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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화 (13/252)

13화

성현은 조용히 한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중이다.

중얼대면서…….

“진짜야, 딱 보고 알았어.”

그녀는 가면을 쓴 성현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숨기고 있다.

“좋아. 밝히지 않아도 돼.”

성현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가 숨기려는 이유가 존재의 지시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일 때, 성현이 말을 이었다.

“대신 하나만 기억해.”

“기억? 어떤 거?”

“존재의 말은 항상 의심해. 놈들은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약속은 지키지 않아.”

그녀는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깨우기 위해 존재와 계약했다.

하지만 존재는 천사가 아니다.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소망을 미끼로 그녀를 이용할 수도 있다.

“어. 기억할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 나를 이 빵집에 부른 이유를 말해.”

“어?”

그녀가 성현에게 빵집에 오자고 한 이유…….

애초에 이유 따위는 없었다.

성현의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잡았을 뿐이다.

“이유, 이유……. 그러니까, 그게, 아…… 혹시…… 도서관에는 왜 간 거야?”

“뭐 좀 알아보려고.”

“어떤 거? 혹시 존재에 관한 거야?”

“응.”

“뭔지는 모르지만 말해 주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빠, 공무원이거든. 존재나 짐승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계약자연맹만 짐승을 처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총과 같은 살상 무기가 있었고 일정 등급 이하의 짐승은 훈련받은 군인이 막아 낼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대짐승 진압 부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아빠가 C117부대 대대장이시거든.”

C117부대는 이 지역에 있는 진압 부대 이름이다.

대대장이면 그 부대의 최고 결정권자, 항상 위험 지역에 있는 만큼 많은 정보가 그녀의 아버지 귀로 들어가고 있다.

‘천도리 던전을 알고 있을 거야.’

성현이 도서관에 갔던 가장 큰 이유는 천도리 던전의 소식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던전은 ‘승려의 단도’를 숨기고 있는데, 그 단도가 있어야 혹시 모를 사고에서 어머니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한아성이 활짝 웃었다.

이유 없이 성현을 불러냈는데, 상황을 모면한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고.

그녀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아빠, 아성이에요.”

잠시 후, 성현과 한아성은 도심 한복판의 8층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평범한 외관이지만 이곳이 바로 C117부대.

“들어가자.”

성현이 앞장섰다.

그런데 한아성이 따라오지 않는다.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 ‘진압 부대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 견학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는데요.’라고 말했던 한아성이 입구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저기…… 부탁할 게 있는데…… 내가 계약자라는 거 비밀로 해 주면 안 될까? 엄청 걱정하실 거야.”

성현이 슬쩍 웃었다.

“언젠가 들킬 텐데?”

아직은 존재에게 얻는 힘이 얼마 되지 않아서 ‘계약자 검색대’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스킬을 발현할 정도가 되면 100% 걸릴 수밖에 없다.

계약자 검색대는 각 관공서, 병원, 공항, 백화점 등에 설치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늦추고 싶어. 우리 오빠도 계약자라 매일 걱정하시거든. 그런데 나까지 계약했다고 하면…….”

“알았어. 말 안 할게.”

“고마워.”

“유성현이라고?”

한아성의 아버지 한명철 중령은 성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금은 아쉬운 표정이다.

성현은 한아성이 처음 데려온 남자 사람 친구, 그래서 조금은 더 냉정하게 보기도 했지만…….

‘쯧.’

성현의 몸은 툭 치면 부러질 것만 같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한명철 중령에게 일반 군대도 면제 받을 것 같은 성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명철 중령이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견학하고 싶다고? 그래, 그럼 둘러봐. 단, 5층은 가지 마. 거기는 포획된 짐승을 연구하는 곳이라 위험해.”

말투나 눈빛이 퉁명스러웠다.

성현에게 흥미를 잃은 표정이다.

하지만 성현은 그에게 얻어야 할 정보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어떤?”

“친척 형이 강원도 인제에 있는데요. 거기에 던전이 나타났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인제군?”

“네.”

이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상관없다.

던전의 출몰은 기밀이 아니다.

토벌 길드가 정해지기 전까지 언론에 알리지 않을 뿐이다.

