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성현이 서은서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모닥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청순하게 보였다.
물론 그녀의 속은 온갖 계산으로 가득하지만…….
성현이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더 하죠.”
“어떤?”
“팀장은 퇴각하지 않고 이 던전을 토벌하려 할 겁니다.”
서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녀도 예상하던 일이다.
“그래서요?”
“최대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호해 주세요.”
“제가요?”
“그럴 힘이 있잖아요.”
성현의 확신에 찬 말에 서은서는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쪽은요? 내가 사람들을 보호할 때, 그쪽은 어디에 있을 거죠?”
“전 오늘 밤…… 저곳으로 들어갈 겁니다.”
성현이 가리킨 곳은 난쟁이들이 있는 산이었다.
“……저길 간다고요? 그것도 밤에?”
“네.”
밤은 짐승의 시간이다.
낮보다 위험하다.
그런데 성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산을 보고 있었다.
서은서의 눈빛이 짙어졌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오늘 밤은 여기서 텐트를 치겠다!”
팀장의 지시에 짐꾼들은 숙영을 준비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은 겨울, 텐트를 치려했지만 꽝꽝 얼어 버린 땅에 팩이 박히지 않았다.
철근으로 만들어진 팩으로 바꾸고 망치대신 해머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팩이 안 박힙니다!”
“돌을 찾아 묶어야겠습니다!”
그때…….
꽝! 꽝! 꽝!
시원한 해머질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 성현이 있었다.
꽝!
단단하게 얼어 버린 땅도 해머질 세 번이면 팩이 쑥쑥 박혀 들어갔다.
끈을 묶는 것도 수준급이다.
텐트는 순식간에 완성됐고 성현이 허리를 펴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짐꾼 많이 해 봤나 봐?”
“대박…….”
“어떻게 한 거야?”
짐꾼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다.
숙영이 일상이었던 성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신기했다.
한 녀석이 머뭇거리며 부탁했다.
“저기…… 우리 텐트도 팩 좀 박아 주면 안 될까?”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 말에 다른 학생들도 번쩍 번쩍 손을 든다.
“저, 저기…… 나도 좀 부탁할게.”
성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팩을 박는 것은 귀찮을 뿐이지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성현의 활약으로 숙영 텐트와 지휘소 텐트가 순식간에 완성됐다.
학생들은 성현을 ‘해머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성현이 향한 곳은 취사 팀이다.
솥단지를 꺼내고 불을 피우며 요란을 떨어 대는 그들의 앞에서 성현이 입을 열었다.
“돕고 싶은데요.”
취사 팀의 리더를 맡은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너…… 저기서 해머 치던 애 맞지? 힘들 텐데 가서 쉬어. 식사 준비가 뭐 어렵다고…….”
물론 식사 준비는 어렵지 않다.
던전 식량이 들어 있는 용기에 끓는 물을 넣고 3분만 있으면 끝이다.
문제는 맛이 없다는 거다.
영양소가 모두 들어 있다고 하지만 식감은 퍼석퍼석하고 냄새는 찝찝했다.
성현이 들고 온 가방을 열어 보였다.
고추장과 참기름 그리고 라면 수프가 가득했다.
“대박…….”
취사 팀의 리더는 성현의 합류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끓는 물에는 라면 수프를 넣고 국을 만들죠. 던전 식량의 용기에서 쌀만 구별해 주세요. 오늘 저녁은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비빔밥입니다.”
가장 짧은 시간에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라면 수프와 고추장이었다.
그리고 그 맛은 전투식량과 비교할 수 없었다.
“던전 알바를 많이 해 봤는데 이런 식사라니…….”
“겨울에는 라면 국물이 최고지, 흐흐흐.”
모닥불 앞, 성현의 옆으로 짐꾼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들은 성현의 옆에 앉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거다.
성현은 어느새 짐꾼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한 학생이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던전에 온 거야? 돈이 필요해서? 학자금?”
깊게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 잘하나 보네. 난 학교 졸업하면 세계 일주하는 게 꿈이야. 그래서 돈을 버는 거고. 흐흐.”
녀석의 말에 조용히 있던 다른 학생들도 한마디씩 시작했다.
돈을 받아 컴퓨터를 세팅한다는 놈, 오토바이를 산다는 놈, 간간이 부모님을 돕는다는 놈도 있다.
시답잖은 꿈…….
하지만 역사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절대 이뤄지지 않을 꿈이다.
이들은 전부 죽을 테니까.
