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0화 (20/252)

20화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누, 누구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페이트 길드의 서문길 마스터가 내 아버지다.”

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서, 서문길 마스터의 딸?”

그러고 보니, 주변에 피어오른 붉은 안개가 심상치 않았다.

‘이, 이건…….’

붉은 안개는 서씨 일가에게 계승처럼 내려온 존재 ‘중상모략과 거짓의 군주 카디르버’의 권능…….

팀장의 눈빛은 참혹하게 일그러졌고 계속해서 서은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들어라. 이 붉은 안개는 독이다. 딴생각을 하는 순간 네놈의 폐에 스며들어 죽음으로 안내할 거다.”

“……!”

“그렇다고 도움을 청할 생각도 말아라. 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서 알 수 없다. 이곳은 지구와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니까.”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조, 조용히 있겠습니다. 그런데 페이트의 영애가 여기는 왜……?”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는 네가 알 필요 없어.”

“그, 그럼…… 왜 제 앞에……?”

이렇게 질문했지만 팀장은 그녀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윤진영의 죽음을 봤기 때문이야.’

서은서는 재벌의 자식이고 윤진영은 권력자의 아들이다.

즉, 이 시대의 로열 패밀리…….

당연히 두 사람이 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젠장…….’

팀장은 윤진영의 죽음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서은서가 나타나며 모든 게 어긋났다.

‘다 틀렸어.’

팀장은 숨을 크게 내뱉은 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네가 던진 학생…… 그 애를 살려라.”

예상과 다른 지시에 팀장의 눈이 커졌다.

“네? 그게 무슨……?”

“이유는 묻지 말고 그 애를 이곳으로 온전히 데려와라. 그럼 윤진영의 죽음은 눈감아 주마.”

“눈감아 주신다고요?”

“그래.”

팀장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뭐야? 짐꾼 한 명의 목숨으로 눈감아 준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팀장이 확답을 받듯 다시 물었다.

“그, 그거면 되겠습니까?”

“하나 더. 나에 대한 것은 너만 알고 있어라. 그거면 된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붉은 안개가 스르륵 걷혔고 팀장은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뒤에서 속삭이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아무도 없다.

대신 손으로 얼굴을 가린 길드원만 보였다.

그 길드원이 중얼거린다.

“갑자기 눈바람이 휘몰아치다니…….”

팀장이 붉은 안개 속에 있던 순간 주변 사람들은 눈바람 속에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것도 보지 못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서씨 일가의 권능인가?’

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몸을 더듬더듬 만져 봤다.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바알!”

잔뜩 겁먹은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이 집어 던졌던 짐꾼, 그의 코앞까지 언데드가 다가와 있었다.

“살려! 저 새끼를 살려!”

팀장이 발악하듯 외치며 그를 향해 뛰쳐나갔다.

“팀장님! 갑자기 또 왜 그러세요!”

길드원들도 그 뒤를 따른다.

짐꾼들과 함께 서 있던 서은서는 시선을 틀어 산을 바라봤다.

성현이 사라졌던 방향이다.

‘대체 뭘 하는 거지?’

성현은 2시간 전에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던전의 주인이 깨어났고 언데드가 나타났다.

그 모든 이유가 꼭 성현 때문인 것 같다.

‘혼자 던전의 주인을 이길 생각은 아니겠지?’

객관적으로 성현의 전투 능력은 서은서보다 떨어진다.

그런데 이 던전은 최소 C급.

이 정도 등급의 던전이면 서은서도 혼자 이길 수 없다.

그녀의 눈빛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살아 있어야 해. 넌 내 보물이야.’

* * *

쿵!

성현은 동굴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쿨럭!”

입에서 피를 쏟으며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갈비가 나갔나?’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보자 인간의 몸에 소 대가리, 에우제서스가 채찍을 든 채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었다.

문제는 에우제서스만이 아니다.

‘저 좀비 같은 놈들!’

놈의 주변에 깔린 언데드, 특히 가장 앞에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윤진영도 문제였다.

언데드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도 끊임없이 일어서고 있다.

죽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우제서스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놈의 몸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고 코와 입에서 검은 피를 쏟아 내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독에 중독될 거다.

