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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2화 (12/252)

12화

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와 미래를 더듬어 봤지만 안경 학생은 기억에 없다.

이름도 모르고 심지어 같은 반도 아니다.

그런데 미안하다니…….

여드름 학생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귀에 댔다.

그리고…….

“양정아, 도서관이야. 여기에 있어.”

성현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여드름 학생은 양아치들의 지시를 받고 성현을 찾고 있었던 거다.

성현이 엷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할 필요 없어.”

“어?”

성현은 여드름 학생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고등학교 시절은 지옥이었으니까.

매일 죽고 싶다 말했고 가해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잠에 들었다.

용기를 내서 주변에 도움도 청해 봤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같은 반 학생들은 외면했고 교사들은 말했다.

“너도 똑같아. 너에게도 뭔가 잘못된 게 있을 거야.”

잘못된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성현이 여드름 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조금만 참아. 곧 끝날 거니까.”

성현의 목소리에는 이 학교 양아치를 뽑아 버리겠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때…….

“개소리하네.”

문에 한 남학생이 기대 있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건들건들, 딱 양아치다.

성현이 메마른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넌 이름이 뭐지?”

“오양정이다, 새끼야.”

그는 계약자다.

학교 양아치 서열 5위, 게다가 키가 190에 몸무게도 110kg, 황소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다.

오양정이 문을 닫으며 입을 연다.

“너도 계약자지?”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양정은 긍정의 의미로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계약자연맹에 이름이 없더라.”

존재와 계약하게 되면 한 달 이내에 연맹에 등록해야 한다.

이것은 계약자연맹의 법이며 계약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계약자 새끼가 곽동진을 때려? 넌 지금부터 사냥감이다, 이 새끼야.”

연맹에 등록되지 않은 계약자는 죽여도 상관없다.

이유는 단 하나.

통제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성현은 계약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오양정을 비롯한 양아치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오양정이 손을 올려 성현의 어깨를 꽉 잡았다.

“지금부터 넌 뒈진다.”

성현은 무심한 눈동자로 자신의 어깨에 닿은 오양정의 손을 바라봤다.

덩치만큼 크고 두툼한 손이다.

‘흠…….’

성현이 사용할 수 있는 지르힐의 힘은 고작 2%.

반면 오양정은 존재와 계약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보였고 적어도 3~4%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기본적인 피지컬부터 차이가 크다.

순간 드르륵, 도서관의 문이 열렸다.

오양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으로 향했다.

혹시 양아치 친구들이 찾아왔는지 확인하려는 거다.

폭력은 함께해야 즐거운 거니까.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친구가 아니라 한아성이다.

도서관에 들어온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싸움 중에 시선을 돌려?”

오양정의 귓가에 협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위기감을 느끼고 다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꽈직!

성현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향해 휘둘렸고 오양정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끕!”

이어서 그의 몸이 기역자로 접히더니 허공에 붕 떴다가 벽에 처박혔다.

꽈아아앙!

바닥에 떨어진 오양정은 한참 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끄어어업! 치, 치사하게…….”

그는 성현에게 명치를 맞았다.

그것도 제대로…….

성현이 저벅저벅 오양정을 향해 다가갔다.

“사냥감이라고? 이것도 참 신선한 소리네.”

오양정이 강해 봤자 고등학생이다.

갈 수 있는 위험 지역은 최대 D급.

그것도 전투 요원으로는 활동할 수 없고 짐을 나르는 서포터나 가능하다.

즉, 실전 경험은 거의 없다는 것.

그런 놈이 수십 년을 지옥에서 굴러온 성현에게 사냥감이라니…….

성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냥감한테 당하는 기분이 어때? 지금부터 씹어 먹어 주마.”

그 말은 진심이었다.

성현의 지독한 살기에 오양정의 눈빛이 거만한 눈빛에서 겁먹은 짐승으로 변했다.

오양정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하, 하지 마.”

성현은 오양정의 간절함을 외면했다.

그 역시 약한 학생의 간절함을 모른 척했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장난감으로 생각하며 즐거워했을 거다.

“뒈져.”

성현은 발을 들어 오양정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콰직!

오양정의 얼굴이 도서관 대리석 바닥에 처박혔다.

피가 팍 터지며 몸을 파르르 떨다가 멈췄다.

오양정을 박살 내는 데 필요한 폭력은 단 두 방이었다.

성현은 대수롭지 않은 눈빛으로 오양정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아, 이놈 계약자라고 했지?’

뭔가 생각난 듯 그의 품을 뒤적였다.

지갑이 만져졌다. 펼치자 보이는 것은 카드와 만 원짜리 몇 장, 하지만 그런 것은 성현의 관심 밖이었고.

‘보통 안 가지고 다니는데, 착실한 놈이네.’

성현은 오양정의 지갑에서 학생증을 빼냈다.

‘이름 좀 쓰자.’

성현은 인제군 천도리에 나타난 던전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던전에 들어가려면 등록된 지 3개월이 지난 계약자의 신분이 필요했다. 성현은 그것을 오양정의 학생증으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물론 얼굴은 많이 다르지만 상관없다.

짐꾼의 신분을 꼼꼼히 확인하는 길드는 없으니까.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벽에 붙어 있는 안경 학생이 보였다.

“걱정하지 마. 안 죽었어.”

“어?”

“그리고…… 너는 개학할 때까지 학교에 오지 마. 지금 당장 집으로 가.”

오양정이 당한 것을 알면 양아치들의 보복이 시작될 거다.

