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 *
성현의 휴대폰 화면에는 레이브 길드의 홈페이지가 보였다.
‘아직인가?’
성현은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고 있었다.
언제 짐꾼을 모집할지 몰라서다.
레이브 길드가 토벌할 천도리 던전은 미성년자도 참가할 수 있는 D급으로 알려져 있다.
방학 기간인 만큼 고등학생이 몰릴 게 분명했고 순식간에 마감될 가능성이 컸다.
성현은 다시 한번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며 한숨을 내뱉었다.
역사가 그대로 흘러간다면 천도리 던전은 참사로 기록될 거다.
토벌대장을 제외한 전원 사망의 참사…….
‘나 역시 위험할 거야.’
성현 역시 안심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정식 길드원도 전원 사망한 게 천도리 던전이다.
그런데 성현은 기본적인 스킬도 발현하지 못하는 상태라 최소한의 방어도 힘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가야 해.’
그래야 ‘승려의 단검’을 얻을 수 있고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이 미래를 바꿔 나가는 방법이다.
그 순간, 기다리던 팝업 창이 떠올랐다.
짐꾼 모집, 〇〇명.
성현은 재빨리 참가 신청 버튼을 터치한 후 오양정의 학생증을 손에 들었다.
‘이름 좀 빌리자.’
* * *
“친구들이랑 여행 다녀오고 싶어서요.”
“여행?”
식사를 하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성현은 고 3이다. 게다가 지금은 보충수업 기간…….
“학교는 괜찮아?”
“가족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성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음침하게 지냈고 몸이 약해서 그런지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의 입에서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다니……. 어머니는 엷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해. 며칠 다녀올 거야?”
“일주일 정도요.”
“일주일이나?”
성현은 ‘친구 외갓집으로 놀러 가요.’, ‘산에서 캠핑하기로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등등 변명을 늘어놨고 이번에도 어머니는 허락하셨다.
친구 하나 없던 아들이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하니 조금 기쁘신 모양이다.
거짓말인데…….
‘죄송해요. 어머니…….’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출근하셨고 성현은 짐을 챙겼다.
여벌의 옷과 마트에서 산 육포, 무기로 쓸 부엌칼.
짐승의 땅으로 가기 위한 준비다.
‘짐승의 땅…….’
전 세계적으로 인간은 많은 터전을 빼앗겼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 그리고 전라도의 대부분은 인간의 땅이 아니다.
그 땅의 주인은 짐승이며 인간의 법이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등급 외 짐승과 마주칠 수도 있다.
성현은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4일.’
4일 후에는 천도리 던전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안에 권능 이해도를 최대한 높여야 해.’
그래야 스킬도 사용할 수 있고 사망할 확률도 낮아질 거다.
그 해답이 짐승의 땅에 있다.
‘가자!’
성현이 가방 지퍼를 힘차게 닫았다.
* * *
버스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산 아래다.
2시간 정도 비탈을 오르자 철조망이 보였다.
철조망을 따라 능선을 걷는데…….
‘찾았다.’
철조망 아래에 개구멍이 있었다.
‘좋아.’
짐승의 땅은 허가받은 계약자만 들어갈 수 있고 미성년자는 출입 금지다.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럼 편법을 사용해야지.’
그래서 개구멍을 찾은 거다.
철조망 너머로 가방을 던진 후 몸을 낮춰 개구멍을 통과했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투 지역입니다. 전투 중에는 창고로 들어가는 게 제한될 수 있습니다.
성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메시지를 보자 짐승의 땅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 났다.
괴산 군청이 있던 지역이다.
이곳은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었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군청이 있었다는 흔적을 보여 줄 뿐, 이제는 200여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사람은 바글바글하다.
특히 광장은 난리도 아니다.
“다음 마을까지 50km가 넘어요. 무기 점검하고 가세요!”
“짐꾼 필요하신 분!”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도 보였고.
“가죽이 상한 곳이 많아서 200만 원이 한계일 것 같은데요?”
“300. 아니면 안 팔아.”
“이런 것은 경매장에 가도 200이에요. 제가 사정 봐서 30 더 드릴 테니까…….”
