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서은서는 한심한 눈으로 토벌대장 윤진영을 보고 있었다.
놈의 억지로 길드원이 죽고 있다.
그것도 허망하게…….
윤진영은 사람 목숨을 장난감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저런 놈의 아버지가 차기 대권 주자라니……. 참 슬픈 일이다.
“저기요?”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틀었다.
성현이 서 있었다.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요.”
“부탁요?”
“신호를 주면 저쪽에 이것을 던져 주겠어요?”
성현이 건넨 것은 알약처럼 생긴 캡슐이었다.
“이게 뭐죠?”
“이계 시장에서 산 연막탄이에요.”
이계의 연막탄은 5분 동안 짙은 연기를 뿜어내는 아이템으로 효과는 반경 50m, 크기 대비 효율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걸…… 왜……? 어디에 쓰려고?’
서은서의 시선이 다시 성현에게 향했다.
하지만 성현은 이유를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은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상대는 성현이다.
이번에도 뭔가를 보여 줄 것 같다.
“크헉!”
또 1명의 길드원이 눈밭을 굴렀다.
토벌대장 윤진영을 제외하고 길드원은 고작 10명만 남았다.
그런데도 윤진영은 지랄을 한다.
“해가 지고 있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 팀장 아저씨, 어떻게 좀 해 봐!”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리며 사태를 파악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뭐지? 이곳이 D급이라고?’
절대 아니다.
D급에 있는 짐승이라면 이정도로 강하지 않다.
‘등급 판단이 잘못됐어. 퇴각해야 해. 안 그러면 다 죽을 거야.’
등급 파악이 잘못됐다면 퇴각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윤진영 저 새끼가 허락할까?’
문제는 윤진영이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길길이 날뛰는 새끼다.
퇴각한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
팀장의 주변으로 흰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지?’
연막탄이 터진 거다.
‘갑자기 왜?’
팀장은 연막탄이 어디서 터진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떤 미친놈이 연막탄을 터뜨린 거야!”
일단 누군가를 탓한 후에…….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퇴각해라! 아래로 달려가!”
퇴각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 명령에 길드원들은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진영은 이동할 수 없었다.
내려가려는 순간…….
“넌 뭐지?”
윤진영의 앞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가 앞으로 다가온다.
“누구냐니까!”
거리가 가까워져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그림자는 성현…….
윤진영이 눈을 찌푸렸다.
“짐꾼? 짐꾼이 여기는 왜?”
성현은 대답 대신 무심한 눈으로 윤진영을 살폈다.
윤진영의 온몸은 비싼 아이템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중에 성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벨트에 달린 작은 곰돌이 인형이었다.
“그거.”
성현이 손가락으로 윤진영의 벨트에 달린 곰돌이 인형을 가리켰다.
윤진영이 자신의 허리로 시선을 옮겼다.
“이거? 이거 뭐.”
“바람의 기억, 맞지?”
윤진영이 낄낄 웃었다.
“하, 이 새끼…… 거지 같은 새끼가 이걸 알아?”
바람의 기억, 소모성 아이템으로 1초간 신체 속도를 100배 올려 주는 아이템이며 시세는 10억.
100배라는 수치는 매력적이지만 그 효과가 1초이기 때문에 돈이 썩어 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쓰지 않았다.
성현의 목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네가 혼자 살아남았던 이유를 알겠다.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바람의 기억을 사용해 빠져나왔겠지.”
“뭐?”
“그리고 넌 이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겠지.”
“뭐라는 거야, 이 새끼야!”
성현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죽은 자의 아내가 울었고 죽은 자의 부모가 피를 토했다.
하지만 이놈은 죽을 때까지 떵떵거리며 살았다.
성현의 목소리가 차갑게 이어졌다.
“네놈을 죽이는 것도 미래를 바꾸는 거겠지.”
성현이 품에서 손바닥만 한 석궁을 꺼냈다.