그 전에 알려지면 개나 소나 보물섬을 발견한 도적 떼처럼 몰래 들어갔다가 싹 다 죽을 수 있으니까.

한명철 중령이 고개를 틀었다.

“정보과장, 인제에 던전 나타난 것이 있나?”

정보과장이 키보드를 두들기더니 곧장 답했다.

“네, 천도리에서 2주 전에 나타났습니다. ‘레이브’ 길드가 토벌권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토벌 시점은 2주 뒤가 될 것 같습니다.”

한명철 중령의 시선이 다시 성현에게 향했다.

“궁금한 게 또 있나?”

“아뇨,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현과 한아성은 가슴에 ‘견학’이란 명찰을 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곳은 2층, 전시실과 미팅실이 있다.

향한 곳은 당연히 전시실, 진압 부대가 어떻게 창설되었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적혀 있는 곳이다.

평범한 견학자는 대충 보고 넘어가지만 성현은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대짐승 진압 부대는 과거 성현이 마스터로 있던 ‘구악’의 전신.

이곳은 성현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성현은 군인들의 훈련 사진을 보며 자연스레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멧돼지같이 먹어 대던 이태산, 소멸될 것을 알면서 시간을 과거로 돌린 이서아 그리고 다른 동료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잠시 생각하던 성현은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야. 만나지 않는 게 좋아.’

성현이 하려는 일은 지연우를 죽이는 것, 존재의 단체 ‘교’를 박살 내는 것…….

그것의 성공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성현은 물론 동료들도 비참하게 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그들의 사망을 또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핏물에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건 싫다.

불가능한 목표지만 최대한 혼자 해야 한다.

생각을 멈춘 성현은 옆에 서 있는 한아성에게 시선을 틀었다.

“가자.”

“다 봤어?”

“궁금했던 것도 풀렸고 더 볼 것도 없잖아.”

두 사람은 전시실을 벗어났다.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가려 하는데…….

‘어?’

벽에 붙은 현상범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모습이 보여서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쥐를 해체 중인 남자.

미등록 계약자, 현상금 300만 원

성현의 눈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이거 나잖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매개체를 찾기 위해 종합병원에 갔을 때의 모습.

성현이 구했던 아기 엄마가 남편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그게 녹화되었고 이렇게 신고까지 된 모양이다.

성현은 혹시 흔적을 남긴 것이 있나 생각해 봤다.

장갑을 꼈으니 지문이 남을 리 없고 모자와 마스크를 썼으니 외모가 발각될 일도 없다.

피가 묻었던 옷은 버린 지 오래고.

‘됐네.’

애초에 불법 계약자도 아니다.

계약자 등록은 한 달 이내에 하면 되는 거니까.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귀찮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성현이 법을 어긴 것은 없지만 현상금까지 붙었다.

그것도 300만원이나…….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잡혀서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 계약자연맹과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것은 사양이다.

그때…….

쾅!

뒤에서 나타난 손바닥이 현상금 포스터를 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란 성현과 한아성이 고개를 틀자 넓은 어깨와 단단한 몸, 시원한 외모의 남자가 보인다.

“안녕?”

그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

성현은 그를 알고 있었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지연우의 12사도 중 하나가 될 사람이며 성현이 죽여야 할 대상…….

‘저승사자 한지혁.’

현재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계약자 랭킹 100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강자다.

그가 한아성과 성현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가 한아성의 얼굴에서 시선을 멈췄다.

“남자 친구야?”

“깜짝이야!”

한아성은 화를 냈다.

그리고 성현에게 한지혁을 소개했다.

“아까 말했지, 우리 집에 계약자가 있다고……. 우리 오빠야.”

“……!”

“그리고 오빠, 얘는 같은 반 친구야.”

한지혁이 성현을 향했다.

“남자 친구?”

“같은 반 친구입니다.”

“그러니까, 사귀는 거야?”

“아뇨. 그냥 같은 반 친구…….”

“그게 사귀게 되는 거야.”

“오빠!”

한아성이 목소리를 높였고 한지혁은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점차 사라지더니 인상이 굳어진다.

“잠깐만.”

그가 손바닥으로 성현의 머리와 입을 가렸다.

눈만 보일 수 있게…….