그 과정에서 안경 학생은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안경 학생의 눈빛에 두려움이 아니라 걱정이 가득 채워졌다.

“내, 내가 이런 말 하면 웃기는데…… 주열호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주열호?”

이 학교 양아치들의 대장, 주열호…….

“걔는 오양정이랑 달라. 정말 강해.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고 있대. 벌써 ‘스킬’이라는 것도 쓴다고 들었어…….”

고등학생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험도 이해도도 부족하니까.

그런데 벌써 사용하고 있다면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주열호는 사람 죽여 보는 게 꿈이래. 그리고 길드연맹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대형 길드에서 뒤를 봐주거든. 그러니까 도망가. 전학이라도 가…….”

“신경 쓰지 마.”

성현은 담담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 어차피 하려고 했던 청소다.

가만히 있으면 곽동진으로 시작된 보복이 계속 이어질 거다.

“개학날 보자. 방학 끝나면 널 괴롭히던 학생들은 없을 거야.”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그제야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한아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긴장한 표정으로 성현을 보고 있다.

“저기…… 그렇게 서 있으면 내가 나갈 수가 없는데.”

성현의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어.”

그녀가 몸을 틀었고 성현이 그 옆을 지났다.

그때…….

“잠깐만!”

한아성이 성현의 옷깃을 붙잡았다.

“왜?”

“……빵 먹을래?”

뜬금없는 말에 성현이 눈을 깜빡였다.

“뭐? 빵?”

“응, 빵. 내가 살게.”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끄덕…….

한아성과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좋아. 그런데 잠깐 교무실 좀 들러도 될까?”

“어, 기다릴게.”

성현은 바로 교무실로 이동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기간이라 교사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성현이 향한 곳은 바로 담임의 책상.

‘어디에 있나…….’

잠시 후, 교무실을 빠져나온 성현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집 주소와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적힌 생활기록부다.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양아치들은 집요하며 쓸데없는 곳에 근면성실하다.

곽동진과 오양정이 당했으니 우정을 외치며 복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애초에 방지하고 싶었다.

* * *

학교를 나온 성현은 프랜차이즈 빵집에 앉아 있었다.

한아성이 빵이 가득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성현과 마주했다.

‘크림빵.’

성현이 빵 하나를 손에 들어 입에 물었다.

과거로 돌아와 먹는 음식은 모두 맛있다.

역적이 되어 도망 다니느라 꿈도 못 꿨으니까.

그중에서도 크림빵은 먹고 싶은 음식 백 가지에 들어갔던 거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어?’

앞에 앉은 한아성이 미친 듯이 먹고 있다.

키가 작고 마른 몸매의 그녀인데, 마치 식신에 빙의된 것처럼.

“아…….”

성현의 눈빛을 받은 그녀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성현이 픽 웃었다.

“괜찮아. 편하게 먹어.”

“저기…… 내가 원래 이렇게 먹지는 않아.”

“알았으니까 편하게 먹어.”

성현은 빵 한 조각을 더 베어 물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쟁반이 싹 비었고.

“더 먹을래?”

한아성이 묻는다.

이미 보통 사람 이상으로 먹어 놓고…….

“그래, 더 먹자.”

성현은 빵을 가지러 가는 한아성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존재와 접촉하고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그 성향을 닮기도 한다.

성현은 지르힐과 계약하며 조금 포악해졌으니까.

‘넌 누구와 계약한 거냐?’

떠오르는 존재가 몇 있었다.

폭식의 여왕 맨티스 또는 먹을 것을 탐하는 걸귀, 그것도 아니면…….

‘뭐, 맨티스만 아니면 괜찮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아성은 빵을 산더미처럼 가져왔다.

그녀가 다시 빵 하나를 손에 쥘 때 성현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먹기 전에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를 왜 불렀지?”

“어?”

“이유가 있을 거잖아?”

한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성현과 그녀는 친한 사이가 아니다.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눠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덥지?”

“여름이니까 덥지.”

“대학은 어디로 갈 거야?”

“난 공부 못해.”

모두 쓸데없는 질문이다.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네.’

이대로는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 않았다.

성현이 빵을 내려 두며 바로 찔러 들어갔다.

“너 어제 있었지?”

“어?”

“근린공원의 축구장. 토끼 가면, 너잖아.”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하지만 성현은 이미 알고 있다.

가늘게 떨던 그녀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도 있었지?”

“하나만 묻자. 궁금했던 게 있었거든.”

“궁금한 거?”

“날 어떻게 알아봤지?”

테스트는 밤에 이뤄졌고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상황에서 성현을 알아봤다.

“……어떻게 알아봤냐고?”

“어.”

한아성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대답하면 안 돼, 절대!’

사실 그녀는 성현이 공원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당장 빨아먹고 싶은 달콤한 냄새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잖아!’

그녀는 존재와 가계약했을 때부터 후각이 예민해졌고 식탐이 많아졌다.

거기까지면 괜찮은데 맛있는 냄새가 나는 사람마저 생겼다.

깨물고 핥고 싶은 욕구를 못 참을 정도로…….

그 대상은 성현이다.

‘솔직히 말하면 날 변태라고 생각할 거야.’

그녀는 파르르 떨리던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얼버무린다.

“……그냥 너인 것 같았어.”

“그냥 알았다고?”

“어, 정말이야.”

한아성은 성현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계약한 존재는 성현에게도 계약의 손길을 뻗었던 폭식의 여왕 맨티스.

맨티스는 사마귀의 권능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사마귀는 교미 후 남편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한아성은 맨티스의 그런 성향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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