‘공략법을 알고 있으면…… 힘들어도 잡을 수는 있지.’

성현이 자신의 품에 손을 넣었다.

독이 묻은 화살이 만져진다.

‘그런데 남은 화살은 이제 하나…….’

이 화살로 놈을 독에 중독시켜 피부를 검게 만들어야 한다.

이 한 발로 중독시키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화살을 더 가져왔어야 했나?’

에우제서스가 코에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입을 열었다.

-인간…… 이곳의 주인인 내가 약속하겠다. 너를 친히 씹어 먹어 주지.

성현이 미소를 그렸다.

“나도 약속하지. 점심으로 소머리 국밥을 사 먹을 거야. 친히 씹어 먹어 주마.”

에우제서스의 눈에 분노가 확 올랐다.

-인간! 나를 소머리 취급하는 건가!

놈이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성현은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채찍에 맞은 바위는 두부처럼 부서졌다.

성현이 빠르게 에우제서스를 향해 달려갔다.

손에 모인 전기가 파직거렸다.

“막아 봐!”

성현이 주먹을 휘둘렀다.

에우제서스가 몸을 뒤로 젖히며 피한다.

“그건 페이크다.”

성현이 노리는 것은 전기 공격이 아니었다.

노렸던 것은 독이 묻은 화살, 손목에 묶은 석궁으로 에우제서스를 조준하는데…….

콱!

갑자기 윤진영이 달려들어 성현의 어깨를 물었다.

-크에엑!

살점이 뜯겨 나갔고 성현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물렸다고 좀비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분은 더러웠다.

“제발 죽어라!”

언데드의 원천인 코어를 찾아 박살 내야 확실히 죽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성현이 스파크가 튀기는 손으로 윤진영의 머리를 잡았다.

파지지직!

윤진영이 파르르 떨며 쓰러졌다.

그사이 에우제서스는 물러섰고 그 앞으로 다리 달린 물고기 사체가 막아섰다.

“하…… 정말…… 끝이 없네.”

-죽여라!

에우제서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언데드가 된 짐승 50마리가 성현을 향해 달려왔다.

성현이 허공으로 튀어 올라 다가오는 언데드의 머리를 밟으며 에우제서스의 얼굴 앞까지 이동했다.

“죽어!”

성현이 들고 있던 화살을 에우제서스의 미간에 꽂았다.

콰직!

에우제서스가 비명을 질러 댔다.

-크아아아!

하지만 에우제서스의 피부는 검게 변하지 않았다.

분노한 눈으로 성현을 노려본다.

-인간!

“제발 좀 죽어!”

성현이 에우제서스의 머리를 잡고 전기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퍼억!

에우제서스가 팔을 휘둘러 성현을 밀쳐 냈다.

가볍게 밀쳐 낸 것 같은데 성현은 10m 이상 날아가 굴렀다.

“젠장!”

성현이 다급히 일어서서 손에 전기를 끌어모았다.

지직! 지직!

힘이 다했나 보다.

작은 스파크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던 에우제서스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널 산 채로 뜯어 먹어 주지.

에우제서스가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데 에우제서스의 거대한 몸이 흔들린다.

행동이 느려졌고 피부가 검게 변하고 있다.

드디어 독에 중독된 거다.

성현이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다음 단계야.’

성현이 벨트에서 인형을 꺼내 들었다.

시가 10억 원, 단 1초간 신체 속도를 100배 올려 주는 아이템……. 윤진영이 가지고 있던 바람의 기억.

스르륵.

성현의 몸이 사라졌다.

에우제서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에우제서스의 눈앞!

손에는 반으로 잘린 애벌레의 사체를 들고 있었다.

“먹어라.”

성현이 독이 뚝뚝 떨어지는 애벌레의 사체를 그대로 에우제서스의 입에 처넣었다.

콰악!

에우제서스의 눈이 크게 떠질 때, 성현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난쟁이의 독침.

“이제 제발 죽어라!”

에우제서스의 공략법은 놈을 독에 중독시킨 후 난쟁이의 독침으로 죽이는 거다.

그 독침이 에우제서스의 정수리를 찍어 들어갔다.

콱!

* * *

“죽어!”