역시 이계 시장에서 얻은 물건으로 손목에 착용 후 은밀하게 공격하는 암기다.
윤진영이 황당한 표정으로 석궁을 바라봤다.
“설마…… 그걸로 날 쏘려고?”
“어.”
“미친 새끼……. 이유나 들어 보자? 내가 뭘 잘못했는데?”
성현이 석궁을 왼 손목에 장착하며 입을 열었다.
“첫째, 네놈의 단순 재미 때문에 죽어 간 사람들이 불쌍해서. 둘째, 어디로 튈지 모를 네놈을 가만히 두면 내 계획이 어긋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셋째…… 난 너 같은 놈이 싫다.”
윤진영이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하나 더 물어봐도 되냐? 너 고등학생이지?”
“어.”
“짐꾼으로 지원한 새끼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어.”
“미치겠네……. 내가 지시만 하고 있으니까 약해 보였어? 너 집은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지? 가난하면 눈치라도 있어라.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하고! 길드원이란 새끼들이 독침에 맞아 죽을 때, 난 다 피했던 것 몰라? 어떻게 피했겠어? 내가 좀 강하다는 생각 안 했어?”
“안 했다.”
“이 새끼야, 내가 고등학생한테 당할 만큼 약해 보여!”
윤진영의 몸에서 사나운 기운이 확 솟구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엘리트로 자라왔다.
일류 격투기 선수에게 개인 강습을 받았고 온갖 영약을 먹으며 강해졌다.
경험 없는 고등학생 따위에게 당할 리 없다.
윤진영의 살벌한 시선이 성현을 향했다.
“죽여 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봐.”
성현이 석궁을 조준했다.
투우우웅!
작은 화살이 그대로 윤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챙!’ 소리와 함께 독침은 윤진영에게 닿지 않았다.
윤진영이 칼을 뽑아 막아 냈기 때문이다.
“더 쏴 봐, 이 새끼야.”
그런데 화살 공격은 페이크였다.
성현은 이미 윤진영의 앞에 서 있었다.
“강하다고?”
“어?”
“난 더 강하다.”
성현의 몸에서 흐르는 힘을 느낀 순간 윤진영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 어떻게 고등학생이 이런 힘을……?’
뱀의 코어를 흡수한 후 성현은 급격하게 강해졌다.
고등학생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다.
그리고 성현의 몸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윤진영이 눈을 찌푸렸다.
“전기?”
피해야 한다.
하지만 늦었다.
성현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윤진영이 미처 다른 행동을 할 시간도 없이…….
파지지직!
“끄아아악!”
윤진영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성현을 제외한 누구도 그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눈보라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고 있으니까.
윤진영이 온몸을 떨어 댈 때, 성현은 윤진영의 발을 짓밟았다.
꽈드드득!
발에 존재하는 모든 뼈가 으스러지며 윤진영의 눈에 붉은 핏줄이 죽죽 그어졌다.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팔을 잡아 역으로 꺾어 버렸다.
와드드득!
팔꿈치 뼈가 완벽하게 부서지며 그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악!”
그리고 윤진영은 눈밭에 쓰러졌다.
발에 존재하는 뼈가 으스러졌으니 걸을 수도 없고, 팔꿈치가 부서져서 손을 사용할 수도 없다.
눈밭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윤진영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우, 우리 아빠가 여당 대표 윤환철이야…….”
“그래서?”
“……내가 입 다물게. 여, 여기서 끝내자.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그래, 그 바람의 기억……. 그거 가지고 싶으면 가져. 그러니까…… 살, 살려 줘. 10억이든 20억이든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제발…….”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에서 전기가 파지직거렸다.
“토, 토벌대장이 없습니다!”
산 아래였다.
길드원의 보고를 받던 팀장이 눈을 찌푸렸다.
“토벌대장이 없다고?”
갑자기 연막탄이 터졌고 그것을 핑계 삼아 산 아래로 퇴각했다.