“……오빠, 뭐 하는 거야?”

한아성이 물었지만 한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날카로운 눈으로 성현을 관찰하고 있다.

“설마……?”

한지혁이 시선을 틀어 현상금 포스터를 향했다.

병원에서 찍힌 성현의 사진이 보였다.

그렇게 사진과 성현의 얼굴을 관찰하던 한지혁이 픽 웃는다.

“미안, 아닌 것 같다.”

“네?”

한지혁이 손가락으로 사진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너 이 사진이랑 닮았어. 그런데 짐승을 잡을 정도면 조금이라도 권능이 느껴져야 하는데…… 넌 안 느껴지거든.”

권능이 느껴지지 않으면 둘 중 하나다.

갓 계약한 계약자이거나 일반인…….

지르힐과 계약한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거다.

“그럼 이 사진도 네가 아니란 거잖아?”

“……흔한 얼굴이란 소리 많이 듣습니다.”

“아성이가 흔한 얼굴을 좋아하나 보네. 하하하.”

“오빠!”

한지혁은 손을 흔들며 떠났고 한아성은 성현을 향했다.

“미안. 오빠가 장난이 심해…….”

성현과 한아성은 밖으로 나왔다.

성현은 고개를 틀어 빠져나온 건물을 향했다.

그리고 저곳에 있을 한지혁을 떠올렸다.

‘한지혁…….’

그가 뒤에 섰을 때, 성현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지혁의 손바닥이 현상금 포스터를 때릴 때까지도 그가 있는지 몰랐다.

‘젠장.’

그리고 그의 눈빛에 담긴 힘을 떠올려 보면…….

‘1초도 견디지 못할 거야.’

한지혁과 성현이 가진 힘의 차이는 분명하다.

지금껏 깔짝대던 고등학생들과는 포악스러운 눈빛부터 달랐다.

성현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미래에서도 한지혁과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엇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싸워야 한다.

성현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지금은 상대도 안 된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에…….

‘죽일 거다.’

한지혁 역시 지연우를 도왔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존재의 식량으로 만든 자였다.

반드시 죽일 거다.

“미안, 난처했지?”

성현이 생각을 멈추고 한아성을 향했다.

그녀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오빠가 좀 짓궂어…….”

아…… 한지혁이 한아성에게는 ‘오빠’다.

* * *

또각, 또각…….

대리석 바닥에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낫을 든 마녀 아리, 그녀는 고대 로마의 신전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은 기둥으로 세워진 문 앞에 섰다.

석상으로 만들어진 문지기 둘이 들고 있던 창을 움직여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목적을 말하라.

“유르라헬의 피를 받은 보잘것없는 마녀가 어머니를 만나러 왔습니다. 보고의 내용은 하찮은 인간의 일입니다.”

그때…….

“들라.”

문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석상은 아리를 가로막았던 창을 치웠다.

그러자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끼기기기긱!’ 하고 소리를 내며 열린다.

아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붉은색이다.

카펫과 커튼 그리고 벽에 붙은 그림까지도.

그리고 끝없이 높은 계단 위, 거대한 왕좌에 앉은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갓 내려 쌓인 눈처럼 흰 피부와 칠흑처럼 어두운 머리카락을 가졌고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다.

그리고 계단의 좌우로 그녀의 신하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리는 계단 위에 앉은 여인을 감히 보지 못했다.

서 있는 것조차 힘든지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계단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하찮은 마녀 아리가 어머니께 보고할 일이 생겨 찾아왔습니다.”

“말하라. 무슨 일이지?”

“얼마 전, 테스트 감독관으로 인간사에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여인의 눈에 호기심이 담겼다.

인간은 100년도 못 사는 하찮은 생명체, 존재에 비하면 하루살이와 같다.

그런데 그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쉬지 않고 일하며 계속해서 배워 간다.

귀한 시간을 즐기지 않고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인에게 그 모습은 우습기만 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그래서 여인은 기대했다, 아리의 입에서 어떤 재밌는 이야기가 쏟아질지…….

그런데…….

“그곳에서 배우지 않고 이계의 물건을 사용하는 인간을 찾았습니다.”

“뭐라?”

“어머니께서 찾는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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