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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6화 (16/252)

16화

성현은 알몸이었다.

그러니까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있는 상황…….

존재의 권능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모두 타 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요 부위는 죽은 뱀의 사체로 가리고 있었지만 서은서에게는 그게 더 충격이었다.

“배, 뱀을 가지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방금 변태 같은 노란 머리를 만났다.

그런데 성현까지 맨몸으로 나타나다니…….

그녀의 머릿속은 성현 역시 똑같은 변태 새끼라고 정의 내리는 중이었다.

아니, 뱀으로 가리고 있으니 노란 머리보다 더한 변태였다.

거기에 확신에 찬 근거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도 없는 산속이야.’

남녀 둘이 있고 그녀는 미인이다.

게다가 성현은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

‘며칠 동안 끔찍한 뱀을 지켰는데……. 시간을 낭비한 것도 모자라서 변태라니!’

배신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이 변태 같은 새끼! 뱀 같은 새끼! 너도 이 산으로 온 이유가!”

그녀가 확 칼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녀의 행동을 상관 않고 털레털레 자신의 가방으로 다가가 여벌의 옷을 꺼냈다.

그리고…….

“저기, 옷 갈아입을 건데, 고개 좀 돌려 주죠?”

“네?”

“옷이 다 타 버려서…….”

“아…….”

서은서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됐어요.”

성현의 목소리에 그녀는 다시 성현을 향했다.

하지만 민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물었다.

“……강원도 인제로 간다고요?”

“네.”

성현이 짐승의 땅에 온 이유는 하나다.

뱀의 코어를 흡수해 권능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

그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천도리 던전에서 ‘승려의 단도’를 얻는 것이다.

성현이 품에서 그녀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집에 가면 연락드릴게요.”

“저기…… 계약할 마음은 있나요?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복지가…….”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성현이 툭 끊으며…….

“뱀 머리를 지켜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동굴 안에 뱀 사체가 꽤 되는데, 반으로 나눌래요? 틈틈이 가죽 정리를 해 둬서 가져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뱀은 큰돈이 안 된다.

하지만 천 마리다.

마을로 내려가 브로커에게 넘기면 꽤 두둑할 거다.

만 원씩만 쳐도 천만 원…….

하지만 그녀는 천만 원이 아쉬운 사람이 아니다.

국내 5대 길드 페이트 길드의 막내딸, 천만 원은 관심 밖이었다.

그 정도는 쿨하게 성현에게 넘기고 환심을 사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아뇨, 됐어요.”

“그럼 뭐…….”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동굴로 들어가 가져온 가방에 뱀 가죽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 가벼운 인사만 남긴 채…….

성현의 뒷모습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진다.

‘저놈이…….’

지금껏 누구도 그녀의 말을 끊은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떻게든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성현은 달랐다.

말을 끊은 것도 모자라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하지만 화를 꾹 참는다.

‘참아야지, 참아야 해……. 도구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없어. 도구야, 도구.’

그녀에게 성현이란 인간은 미천하지만 훌륭히 성장할 도구다.

그럼 아버지는 인정할 거다.

그녀에게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후계 싸움에서 우위에 설 수도 있어. 언니와 오빠가 아니라 내가 페이트의 마스터가 되는 거야.’

그녀는 깊은 숨을 내뱉은 뒤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복면인 30명이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복면인에게 향했다.

“무령, 나 천도리 던전에 가고 싶어. 짐꾼이어도 괜찮으니까 자리 좀 알아봐 줘. 유성현이란 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무령이라 불린 복면인은 믿음직스럽게 대답했고 그녀의 시선은 동굴로 틀어졌다.

‘분명히 달라져 있었어.’

동굴에서 나온 성현은 다른 사람 같았다.

들어가기 전만 해도 어떤 권능도 없었는데 지금은 소름 끼칠 정도로 어두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스킬을 사용할 정도의 힘이었다.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존재와의 계약 후 스킬을 사용하기까지는 몇 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권능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죽음의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현은 단 몇 시간 만에 달라졌다.

서은서는 성현을 떠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도구가 아니야. 놈은 계단이 되어 줄 거야. 나를 마스터의 자리로 올려 줄 계단…….’

그녀는 성현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얻어야 해. 그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 * *

끼이이익.

성현이 탄 버스가 멈춰 섰다.

이곳은 인제군 천도리…….

버스에서 내리자 ‘레이브 길드’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성현은 그 앞에 선 안내원에게 다가가 섰다.

“짐꾼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름이?”

“오양정입니다.”

성현은 오양정의 이름을 대며 그의 학생증을 내밀었다.

아직 성현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어서다.

안내원은 곁눈질로 볼 뿐,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태블릿 PC를 만지며 오양정의 이름을 찾던 안내원이 고개를 끄덕…….

“오양정……. 이름 확인했어요. 가방에는 뭐가 있죠?”

“먹을 게 조금 있습니다.”

성현이 가져온 가방은 보통의 배낭보다 훨씬 큼직했다.

이계 시장에서 사 온 석궁과 야간 투시경 그리고 알약 등등이 들어 있어서다.

하지만 안내원은 가방도 확인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

“제일 끝에 있는 트럭에 타세요.”

군대에서 흔히 쓰는 트럭이 보였다.

짐칸에 오르자 먼저 도착했던 짐꾼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대부분 앳된 고등학생.

역사대로 흐른다면 이들은 이번 던전에서 전부 사망한다.

