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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1화 (21/252)

21화

-인간!

에우제서스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성현을 밀쳐 냈다.

퍼억!

성현은 힘없이 나뒹굴었고 에우제서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이 살벌한 눈으로 성현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죽인다.

이어서 채찍을 꽉 쥐며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저벅, 저벅, 저벅…….

성현도 몸을 일으켰다.

“젠장…….”

그런데 딱 봐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고 심지어 비틀거리고 있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꽉 쥐며 에우제서스를 기다렸다.

“와라.”

성현을 향해 다가오는 에우제서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번쩍 들었다.

-네놈만은 반드시 산 채로 찢어 죽이겠다!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쿵! 에우제서스는 채찍을 휘두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크르르르.

에우제서스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급기야 쿨럭거리며 검은 피를 쏟아 냈다.

에우제서스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무너지는 것처럼 쓰러졌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만 깜빡거릴 뿐,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온몸에 독이 퍼진 거다.

그런 에우제서스의 눈동자에 성현이 보였다.

성현이 단도를 꽉 쥐며…….

“죽어라.”

에우제서스의 목에 단도가 꽂혔다.

콱!

동시에 언데드가 되었던 길드원들이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난쟁이들을 비롯한 짐승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글씨가 떠올랐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깜빡였다.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런데 갑자기 던전이 클리어됐다니…….

앞에서 에우제서스가 죽는 것을 봤지만 현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한 명, 한 명 더듬거렸다.

“뭐, 뭐야? 클리어?”

“설마 저게…… 주인이었던 거야?”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보였다.

“와!”

“대박! 짐꾼이 주인을 잡은 거야? 고등학생 맞지?”

“카메라가 있었어야 했는데!”

“나중에 랭커 되는 거 아냐?”

“랭커가 문제냐? 혼자서 주인을 잡았는데, 경험 좀 쌓으면 톱 10에 들어갈걸?”

“밖에 나가면 같이 사진 좀 찍자!”

그리고…….

서은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코피를 닦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성현에게 향했다.

그녀는 존재에게 몸을 빼앗겼었다.

‘대체 뭐야? 갑자기 왜?’

존재가 인간의 몸을 사용하는 것은 계약서에 명시된 거다.

게임처럼 생각하면 편한데, 평소의 존재는 인간이 게임의 ‘자동 사냥’을 하듯 지켜보기만 하고 가만히 놔둔다.

때때로 스텟만 올릴 뿐이다.

그런데 계약 중에 딱 다섯 번, 필요에 따라 인간의 몸을 직접 움직일 수 있다.

서은서에게는 그게 오늘이었다.

성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주인이 없어진 던전은 빈집을 터는 것보다 쉽다.

팀장은 길드원과 짐꾼을 이끌고 2층으로 향했다.

보물이라도 찾아야 윤진영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조금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층에 남은 사람은 부상자들…….

그들은 텐트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성현도 마찬가지, 보물 탐사에 참여하지 않고 1층에 남았다.

에우제서스의 사체 옆에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는 중이다.

‘충분히 쉬었어.’

성현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에우제서스를 향했다.

발목에 채워진 단검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승려의 단검.

성현이 에우제서스의 발목에서 단검을 뜯어냈다.

[승려의 단검]

-음탕했던 승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사용했던 것.

-낮은 확률로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다.

-낮은 확률로 꼬리가 아홉 달린 늙은 여우를 소환할 수 있다.

이 단검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거다.

이제 어머니를 살릴 확률이 더 높아졌다.

그때…….

“저기, 앉아도 될까요?”

서은서였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앉아 말을 이었다.

“……예언이 틀렸네요? 던전 토벌이 3일 걸릴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2일 걸렸으니까 틀린 거죠.”

성현이 슬쩍 웃었다.

“토벌은 아직 안 끝났어요. 보물 탐사까지 끝내면 3일 걸릴 거예요.”

“아…… 그러네요.”

서은서는 꼬치꼬치 따지지 않았다.

토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가 두 가지 부탁을 들어줬죠?”

성현이 서은서에게 부탁한 두 가지.

하나는 연막탄을 던져 달라고 했던 것.

또 하나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보호해 달라고 했던 거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부탁이 있어요.”

그녀는 성현을 영입하고 싶었다.

길드의 차기 마스터로 가는 길에 성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바로 그녀와 계약한 존재 ‘중상모략과 거짓의 군주 카디르버’가 성현을 주시하는 중이다.

카디르버가 왜 성현에게 관심을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현을 옆에 두면 카디르버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어.’

카디르버는 서씨 가문의 직계와 계약을 맺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언니, 오빠가 전부 카디르버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

그러니까 만약 카디르버에게 인정받는다면 후계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깔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부탁요?”

“네. 제가 페이트 길드의 인사 팀…….”

“부탁의 대가로 계약을 원하는 건가요?”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맞아요. 계약을 원해요. 계약금은 파격적으로 책정될 거예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계약자의 경우 많으면 2억을 받는데…… 유성현 씨는 특별히 30…….”

그녀의 말은 또 멈췄다.

“이거.”

성현이 500ml 생수병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데 생수병 안에는 물이 들어 있지 않다.

녹색 액체가 가득하다.

그녀가 생수병을 손에 들며 물었다.

