘놈은 그곳에서 승려의 단도를 얻었다고 했어.’

승려의 단도는 날의 길이가 짧아 전투용으로 사용하기에 아쉬운 점이 많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모두가 혹할 만한 부가 기능이 있었다.

‘상대의 방어력을 무력화하는 기능.’

성현은 승려의 단도가 필요했다.

조만간 성현의 어머니는 높은 확률로 위기에 빠질 거다.

상대는 전갈 괴물이다.

낮은 등급이 아니라 꽤 높은 등급의…….

‘지금 내 힘으로 높은 등급의 짐승을 이길 수 없어.’

하지만 승려의 단도가 있다면, 그래서 전갈의 방어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어.’

성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다 해도 난관이 존재한다.

‘짐꾼으로 어떻게 들어가지?’

계약자연맹에 등록해야 짐꾼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등록 후 3개월 후부터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참사는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 길드가 그 던전에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어렵네.’

성현은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천도리 던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드르륵, 도서관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성현은 상관 않고 계속 신문을 읽어 갔다.

도서관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유, 유성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성현은 신문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틀었다.

안경 학생이 보인다.

“너는…….”

주열호라는 양아치가 성현을 찾는다고 알려 줬던 학생이다.

그가 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미, 미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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