성현은 지옥을 경험하며 죽음이란 단어에 무감각했지만…….

‘최대한 살아남아라.’

잠시 후, 던전이 나타난 군사훈련장에 도착했다.

흙먼지가 불어오는 그곳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거대한 문…….

저것이 던전이다.

높이는 약 3m, 넓이는 한 번에 성인 남자 5명이 나란히 서서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넓다.

그리고 밖에서 보면 평범한 문이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다.

“지금 시간이 6시! 물자는 8시부터 나눠 줄 겁니다! 그때까지는 휴식하고 계세요!”

던전에 들어가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

그래서 짐꾼이 필요했다.

물건의 수량과 무게가 창고에 보관할 수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안내자의 말을 들은 후 성현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창고에 들어가자.’

성현은 새하얀 공간으로 이동했다.

창고 안은 고추장과 참기름 같은 식료품으로 가득하다.

모두 이곳에서 사용할 것들이다.

성현은 다른 행동 없이 곧바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은 스킬을 수련할 시간이다.

‘스파크.’

파지지직!

손에서 전기가 흘러나왔다.

‘좋아.’

성현은 권능 이해도를 8%나 달성했고 지금은 스킬을 익히는 중이다.

물론 성현은 지르힐의 기초적인 스킬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은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

‘몸이 기억해야 해.’

그래서 틈만 나면 스킬을 수련하는 중이다.

‘이제 다음 단계, 스파크가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해.’

성현이 원하는 것은 형태를 가진 전기였다.

그리고 이 단계가 성공하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할 거다.

‘라이트닝 볼.’

손가락을 움직이자 테스니 공만한 전기가 모였다.

마치 플라스마 볼 같은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성공.’

성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온 신경을 집중하자 공처럼 모인 전기가 허공으로 올라간다.

1cm, 2cm, 3cm…….

하지만 거기까지다.

전기로 만든 공은 5cm 정도 떠오르다가 ‘피시시식’ 사라졌다.

‘아직 무리였나?’

하지만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전기를 일으켰다.

‘다시.’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성현의 가장 큰 무기였다.

“짐꾼들은 물자 받으러 오세요!”

성현이 받은 지게에 텐트 물자와 전투식량이 놓였다.

여기에 성현의 가방까지 올리면 꽤 많은 무게가 나간다.

하지만 들지 못할 것은 아니다.

성현의 신체 능력은 평범한 사람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은 짐을 단단히 동여맨 후에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

“안녕하세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야구 모자를 쓴 여자, 그녀가 모자를 살짝 들었다.

그러자 예쁜 얼굴이 보인다.

‘서은서?’

그녀가 활짝 웃는다.

“또 보네요?”

성현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까지 쫓아왔어?’

성현은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을 보일 것 같은 청순한 외모지만 속마음은 탐욕적이고 파괴적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형제도 죽일 수 있는 여자…….

게다가 그녀는 가까운 미래에 ‘존재 이상의 탐욕을 가진 마녀’라고 불린다.

그런 그녀가 지금 성현을 원하고 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성현은 그녀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페이트 길드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기는 레이브 길드인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쉿. 비밀이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죠?”

“그러죠.”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발, 10분 전!”

* * *

휘오오오오.

눈 덮인 산에 굉음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던전의 1층.

밖은 분명 여름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쌓인 눈에 무릎이 푹푹 빠지는 게 꼭 알래스카처럼 여겨졌다.

길드원 20명과 짐꾼 30명은 두꺼운 점퍼에 스키 고글까지 착용한 채 걷고 또 걸었다.

성현은 가장 뒤에서 서은서와 함께 걷고 있었다.

서은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몇 살이에요? 이름은 알았는데, 나이는 모르네요.”

다른 짐꾼들은 걷는 것도 힘겨워 보였지만 서은서는 달랐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눈밭을 발랄하게 걷고 있다.

“열아홉 살요.”

“아직 학생?”

“네.”

그녀는 끄덕끄덕하지만, 머릿속으로는 한창 계산 중이다.

계약금을 얼마나 불러야 할지, 플러스알파의 조건은 무엇이 있어야 할지…….

성현은 그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뻔히 보인다.

‘그런데 미안하네…….’

성현은 페이트 길드와 계약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페이트 길드는 물론이고 어느 곳에 소속될지 아닐지, 그 무엇도 결정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생각의 자유로움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딱 하나…… 결정된 게 있었다.

성현은 서은서를 옆에 두려 한다.

‘내가 네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네가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녀는 페이트 길드의 막내딸이고 가진 정보는 엄청날 거다.

그리고 성현은 그 정보가 필요했다.

‘넌 나에게 정보통이 될 거야.’

성현이 입을 열었다.

“던전 토벌이 며칠 걸릴까요?”

“D급 토벌은 보통 일주일이면 끝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니까 조금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열흘이나 보름 정도?”

“3일. 3일이면 끝날 겁니다.”

“네? 3일요? 그게 무슨……?”

“지켜보세요.”

성현이 빙긋이 웃었고 서은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던전 주인을 찾는 시간만 해도 3일은 넘는다.

게다가 이 날씨……. 절대 3일 안에 끝낼 수 없다.

‘불가능해.’

하지만 고등학생의 치기 어린 소리로 넘기기도 힘들었다.

성현은 단 며칠 만에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래서 기대된다.

‘이번에도 기적을 보여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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