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2화 (22/252)

22화

* * *

“하나, 둘, 셋!”

천도리 던전의 내부.

열 명의 사람이 에우제서스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낑낑대며 눈밭을 걸어간다.

에우제서스의 사체를 던전 밖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다.

던전은 클리어된 후 21일이 지나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 전에 사상자를 수습하고 던전을 연구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시신을 찾았습니다!”

구조대들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같은 시각, 난쟁이가 서식하던 동굴…….

자박, 자박…… 발소리가 들렸다.

낫을 든 마녀 아리였다.

한참을 이동하던 그녀가 멈춰 선 곳은 놈들이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놈은 혼자서 에우제서스를 죽였어.’

그녀는 성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이 에우제서스를 잡던 그 순간을 목격했다.

그것은 갓 계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래, 이놈이야. 이놈이 바로 어머니가 찾던 인간이야. 드디어…… 나도 인정을 받을 수 있어!’

아리의 눈빛이 탐욕에 목마르기 시작했다.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신 그녀의 몸이 스르륵 사라졌다.

“유르라헬의 피를 이어 받은 하찮은 마녀 아리가 어머니께 보고할 일이 생겨 찾아왔습니다.”

큰절을 올린 아리가 계단 위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거대한 왕좌에 앉은 여인이 아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 말했던 인간에 관한 일인가? 말해 보라.”

“네.”

아리는 던전에서 본 것을 전했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여인과 그 옆에 도열한 신하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아리의 말이 끝났을 때, 모두는 고요했다.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여인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반인반수의 약점을 아는 인간은 아직 있을 수 없어. 그게 시간의 뜻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래, 그 인간이 맞는 것 같구나.”

존재들에게 전해져 오는 예언이 있다.

세상이 태엽처럼 되돌아갈 때 시간에 어긋난 자, 시간에 있어서는 안 될 자가 돌아오니 살육의 시간이 될지어다.

그자는 맨 처음 창조된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이 세상에 없어야 할 사람과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에느가인을 찾으리라.

존재는 인간보다 강하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 수 있고 상상할 수 없는 권능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불사는 아니다.

수명이라는 게 없을 뿐 다른 존재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고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원했다.

그 답이 창조주가 이 우주 어딘가에 숨겨 뒀다는 에느가인이다.

그것을 얻으면 창조주에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여인이 일어섰다.

치마 사이로 하얀 허벅지가 드러날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리…… 내 너에게 지시하마. 그 인간을 관찰하라. 그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매일같이 보고하라.”

“어머니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

아리가 허리를 굽혔다.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숙였는데 바닥을 향한 아리의 얼굴은 환하게 웃는 중이다.

‘매일 보고하라고?’

그녀의 신분은 여왕은커녕 귀족에도 끼지 못하는 마녀다.

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귀한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매일같이 어머니를 마주할 수 있는 거다.

‘인정을 받게 되면 신분 상승도 가능해.’

그녀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 * *

그 시각, 성현은 창고에 있었다.

네임 펜을 들고 흰 벽만 바라본 채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벽 앞으로 다가가 거침없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가장 위에 적힌 이름은 지연우.

이어서 지연우와 함께했던 자들의 이름이 죽죽 적혔다.

모두 죽여야 할 대상, 마지막으로 한아성의 오빠 한지혁까지 적혔다.

성현은 다시 한 걸음 물러선 후 벽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에 무게감이 있다.

모두가 괴물이라 불려도 모자라지 않은 사람들.

그중에는 구악 전부가 덤벼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괴물도 있었다.

심지어 지연우…….

놈의 힘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한참 고민을 하던 성현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구악의 멤버 이서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었는데…….

-제가 본 수억 가지의 미래. 그중에 우리의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본 것은 고작 수억 가지의 미래였어요. 만약 무량대수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중에 단 한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면…….

성현의 눈이 빛났다.

‘무량대수의 미래……. 그중에 단 한 가지의 가능성?’

그것은 이서아가 보지 못했을 미래다.

성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아가…… 볼 수 없었던 것? 그게 뭐지?’

딱 하나가 떠올랐다.

‘서아는 내 성격을 잘 알아.’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볼 수 없었던 미래가 있다.

‘내가 다시 지연우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

과거의 성현은 지연우와 함께 일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지연우의 마음이 진심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연우의 모든 행동은 모순되어 있었다.

내로남불…….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것.

그때부터 성현은 지연우와 사사건건 부딪혔었다.

그 결과는 반역자가 되어 구악의 모두가 처참하게 사망한 거다.

‘서아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을 거야.’

놈의 동료가 되어 함께 밥을 먹고 우정을 나누는 것, 그것은 성현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미래였다.

하지만 지금 성현은 그 미래를 선택하려 한다.

죽기보다 싫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표정을 보는 것은…….

‘그것도 재밌겠네.’

성현이 끌끌끌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래, 하자.’

성현은 결심했다.

지연우에게 신뢰를 얻기로, 그래서 놈이 성현에게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도록.

‘쉽지는 않을 거야.’

지연우는 눈치가 빠르다.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최대한 조심해야해.’

성현은 다시 펜을 들고 지연우의 옆에 슥슥 글씨를 적었다.

첫 번째 접촉. 요양 병원. 승려의 단검.