취사 팀의 리더가 지휘소 텐트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퇴각하지 않는 건가?”
모두 조용해졌다.
이들은 짐꾼이지만 위험성은 확실히 느끼고 있다.
토벌대장을 포함해 남은 전투 요원은 단 10명.
이대로 토벌을 진행하면 다 죽을 수도 있다.
한 짐꾼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밤이라 문이 잠겼잖아요. 아침에 퇴각하겠죠.”
밤이 되면 던전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제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 *
모두가 잠든 새벽, 던전 안은 달도 별도 없다.
그저 어둠, 눈앞에 있는 물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다.
성현은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선을 산으로 향한 후 알약을 입에 넣는다.
지금 먹은 알약은 ‘늑대의 후각.’
성현은 토벌대장의 몸에 ‘추적의 향수’를 뿌려 놨다.
그리고 지금 늑대의 후각을 이용해 냄새를 쫓으려 한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곳은 예상할 수 있다.
‘향수의 냄새가 나는 곳은…… 저기.’
성현은 뒷목을 꾹꾹 누르며 굳어진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현의 몸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런 성현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서은서였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 * *
‘이쯤…….’
성현은 언덕의 중간 지점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가방에서 야간 투시경을 꺼내 눈에 댔다.
높이가 2m 정도 되는 작은 굴이 보였고 그 앞으로 난쟁이 2마리가 서성인다.
‘입구를 지키는 것은 2마리가 전부인가?’
난쟁이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인간처럼 불침번을 세워 둔 채 휴식을 취한다.
성현은 석궁이 채워진 손목을 들어 난쟁이를 조준했다.
‘죽어라.’
화살은 소리 없이 날아가 난쟁이의 머리를 뚫어 버렸다.
남은 1마리가 퍼뜩 놀랐지만 그뿐이다.
‘너도 마찬가지.’
성현은 곧바로 석궁을 조준했고 활을 쏘았다.
곧바로 쏘아진 화살이 또 다른 난쟁이도 뚫어 버렸다.
난쟁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성현은 빠르게 굴 안으로 향했다.
2마리 난쟁이가 죽어 있는 게 보인다.
‘사용할 수 있을까?’
혹시나 화살을 사용할 수 있을지 뽑아 봤다.
하지만 무리다.
놈들의 뼈를 뚫어서 그런지 화살촉이 박살 나 있다.
성현은 피 묻은 화살을 바닥에 버리며 앞을 바라봤다.
길게 이어진 동굴 속으로 끝을 모르는 어둠.
야간 투시경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단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었을 거다.
‘이제 남은 화살은 일곱…….’
각 길목에 얼마나 많은 난쟁이들이 경계를 서고 있을지 모른다.
언덕 아래에 인간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놈들의 경계는 평소보다 더 삼엄할 거다.
화살 7발로 모든 난쟁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관없어.’
성현의 무기는 화살만이 아니다.
손끝에서 전기가 ‘파지직’ 번쩍였다.
아직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지만 난쟁이 상대로는 충분하다.
성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난쟁이 굴을 이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리는 곳은 식량 창고…….
그곳에 윤진영이 있고 그 몸에 뿌려 둔 향수 냄새를 쫓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어둠 속을 이동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성현은 동굴의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있어.’
코너 밖에서 돌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1마리…….’
성현은 손끝에 전기를 모았다.
그리고 빠르게 튀어 나가 난쟁이의 머리를 잡았다.
동시에…….
파지직!
어두웠던 굴 안이 전기로 인해 번쩍였다.
난쟁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둠은 소란을 삼켰고 성현은 다시 그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동굴 곳곳에 죽은 난쟁이의 사체들이 뒹굴어 다녔다.
그리고 성현은 놈들의 식량 저장소에 있었다.
인간 그리고 이 던전에 사는 괴물의 사체가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처럼 끈으로 매달려 있는 곳.
‘내가 이곳에서 찾는 것은…….’
성현은 괴물의 사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이가 1m가 넘는 애벌레를 찾아냈다.
‘이거다.’
애벌레를 땅으로 내려 둔 후 단도를 이용해 허리 부분을 죽 그었다.
반으로 갈라진 애벌레에서 찐득거리는 녹색 액체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성현은 화살촉에 녹색 액체를 발랐다.
인간에게는 하수구 냄새가 나는 더러운 피일 뿐이다.
‘하지만 이 던전의 주인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지.’
성현은 미래를 살다 왔다.
그리고 이 던전을 연구했던 논문을 무수히 읽었다.