“이, 이게 뭐죠?”

“독이에요. 인간이나 다른 짐승에게는 어떤 해도 없지만 에우제서스처럼 반인반수의 짐승에게는 꽤 치명적이죠. 가져온 게 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성분이 어려운 게 아니니까 비슷한 독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반인반수에게만 치명적이라고요?”

“사용법은 간단해요. 화살촉에 묻혀 공격하면 되죠. 그럼 저같이 권능 이해도가 낮은 계약자도 에우제서스 같은 짐승을 잡을 수 있어요.”

서은서의 시선이 에우제서스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화살이 박혀 있고 피부는 독에 중독되어 시커멓다.

성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부탁의 대가로 이 독을 드리고 싶은데요.”

서은서는 침묵했다.

‘어쩌지?’

독에 관한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이 페이트 길드다.

정부는 물론이고 다른 길드도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래서 독에 대한 지식의 탐욕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반인반수만 죽일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독…….

이걸 가져가면 꽤 인정을 받을 거다.

‘하지만…….’

이 독을 받는 순간 성현과의 계약은 뒤로 미뤄야 한다.

‘어쩌지?’

성현은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계약은 천천히 생각하죠.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고등학생이 계약하는 경우도 많아요.”

“전 제 가치를 더 높인 후에 하고 싶어요.”

“……그럼 하나만 약속해 줘요.”

“어떤?”

“다른 길드가 연락해 오면 제게도 알려 주세요. 우리가 더 좋은 조건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테니까요.”

* * *

등급 설정이 잘못된 던전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보다 위험하다.

생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리고 천도리 던전의 문 앞…….

방송사는 물론이고 길드원과 짐꾼의 가족도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간절하다.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전투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려하시는 것과 달리 침착하게 토벌하는 중으로 판단되며…….

레이브 길드의 전무가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냈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저, 저거!”

“문이 열린다!”

굳게 닫혀 있던 던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에 집중했고 마른침을 삼켰다.

토벌대가 던전에 들어간 지 고작 3일.

누구도 던전이 토벌됐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문이 열린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토벌대의 퇴각, 아니면 전멸.

‘살아만 돌아와, 살아서만…….’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과 함께 문에서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팀장을 시작으로 토벌대가 나오기 시작한 거다.

“나, 나왔습니다! 생존자는 약 40명 정도로 보입니다!”

기자들은 흥분했고 팀장의 앞으로 마이크와 카메라 들이 몰려들었다.

“던전 등급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경험해 보신 결과 몇 등급의 던전 같았습니까?”

“사망자는 몇 명입니까?”

“퇴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기자들과 달리 팀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먼저…… 토벌은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네?”

“2일 만에 던전의 주인을 잡으며 토벌에 성공했고 하루 동안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2일 만에 주인을 잡았다고요? 혹시 던전이 등급 이하였나요?”

“아뇨, 최소 C급으로 여겨졌습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D급 던전이라 해도 최소 5일은 걸린다.

그런데 2일 만에 주인을 잡고 3일 만에 탐사를 끝냈다고?

기자들의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낄낄 웃는 사람도 보인다.

‘미친 새끼’라며 조용히 중얼대는 기자도 있다.

팀장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길드원이 들고 있던 배낭을 가져와 풀었다.

번쩍이는 금붙이가 보였고 기자들의 눈은 번득였다.

D급 던전에는 이 정도의 보물이 없다.

C급 이상이 맞는다는 거다.

비웃던 눈빛이 확 바뀌었다.

“세, 세계 신기록 아니야?”

“그냥 신기록이 아니지, 미친 거지!”

“팀장님! 비결이 뭐였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팀장이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틀었다.

성현을 소개하려는 거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 어디 갔지?”

분명히 주변에 있던 성현이 보이지 않았다.

팀장이 옆에 있던 길드원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작게 물었다.

“그 고등학생 못 봤어?”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레이브 길드는 최대한 많은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까지 4구의 시신을 찾았으며 그중에는 윤환철 당 대표의 장남 윤진영 씨의 시신도 있었습니다. 토벌 팀장에 따르면 윤진영 씨는 위험한 곳에서도 가장 앞장섰으며…….

성현의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천도리 던전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신기록을 세웠네 어쨌네, 윤진영이 용감했네 저쨌네…….

어머니의 시선이 벽시계를 향했다.

‘그런데 얘는 왜 연락도 없어……?’

놀러 간다고 했던 성현이 연락도 없다.

3일 전에 전화가 온 게 전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걱정됐다.

그런데 양반은 못 된다.

“엄마!”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어머니의 시선이 다급히 문으로 향했다.

“밥 주세요. 배고파요.”

성현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방을 내려 두며 환하게 웃고 있다.

당연히 어머니는 화를 냈다.

“전화도 없이!”

“죄송해요. 친구들하고 산에서 캠핑을 했거든요. 놀다가 배터리가 떨어진 것을 몰랐어요.”

성현이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렀고 어머니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파, 하지 마.”

“10분만 해 드릴게요. 많이 뭉쳤네요.”

안마를 하며 성현의 시선은 달력으로 향했다.

동그라미 쳐진 곳이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승려의 단도를 구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어머니를 구할 거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였던 그 짐승…….

‘그놈은 반드시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성현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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