어머니가 지연우 때문에 사망했던 그 요양 병원.

지연우는 어머니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성현이 지연우를 이용할 생각이다.

‘한 달도 되지 않은 계약자가 높은 등급의 짐승을 없애면 관심을 가질 게 분명해. 일단은 첫 접촉에서 내 이름을 각인시키는 거야.’

성현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만 남았다.

‘계획을 세웠으면 준비를 해야지.’

성현은 몸을 돌려 책장을 향했다.

그러자 책 한 권이 스르륵 뽑혀 성현의 손으로 날아왔다.

스텟이 적힌 책이다.

지금 성현의 평균이 8.75.

천도리 던전에서 에우제서스를 잡은 후 상당한 보상을 얻었고 순식간에 성장했다.

그중에 가장 놀라운 점은…….

‘권능 이해도가 9%.’

벌써 9%다.

이제 슬슬 10%를 준비해야 한다.

‘10%가 되면 호칭을 얻지.’

호칭. 간단히 설명하면 게임의 직업 같은 것.

검을 든 검객이 호칭에 따라 검사도 도적도 되는 것처럼 호칭에 따라 세부적인 능력이 달라진다.

그래서 계약자들은 호칭을 얻는 그 순간을 상당히 기대한다.

하지만 성현은 달랐다.

설렘 같은 것은 없었다.

어떤 호칭을 얻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발전시키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성현은 스텟 책을 책꽂이에 꽂고 바닥에 앉았다.

이제 수련을 할 시간이다.

‘개학이 하루 남았어.’

아무래도 학교에 가면 수련할 시간이 부족할 거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수련을 하고 싶었다.

‘라이트닝 볼.’

성현의 손에서 스파크가 동그랗게 형체를 만들었다.

이어서 둥실 허공으로 올랐다.

‘됐어.’

권능 이해도가 높아진 후 스킬 수련도 수월하게 이뤄지는 중이었다.

‘조금 더 크게 만들어 볼까?’

성현의 손에 스파크가 더 거세게 일어났다.

파지지직!

* * *

개학이라고 하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았다.

보충수업이란 이름으로 매일 학교에 나왔으니 개학이란 의미가 없는 거다.

평소처럼 떠들고 놀고…….

그런데 성현의 반은 좀 달랐다.

학생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비 맞은 개처럼 주눅 들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안 왔어? 이 새끼, 학교 그만두는 거 아니야?”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주열호와 양아치 패거리가 교실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렸고 사납게 생긴 여자애가 들어왔다.

“안경 잡아 왔어.”

그녀의 손에는 안경 학생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안경 학생 역시 보충 수업 기간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는데, 개학이라고 나왔다가 양아치들에게 끌려온 거다.

주열호가 안경 학생을 보며 반갑게 손을 들었다.

“안경! 오랜만이다. 반가워. 오늘은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뺨 백 대 맞고 시작하는 것 어때?”

안경 학생이 고개를 숙였고 주열호가 비열하게 웃었다.

“끌고 와.”

사납게 생긴 여자애가 안경 학생을 끌고 주열호 앞으로 데려갔다.

안경 학생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다가올 폭력의 시간을 두려워하는 거다.

주열호가 안경 학생의 머리를 콱 잡으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새끼…… 잘못한 것은 알지?”

“미…… 미…….”

사과를 하려던 안경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당하기만 하면 평생 이러고 살 것 같았다.

안경 학생이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 때리지 마.”

“때리지 마? 이런 미친 새끼가.”

주열호의 주먹이 콱 쥐였고 안경 학생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할 말은 한다.

“이제 괴롭히지 마!”

“넌 오늘 뒈졌다, 새끼야.”

그때…….

“네가 주열호냐?”

주열호는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교실 뒷문, 그곳에 성현이 서 있었다.

주열호가 안경 학생의 머리를 놓으며 낄낄낄 웃었다.

“네가 유성현?”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열호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스킬을 쓸 줄 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

“뭐?”

성현의 말에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주열호는 이 지역 고등학생 중 최강자며 길드와도 계약된 사람이다.

심지어 앞으로의 유망주라는 이름으로 언론과 인터뷰까지 했었다.

그런데 별거 아니다?

주열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새끼가 미쳤…….”

주열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먼 곳에 있던 성현이 순식간에 코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

놀란 주열호를 보며 성현이 슬쩍 웃었다.

“왜? 다시 말해 줄까? 너 정말 별거 아니야. 약해.”

“이, 이 새…….”

주열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성현이 주열호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교실 바닥에 처박았다.

꽈아앙!

단 한 방이었다.

주열호는 그대로 축 퍼졌고 간간히 꿈틀대는 것을 제외하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성현이 고개를 들어 양아치들을 향했다.

“다음.”

“…….”

“다음, 없어?”

그게 끝이었다.

양아치들은 성현의 압도적인 힘을 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개처럼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이는 것…….

그리고, 1분단 앞자리.

창가 쪽에 앉은 한아성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자는 것은 아니다.

자는 척, 자신의 표정을 감추고 있는 거다.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달콤한 냄새가 더 강해지고 있어. 못 참겠어. 미치겠어! 어쩌지? 어쩌지?’

그녀는 몰랐지만 그녀의 치아가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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