그래서 지금 성현의 힘으로 던전 주인을 잡는 것은 무리지만…….
‘공략법을 알고 있으면 가능한 일이야.’
화살촉을 품에 넣은 성현이 일어섰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던전의 주인을 불러낼 때다.
성현은 식량 창고에 있는 애벌레를 찾아 모두 반으로 그었다.
주르르륵.
바닥에 떨어진 액체에서 역한 냄새가 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반으로 잘랐다.
그때…….
-크르르르.
검은 연기가 일렁이더니 하나로 모인다.
연기는 고체로 변해 형상이 되었다.
얼굴은 검은 소 대가리, 몸은 인간!
키만 해도 5m.
이 던전의 주인 에우제서스다.
그 등장만으로 성현의 온몸이 굳어 갔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입은 바싹 말랐다.
하지만 성현은 웃었다.
‘네놈의 몸에 승려의 단도가 있다는 거지?’
승려의 단도에는 상대의 방어력을 무력화시키는 권능이 담겨 있는데, 그 단도가 있어야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
‘와라.’
성현은 전투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에우제서스는 성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성현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바닥에 흐르는 애벌레의 피만 보고 있다.
에우제서스는 애벌레의 피 냄새를 맡고 이곳에 왔다.
애벌레의 피는 놈에게 치명적인 독…….
에우제서스에게 그 독 냄새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거다.
에우제서스의 눈동자가 성현에게 닿았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성현의 온몸이 찌릿거렸다.
-네놈이냐?
성현이 억지로 웃었다.
“긴말 말고 와라.”
-내가 하찮은 인간과 싸울 것 같은가? 네놈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내가 아니다.
에우제서스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였다.
그 연기가 사체의 코와 귀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먼저 토벌대장 윤진영의 시체가 눈을 번쩍 떴다.
-크아아악!
* * *
“비상! 비상!”
어두워야 할 하늘이 번쩍이고 있었다.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짐꾼들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던전의 추위는 군에서 경험했던 혹한기 훈련보다 더 가혹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주, 주인이 나타난 것 맞지?”
산에서 느껴지는 포악한 살기는 평범한 짐승의 것이 아니다.
100% 던전의 주인이다.
“도, 도망쳐야 해.”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주인은 이곳에 있는 길드원이 이길 상대가 아니다.
“저, 전부 죽을 거야…….”
그때 산에서 뭔가가 내려오고 있다.
기형적인 모습, 마치 거미처럼 기어 오는 사람들…….
“기, 길드원이야!”
어제 난쟁이의 독침에 죽었던 길드원들이다.
“다른 짐승도 있잖아!”
죽었던 길드원을 포함해 움직이는 짐승의 사체가 약 50여 구다.
문제는 언데드의 뒤로 살아 있는 난쟁이도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숫자는 가볍게 잡아도 100여 마리.
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언데드라니…….’
이제 확실해졌다.
이곳은 D급이 아니다.
C급…… 그것도 최상급!
언데드를 죽이려면 팔 하나, 다리 하나 자르는 것으로 모자라다.
놈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근원,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암흑의 코어를 찾아 빼내야 한다.
게다가 살아 있는 난쟁이까지 상대해야 한다.
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학살당할 거야.’
팀장의 머릿속에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에도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이 막 고등학교에 갔다.
‘살아야 해.’
딸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짐꾼을 앞에 세워!”
“네?”
“귓구멍이 막혔어? 짐꾼을 벽으로 세우라고!”
“……팀장님, 대부분 고등학생이에요. 그런데 애들을 벽으로 쓰라고요? 그건 고기 방패잖아요!”
“착한 척하지 마, 새끼야.”
팀장이 길드원을 밀친 후 짐꾼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약해 보이는 학생의 멱살을 잡는다.
학생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사, 살려 주세요.”
“미안하다.”
팀장은 그대로 학생을 집어 던졌다.
언데드가 내려오는 산을 향해…….
“아아아악!”
학생의 비명을 뒤로하고 팀장이 몸을 돌렸다.
그의 살벌한 눈동자에 짐꾼들은 시선을 피했다.
“짐꾼은 앞에 서라! 명령을 듣지 않으면 놈들의 먹이로 쓰겠…….”
그런데 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 붉은 안개…….
앞에 있던 길드원이 연기처럼 사라졌고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촉감.
‘칼?’
팀장의 목에는 칼이 닿아 있었다.
“누, 누구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입 닥치고 조용히 들어. 나 서은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