그런데 토벌대장 윤진영이 없다니…….
“고집 피우면서 혼자 남아 있는 거 아니야? 쌍안경 가져와!”
팀장은 길드원이 가져온 쌍안경을 눈에 댔다.
그리고 윤진영을 찾기 위해 한참 산을 살펴보다가…….
“젠장!”
다급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길드원이 팀장을 붙잡았다.
“위험해요!”
“안 돼, 안 돼!”
팀장의 목소리는 절망적이다.
“죽으면 안 돼!”
팀장이 쌍안경으로 본 것…….
눈밭에 쓰러져 있는 윤진영의 앞으로 난쟁이들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도 수십 마리가…….
난쟁이는 윤진영을 죽일 거다.
“저 새끼가 죽으면 우린 모두 끝이야! 그러니까…… 빨리!”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윤진영의 몸을 난쟁이들이 덮치고 있었다.
팀장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우린 망했어.”
* * *
팀장을 비롯한 길드원은 답 없는 회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팀장님을 포함해서 남은 길드원이 아홉이에요! 퇴각해야 합니다!”
길드원들의 말에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여당 대표의 아들이 죽었어. 성과라도 있어야 해.”
“팀장님!”
“안 그러면 우리 죽어. 살고 싶으면 ‘윤진영이 고집을 부리다가 죽었어요.’ 같은 진실이 아니라 ‘던전의 주인이 엄청 강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말을 해야 해.”
길드원들이 눈을 깜빡였다.
“던전의 주인요? 설마 끝까지 가시려고요?”
팀장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아 버렸다.
성현은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불꽃을 바라보는 성현의 옆으로 서은서가 앉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어떤?”
“혹시…… 살인을 좋아하는 성격?”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서은서는 성현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성현의 지시에 따라 연막탄을 터뜨렸고 성현의 행동을 지켜봤다.
연막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있었다.
“좋아요. 그럼…… 왜 죽였어요? 아, 어딘가에 보고할 생각은 없어요. 윤진영은 나도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요. 지금의 질문은 단순 호기심이에요.”
성현이 서은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현은 서은서의 생각을 알고 있다.
그녀는 성현을 관찰하며 몸값을 계산하는 중이다.
지금 그녀가 보는 성현은 윤진영을 이긴 고등학생…….
‘여기서 몸값을 더 올려 볼까?’
몸값이 높아질수록 서은서는 성현의 곁을 떠날 수 없을 테니까.
“죽이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죽었을 거예요.”
“모두가 죽었다? 꽤 확신에 찬 말이네요?”
“네, 확신이죠.”
성현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마무리했고 서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맞아…….’
뱀을 잡던 동굴에서도 그랬다.
성현은 노란 머리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던 것 같다.
‘권능이 예지 능력이었던 거야?’
예지는 전투형 능력이 아니다.
그래서 2~3%의 이해도만 있어도 권능을 발현할 수 있다.
‘단서는 또 있어.’
그런 식으로 해독제를 만들던 방법, 그건 독에 관한한 국내 최고라는 페이트 길드에서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래에는 그런 식으로 해독제를 만든다는 걸 예지를 통해 봤던 거야.’
그녀는 확신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성현은 이 던전이 3일 만에 토벌된다고 말했다.
‘그것 역시 미래를 보고 이야기한 거야?’
그녀의 눈동자가 성현에게 향했다.
‘한 번만 더 시험하자……. 정말 이 던전이 3일 만에 토벌된다면…… 유성현은 그냥 보석이 아니야. 다이아야.’
성현의 권능 이해도는 10%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예지력이 높은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성장했을 때 어느 정도일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서은서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넌 무조건 내 거야.’
그녀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성현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날 예지자로 생각하고 있지?’
예지자는 전투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예지자가 던전의 주인까지 박살 낼 정도로 전투력까지 높다면?
‘내 곁에서 떠날 수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