길드원과 짐꾼을 상관 않고 모두가 언데드 그리고 난쟁이와 싸우고 있었다.

가져온 지게와 배낭을 늘어놓고 기름을 부은 후 불을 질렀다.

이어서 바위와 언덕에 숨어 화살을 쏘아 댔다.

“조금 있으면 아침이다! 그때까지만 버텨라! 그때 퇴각한다!”

해가 떠야 퇴각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팀장의 앞으로 길드원이 다가왔다.

“화살이 부족합니다!”

팀장은 눈을 찌푸렸다.

전투 중이라 이계 시장을 다녀올 수도 없다.

오로지 지금 있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언데드만 없어도…….”

팔을 잘라도 다리를 베도 움직이는 놈들.

근접전에서 언데드는 두려운 존재 중 하나다.

지금도 그랬다.

난쟁이는 불 앞에서 머뭇거렸지만 언데드는 겁이 없다.

망설이지 않고 불을 뚫고 들어와 칼을 휘둘렀다.

채앵! 챙! 채앵!

길드원이 언데드의 팔을 잘랐다.

하지만 언데드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크아아악!

남은 팔로 칼을 쥐고 휘두른다.

베를 갈라도 마찬가지다.

멈추지 않고 공격한다.

문제는 그 언데드가 어제까지만 해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라는 거다.

아는 사람을 베고 찌르며 길드원의 멘탈은 부서지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그때…….

“뚫렸습니다!”

“벌써?”

불로 만들어 둔 방어선이 무너졌다.

난쟁이들이 눈으로 불을 꺼 버린 거다.

고등학생으로 이뤄진 짐꾼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아악! 살고 싶어!”

“살려 줘! 살려 줘!”

그들을 향해 팀장이 외쳤다.

“등을 보이지 마!”

난쟁이들은 독침을 들고 있다.

등을 보이는 순간 움직이는 표적이 될 뿐이다.

“맞서 싸워! 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릴 리 없다.

전투 경험이 없는 짐꾼들은 일단 도망치고 본다.

그 뒤를 난쟁이가 독침으로 조준하는데…….

퍽!

난쟁이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서은서였다.

그녀가 손을 움직이자 붉은 안개가 공간을 지배했다.

그 붉은 안개가 난쟁이의 코와 귀로 스며들어 폭탄처럼 터지고 있다.

-끼에에엑!

난쟁이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서은서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해가 뜨려면 아직 2시간 30분이 더 남았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녀의 능력으로 수백 마리의 난쟁이들을 모두 죽이기는 어렵다.

벌써 호흡이 가빠져 오는 중이다.

사람들을 놔두고 도망을 치느냐, 아니면 끝까지 싸우느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녀가 착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성현의 부탁 때문이다.

성현은 그녀에게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호해 주세요.’라는 말을 했고 그녀는 그 부탁을 대가로 계약을 요구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살아남았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계속 이곳에 있으면 같이 죽고 말 거야.’

난쟁이는 끝없이 다가오는 중이다.

몇 마리 죽였다고 끝이 아니다.

심지어 언데드가 되어 다시 일어나는 놈도 있다.

‘도망치겠어.’

선택은 끝났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틀었다.

‘나 혼자는 살 수 있어.’

그녀의 능력이라면 아침이 되어 문이 열릴 때까지 도망 다니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움찔!’ 그녀의 몸이 멎었다.

힘을 줬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뭐, 뭐야?’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어떤 목소리.

-기다려라.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이 목소리는?’

그녀가 계약한 존재의 목소리였다.

‘……존재가 왜?’

그녀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존재가 직접 그녀의 몸을 조종하는 거다.

서은서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을 조종하는 존재는 붉은 안개를 뿌려 난쟁이를 죽인다.

무리한 힘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하지만 존재는 멈추지 않는다.

붉은 안개가 계속해서 피어올랐다.

‘왜 이러는 거야? 왜?’

그녀는 존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꽈아아앙!

거대한 무엇인가가 땅에 떨어졌다.

눈이 먼지처럼 흩날렸고…….

“뭐, 뭐야!”

떨어진 것은 검은 소의 머리를 가진 거인…….

그리고 그 위에는 피투성이의 성현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