“박 사장, 우리 파티원이 3명이야. 거기에 짐꾼까지 고용했어. 230이면 손해야, 손해!”
사냥한 짐승을 두고 브로커와 흥정하는 계약자도 보였다.
성현은 나무에 기대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조력자가 필요해.’
딱 1명, 믿을 만한 사람이면 괜찮을 텐데 그런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저기요?”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틀자 턱수염이 가득한 남자가 보였다.
그가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김석영이라고 합니다. 파티를 구하는 중이거든요. 괜찮다면 합류하실래요?”
성현은 김석영의 뒤를 확인했다.
노란 머리 남자 1명과 야구 모자를 쓴 여자 1명…….
‘이유를 알겠네…….’
이들이 왜 파티를 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진 장비가 낡고 값싸다.
즉, 낮은 등급의 계약자가 분명하다는 것.
이곳에서 약자는 철저히 외면받는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파티를 권했지만 모두 퇴짜를 받았을 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들보다 약해 보이는 성현에게 파티를 권했을 게 분명하다.
‘같이 다니면 좋겠지만…….’
이들의 수준은 성현에게 딱 좋았다.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그렇다고 이들의 눈빛이 어설퍼 보이지도 않고.
만약 성현이 사냥을 위해 이곳에 왔다면 이들과 함께했을 거다.
하지만 성현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냥으로 돈이나 벌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중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그 말과 동시에 노란 머리 남자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우리가 거지같이 보여요?”
“아뇨. 전혀.”
“그런데 왜 안 하죠? 여기서 사냥 말고 할 일이 뭐가 있어요? 딱 보니까 초보 같은데, 혼자 사냥 못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제안을 거절한 것은 우리가 싫다는 거죠? 그 이유 좀 들어 봅시다.”
성현의 예상대로 이들은 파티 권유를 계속 거절당했다.
그런데 엄청 약해 보이는 성현에게도 거절당하자 화가 치솟은 거다.
“이유를 말해 보라니까!”
노란 머리는 흥분했지만 성현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유요? 제 권능 이해도가 2%거든요.”
“2%?”
“네, 2%.”
“…….”
주변이 조용해졌다.
2%면 스킬을 사용 못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짐승의 땅에 들어온 것 자체가 미친 짓이며 죽고 싶어 환장한 거다.
이곳에서 스킬이 없다면 곧바로 사망이니까.
“잠깐만요.”
지금껏 조용했던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길고 검은 머리가 찰랑거렸고 하얀 피부에 청순한 외모가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을 본 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그녀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그사이 그녀는 성현에게 얼굴을 갖다 댔다.
그리고 짙고 검은 눈동자로 성현의 영혼을 확인하는 것처럼 조용히 살폈다.
그러더니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권능이 안 느껴져요.”
그녀의 말에 노란 머리가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아, 미치겠네. 정말 2%야? 아직 초보였어?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너 여기 왜 왔어? 죽으러 온 거야, 아니면 범죄자야? 그런 새끼들 많잖아. 범죄를 저지르고 짐승의 땅으로 도망치는 새끼들!”
노란 머리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성현에게 파티를 권했던 김석영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성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란 머리 남자분이랑 파티 하는 것은 생각해 보세요. 성격 급한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위험해요.”
노란 머리가 인상을 빡 찌푸렸다.
“뭐, 이 새끼야!”
그가 성현의 어깨를 콱 쥐며…….
“죽고 싶냐?”
성현은 조용히 노란 머리의 힘을 가늠해 봤다.
‘아직 초급이야.’
낮은 등급의 계약자는 권능 이해도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뉜다.
노란 머리는 아직 기초적인 스킬만 사용하는 초급 계약자.
물론 초급이라 해도 스킬을 사용할 줄 안다.
정식으로 싸우면 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기습이 성공하면 이길 수 있는 수준…….
성현은 조용히 노란 머리를 지켜봤다.
“그만해요.”
김석영이 말렸다.
그런데 노란 머리는 오히려 성현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낄낄거렸다.
“나보고 성격이 급하다고? 성격 급한 사람이랑 있으면 위험하다고? 잘 아네. 너 지금 위험해, 이 새끼야.”
노란 머리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성현을 상대로 스킬을 쓰려는 거다.
“그런데 너 뒈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무슨 죄를 짓고 도망쳐 왔냐? 관상 보니까 좀도둑…….”
노란 머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성현이 자신의 어깨를 쥔 그의 팔을 잡고 그대로 몸을 틀었기 때문이다.
업어치기.
“어?”
찰나의 순간이었다.
노란 머리는 바닥에 꽂혔고 느껴지는 충격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컥!”
하지만 끝이 아니다.
성현의 주먹이 그의 얼굴로 날아오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노란 머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를 악물고.
“끕!”
그런데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노란 머리는 조심스레 눈을 떠 봤다.
빙긋이 웃고 있는 성현이 보였다.
“젠장…….”
노란 머리는 성현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꼬리를 만 거다.
성현이 손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 안 짓고 왔으니까 신경 쓰지 마.”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덩치가 아깝네.”
“저 멸치 새끼, 대단한데? 기술 제대로 들어간 것 봤지?”
“그러니까, 덩치 믿고 까부는 것 아니야.”
성현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성현은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대서 있었다.
점심시간이 넘어가며 햇볕은 더욱 뜨거워졌다.
‘덥네.’
빨리 도움 받을 사람을 찾아 목적지로 가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여자의 목소리,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방금 김석영 그리고 노란 머리와 함께 있던 여자가 보인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다.
“그쪽에게 흥미가 생겨서요. 함께하고 싶은데, 파티가 아니라면 동행도 별로인가요?”
“저쪽 파티는요?”
“뭐, 와해됐죠. 어쨌든…….”
그녀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성현에게 건넸다.
페이트 길드 인사 2팀 팀장 서은서
성현의 눈에 힘이 확 들어갔다.
‘서은서?’
서은서의 얼굴과 명함에 적힌 이름을 번갈아 본다.
‘저 얼굴에 상처를 새기면 그리고 표정을 조금 더 악랄하게 바꾸면…… 페이트 길드 마스터 서은서.’
그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달려가는 소시오패스다.
합리적인 것이 진리라는 신념하에 성현과도 꽤 많이 싸웠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성현도 인정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5위에 머물던 페이트 길드를 세계 7대 길드에 올려놓았으니까.
‘이게 서은서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보다 예뻤다.
성현의 당황한 눈빛을 보던 서은서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는 성현의 당황이 ‘인사 팀 팀장’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드리죠. 명함에 있는 것처럼 페이트 길드 인사 2팀 팀장입니다. 인사 2팀의 업무는 스카우트고요. 이런 장비를 들고 초급자 행세를 하는 이유는……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계약하기 위해서죠.”
그녀는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녀는 국내 5대 길드라 불리는 페이트 길드 마스터의 막내딸이기도 하다.
후계 구도에서 가장 밀려 있는 막내딸…….
그녀가 길드 마스터가 되려면 그녀의 오빠나 언니보다 압도적인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 될성부른 떡잎을 찾고 있다.
훗날 찾아올 상속 전쟁, 그곳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성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한다.
“동행을 하고 싶다고요?”
“네.”
“단순 동행보다는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성현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서은서는 제격이었다.
* * *
성현과 서은서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포탄의 흔적이 보였다.
인간이 짐승과 싸우며 떨어뜨린 거다.
서은서가 손부채를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예요?”
“‘뱀’ 잡으러 갑니다.”
“……뱀요?”
“네.”
성현은 다시 앞서 걸었다.
뱀을 찾는 이유…….
‘이태산에게 들었던 정보가 있어.’
눈밭에서 생을 마감한 구악의 이태산, 먹는 걸 좋아하던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 산 8부 능선에 뱀이 천 마리가 있어요. 놈들을 잡으면 코어가 나오는데, 권능의 이해도를 높여 주는 영약 같은 거죠. 그걸 흡수하고 삼 주일 만에 이해도를 5%까지 끌어 올렸죠.
성현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3주? 난 4일 만에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